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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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이라니, 근사한 제목에서부터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표지의 코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무례?, 품위?)짐작조차 쉽게 되지 않고, 국적조차 연상이 가지 않는 악셀 하케라는 낯선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수집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오직 제목 하나 만으로 완전히 사로잡는 책도 참 오래간만이다. 인생의 모토로 삼고 싶어짐과 동시에 이 책을 쥐어주고싶은 무례한 시대를 무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하는(하지만 그들은 절대 책을 읽지 않지) 제목과 '차별과 배제, 혐오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하여'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남기는 부제만으로도 책에 관한 만족감이 넘친다. 제목과 부제가 이미 반 이상을 해버렸지만 이토록 근사한 제목과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주제로 작가가 펼쳐낼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품위를 떠올리면 정의로움, 공평함 등이 연상된다. 또한 타인과 연대할 때 느끼는 인간의 기본적 감정들도 떠오른다. 이에 더해 아무도 보고 있지 않더라도 원칙을 지키려는 생각 역시 품위와 연계된다. 타인과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열려 있는 태도도 여기에 해당된다. 더불어 공명정대함을 빼놓을 수 없다. 공명정대는 말하고 행함에 있어 숨은 의도 없이 떳떳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의 언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공명정대하다 말할 수 있다. 끝으로 지금까지 열거한 사항들을 기꺼이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품위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p.28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는 독일의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악셀 하케는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통해 무례함과 품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제시한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의 예시, 철학적 비유 등을 통해 무례한 시대에 우리가 가야할 이상적인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데 그의 의견에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막힘이 없고 핵심은 명확하다. '이 책은 '이렇게 살아야 품위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김예원 변호사의 추천사처럼 악셀 하케는 자신의 의견, 입장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함께 나눠준다. 결국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악셀 하케는 품위 있게 건넨다.



 

 우리의 주제는 법이 아니라 공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법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이 새로운 세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려면 각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자세와 배려이다. 이를테면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세계에서 나름의 규칙을 하나둘 만들어가며, 석기 시대 때부터 물려받은 충동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동물의 조심성처럼 서로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 모두가 각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p.77

 

2020년이 되어도 아직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없고 차별, 편견, 혐오, 갑질, 꼰대와 같은 사회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비단 사회문제 만이 아니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통해 작가가 들려주는 사례들, 예시들과 질문들은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자가 진단을 도와준다. 지금 이 시대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작가의 질문에 과연 나의 대답은 품위가 있는지 뒤돌아보게 되고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이어지게 만든다. 

 

악셀 하케의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은 혼자만의 독서로 끝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와 토론으로 단계를 넓혀 가는 것을 권하게 하는 책이다. 이 시대에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품위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게 한다. 원서는 2017년에 발표 되었고 책에서도 2010년대 중반의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재 2020년의 사회 현상에 대해 지금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나로서는 이렇게 좋은 책이 한국어 출간까지 햇수로 3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이미 그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데 나는 이번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한국 출판시장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안타깝다. 악셀 하케의 이전 작품들이 다시 관심을 받고 앞으로 그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한국 독자들도 빠르게 만날 수 있도록 많은 독자들이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를 통해 악셀 하케의 남다른 관점을 따라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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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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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배 작가의 『동양 요괴 도감』은 단순히 훑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치밀하고 방대한 아카이빙을 했는지를 짐작 가능하게 한다. 동양 요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작가의 열정과 덕력을 엿볼 수 있는데 작가가 소개하는 동양 요괴들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더불어 작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동양 요괴뿐만 아니라 다른 관심분야에도 출간한 책들이 있다고 하니 관심과 호기심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작가가 발간하는 본격 덕질 장려 잡지 <더 쿠The Kooh>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성배 작가와 『동양 요괴 도감』은 한국 문학계에서 희귀종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런 책은, 이런 책을 만드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국 문학계에선 없는 존재들이었다.

