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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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가 출간됐다. 4년 만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고 『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 이어 네 번째 장편소설이고 뉴욕을 무대로 한 네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아직 발표된 지 한 달도 안 된 이 소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건 정확하게 2014년 9월에 있었던 인터뷰집 『다른 남자』 출간 기념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한 이후부터였다. 그날 백영옥 작가는 그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고,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아쉬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날부터 기다려왔던 백영옥 작가의 신작이 약 1년 반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단편집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장편 소설이 발표되어 의외라는 것도 잠시, 정성을 들여 제작한 것이 분명하지만 쓸쓸함을 풍겨내는 연두색 표지를 보자 이전의 작품들과 달라졌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 이것보다 더한 기적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뉴욕을 무대로 정인, 마리, 수영의 쓸쓸한 뒷모습이 차례로 이어진다. 거기엔 그녀들의 인물관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남자 조성규가 있다. 
조성규를 짝사랑하여 한 달 동안 비는 그의 집에 세 들어 살며 그의 흔적을 찾는 정인, 성주의 불륜을 확신하고 그와 이혼을 결정하는 마리, 불행한 결혼생활 중 조성규의 구애에 흔들리는 수영. 그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지 않지만 네 남녀 사이에서 '돌아가는 것'과 '떠나는 것', '스미는 것'과 '섞이는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백영옥 작가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뉴욕 거리의 풍경은 물론이고 감각적으로 청춘을 묘사하는 것 역시 여전하다. 그럼에도 머나먼 뉴욕과 한국의 시차처럼 작가의 예전 작품들과 『애인의 애인에게』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성규와 마리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정체불명의 멍이 생긴 정인처럼 이 소설을 써 내려간 백영옥 작가에게도 정체불명의 멍이 생긴 게 분명하다. 그 멍이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게 될지 점점 더 선명해 질지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궁금하게 하는 대목이다.

 

소설에서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언급되고 마리는 몬탁행 기차에 오른다. <이터널 선샤인>과 『애인의 애인에게』두 작품 모두 사랑과 실연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이 영화에서 인용하는 니체의 격언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지 때문이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 『애인의 애인에게』는 소설에서 인용하는 최승자 시인의 시 내 청춘의 영원한(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괴로움/외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을 이야기한다. 다른 두 이야기가 닮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터널 선샤인>도, 『애인의 애인에게』도 영화가 끝나고 책이 끝났지만 남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미련이 남았다. 1월 26일. 올해의 첫눈이 내렸고 겨울나무에서 이제 막 돋아나는 색깔의 빛깔. 3월의 봄빛 연두의 계절 이야기가 이어질 것만 같다. 니체의 또 다른 격언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로 <이터널 선사인>과 『애인의 애인에게』가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백영옥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누군가의 가장 예쁜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힘들 때 반드시 그 순간을 증언해야 한다고 배웠다.'라고 썼다. 이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홀가분해졌는지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애인의 애인에게』를 다 읽고 나자 작가에게 이 소설이 얼마나 예쁜지 반드시 증언을 해야 할 것 같다. 백영옥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자니 소설의 정서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백영옥 작가의 작품 이즈 뭔들 예쁨'이다. 그 예쁜 작품들 속에서도 『애인의 애인에게』는 어쩐지 더 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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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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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도서는 창비 출판사에서 진행된 눈가리고 책읽는당 2기 이벤트에 당첨되어 작가, 제목을 밝히지 않은 가제본을 받아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

 

 

작가, 베스트셀러 순위, 누군가의 추천 등에 대한 정보나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각만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읽어보는 것.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짜릿하고 로맨틱한 일이다. 책의 정식 출판 전 책의 작가와 제목을 알리지 않고 가제본을 보내 독자들에게 작가와 제목을 맞춰보라고 하거나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작가의 정보는 알리지 않은 채 책을 내놓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각 소설의 작가를 공개하는 등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직 작품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이벤트가 출판계에선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다양한 기획과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뒤늦게 이벤트의 존재를 알고 난 뒤 후회하는 일이 생겼고 그런 기회를 만나게 된다면 절대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매의 눈으로 창비에서 <눈가리고 책읽는당 2기>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하고 빠르게 응모했는데 기분 좋게 당첨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수상한 책이 배달되었다. 

