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 작사가 조동희의 노래가 된 순간들
조동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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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사람들의 생각만큼 직업인으로서의 작사가, 작곡가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일하는 사람들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듯이 작사가 역시 일어나 많은 시간을 쓴다. 직업인으로서의 작사가는 조금 더 낮고 작은 것을 찾아볼 줄 알고, 보살필 줄 알고, 견딜 줄 알아야 한다. 그 후 피어난 어여쁜 꽃을 어디에서, 어떻게 포장해 팔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p.13

 

조동희 작사가는 첫 책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에필로그에서 유난히 많이 웃고, 유난히 많이 운 대가로 써놓은 글이 그 시절마다의 자신의 실수고, 그림이고, 사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나예요.'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6년 후 두 번째 책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발표했다. 첫 책 에필로그의 연장선상이자 두 번째 책의 부제인 '작사가 조동희의 노래가 된 순간들'을 모아놓은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에는 조동희 작사가의 가사들과 일상, 시선이 닿는 풍경들이 아름답고 잔잔하게 녹아있다. 진한 울림을 전해주는 가사를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조동희 작사가의 가사들 만큼 에세이 속 문장들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보이지도 않는 감성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아득히 어려운 일이라, 작가는 수많은 불면의 밤을 외롭게 지새우며 창작을 한다. 가사에 한 줄 한 줄 헛된 단어가 없고, 나, 너, 우리와 동의어 반복으로 글자 수를 낭비하지 않을 때 좋은 음악이 탄생하게 된다.

좋은 그림은 음악이 들리고, 좋은 음악은 그림이 보인다. p.171



 

첫 책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도 그러했는데 이번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읽는다는 것은, 그러니까 조동희를 읽는다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일이었다. 작가의 문장들을, 작사가의 가사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음악을 찾아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는 데에는 나만의 공간과 시간, 특별한 독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작가는 보이지도 않는 감성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아득히 어려운 일이라 고백하지만 나에게 조동희를 읽는다는 것은 좋은 음악이 들리고 그림이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면 영감이란 것이 별거인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이별 노래는 작곡가가 변기에 앉아 있다 쓰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한 매거진에서 소설가 필립 로스Philip Roth는 이렇게 말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이제 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영감이라는 것은 어느 날, 어느 순간 벼락처럼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묵히고 묵히며 묵묵히 살아가는 중에 돌연 발끝에 치이게 되는 것임을. p.90-91

 

늘 글과 음악 사이에 있었다는 조동희 작사가에게 이제 작사가 만큼 작가라는 단어가 친숙한 표현이 됐다. 조금 더 낮고 작은 것을 찾아보는 시선, 보살피고 견디는 마음의 진심이 독자를 위로하고 일깨워주는 힘은 엄청났다. 작가로서 더 자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해주었다. 

 

좋은 글은 쉽다.

조동희 작가가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 말이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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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 문지아이들
브라이언 플로카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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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플로카의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에 흥미가 갔던 건 김명남 번역가 덕분이었다. 김명남 번역가는 자신의 SNS에 과학책을 번역한다는 소개 글을 썼지만 평생 과학책 한 권 안 읽는 오로지 문학덕후인 내 독서 목록엔 김명남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들이 종종 있다. 따라읽는 번역가는 없지만 관심이 가는 작품에 김명남 번역가 이름이 있으면 신뢰가 커지고 반가움도 남다른 덕분에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기대와 신뢰도 덩달아 커졌다. 



 

식품,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되고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던 코로나 초기 상황은 전쟁 경험에 견줄만한 일이었다.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학교는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일상을 멈추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일상이 완전히 바뀌는 모습이 빠르게 진행됐다. 브라이언 플로카의 시선은 텅 빈 도시에서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 향한다. 식료품을 배달하고,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사람들, 응급구조사와 의료진 등 현대 사회의 필수인력들이 묵묵하게 자신의 업무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팬데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마음이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전달된다.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 쓴 것 같은 글과 평소 스쳐가는 풍경들을 세심하게 담아낸 수채화가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40여 페이지의 그림책에 따뜻하게 담아냈다. 이토록 감사할 대상들이, 감사할 일들이 많은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여유 없이 답답함과 짜증만 늘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되고 도시에서 처음 보는 모습들을 찾아보게 되는 여유를 가져보게 도와주기도 한다. 

