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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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빠를 살해해야만 했을까?"

흡인력 있고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추리에 독보적인 히가시고 게이고의 작품세계를 좋아하지만 워낙 다작하는 작가라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반가움과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이면엔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압박감도 생기는데 미처 읽지 못했던 작품에 대한 개정판 소식이 들려왔다. 『백마산장 살인사건』이 12년 만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으로 제목도 바꾸고 컬러풀한 일러스트의 표지 이미지도 검은 배경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것처럼 보이는 일러스트로 180도 바꿔 개정판을 내놨다. 같은 소설이지만 바뀐 제목과 다른 이미지의 표지 디자인은 다른 분위기를 지닌 두 개의 소설처럼 느껴져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거기에 이 작품은 1986년에 발표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자 최초의 추리소설이라고 하니 관심과 기대가 더 커진다.

 



"피로는 갑자기 찾아오지. 기회와 마찬가지로."

"위기도 그렇지."

일 년 전 여행을 떠났다가 숙소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된 오빠 고이치. 오빠의 죽음은 음독자살로 종결되지만 죽음 이후 여동생 나오코에게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를 알아봐달라는 엽서가 도착한다. 오빠가 죽은 시기가 되면 펜션에 매년 같은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코는 마코토와 함께 일 년 전 오빠가 죽은 산장으로 향한다. 하쿠바에 위치한 펜션 머더구스, 작년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일 년 만에 다시 모이고 펜션에서 과거에도 사망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펜션의 과거와 각 방의 이름과 벽걸이의 머더구스(영국 전승동요집) 가사에 관한 해석을 추리해가면서 오빠의 죽음이 타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간다. 그러는 중 펜션에서는 또 다른 사망사건이 일어나면서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독서의 속도감을 올려주고 더불어 추리소설의 재미와 흥미를 높여준다. 


 "2년 전에도 여기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마코토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무라마사는 잠깐 숨을 멈추고, 한참 뒤에 "예" 하고 대답했다. 그 호흡이 나오코의 마음에 걸렸다.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아니요."

 마코토가 형사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p.188


"하지만 그럴 듯하던데요."

"거짓말일수록 정교한 법이지. 하지만 꿈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돼. 행복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주문의 효과는 없어졌다고 말이야."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작을 발표하면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비결은 그의 추리 소설이 탄탄한 구조의 스토리와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이 재미와 몰입감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역시 여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처럼 그 매력을 잘 나타내주었다. 오빠의 죽음의 행적을 뒤쫓으면서 펜션 내 모든 사람들은 용의자가 되고 각 방의 이름과 벽걸이의 머더구스 가사는 암호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평소 머더구스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던 탓에 세세하게 가사를 해석하고 숨은 뜻을 찾아가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희열과 성취감을 100% 이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세심한 추리적 장치, 허를 찌르는 반전은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의 내공이 엿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수한 작품들이 하나하나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독자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과 작품의 신선한 재미를 동시에 전해주는 저력을 매 작품마다 느끼게 해주는 남다른 저력을 보여준다.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읽히지만 반복되는 자기 복제로 패턴도 일찍이 읽히는 몇몇 작가들과는 확실하게 선 긋기를 하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장르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열광하고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비결을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준다.



 

 이상한 손님들 뿐이다. 가미조, 오오키, 에나미, 의사, 다카세, 아니, 그 사람은 손님이 아니지. 그리고 포커, 체스…….

 페퍼민트 효과가 이제야 사라지는 모양이다…….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무엇 하나 놓치고 지나칠 수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도 훌륭했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표지의 이미지와 각 장마다 세심하게 배치해놓은 일러스트 이미지에서 편집의 꼼꼼함이 엿보여 추리적 장치들에 대한 재미를 더해준다. 신인 작가 시절 처음 발표한 추리소설임에도 그야말로 완벽이 엿보이는데 개정판 출간으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챙겨 읽게 되어 다행이다. 강력한 반전만큼 진한 여운에 제대로 빠져들었다. 379여 페이지를 빠른 호흡으로 읽으며 숨 가쁜 추리의 행적을 뒤따라 갔는데 짧지만 강한 반전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슬픔 감정으로 잠식된 소설이 되어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작품을 읽으며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익숙하지 않음과 예측 불가능함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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