 

단서: 구두, 10 그리고 내성적인 + 창비출판사

첫 번째 제목 「구두」를 다 읽고 「팜비치」로 넘어가서야 이 수상한 책이 소설집이란 걸 알게 됐다. 와우!! 흥미롭다.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10편의 단편소설의 작가가 모두 다를 수도 있다는 가설도 성립 가능해진다. 편견은 덜었는데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장르소설도 아닌데…… 진정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는 이야기들이 10편의 단편소설에서 이어진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이는 사소한 심경의 변화가 생기고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관계는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해주지 않고 또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면서 한 사람이 하나의 강을 건너버리고 결국은 서로 다른 땅을 딛고 서게 된다. 덜 사랑하는 쪽이 강자가 되어 상대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뒤틀어놓고 상대방이 무너지는 과정을 새침하게 방관하면서 몰래 쾌감을 느끼는 과정의 묘사가 섬세하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소설이 흥미진진하다가도 결국은 권태와 허무의 감정에 휩쓸려 다음 소설로 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진다. 더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의 관계가 뒤바뀌는 과정의 세밀한 심리 묘사에서는 작가가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난 내공이 느껴지면서 작가의 정체를 더 궁금하게 한다.

 

10편의 단편 소설에 남성 화자는 6명, 여성 화자는 4명. 3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까지 화자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서로가 아닌 한 쪽이 태도를 바꾸면서 관계가 틀어지는데 대부분 부부관계지만 부녀관계도 있고 작가와 독자의 관계도 있다. 비슷한 인과관계와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나란히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구두」와 「팜비치」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설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긴다고 느끼는 과정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홍로」와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쥐고 있다고 착각했던 주도권을 자신의 꾀에 넘어가 상대에게 빼앗기고 자신의 감정과 상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이 이어진다. 등장인물들이 무언가에 집착을 하는 것도 중요한 키워드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에서 주인공의 부인은 건강보조제에 열성을 보이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파란 책」에서 파란 책은 집안 인테리어의 소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작가의 세미나에 참석할 정도로 집착하게 되는 물건으로 변해있다.

 

책에 대한 정보라곤 창비에서 곧 출간하게 될 작품이라는 것 하나만 알고 읽었는데 작가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커진다. 이벤트의 취지에 맞게 아무런 편견 없이 한 권의 책을 읽었고 이제는 마치 셜록 홈즈처럼 작가와 책 제목에 관해 추리를 해 볼 시간이다. 책의 두께만 보고 <눈가리고 책읽는당 1기>때처럼 창비 청소년 문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눈가리고 책읽는당 1기>에서 진행되었던 도서는 루이스 새커의 『수상한 진흙』이었다) 「구두」를 읽는 순간 그 예상은 깨졌고 소설집이니 책의 제목은 10편의 단편소설 중 하나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주어졌던 단서(구두, 10 그리고 내성적인)를 보면 「구두」나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두 편 중 하나가 제목으로 나올 것 같기도 하다. 한 작가의 소설집이고 남성 화자가 더 많았지만 여성작가의 작품집일 것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본다면 아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의 지방 출신 작가일 것 같고 섬세한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묘사에 내공이 느껴졌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걸 보니 내가 작품을 읽어봤던 작가는 아니다. 그래서 책의 정체가 공개되고 작가가 누군지 알게 되면 봄이 오기 전에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찾아 읽을 것 같다. 이벤트 당첨 소식을 듣고 책을 기다리면서부터 내내 즐거웠다. 올해가 시작된 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엄청 뜻깊은 일을 벌써 한가지 해낸 것 같다.

 

+

 

 

책의 출간이 예정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책의 정체도 예정보다 2주 반이나 늦게 공개됐다. 

궁금해서 현기증날 뻔 했는데 단편 제목을 보고 어느 분(어머나! 심지어 내가 관심있게 보는 블로거)께서 알려주셨다.

고마워요. 사람 살리셨어요. :) 

책의 정체는 최정화 작가의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으로 밝혀졌다. 

최정화 작가는 예상대로  내가 읽어 본 작가는 아니었고 30대 중후반의 인천 출신으로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가 공개되면 이전 작품을 찾아 읽겠다고 했는데 이 책이 첫 책인 것 같아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빠른 시간 내에 가제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해설과 작가의 말을 챙겨 읽어야 겠다. 