 



가나다 순서로 동양 각국에서 전해져오던 요괴들이 소개된다. 요괴에 대한 소개와 묘사, 구전 및 문헌 내용이 작가 말 그대로 그야말로 쓸데없이 고퀄리티다. 지구는 넓고 역사는 길어 요괴도 많고 전해져오는 이야기도 많음을 『동양 요괴 도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양 젖꼭지를 눈으로 삼고 배꼽을 입으로 삼아 움직이는데 한 손에는 도끼,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춤을 추는 중국의 형천은 작가의 코멘트대로 웃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세 개의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일본의 마이쿠비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3개의 초록머리 카시라를 연상시킨다. 흥미로운 생김새와 구전 이야기, 작가의 일러스트가 흥미와 재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재미와 흥미로움으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지만 밤새 요상한 꿈으로 괴롭지는 않을까 노파심이 들기도 하는데 단순한 독서의 행위로만 그치지 않고 하나의 체험으로 이어져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준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이 책을 그냥 지나칠뻔하다가 무리하고 욕심을 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동양 요괴 도감』은 올해 상반기 동안 이루어진 나의 무수한 선택들 중 단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동양에 이토록 다양한 요괴가 존재했다는 것도 신기하고 하나하나 특징과 역사,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가장 신기한 것은 동양 요괴에 관해 이토록 완벽한 한 권의 책을 묶어낸 작가의 정체다. 대한민국엔 이런 작가가, 이런 책이 더 많아져야 한다. 더불어 참신한 이벤트와 굿즈 등 매력을 확장시켜 보여줄 콘텐츠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작가의 덕력이 어느새 나에게도 전파되어 고성배 작가 덕후가 되었다. 앞으로 출판, 문화계에서 들려오는 그의 소식에 빠르게 감응하며 그의 활동을 누구보다 크게 응원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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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문지 스펙트럼
E.T.A. 호프만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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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작고 심플한 디자인과 장정, 군더더기 없는 시리즈의 구성 변화로 1차분 5권의 리뉴얼된 책을 출간하며 수많은 독자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고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작지만 확실한 고전"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가 드디어 1년 반만에 2차분 5권의 책을 출간했다. 1차분 출간 당시 출간 예정을 알린 작품 리스트도 많았고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던 터라 이어지는 시리즈의 출간이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2차분 출간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2차분 출간 소식은 남달리 반가움이 컸는데 출간된 작품 리스트와 작가진,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에서 문학과지성사의 제작, 편집의 고심이 곳곳에서 엿보이며 기대감을 키워줬다.



 

사뮈엘 베케트의 『첫사랑』,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실비/오렐리아』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2차분이 출간됐다. 2차분으로 출간된 5편의 작품이 다 반갑고 궁금했지만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작품은 단연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였다. E.T.A. 호프만의 작품세계가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에 『모래 사나이』가 포함되어 있어 반가웠고 기존 문지스펙트럼에서 발표됐던 『모래 사나이』와 180도 달라진 표지 디자인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제대로 건드려 주었기 때문이다. 기존 『모래 사나이』 표지 이미지는 마치 <엑스맨> 시리지의 비스트를 연상시키는 야성미가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 이번에 리뉴얼된 표지의 스노우볼은 E.T.A 호프만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환상을 잘 드러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모래 사나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나타나엘, 아직 그것도 모르니?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서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 먹는단다"하고 말했어. 그래서 내 마음속에는 잔인한 모래 사나이가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 밤에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며 "모래 사나이야! 모래 사나이야!"하고 더듬거리며 소리쳤어. 어머니는 내게서 그 말밖에 들을 수 없었지. 나는 곧 침실로 뛰어갔지만 모래 사나이의 끔찍한 모습이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어. 유모가 들려준 모래 사나이나 달나라에 있는 그의 아이들의 둥지에 대한 이야기를 믿지 않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도 모래 사나이는 여전히 내게 무서운 유령으로 남았고, 그가 층계를 올라가는 소리나 아버지의 방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면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혔어. p.12-13 「모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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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로지 그녀만을 생각하며 살았어, 다른 모든 것엔 아무 관심도 없었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으며, 공부도 등한히 했어. 그러자 고통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그녀에 대한 동경 또한 몽상적이 되어, 상상 속 그녀의 모습은 예전과 달리 생기나 힘을 잃는 것 같았어. 하지만 이따금 어떤 순간에는 너무 심할 정도로 괴로워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몹시 겁이 나. 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었을 어떤 정신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믿지 못하더라도 조소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내가 겪은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듣고 느껴봐. p.95 「적막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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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피네, 아 세라피네!"

 그래서 할아버지가 깨어나 나를 불렀다.

 "얘야! 아우야! 너는 상상을 머릿속으로 하지 않고 너무 큰 소리로 하는 것 같구나! 가능하면 낮에 하고 밤에는 잠 좀 자게 조용히 해라!"