 

 브라이언 플로카의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짧은 이야기지만 마음을 이끄는 힘이 단단한 그림책이다. 따뜻함과 단단함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오늘도 묵묵히 내 몫의 일을 하며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지 않는 일 인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브라이언 플로카가 보내는 소중한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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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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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몸에서 싹이 자라고 자꾸 어떤 남자애 환영이 보여."

'브로멜리아드' 화원을 운영하는 유지 이모(이하 지모)와 살며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인에게 친구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들이 늘어가고 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손톱 끝에선 새싹이 돋아나는가 하면 환영처럼 보이는 하승택이라는 소년이 나타나서는 자신과 나인은 태어난 게 아니라 피어난 존재 '누브'라고 말한다. 자신이 이상해진 것 같아 혼란스러웠는데 지모는 진작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나인은 갑작스러운 변화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만으로 충분히 복잡한 상태인데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능력 덕분에 2년 전 실종된 선배 박원우 사건에 대한 전말을 알게 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추적이 더해진다.

 

 그럼 인간들도 그 사실을 알아?

 모를걸?

 왜?

 다들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꽁꽁 숨기고 있으니까.

 그럼 지모는 외계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우리는 그냥 딱 보면 알아. 아, 쟤도 바깥에서 왔구나. 신호등이 깜빡일 때 걷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 버스를 탈 때 노인이나 아이를 위해 한발 양보하거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다 내려야만 타는 사람.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야.

 왜? 

 인간들이 정해 둔 규칙을 지키는 거지. 외부인이니까.

 그날 지모의 말을 들으며 나인은 다짐했다. 세상에 외계인은 많다. 그러니까 괜히 심각해지지 말자. p.61-62

 

진실은 무겁다. 뒤늦게 깨달은 진실은 더더욱 무섭다.

『천 개의 파랑』으로 문학계에 화려한 등장을 했던 천선란 작가의 신작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창비 K-영어덜트 장르인 소설Y 시리즈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손톱 사이에 새싹이 돋아난다는 설정부터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넘치는 상상력에 여지없이 반하고 마는데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남다른 흡인력에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런 집중력이 있었나 놀랄 정도로 몰입하며 소설을 읽어갔다. 

 

 새벽에 돌아온 지모는 신발을 현관에 거칠게 벗어 던지며 방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이에 잔뜩 화가 묻어 있었다. 뒤척이느라 그때까지 잠들지 못했던 나인은 조용히 지모의 방문을 두드렸다. 지모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다. 나인은 다짜고짜 지모를 끌어안았다. 지모는 왜 그러느냐고 묻다가, 얼굴 좀 보자고 하다가, 결국 두 팔로 나인의 어깨를 감쌌다.

 지모는 한참 동안 나인을 끌어안고 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그랬어." p.174-175

 

그 확신은 이제 '하다 안 되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생각에서 '반드시', '기필코', '해내야만 하는'이라는 수식어가 가득한 현실로 나인을 이끌었다.                                                                                                                                                                                                                                                                                                                                                                                                                                

풍부한 상상력과 따뜻한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나인』엔 천선란 작가의 섬세함과 따뜻함이 진하게 펼쳐진다. 영어덜트 소설로, 페이지 터너로 책장 넘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박원우 실종사건을 통해 학교 폭력을, 나인과 지모의 정체와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에 당연한 듯 만연해있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미혼의 이모가 혼자 조카를 보살피는 보습을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모와 나인은 서로에게 완벽한 가족 구성원이다(미래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정작 우리 사회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형태의 권도현네 같은 경우 도현은 자신의 부모를 부모가 아닌 양육자로 부른다. 틀린 게 아닌 다른 것들을 다양한 시선과 형태로 보여주면서 그 모습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한국 문학사에 유일무이한 '에코 스릴러'답게 환경 문제에 관한 문제의식도 작정하고 다뤄주는데 이런 작품이, 이런 작품을 다루는 작가의 존재가 너무나도 귀하게 느껴진다.

 

 "금옥아, 나는 나인이야. 아홉 개의 새싹 중에 가장 늦게 핀 마지막 싹이라 나인이 됐어. 더는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나는 가장 마지막에 눈을 떴어."

 그러니까 나인은, 기적이라는 뜻이야.  

 

"외계인 같은 거 세상에 정말 있다고요."

