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가 출간됐다. 4년 만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고 『스타일』, 『다이어트의 여왕』,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에 이어 네 번째 장편소설이고 뉴욕을 무대로 한 네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아직 발표된 지 한 달도 안 된 이 소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건 정확하게 2014년 9월에 있었던 인터뷰집 『다른 남자』 출간 기념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한 이후부터였다. 그날 백영옥 작가는 그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고,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아쉬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날부터 기다려왔던 백영옥 작가의 신작이 약 1년 반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단편집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장편 소설이 발표되어 의외라는 것도 잠시, 정성을 들여 제작한 것이 분명하지만 쓸쓸함을 풍겨내는 연두색 표지를 보자 이전의 작품들과 달라졌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 이것보다 더한 기적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뉴욕을 무대로 정인, 마리, 수영의 쓸쓸한 뒷모습이 차례로 이어진다. 거기엔 그녀들의 인물관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남자 조성규가 있다. 
조성규를 짝사랑하여 한 달 동안 비는 그의 집에 세 들어 살며 그의 흔적을 찾는 정인, 성주의 불륜을 확신하고 그와 이혼을 결정하는 마리, 불행한 결혼생활 중 조성규의 구애에 흔들리는 수영. 그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지 않지만 네 남녀 사이에서 '돌아가는 것'과 '떠나는 것', '스미는 것'과 '섞이는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백영옥 작가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뉴욕 거리의 풍경은 물론이고 감각적으로 청춘을 묘사하는 것 역시 여전하다. 그럼에도 머나먼 뉴욕과 한국의 시차처럼 작가의 예전 작품들과 『애인의 애인에게』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성규와 마리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정체불명의 멍이 생긴 정인처럼 이 소설을 써 내려간 백영옥 작가에게도 정체불명의 멍이 생긴 게 분명하다. 그 멍이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게 될지 점점 더 선명해 질지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궁금하게 하는 대목이다.

 

소설에서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언급되고 마리는 몬탁행 기차에 오른다. <이터널 선샤인>과 『애인의 애인에게』두 작품 모두 사랑과 실연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이 영화에서 인용하는 니체의 격언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지 때문이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 『애인의 애인에게』는 소설에서 인용하는 최승자 시인의 시 내 청춘의 영원한(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괴로움/외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을 이야기한다. 다른 두 이야기가 닮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터널 선샤인>도, 『애인의 애인에게』도 영화가 끝나고 책이 끝났지만 남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미련이 남았다. 1월 26일. 올해의 첫눈이 내렸고 겨울나무에서 이제 막 돋아나는 색깔의 빛깔. 3월의 봄빛 연두의 계절 이야기가 이어질 것만 같다. 니체의 또 다른 격언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로 <이터널 선사인>과 『애인의 애인에게』가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백영옥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누군가의 가장 예쁜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힘들 때 반드시 그 순간을 증언해야 한다고 배웠다.'라고 썼다. 이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홀가분해졌는지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애인의 애인에게』를 다 읽고 나자 작가에게 이 소설이 얼마나 예쁜지 반드시 증언을 해야 할 것 같다. 백영옥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자니 소설의 정서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백영옥 작가의 작품 이즈 뭔들 예쁨'이다. 그 예쁜 작품들 속에서도 『애인의 애인에게』는 어쩐지 더 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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