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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 해당도서는 창비
출판사에서 진행된 눈가리고 책읽는당 2기 이벤트에 당첨되어 작가, 제목을 밝히지 않은 가제본을 받아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

작가,
베스트셀러 순위, 누군가의 추천 등에 대한 정보나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각만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읽어보는 것.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짜릿하고 로맨틱한 일이다. 책의 정식 출판 전 책의 작가와 제목을 알리지 않고
가제본을 보내 독자들에게 작가와 제목을 맞춰보라고 하거나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작가의 정보는 알리지 않은 채 책을 내놓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각 소설의 작가를 공개하는 등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직 작품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이벤트가 출판계에선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다양한 기획과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뒤늦게 이벤트의 존재를 알고 난 뒤 후회하는 일이 생겼고 그런 기회를 만나게 된다면 절대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매의 눈으로 창비에서 <눈가리고 책읽는당 2기>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하고 빠르게 응모했는데 기분 좋게 당첨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수상한 책이 배달되었다.
단서: 구두, 10 그리고
내성적인 +
창비출판사
첫
번째 제목 「구두」를 다 읽고 「팜비치」로
넘어가서야 이 수상한 책이 소설집이란 걸 알게 됐다. 와우!! 흥미롭다.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10편의 단편소설의 작가가
모두 다를 수도 있다는 가설도 성립 가능해진다. 편견은 덜었는데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장르소설도 아닌데…… 진정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는 이야기들이 10편의 단편소설에서 이어진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이는 사소한 심경의 변화가 생기고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관계는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해주지
않고 또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면서 한 사람이 하나의 강을
건너버리고 결국은 서로 다른 땅을 딛고 서게 된다. 덜 사랑하는 쪽이 강자가 되어 상대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뒤틀어놓고 상대방이 무너지는 과정을
새침하게 방관하면서 몰래 쾌감을 느끼는 과정의 묘사가 섬세하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소설이 흥미진진하다가도 결국은 권태와
허무의 감정에 휩쓸려 다음 소설로 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진다. 더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의 관계가 뒤바뀌는 과정의
세밀한 심리 묘사에서는 작가가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난 내공이 느껴지면서 작가의 정체를 더 궁금하게 한다.
10편의 단편
소설에 남성 화자는 6명, 여성 화자는 4명. 3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까지 화자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서로가 아닌 한 쪽이 태도를 바꾸면서
관계가 틀어지는데 대부분 부부관계지만 부녀관계도 있고 작가와 독자의 관계도 있다. 비슷한 인과관계와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나란히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구두」와 「팜비치」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설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긴다고 느끼는 과정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홍로」와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쥐고 있다고 착각했던 주도권을 자신의 꾀에 넘어가 상대에게 빼앗기고 자신의 감정과 상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이 이어진다. 등장인물들이 무언가에 집착을 하는 것도 중요한 키워드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에서 주인공의 부인은 건강보조제에 열성을 보이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파란
책」에서 파란 책은 집안 인테리어의 소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작가의 세미나에 참석할 정도로 집착하게 되는 물건으로 변해있다.
책에 대한
정보라곤 창비에서 곧 출간하게 될 작품이라는 것 하나만 알고 읽었는데 작가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커진다. 이벤트의 취지에 맞게 아무런 편견
없이 한 권의 책을 읽었고 이제는 마치 셜록 홈즈처럼 작가와 책 제목에 관해 추리를 해 볼 시간이다. 책의 두께만 보고 <눈가리고 책읽는당
1기>때처럼 창비 청소년 문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눈가리고 책읽는당 1기>에서 진행되었던 도서는 루이스
새커의 『수상한
진흙』이었다) 「구두」를
읽는 순간 그 예상은 깨졌고 소설집이니 책의 제목은 10편의 단편소설 중 하나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주어졌던 단서(구두, 10 그리고
내성적인)를 보면 「구두」나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두 편 중 하나가 제목으로 나올 것 같기도 하다. 한 작가의 소설집이고 남성 화자가 더 많았지만 여성작가의 작품집일
것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본다면 아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의 지방 출신 작가일 것 같고
섬세한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묘사에 내공이 느껴졌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걸 보니 내가 작품을 읽어봤던 작가는 아니다. 그래서 책의 정체가
공개되고 작가가 누군지 알게 되면 봄이 오기 전에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찾아 읽을 것 같다. 이벤트 당첨 소식을 듣고 책을 기다리면서부터 내내
즐거웠다. 올해가 시작된 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엄청 뜻깊은 일을 벌써 한가지 해낸 것 같다.
+

책의 출간이
예정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책의 정체도 예정보다 2주 반이나 늦게 공개됐다.
궁금해서
현기증날 뻔 했는데 단편 제목을 보고 어느 분(어머나! 심지어 내가 관심있게 보는 블로거)께서 알려주셨다.
고마워요. 사람
살리셨어요. :)
책의 정체는 최정화 작가의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으로 밝혀졌다.
최정화 작가는 예상대로 내가
읽어 본 작가는 아니었고 30대 중후반의 인천 출신으로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가 공개되면 이전 작품을
찾아 읽겠다고 했는데 이 책이 첫 책인 것 같아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빠른 시간 내에 가제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해설과 작가의 말을 챙겨 읽어야 겠다.
단편집하면 각 작품들의 발표
시기를 찾아 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
작가와 책의 제목을 모르는 채로
책을 읽는 것도 즐거웠는데 책의 정체가 밝혀지자 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