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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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고 싶어하지."
요 네스뵈의 신간 『킹덤』이 출간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당연히 해리 홀레 시리즈가 출간되는 줄 알았다. 해리 포터는 조앤 롤링, 해리 홀레는 요 네스뵈라는 공식으로 요 네스뵈를 해리 홀레 시리즈로만 알고 있는 반쪽짜리 독자였던 탓에 익숙한 오슬로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가 아닌 『킹덤』의 요 네스뵈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나 진배없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좋은 점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거지."
조용한 시골마을 오스에서 성실히 주유소를 운영하며 적막하게 살고 있는 토박이 형 로위 오프가르와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부모님이 물려준 자신들의 땅에 대규모 호텔을 지을 거란 거창한 꿈을 가지고 건축가 아내 섀넌과 고향으로 돌아온 동생 칼 오프가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여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더없이 각별해 보이는 형제지만 스릴러의 제왕 요 네스뵈의 소설 속 인물들답게 복잡한 과거의 비밀, '프리츠의 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신선한 공기 속으로 나온 나는 같은 일이 정말 징그럽게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결과도 똑같을 것이다. p.159

아빠는 자신이라는 존재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나라는 존재와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부모님의 사고와 오프가르 부부의 사고를 의심하는 올센 경찰의 실종과 관련된 과거의 비밀들, 조용한 마을에 대규모 호텔을 건설을 계획하며 칼은 미래에 대한 거창한 꿈을 키우고 시그문 올센의 아들 쿠르트 올센 경찰관은 과거 아버지의 실종과 오프가르 형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의심을 가지며 형제 주변을 맴돈다. 과거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고 현재 시점에서 무수한 비밀들이 생겨나면서 740페이지의 이야기는 급진적으로 전개되어 독자들에게 조금도 느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모든 예상이 비켜가면서 제대로 허를 찔리고 짜릿한 반전의 재미를 수시로 마주해야 했는데 그야말로 간이 쪼그라들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독서였다.

율리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보았다. "제일 멀리 가본 곳이 어디예요?"
"난 아무 데도 간 적이 없어."
"와, 세상에."
"남쪽도 가보고 북쪽도 가봤지만, 외국에는 간 적이 없어."
"없긴 왜 없어요!" 율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조금 덜 건방지게 말을 이었다. "다 있지 않아요?"
"멀리까지 몇 번 간 적이 있긴 하지." 내가 말했다. "여기서." 나는 붕대를 감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무슨 뜻이에요?" 율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 적이 있다는 뜻이에요?"
"사람을 토막 낸 적도 있고, 무방비한 개를 쏜 적도 있어." p.290


"다시 말해서, 당신이 몰랐다면 아무 상처도 안 입었을 테고,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예요."
과거를 덮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오프가르 형제들을 보고 있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떠오르기도 한다. 탄탄한 서사와 각자의 탄탄한 서사를 지닌 캐릭터들은 한치의 단순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서운 흡인력으로 단숨에 읽히지만 마냥 주인공의 입장에 이입이 되며 따라 읽히는 건 아니라서(소설 속 인물들 중 그 누구의 입장에서도 완벽한 이입은 힘들다) 독자로서 조금 복잡해지지만 그럼에도 독자를 완전한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능숙함이 요 네스뵈의, 요 네스뵈의 『킹덤』의 엄청난 매력이다.

"이 작고 한심한 농장을 아빠가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요?"
"킹덤. 오프가르 농장은 우리의 왕국이다.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칼과 내가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p.674-675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느냐고? 당연히 그렇다.
『킹덤』은 마치 천재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결과물 같다. 요 네스뵈 소설의 서사, 인물들, 문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을 향한 언론과 명사들의 추천사와 책의 표지까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식 출판 이전 가제본 서평단용 가제본의 표지도 완벽했는데 그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의 정식 출판용 표지도 완벽해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 보인다. 『킹덤』을 읽고 난 후 요 네스뵈를 해리 훌레 시리즈 이외의 이야기도 너무나 잘 쓰는 작가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요 뇌스뵈가 성실한 작가라서, 그와는 반대로 나라는 게으른 독자는 아직 읽어야 할 요 네스뵈의 작품이 많아서 행복하다. 책 속 한 문장을 인용해보자면, 요 네스뵈를 향한 믿음은 나쁘지 않은 전염병이라는 데 많은 독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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