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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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내가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작은 창조차 없는 그의 방이 아닌 햇살 잘 드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낮술 한잔을 하고 싶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그와. - 김동영

 

가장 싫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들으면 제일 먼저 편견을 꼽는다. 나 자신이 타인의 편견 속에 갇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사는 것 같아 억울해서가 아니라 편견이 귀신보다 더 무서워서 싫어한다. 이토록 편견이 싫으면 나는 타인을 편견의 시선 없이 봐야 하건만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 해서 면목없다.
김동영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오랜 시간 불안과 조울증,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로 고통받았던 김동영 작가와 그의 주치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박사의 7년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이 요즘 인기 있는 복면 가왕이라는 프로그램처럼, 올여름 어느 출판사에서 진행했던 복면 소설 이벤트처럼 책의 저자를 알리지 않고 책의 저자를 짐작해보라고 했더라면 나의 답안엔 김동영 작가는 후보에도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정신과 의사와의 이야기라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산문집을 내고 비슷한 시기에 소설집을 발표하고 또 비슷한 시기에 산문집을 발표한 어떤 가수가 더 어울려 보였다. 『나만 위로할 것』에서 화산 폭발로 약이 떨어져 고생하는 에피소드를 읽었지만 금방 그 사실을 잊을 정도로 그리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몽유병이 오랫동안 기억되며 걱정을 했지만 이번 신작을 통해 그 증상은 졸피뎀의 부작용이었고 다행히 지금은 나았음을 알게 됐다). 오히려 SNS 상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유쾌하고 호방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무려 7년 동안 이 정도로 힘들어했다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의 아픔을 몰라봐줘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가졌던 편견에 반성하고 작가의 아픔을 몰라줬음에 미안해하며 이전에 느껴보지 못 했던 아주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이 책을 펼쳤다.


 

 

 멀리 보고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 없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불량품이다. 나이가 든다고 불량이 고쳐지는 법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게 마련이다. - 김병수


→ 책을 읽어가면서 김동영 작가의 글에 함께 공감하고 이어지는 김병수 박사의 글로 함께 위로받을 거라 예상하고 기대했다. 부끄럽게도 내가 이렇게나 단순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책을 읽어나가며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는데 두 저자의 서로 다른 역할은 없었다. 또한 역시나 하나하나의 에세이에 저자를 밝히지 않았더라면 글의 주인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가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환자와 주치의의 역할을 내세우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순간순간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선사해 줬다.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무기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솔직함이라 답할 것이다.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는 글들이 나를 사로잡았지만 그 위로와 치유에는 두 작가의 솔직함이 바탕이 되었기에 이토록 근사한 에세이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진료실 밖에서 나눈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동안 진료실에서는 나누지 못 했던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김동영 작가의 경우 이런 것까지 고백해도 되나 걱정이 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 김병수 박사 역시 그래도 주치의인데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이런 이야기까지 털어놔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서간문은 아니지만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두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숨겨왔던 나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은 공감과 위로는 물론이고 마치 마음을 안정시키는 명상집을 만난 듯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7년이란 세월과 김동영 작가가 예고 없는 고통을 마주하는 장소들(뜬금없지만 여행 에세이가 아닌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수많은 나라의 출입국 기록이 담긴 김동영 작가의 여권을 부러워했다)에서 전해오는 수많은 고통의 치료와 그 부작용과 후유증을 겪어나가면서 미약하게나마 치유가 되고 또다시 예고 없이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이 안타까우면서도 책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에겐 이 책이 지금의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안정제 같고 없던 병도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내 심정을 이야기하고 털어놓은 책도 아닌데 이 책을 두고 가장 많은 안정을 얻은 사람은 마치 나인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BEST에 넣을 정도로 이 책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김동영 작가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복용하는 약이 점차 줄어들고 무수한 병명들 틈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졌으면 좋겠고 빨리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이 책의 2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나는 이 책의 독자 중 가장 나쁜 독자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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