단편집하면 각 작품들의 발표 시기를 찾아 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

작가와 책의 제목을 모르는 채로 책을 읽는 것도 즐거웠는데 책의 정체가 밝혀지자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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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중국을 공부하는가 - 중국 전문가 김만기 박사의 가슴 뛰는 중국 이야기
김만기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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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국인의 생활습관을 생각하면 만만디(慢慢地, 천천히)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눈부신 초고속 성장을 이뤄내고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모습은 결코 만만디가 아닌 콰이콰이(快快, 빨리빨리)의 모습이다. 경제, 정치, 문화 등 국제사회의 각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슈퍼 차이나'이지만 여전히 나는 만만디의 나라로 개발도상국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 전문가, 중국 천재 김만기 교수가 정확하고 상세히 중국에 대해 공부시켜줄 책 『왜 나는 중국을 공부하는가』를 내놓았다. 중국이라 하면 만만디, 꽌시, 짝퉁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중국 무지렁이인 나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아주고 정확히 중국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만들어 줄 것 같아 책에 거는 기대감이 중국의 높은 성장률처럼 높아진다.

 

중국의 급부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전해져왔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아무리 커져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반신반의했던 게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그사이 중국은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했고 G2 강국으로 부상하며 G1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이제는 중국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한중수교가 되던 1992년 한국인 최초 베이징대학 유학생이 되고 이후 영국 런던대학 SOAS(동양아프리카 연구학교)에서 중국학을 공부한 후 중국 투자 전문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만기 교수가 오랜 시간 중국을 경험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 중국이야기를 고스란히 녹여낸 『왜 나는 중국을 공부하는가』를 읽어가는 동안 나 자신이 자만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로 느껴지면서 부지런히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중국이 모두의 예측과 우려(?)대로 빠른 속도로 크게 성장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비나 공부는커녕 여전히 편협한 시각으로 편견만 잔뜩 가지고 있으니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중국 사람들이 평생 못해보고 죽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한자를 다 못 익히고 죽고, 중국 음식을 다 못 먹어보고 죽고, 중국 여행을 다 못해보고 죽는다고들 한다. 평생 바다를 한 번도 못 보고 죽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은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다. 그런 중국은 여행 몇 번 가보고, 출장을 자주 다닌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을 여행해도 다 볼 수 없는 곳이 중국이란 나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국 공부를 아무리 해도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p.101

 

작가는 중국인 특유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보여주며 그들을 어떻게 상대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려주는데 거침없다. 중국 투자 전문가로서 직접 겪어나갔던 무수한 비즈니스 관련 경험담도 상당하다. 중국 사회의 고질병이라 치부했던 만만디, 꽌시 등에 대해서 그것을 중국 특유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중국인들을 이해하게 했으며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기업이나 기관의 최고 수장이 기사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알려주는 대목은 그들의 정서를 본받고 배우도록 일깨워주었다. 또한 이미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한 중국을 한국이 어떻게 대처하고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그 방법들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자본은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한국 경제 역시 중국 자본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대비하고 대처해나가야 할지 중국에 대한 올바른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작가가 직접 체험한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보니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이 에세이 분야에 진열되어 있어도 문제가 없어 보일 만큼 책의 초반에는 중국보다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더 도드라져 있다. 그 점이 이 책의 단점으로도 작용하면서 또 반대로 장점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중국 전문 서적이나 중국 입문서로 보기엔 담고 있는 내용이 가볍다. 하지만 낮은 진입장벽으로 쉽게 중국에 대한 이해와 공부를 돕는 건 틀림없다. 덕분에 잘 아는 분야도 아닌데 어려울까 봐 읽기 겁냈던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또한 세 번의 입시 실패 후 군복무를 마치고 남들보다 늦은 시작을 당시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중국으로 가고 20여 년이 흐른 후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중국 전문가가 된 작가의 이야기가 작가가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보다 더 와 닿은 독자들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작가의 영국 유학 시절 서툰 영어로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들고 지도교수님을 찾아가자 교수님은 단호하게 "어려운 책은 안 봐도 된다. 책을 어렵게 쓰는 것은 저자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쉽게 술술 읽힌 것은 저자가 중국 전문가, 중국 천재답게 누구보다 중국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만 가득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새롭게 중국에 대해 알게 된 지식들이 묵직하게 쌓여 있다. 작가가 중국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중국이란 나라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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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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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유행의 흐름을 타듯 출판계에서는 고단한 직장인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고 직장인들의 처지를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으며 미디어로도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지만 과도한 업무량, 불합리한 대우 등으로 회사생활을 지옥처럼 그려낼 수 있는 건 한국 사회만 가지고 있는 특권은 아닌가 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도 직장인들의 열광적 지지로 사랑받는 소설이 등장했다고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생각하면 일본인들의 직장생활을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제목만 봐도 그 느낌을 200% 알 것만 같다.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미디어웍스 문고상> 수상으로 데뷔한 카타가와 에미 작가의 데뷔작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입사 반년 차의 신입사원 아오야마. 그에게도 사자에 씨 증후군이 찾아와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위태로웠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초등학교 동창생 야마모토를 만나게 되고 그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연히 일어난 기적 같은 재회 이후 무료하고 위태로웠던 그의 일상과 회사생활은 생기가 돈다. 하지만 그가 구원받은 시간은 그리 길지 못 했다. 자신의 업무 실수로 거래처와의 관계가 깨질 뻔하고 동창이라 믿었던 야마모토는 사실 그의 동창이 아니라고 한다. 야마모토는 대체 누구이고 앞으로 그의 회사생활은 어떻게 될까?