『나인』은 아름다운 계절에 읽은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절대 놓쳐서는 안될 한 권의 책을 꼽는다면 무조건 천선란의 『나인』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천선란 작가는 작년과 올해 『천 개의 파랑』과 『나인』으로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되었지만 천선란 작가가 앞으로 더 보여줄 세계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훨씬 무궁무진할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에 벌써 어떤 작가로 단정 지어 이야기하기엔 조심스럽다. 소설Y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이희영 작가의 『나나』, 천선란 작가의 『나인』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았지만 앞으로 출간될 작품과 작가에 대한 기대를 끝없이 키워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천선란 작가의 작품은 좀 특이하다. 별나기도 하고. 합쳐서 특별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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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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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고 싶어하지."
요 네스뵈의 신간 『킹덤』이 출간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당연히 해리 홀레 시리즈가 출간되는 줄 알았다. 해리 포터는 조앤 롤링, 해리 홀레는 요 네스뵈라는 공식으로 요 네스뵈를 해리 홀레 시리즈로만 알고 있는 반쪽짜리 독자였던 탓에 익숙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가 아닌 『킹덤』의 요 네스뵈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나 진배없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좋은 점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거지."
조용한 시골마을 오스에서 성실히 주유소를 운영하며 적막하게 살고 있는 토박이 형 로위 오프가르와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부모님이 물려준 자신들의 땅에 대규모 호텔을 지을 거란 거창한 꿈을 가지고 건축가 아내 섀넌과 고향으로 돌아온 동생 칼 오프가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여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더없이 각별해 보이는 형제지만 스릴러의 제왕 요 네스뵈의 소설 속 인물들답게 복잡한 과거의 비밀, '프리츠의 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신선한 공기 속으로 나온 나는 같은 일이 정말 징그럽게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결과도 똑같을 것이다. p.159

아빠는 자신이라는 존재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나라는 존재와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부모님의 사고와 오프가르 부부의 사고를 의심하는 올센 경찰의 실종과 관련된 과거의 비밀들, 조용한 마을에 대규모 호텔을 건설을 계획하며 칼은 미래에 대한 거창한 꿈을 키우고 시그문 올센의 아들 쿠르트 올센 경찰관은 과거 아버지의 실종과 오프가르 형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의심을 가지며 형제 주변을 맴돈다. 과거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고 현재 시점에서 무수한 비밀들이 생겨나면서 740페이지의 이야기는 급진적으로 전개되어 독자들에게 조금도 느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모든 예상이 비켜가면서 제대로 허를 찔리고 짜릿한 반전의 재미를 수시로 마주해야 했는데 그야말로 간이 쪼그라들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독서였다.

율리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보았다. "제일 멀리 가본 곳이 어디예요?"
"난 아무 데도 간 적이 없어."
"와, 세상에."
"남쪽도 가보고 북쪽도 가봤지만, 외국에는 간 적이 없어."
"없긴 왜 없어요!" 율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조금 덜 건방지게 말을 이었다. "다 있지 않아요?"
"멀리까지 몇 번 간 적이 있긴 하지." 내가 말했다. "여기서." 나는 붕대를 감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무슨 뜻이에요?" 율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 적이 있다는 뜻이에요?"
"사람을 토막 낸 적도 있고, 무방비한 개를 쏜 적도 있어." p.290


"다시 말해서, 당신이 몰랐다면 아무 상처도 안 입었을 테고,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예요."
과거를 덮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오프가르 형제들을 보고 있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떠오르기도 한다. 탄탄한 서사와 각자의 탄탄한 서사를 지닌 캐릭터들은 한치의 단순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서운 흡인력으로 단숨에 읽히지만 마냥 주인공의 입장에 이입이 되며 따라 읽히는 건 아니라서(소설 속 인물들 중 그 누구의 입장에서도 완벽한 이입은 힘들다) 독자로서 조금 복잡해지지만 그럼에도 독자를 완전한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능숙함이 요 네스뵈의, 요 네스뵈의 『킹덤』의 엄청난 매력이다.

