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내가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작은 창조차 없는 그의 방이 아닌 햇살 잘 드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낮술 한잔을 하고 싶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그와. - 김동영

 

가장 싫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들으면 제일 먼저 편견을 꼽는다. 나 자신이 타인의 편견 속에 갇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사는 것 같아 억울해서가 아니라 편견이 귀신보다 더 무서워서 싫어한다. 이토록 편견이 싫으면 나는 타인을 편견의 시선 없이 봐야 하건만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 해서 면목없다.
김동영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오랜 시간 불안과 조울증,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로 고통받았던 김동영 작가와 그의 주치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박사의 7년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이 요즘 인기 있는 복면 가왕이라는 프로그램처럼, 올여름 어느 출판사에서 진행했던 복면 소설 이벤트처럼 책의 저자를 알리지 않고 책의 저자를 짐작해보라고 했더라면 나의 답안엔 김동영 작가는 후보에도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정신과 의사와의 이야기라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산문집을 내고 비슷한 시기에 소설집을 발표하고 또 비슷한 시기에 산문집을 발표한 어떤 가수가 더 어울려 보였다. 『나만 위로할 것』에서 화산 폭발로 약이 떨어져 고생하는 에피소드를 읽었지만 금방 그 사실을 잊을 정도로 그리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몽유병이 오랫동안 기억되며 걱정을 했지만 이번 신작을 통해 그 증상은 졸피뎀의 부작용이었고 다행히 지금은 나았음을 알게 됐다). 오히려 SNS 상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유쾌하고 호방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무려 7년 동안 이 정도로 힘들어했다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의 아픔을 몰라봐줘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가졌던 편견에 반성하고 작가의 아픔을 몰라줬음에 미안해하며 이전에 느껴보지 못 했던 아주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이 책을 펼쳤다.


 

 

 멀리 보고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 없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불량품이다. 나이가 든다고 불량이 고쳐지는 법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게 마련이다. - 김병수


→ 책을 읽어가면서 김동영 작가의 글에 함께 공감하고 이어지는 김병수 박사의 글로 함께 위로받을 거라 예상하고 기대했다. 부끄럽게도 내가 이렇게나 단순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책을 읽어나가며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는데 두 저자의 서로 다른 역할은 없었다. 또한 역시나 하나하나의 에세이에 저자를 밝히지 않았더라면 글의 주인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가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환자와 주치의의 역할을 내세우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순간순간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해 줬다.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무기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솔직함이라 답할 것이다.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는 글들이 나를 사로잡았지만 그 위로와 치유에는 두 작가의 솔직함이 바탕이 되었기에 이토록 근사한 에세이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진료실 밖에서 나눈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동안 진료실에서는 나누지 못 했던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김동영 작가의 경우 이런 것까지 고백해도 되나 걱정이 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 김병수 박사 역시 그래도 주치의인데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이런 이야기까지 털어놔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서간문은 아니지만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두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숨겨왔던 나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은 공감과 위로는 물론이고 마치 마음을 안정시키는 명상집을 만난 듯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7년이란 세월과 김동영 작가가 예고 없는 고통을 마주하는 장소들(뜬금없지만 여행 에세이가 아닌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수많은 나라의 출입국 기록이 담긴 김동영 작가의 여권을 부러워했다)에서 전해오는 수많은 고통의 치료와 그 부작용과 후유증을 겪어나가면서 미약하게나마 치유가 되고 또다시 예고 없이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이 안타까우면서도 책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에겐 이 책이 지금의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안정제 같고 없던 병도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내 심정을 이야기하고 털어놓은 책도 아닌데 이 책을 두고 가장 많은 안정을 얻은 사람은 마치 나인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BEST에 넣을 정도로 이 책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김동영 작가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복용하는 약이 점차 줄어들고 무수한 병명들 틈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졌으면 좋겠고 빨리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이 책의 2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나는 이 책의 독자 중 가장 나쁜 독자임이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철범의 방학 공부법 박철범 공부법
박철범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오래전 입시지옥을 탈출한 나에게 공부나 교육은 이미 관심권 밖이다. 부끄럽지만 입시생의 신분이었을 때에도 공부나 교육에 관한 관심은 아주 미미했다. 공부머리는 노력보다는 유전자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믿고 있기에 아무리 서점가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베스트셀러를 넘어 밀리언셀러로 자리매김을 했다고 해도 각종 공부법에 관한 책이라면 알아서 거르는 편이다. 공부법에 관한 책이라면 이토록 회의적인 나에게도 신기하게 공부법 분야의 책에 관심이 가는 저자가 몇 명 있다.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이기에 다른 사람들도 관심이 없을 것만 같은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해 많은 청소년들의 공부 멘토가 되어주는 몇몇 저자들에 대한 호기심은 그들의 책을 챙겨 읽지는 않더라도 그 책에 관한 기사나 반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박철범 역시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저자 중 한 명이다. 『박철범의 하루 공부법』이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오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는 광경을 보고 나의 독서 편식에 반성하며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박철범의 하루 공부법』을 넣기도 했지만 늘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아직 읽어보지는 못 했다. 그러는 사이 『박철범의 방학 공부법』이라는  새 책이 나왔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 학년도 거의 끝나가고 방학을 코앞에 둔 시점에 청소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아마 『박철범의 하루 공부법』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제 대학생이 되어 각종 어학시험, 연수, 자격증, 공모전으로 바쁜 방학을 보내게 될 대학생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에 방학도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음 학기를 다음 학년을 미리 준비하며 성적을 올리는 꿈에 부풀어 방학 생활계획표를 짜면서 공부시간을 엄청 많이 배분해놓고 작심삼일은커녕 시작조차 못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이번 방학은 『박철범의 방학 공부법』과 함께 이전과 달리 계획을 실천하는 방학을 보내길 추천한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회가 될 이번 방학의 계획을 짜주고 그동안 경험했던 실패를 되짚어주고 이해력, 암기력, 사고력을 높이는 방법과 비법을 알려준다. 공부가 습관이 되어 자신만의 시간관리와 공부법에 체계가 잡힌 학생이라면 이런 책은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하지만 희귀한 존재의 이런 기특한 학생이 아니라면 『박철범의 방학 공부법』이 이번 방학을 새로운 도약 계기로 만들어 줄 것이다. 작가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과목에 어떤 교재와 어떤 공부 방법이 효율적인지 자세하게 제시해줄 뿐만 아니라 외부환경에 휩쓸려 계획을 어기게 될 모습을 미리 내다보며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준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도서관에 나가 시간에 맞춰 과목별로 공부법을 제시하면서 계획되지 않은 변수는 허락하지 않는 모습은 선한 인상의 저자 사진과는 사뭇 다르게 대쪽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저자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키는 것을 고수하고 성실함을 주문한다. 그래서 믿음이 가고 신뢰가 간다.  