 

이제 막 작가로서 출발 지점에 선 키와가와 에미 작가는 첫 책 『잠깐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작가의 말에서 '여러분은 인생에서 무언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건은 한 권의 소설이었다고 고백한다. 『잠깐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나자 이 소설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넨 그 질문으로 탄생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가는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자신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누군가가 인생에서 무언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이야기를 소설로 탄생시킨 것이다.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와의 만남 덕분에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기운은 업무에 좋은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심드렁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그럼 내일도 적당히 열심히 해."

 

미래를 생각하면 직장에 소속되어 직업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이직, 전직은 꿈도 못 꾼다는 아오야마와 그에게 꾸준히 이직 추천을 하는 니트족 야마모토의 입장 차이를 보다 보니 오래전 지금은 폐지된 어느 토크쇼에서 오랫동안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했었던 게스트가 라디오를 하차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주 청취자가 청소년이었던 프로그램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청소년들의 입장이 아닌 학부모의 마음으로 사연을 읽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정든 프로그램을 떠났었다고 게스트는 고백했었다. 나 역시 요즘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직장인들의 행동을 보는 입장이 예전과 다름을 느끼며 나이를 먹었음을 느끼게 된다. 영화 <싱글즈>에서 홧김에 직장을 그만둔 주인공을 두고 두 친구는 싸운다. 한 친구는 잘했다고 다독여줬고 한 친구는 홧김에 그런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아직 제대로 된 회사 생활 경험이 없었던 패기 넘치는 20대 초반이었던 당시의 나는 영화를 보며 직장을 그만둔 주인공과 주인공을 옹호해주는 친구 입장을 공감했었다. 아마 그 시절에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읽었더라면 나는 이직을 쉽게 권하는 야마모토에게 더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에 찌들다 보니 20대 초반이었다면 쭈글이로 취급했을 것이 분명한, 쓰레기일 뿐이라도 자신을 허락해주는 직장이 있다면 계속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아오야마의 처지를 어느새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고 다시 <싱글즈>를 보게 된다면 홧김에 회사를 그만둔 주인공을 나무라는 친구에게 더 공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쾌감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커져가는 것 같다. 나에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앞으로의 인생을 바꿔줄 동창도 나타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직장동료도 없다. 언제까지고 무료한 일상이 계속될 것이지만 퇴근 후 야마모토와 술 한 잔 하면서 그의 조언을 새겨듣고 조금씩 밝게 변해가는 아오야마처럼 이 책의 독서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처럼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 소개했던 야마모토의 진짜 정체를 추리해나가는 흥미진진함은 보너스다. 작가의 말은 '조금이라도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또 만날 날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는 인사말로 끝맺는다. 입사 반년 된 신입사원 아오야마 다카시의 일주일은 감정의 변화가 뚜렷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로서 나의 감정은 내내 너무나도 즐거웠다. 다작 작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일본 문학계에서 키타가와 에미의 등장이 또 다른 다작 작가의 탄생으로 이어져 자주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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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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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마주할 때면 마치 의례를 치르듯이 작가와 작품을 향한 높아진 기대치를 낮추려고 한다. 그건 나를 위한 행동이다. 마냥 높아진 기대치를 방치해둔 채 신작을 읽고 그 진가를 나만 못 알아본다면 결국 그 손해는 온전히 나의 몫인 것이다. 