 할아버지는 남작 부인이 왔을 때부터 내가 흥분한 것을 이미 눈치챘고, 이제 내가 남작 부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까지 들었으니 신랄한 조소를 퍼붓지 않을까 적이 걱정했지만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법률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하느님은 모든 올바른 사람에게 이성을 주시고 이성을 지키도록 신중함을 주신다. 그렇게 간단하게 비겁한 사람으로 변하는 건 나쁜 일이다." p.150 「장자 상속」


『모래 사나이』에 수록된 3편의 단편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을 통해 E.T.A. 호프만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통과했다. 인간의 광기, 공포, 집착에 대한 집요한 묘사 속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환상을 체험하며 작품과 작품세계에 빠져든다. 환상의 힘, 어떤 미지의 힘에 이끌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랑(사랑이라 쓰고 광기, 집착이라 읽자)에 대책 없이 빠져버리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몽상가 취급을 받는 주인공들의 충동과 광기, 불안의 모습과 긴장을 이끌어가는 이야기 방식이 팀 버튼의 영화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가 닮아 있어 이 작품들을 원작으로 팀 버튼이 영화화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종종 들었다. 세 편의 단편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 작품의 분위기, 인물들을 집착, 공포에 빠트리는 마술적인 존재들의 장치(「모래 사나이」의 망원경, 「적막한 집」의 거울, 「장자 상속」의 초반의 피아노와 후반의 상속)이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우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혼돈에 빠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느새 독자에게 전염시키지만 작품의 매력은 분명하고 뚜렷하다.




아무런 장식 없이 반짝이 가루만 풍성하게 움직이는 듯한 스노우볼 표지 이미지는 E.T.A.호프만의 작품세계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표지가 예뻐 보이기만 했는데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작품을 곱씹게 하는 하는 힘을 가져 계속해서 음미하게 만든다.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1차분의 만족스러운 경험 덕분에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며 앞으로 출간될 작품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심어주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10권의 목록과 앞으로 출간 예고를 알리는 8권의 목록은 믿고 읽는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에 대한 든든함을 잘 보여준다. 문학과지성사만 믿으며 출간하는 명작을 따라 읽기만 하면 된다. 깔끔한 장정과 디자인, 신뢰감을 전해주는 명작들의 목록, 좋은 작품을 더 좋게 하고 독서의 쾌감을 끌어올려주는 옮긴이의 말까지 모든 요소가 다 좋았다. 유일한 흠이 있다면 너무나 긴 출간 간격일 테니 부디 빠른 시간 내에 3차분 출간을 만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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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몸 - 몸을 알아야 몸을 살린다
이동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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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장점에 대해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을 때면 나는 무조건 건강만 강조하며 말했었다. 실제로 지난 과거의 나는 자신에 대해 자랑할 거라곤 건강함밖에 없었다. 아픈 게 소원이라는 농담에 진심이 섞일 정도로 지나치게 건강했었고 지금도 건강하지만 여전히 건강함이 장점이고 자랑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과거만큼 자신은 없는 상태다. 나이를 먹으며 예전만큼 강하지 못한 체력에 쉽게 피로를 느끼던 몸은 잔병치레가 잦은 건강 상태로 퇴화해 체력도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더 이상 자랑거리로 내세우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건강과 건강관리 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게 된 데에는 주변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는데 과거엔 친구나 또래 사람들에게 두 번 절을 해야 할 경우가 생겼던 것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서였지만 갈수록 지병이나 건강 문제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건강 염려증도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현대의학에서는 부신피로증이라는 질환명은 없다고 말합니다. 부신피로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신호르몬 분비능력검사를 해보면 그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정상'이므로 환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러나 기능의학 의사들은 임상에서 분명 이러한 환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들을 치료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렸다라기보다는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부신피로증일 때 나타나는 증상들은 대게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누구라도 힘들고, 특히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도 일단 일어나서 움직이면 약 30분에서 1시산 사이에 정신이 들고 몸이 깨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부신피로증일 경우에는 계속 잠에서 깬 것 같지 않고 몸이 무겁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30분이 지나면 부신이 정상적으로 코르티솔을 분비해야 하는데, 그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또 부신피로증이 있으면 늘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조금만 식사를 늦추면 심한 허기짐과 저혈당 증상이 생기고요. 앉았다 일어나면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어지러우면서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립성저혈압 증상도 심해집니다.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지면서 우울해지기 쉽고, 여성의 경우 생리전증후군이 심해지거나 예민해지고, 화를 잘 내게 됩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아침부터 피로하기 때문에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카페인의 힘을 빌려야 오전을 버팁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더 피곤해져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셔야 오후를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다 저녁 6시 퇴근 무렵에 잠깐 기운이 나고 기력이 좋아짐을 느꼈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피곤해집니다.