 

『박철범의 방학 공부법』에서는 과목별 공부시간, 자습서 및 문제집 활용, 학원 및 인터넷 강의 활용 등의 방법을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준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난 후 실행력이다. 방학 시작 전 이 책을 다 읽고 구체적인 방학 계획을 잘 세우고 실행하여 목표하는 바를 달성하는 경험을 하며 남다른 방학을 보내길 바란다. 그리고 공부하는 교재들 사이에 이 책을 두고 잠깐씩 머리를 식힐 때마다 순간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페이지나 아니면 아무 페이지라도 펼쳐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끊임없이 되짚어보길 바란다. '그래도 학생 때가 제일 좋았지'라는 말을 200% 공감하는 어른이 되어 더 이상 방학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잘 쪼개서 자기 개발을 멈추는 법이 없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으니 갑자기 내 앞에 없던 방학이 선물처럼 생긴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스다 미리의 신작을 만날 때는 두근두근합니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독자들을 뜨겁게 위로해주는 마스다 미리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올해만 해도 여덟 권의 만화와 에세이로 한국 독자들과 만나 공감 마법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듯 마스다 미리도 한 편의 만화와 한 편의 에세이로 반갑게 돌아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보는 마스다 미리의 신간이 동시에 나오면 어떤 작품을 먼저 만나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특히 이번처럼 만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과 에세이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가  동시에 나오면 그 선택이 쉽지 않다. 나에겐 공감 마법이 에세이에서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에세이를 선택해야지 싶다가도 마스다 미리 자신을 모델로 한 만화를 향한 호기심이 만만치 않다. 두 권의 마스다 미리 신간을 두고 필수 코스인 선택 장애의 시간을 가지고 난 뒤 나의 선택은 이번엔 만화가 먼저다. 사실 언제나 옳은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 앞에서 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본답니다. 찾고 있는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이 마스다 미리 자신을 모델로 한 첫 자전적 만화라는 소개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긴 머리를 한 모습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같이 처음 일하는 편집자를 만나러 가는 마스다 미리를 보면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마스다 미리를 만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동안 만나온 수짱은 단지 마스다 미리가 픽션으로 창조한 캐릭터일 뿐인란 말인가 싶어 섭섭하기도 하고 생떼를 쓰는 아이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또한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 다 알아주는 친근하고 따뜻한 언니의 모습이 아닌 작가의 모습으로 작가생활을 이야기 한다니 아마 나와 공감지수가 가장 낮은 작품일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어이어이~). 하지만 이 모두가 섣부른 기우이고 내가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라는 게 밝혀지는 데는 10페이지도 넘기지 않는다. 수짱에게서 작가를 봤듯 작가에게서 수짱을 보게 되며 마스다 미리의 작가생활은 너무나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수짱이 일하는 카페의 모델을 찾는 이야기(평소 작가가 즐겨 찾는 가게나 아는 가게를 모델로 한 게 아니라 그녀가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다고 한다!)를 들려주기도 하고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명대사가 나오게 된 배경을 소개하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통해 마스다 미리의 생활을 엿보다 보면 그녀의 작업 비밀(?)을 알게 되는 등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을 환호하게 하는 요소가 많다. 뿐만 아니라 공부를 못해 늘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서양화를 전공하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도쿄에 상경해서 만화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며 인간 마스다 미리의 생활도 들려주면서 그 어느 작품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른 작가 험담을 하는 편집자를 조심하고 접대를 받으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도 그녀와 폭풍 공감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마스다 미리를 참 좋아한다. 정말 좋아하는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작년과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는 마스다 미리가 독보적으로 1위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던 작품들, 새로 나온 신간들을 챙겨 읽을 때면 나는 내가 평소 느끼는 감정 그 이상으로 마스다 미리를 좋아한다는 걸 느낀다. 올해도 벌써 여러 번 그 느낌을 느꼈고 이번 신간을 읽으면서 역시 그 느낌을 느끼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이 없어 약속이나 외출할 일이 없으면 몇 날 며칠째 씻지도 않고 집안에만 있는다거나 마감이 코앞에 다가오면 미뤄둔 원고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하는 등의 뻔하게 예상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도 느긋한 작가의 일상을 이토록 잘 녹여낸 그녀가 정말 좋고 대부분의 일에 흥미가 없지만 찾고 있는 무언가를 위해 시큰둥하게 강의를 신청하고 들으러 가는 그녀가 너무 좋다. 이외에도 그녀가 미치도록 좋은 이유를 더 많이 나열할 수 있지만 책 속의 에피소드를 옮겨 적는 일이 되기에 입이 간질간질하고 손가락이 간질간질해도 참아 보기로 한다.