그리하여 황경신 작가의 신작 『국경의 도서관』을 마주하면서 나는 당연하게 내가 좋아하는 황경신 작가를 향해 가지고 있는 기대치를 낮추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최근작인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가 발표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기분 좋은 신간 소식이 들려와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두 글자의 한자 단어를 풀어내는 방식의 글쓰기가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탓에 이후 출간될 작품은 어떤 구성으로 황경신 작가 특유의 감성을 녹여 넣을지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당연히 그 궁금증은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당연히 기대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무척이나 궁금했던 황경신 작가의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이후 행보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국경의 도서관』이란 제목으로 신간 소식을 알렸다. 『초콜릿 우체국』 두 번째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으며 2000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솜이의 종이 피아노』의 글들이 함께 실려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국경의 도서관』에서 황경신 작가가 가진 방대한 문화적 소양을 황경신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어떻게 녹여냈을지 궁금했고 기대가 됐고 괜한 노파심에 연말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읽게 된 이 책이 나를 너무 깊은 감성에 빠뜨려 곤혹스럽게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38개의 이야기가 현실 속의 이 세계와 환상 속의 저 세계 사이 어딘가에 얹혀서 떠돈다. 누군가를 대신해 여행을 떠나는 여자 이야기 「바나나 리브즈」부터 일 년에 한 번 매일 같은 날에 낭독회가 열리는 「국경의 도서관」까지 황경신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근근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세계'와 '이 세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저 세계'의 사이에서 잘 녹아있다. 낯선 장소에서 마주한 낯선 이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슈베르트, 셰익스피어 등 위대한 예술가를 이 세계에서 다시 만나고 유명한 원작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책갈피, 우체통을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즐겁다. 어떤 이야기는 지구 저편 어딘가 생소한 나라에서 실제 전해져 오는 설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호흡이 긴 글, 장편소설을 쓸 엄두가 안 난다는 황경신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전작들에 비해 길어진 작가의 글과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와 오래도록 남는 여운에 서려있으면 언젠가 이 38개의 이야기들을 장편소설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황경신 작가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수성은, 황경신 작가의 내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 사로잡혀서 좀처럼 행간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문학, 음악 등의 문화, 예술에 관한 남달리 높은 조예에 감탄하는 일은 황경신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의식하지 않아도 의례를 치르듯이 진행되는 일들이다. 『국경의 도서관』을 읽으면서 역시 여기저기 밑줄을 그으면서 오래도록 그 문장을 곱씹었고 이미 알고 있던 작품들도 다시 생각하게 했고 몰랐던 작품들을 찾아보게 했다. 낯선 길을 헤매다가 마침 황경신 작가의 낭독회가 열리는 국경의 도서관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질문을 건낼까 생각해본다.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의 비밀 레시피를 손에 쥐게 되더라도 주인의 손맛을 흉내낼 수는 없듯이 황경신 작가만의 글쓰기 비법을 물어보고 답을 듣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 황경신 작가처럼 특유의 감성을 녹여내는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느냐의 문제」에서 황경신 작가는 '믿음이란 혼자 지켜낸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 믿어주지 않으면 빛을 잃은 다이아몬드처럼 초라해지는 게 믿음이니까.'라고 썼다. 「마음을 사다」에서는 부드러운 마음을 사면 특별히 소정의 따뜻한 시간을 함께 준다고 한다. 황경신이란 이름을 마주하면 그 이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충만해진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책장 속 황경신 작가의 책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부드러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이라 그런가 특별히 소정의 따뜻한 시간을 선사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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