"이 작고 한심한 농장을 아빠가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요?"
"킹덤. 오프가르 농장은 우리의 왕국이다.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칼과 내가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p.674-675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느냐고? 당연히 그렇다.
『킹덤』은 마치 천재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결과물 같다. 요 네스뵈 소설의 서사, 인물들, 문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을 향한 언론과 명사들의 추천사와 책의 표지까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식 출판 이전 가제본 서평단용 가제본의 표지도 완벽했는데 그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의 정식 출판용 표지도 완벽해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 보인다. 『킹덤』을 읽고 난 후 요 네스뵈를 해리 훌레 시리즈 이외의 이야기도 너무나 잘 쓰는 작가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요 뇌스뵈가 성실한 작가라서, 그와는 반대로 나라는 게으른 독자는 아직 읽어야 할 요 네스뵈의 작품이 많아서 행복하다. 책 속 한 문장을 인용해보자면, 요 네스뵈를 향한 믿음은 나쁘지 않은 전염병이라는 데 많은 독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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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 -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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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장 선망했던 직업은 아나운서였다. '아나테이너'란 단어가 등장하기 전, 뉴스나 교양프로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들을 보며 여자 직업 중 최고의 직업은 아나운서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과거에 내가 아나운서들을 보며 선망했던 이미지와 요즘 아나운서들을 보며 가지는 이미지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저마다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아나운서들을 여전히 동경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임현주 아나운서를 처음 알게 되었던 건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녀에 관한 뉴스 때문이었다.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뉴스,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지상파 뉴스를 진행했던 바로 그 뉴스의 주인공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에 한 나라가 떠들썩해지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지금까지 없던 방법으로 유리천장을 깨는 사람,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을 목격하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선망에 선망이 더해져 임현주 아나운서를 바라보게 되었고 어떤 행보의 소식이 들려오든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 글을 쓰면서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깊이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어 애도 써봤지만 죄다 어디에서 들어보고 본 듯한 느낌에 결국 다 지워버리고 말았다. 이후에,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일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하고 꾸미는 것은 오히려 쉽다. 솔직해지기 위해선 우선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일단 날것 그대로 사포질 하지 않고 꺼내봐야 한다. 다듬는 건 그다음 차례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솔직한 이들에게 우리는 신선함과 충격을 느끼는 것이겠지. 나는 더 단순하고 거침없어지길 소망한다. p.170  

 

임현주 아나운서의 두 번째 책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가 출간됐다. 제목이 주는 울림도 엄청난데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나를 대견해하고 열정을 다루는 방법을 계속해서 터득해가는 시간들. 더 잘하고 싶어서 헤매고 해내는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는 작가의 말은 마음을 사정없이 건드린다.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마음가짐에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고 노력하는 일들에 관해 때로는 똑부러지게, 때로는 세심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마음을 다독여주는데 작가의 진심을 곳곳에서 마주하며 끝없는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내 마음 다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반갑고  속마음 정확하게 대변해줘서 속이 시원하고 든든한 내 편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괜히 찡하고 가슴 뭉클해진다.

 

 본래 내가 가진 장점과 톤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내 옆의 누군가의 모습을 따라가거나 닮고 싶은 마음이 들기 일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배들이 말해주었다. 오히려 너무 다듬어서 내 색깔을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단점을 보완하려다가 '딱히 거슬리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열렬히 좋아할 만한 특징도 없는' 애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힘을 뺐을 때 더 좋은 결과를 받았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용을 쓰고 준비한 시험보다 그냥 우연히 본 시험에서 덜컥 합격하는 것처럼, 파이팅 넘치게 힘주고 방송한 날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차분하게 방송한 날에 더 좋은 피드백을 받기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에 한 톤 힘을 뺐을 때, 미리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온 애드리브를 던졌을 때, 큰 기대가 없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보다 자연스러운 내 색깔이 나오곤 한다. 그게 내가 가진 고유의 장점일 수 있다. 그 감각을 기억해야 한다.

 다수에게 거슬리는 것 없이 잘 다듬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 비극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제작 현장에서도 너무 다듬어진 방송인은 오히려 매력이 떨어진다. 나는 왜 열심히 하는데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인가, 혹시 고민한다면 너무 열심히 해서 역효과가 난 걸 수도 있다. 매력이란 원래 호불호를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누군가에게 불호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전방위적인 캐릭터가 되기보다 한 가지를 제대로 어필하는 것부터 공략해보자. 모두에게 인정받겠다는 마음을 지우고 더 자유로워지길 택하자. 대중성에 대한 고민은 영향력이 커지면서 해도 늦지 않다.

 나도, 인생 조금 더 대충 살아야겠다. p.200-201

 

매일을 헤매고 치이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의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아주는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를 읽고 나니 밑도 끝도 없이 든든함이 밀려오고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아나운서를 특별히 선망했던 덕분에 대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아나운서의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시절 나에게 임현주 아나운서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리고 시청자로서 임현주 아나운서의 행보를 응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자로서 임현주 작가도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녀의 많은 경험을 에세이로 꾸준히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마구 생겨난다. 임현주 아나운서도, 나도, 그러니까 우리는 잘 해낼 것이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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