 

책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과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은 새로 쓴 책이 있습니다.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읽으며 마스다 미리가 더 좋아진 덕분에 읽는 순서에는 밀려났지만 같이 나온 에세이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더 커진다. 신문과 출판사 웹진에 연재했던 에세이 묶음이라는 이 책은 마스다 미리의 일기장이라 불린다고 한다. 아... 그동안 하도 설레서 더 이상 설렐 가슴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설렌다. 잠깐 쉬면서 달콤한 거 좀 먹고 바로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 기자 생활을 접고 전업 작가로 변신한 장강명 작가는 부지런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고 더 부지런하게 각종 문학상 수상 소식과 새 작품 출간 소식을 들려주며 독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소설가라는 소개가 어색하지 않지만 매 작품마다 기자 출신 작가 특유의 뛰어난 취재력과 그 경험이 큰 강점으로 부각되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뛰어난 필력과 탄탄한 스토리에 감탄하며 기자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리고  있는지 안다. 『댓글부대』로 올해만 벌써 4권의 책을 발표한 작가가 이번엔 인터넷 댓글을 소재로,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소재만 봐도 그의 강점인 취재력이 얼마나 큰 빛을 발하게 될지 기대감이 커진다. 그 소재를 이끌어갈 탄탄한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작품은 제3회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팀-알렙의 세 청년 삼궁, 찻탓캇, 01査10이 의뢰를 받고 댓글을 조작하고 여론을 선동하는 장면을 읽어가다 보면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서부터 픽션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장강명 작가는 자신의 뛰어난 무기인 치밀한 취재는 물론이고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조직화의 어두운 현장을 적나라하게 조명하며 "읽는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길 바라며 썼다"라는 자신의 바람을 성공시킨다. 어떤 취향을 가졌든, 어떤 정치 성향을 가졌든 『댓글부대』를 읽다 보면 불편해지고 불쾌해지지만 흥미롭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빠르게 읽히며 이번에도 작가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삼궁, 찻탓캇, 01査10은 지잡대 출신에 반사회적이고 일베 유저로 여자들을 '김치녀'로 낮잡아보지만 그들은 유흥업소가 없으면 만나주는 여자도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루저들이다. 이런 루저들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라면 많이 본 것 같기도 하지만 장강명 작가는 미숙한 인물들이 (인터넷)세상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며 색다른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재 한국 청년들이 겪는 비극을 소설로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데뷔작 『표백』에서 최근작 『댓글부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이 부지런히 청년들이 겪는 비극을 대신 항의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에도 언급되는 말이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용어 중엔 '닥눈삼'이란 말이 있다. 닥치고 눈치 삼 개월의 준말로 커뮤니티에 오자마자 글을 쓰기보다는 눈팅으로 커뮤니티 분위기를 살피고 최소한의 적응기간을 거치라는 말이다.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에 따라 그 기간이 누군가에겐 3개월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3일이 될 수도 있다. 작가에게 '닥눈삼'의 용어를 접목시킨다면 작가의 작품 3권 정도는 읽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말하라 정도가 될 것 같다. 데뷔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그동안 장강명 작가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해왔다. 『댓글부대』 역시 내가 그동안 알던 장강명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장강명 작가가 이제 막 신간이 나왔는데 그사이 인터넷 서점을 통해 소설을 연재했고 새 소설 출간 소식이 벌써 들려온다. 지난가을 그가 인터넷으로 연재한 소설은 놀랍게도 좀비 호러 스릴러물이었다고 한다. 장강명 작가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줄어든다. 나는 아직 장강명 작가에 대해 '닥눈삼'의 시기를 다 거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빠르게 읽혔던 『댓글부대』에서 내가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장르가 어떻게 바뀌든 장강명 작가의 다음 작품들이 너무나도 기다려지고 기대된다는 것이다. 내가 장강명 작가의 '닥눈삼'을 거쳤는지 거치는 중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으나 장강명 작가의 독자 부대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플을 생각한다