 이런 증상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랜 스트레스로 심리적, 육체적으로 고생해온 경험이 쌓여 있다면 부신피로증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신의 증상들로 미루어보아 부신피로증의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부신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영양소들을 보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동시에 부신에 주는 자극, 심리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생활습관과 생각습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부신호르몬인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스테로이드는 양날의 검입니다. 잘못 쓰면 오히려 부신의 기능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서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p.106-108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대한만성피로학회' 명예회장 이동환 박사는 『이기는 몸』을 통해 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몸을 최대한 아껴 쓰는 법을 제안한다. 

면역, 세포, 미세염증, 호르몬, 폐, 간, 심장, 뇌, 위, 식도, 대장, 소장, 뼈, 근육, 눈, 귀, 코, 섭생, 영양제, 잠, 운동, 스트레스.

건강을 주제로 모든 영역을 다 다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몸, 질병을 이기는 몸, 노화를 이기는 몸으로 세분화하여 세포에서 몸, 건강관리까지 한 권의 책에 현대인들이라면 고민해보고 경험해봤을 몸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그럼에도 쉽고 재밌게 알려준다. 건강과 몸에 대해 다룬 책이라 하면 가질 법만한 편견을 깔끔하게 날려준다. '세포 속의 보일러, 미토콘드리아', '착한 하수처리장, 대장과 소장' 등 이해를 쉽게 도와주는 비유와 선진화된 해외 의학계의 사례들,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고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방식이 쉽게 술술 읽히며 독서의 재미를 전해준다.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쉽고 재밌는 설명 방식에서 작가의 화법이 연상되며 유튜브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따라온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고 나와 주위의 사례에 맞는 부분들을 다시 찾아 읽으며 건강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와 작가가 제시하는 관리, 예방법을 숙지하다 보면 어느새 몸을 아껴 쓰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고 나쁜 습관, 태도들을 고치게 된다. 누구나 쉽고 유익하게 읽을 책이라 추천은 물론이고 선물용으로도 딱이다.

 

 거북목은 당장의 근육 통증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뼈와 디스크의 손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뼈에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목뼈가 연결되는 부위에 관절염이 생기기 쉽고, 목디스크에 더 큰 압력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폐활량을 떨어뜨려서 호흡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건데요. 호흡을 도와주는 근육들이 목과 갈비뼈에 주로 붙어 있습니다. 거북목이 되면 이 근육들이 수축하는 것에 방해를 받아 폐활량이 최고 30%까지 떨어질 수 있지요. 그밖에도 거북목이 있는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서 골절 위험률이 70% 증가하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사망률이 약 40% 증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이 숙여져 있을 때 통증이 느껴진다고 해서, 단순히 고개를 든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머리의 위치뿐만 아니라 어깨와 등의 자세에도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깨가 쳐지고 등이 굽어진 상태에서 고개만 드는 것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어깨와 등을 함께 펴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어깨와 등을 펴기 위해선 가슴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시선은 하늘을 보면서 가슴을 하늘로 향하여 올리고, 그 상태에서 양팔을 들어 뒤로 제쳐봅시다. 이 자세는 어깨와 등을 펴게 하면서 목뼈의 배열을 좋아지게 합니다. 이 자세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30초~1분간 유지합니다. 일을 하면서 20분~1시간마다 이 자세를 취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컴퓨터 화면을 크게 하고 글자도 크게 하는 것입니다. 글자가 잘 안 보이면 머리를 숙이면서 앞으로 내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모니터 높이를 너무 낮게 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컴퓨터 마우스와 키보드는 가급적 몸에 가까이 붙여두세요. 거리가 멀어지면 팔을 뻗어서 책상에 팔을 걸치고 키보드나 마우스를 움직이게 되는데, 이러한 자세는 머리와 어깨를 앞으로 내밀게 만듭니다. 운전을 할 때도 후방거울을 조금 높게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후방거울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높이게 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생활 속 작은 실천들은 거북목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p.228-229


정보화시대에 기아가 아닌 소화불량으로 죽는 세상이다 보니 옛날처럼 몰라서 아파도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지만 가짜 전문가, 거짓 정보와 광고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그 속에서 정확한 진짜 정보를 잘 걸러내는 능력이 실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 예전엔 맞았던 정보가 오늘날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보가 넘치고 끊임없이 업그레이드가 진행되는 시대에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인지하는 일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이동환 가정의학전문의의 『이기는 몸』은 건강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와 지식에 전문가의 조언과 솔루션이 한 권의 책에 제대로 압축되어 책을 다 읽고 난 후 준전문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이기는 몸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재 이기는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예방과 관리 차원에서 미리 읽어둬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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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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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빠를 살해해야만 했을까?"