모리카와 아키라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인 메신저의 탄생과 단기간에 이룬 거대한 성장의 중심에는 前라인 주식회사 CEO인 모리카와 아키라가 있다. 니혼텔레비전, 소니, 한게임 주식회사 등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리카와 아키라를 있게 해준 실패와 성공, 경영 이야기를 그의 저서 『심플을 생각한다』를 통해 들려준다. 부드러운 미소로 지켜보는 그의 사진이 담긴 띠지를 떼면 세상에서 가장 심플한 책을 만날 수 있다. 표지도 구성도 책의 제목에 맞게 심플하다. 마치 책의 내용도 심플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건 거대한 오산이다. '심플'을 무기로 한 경영방식과 제품이라면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먼저 떠오르기에 모리카와 아리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갈 것 같지만 그의 온화한 미소와 다르게 이전에 본 적 없는 그만의 독특한 경영무기가 펼쳐지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비즈니스는 '싸움'이 아니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성공'은 버린다.

'동기부여'를 향상시키지 않는다.

'비전'은 필요없다.

'계획'은 필요없다.

'규칙'은 필요없다.

'차별화'는 노리지 않는다.

'혁신'은 지향하지 않는다.

 

그가 들려주는 40가지 경영 무기를 살펴보면 이 책은 차라리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가는 예술가가 들려주는 성공의 비법서에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거대한 대기업에서 수많은 부서와 직원을 거느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새롭긴 하지만 미안하게도 어쩌면 이것도 지금까지 경영서, 자기개발서에서 수없이 봐왔던 희망고문이나 사탕발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전 세계를 무대로 주목받은 라인의 성공에 숨은 경영철학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기도 했고 사탕발림도 마냥 반갑게 느껴질 정도로 현재의 나는 열정에 관해서 당이 심각하게 부족하기도 했다.

 

다소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40가지 경영 무기 속엔 그의 신조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심플하게 생각하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누구나 알아주고 부러워하는 대기업도 박차고 나와 연봉도 반감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모리카와 아리카는 자신을 내몰아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며 성장했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그의 경영 무기는 바로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이다. 

심플하지만 그 속엔 프로페셔널하기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이 있고 자신의 동료인 이른바 '굉장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고 변화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경영 철칙'이 있고 라인 주식회사 특유의 기업문화가 녹아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고객만을 생각해서 그가 제시하고 변화시키는 일들은 모두 심플하다. 

 

면접 자리에서 '회사 방침'을 자못 '자신의 꿈'인양 말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상황이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아 더 집중하며 책을 읽게 된다. 모리카와 아키라는 리더십에 대해 말하면서 팀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높은 사람'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꿈'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엉뚱하고 독특해 보였던 그의 경영 무기들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내 안에 고착 되어 있던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문화에 대해 각성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면서 어느새 『심플을 생각한다』의 독서는 모리카와 아키라와 내가 함께 '꿈'에 공감하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경영 비밀을 담은 책으로 독자와 '꿈'에 공감하다니 역시 훌륭한 리더는 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