흡인력 있고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추리에 독보적인 히가시고 게이고의 작품세계를 좋아하지만 워낙 다작하는 작가라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반가움과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이면엔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압박감도 생기는데 미처 읽지 못했던 작품에 대한 개정판 소식이 들려왔다. 『백마산장 살인사건』이 12년 만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으로 제목도 바꾸고 컬러풀한 일러스트의 표지 이미지도 검은 배경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것처럼 보이는 일러스트로 180도 바꿔 개정판을 내놨다. 같은 소설이지만 바뀐 제목과 다른 이미지의 표지 디자인은 다른 분위기를 지닌 두 개의 소설처럼 느껴져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거기에 이 작품은 1986년에 발표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자 최초의 추리소설이라고 하니 관심과 기대가 더 커진다.

 



"피로는 갑자기 찾아오지. 기회와 마찬가지로."

"위기도 그렇지."

일 년 전 여행을 떠났다가 숙소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된 오빠 고이치. 오빠의 죽음은 음독자살로 종결되지만 죽음 이후 여동생 나오코에게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를 알아봐달라는 엽서가 도착한다. 오빠가 죽은 시기가 되면 펜션에 매년 같은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코는 마코토와 함께 일 년 전 오빠가 죽은 산장으로 향한다. 하쿠바에 위치한 펜션 머더구스, 작년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일 년 만에 다시 모이고 펜션에서 과거에도 사망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펜션의 과거와 각 방의 이름과 벽걸이의 머더구스(영국 전승동요집) 가사에 관한 해석을 추리해가면서 오빠의 죽음이 타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간다. 그러는 중 펜션에서는 또 다른 사망사건이 일어나면서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독서의 속도감을 올려주고 더불어 추리소설의 재미와 흥미를 높여준다. 


 "2년 전에도 여기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마코토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무라마사는 잠깐 숨을 멈추고, 한참 뒤에 "예" 하고 대답했다. 그 호흡이 나오코의 마음에 걸렸다.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아니요."

 마코토가 형사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p.188


"하지만 그럴 듯하던데요."

"거짓말일수록 정교한 법이지. 하지만 꿈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돼. 행복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주문의 효과는 없어졌다고 말이야."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작을 발표하면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비결은 그의 추리 소설이 탄탄한 구조의 스토리와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이 재미와 몰입감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역시 여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처럼 그 매력을 잘 나타내주었다. 오빠의 죽음의 행적을 뒤쫓으면서 펜션 내 모든 사람들은 용의자가 되고 각 방의 이름과 벽걸이의 머더구스 가사는 암호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평소 머더구스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던 탓에 세세하게 가사를 해석하고 숨은 뜻을 찾아가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희열과 성취감을 100% 이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세심한 추리적 장치, 허를 찌르는 반전은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의 내공이 엿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수한 작품들이 하나하나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독자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과 작품의 신선한 재미를 동시에 전해주는 저력을 매 작품마다 느끼게 해주는 남다른 저력을 보여준다.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읽히지만 반복되는 자기 복제로 패턴도 일찍이 읽히는 몇몇 작가들과는 확실하게 선 긋기를 하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장르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열광하고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비결을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준다.



 

 이상한 손님들 뿐이다. 가미조, 오오키, 에나미, 의사, 다카세, 아니, 그 사람은 손님이 아니지. 그리고 포커, 체스…….

 페퍼민트 효과가 이제야 사라지는 모양이다…….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무엇 하나 놓치고 지나칠 수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도 훌륭했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표지의 이미지와 각 장마다 세심하게 배치해놓은 일러스트 이미지에서 편집의 꼼꼼함이 엿보여 추리적 장치들에 대한 재미를 더해준다. 신인 작가 시절 처음 발표한 추리소설임에도 그야말로 완벽이 엿보이는데 개정판 출간으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챙겨 읽게 되어 다행이다. 강력한 반전만큼 진한 여운에 제대로 빠져들었다. 379여 페이지를 빠른 호흡으로 읽으며 숨 가쁜 추리의 행적을 뒤따라 갔는데 짧지만 강한 반전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슬픔 감정으로 잠식된 소설이 되어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작품을 읽으며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익숙하지 않음과 예측 불가능함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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