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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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유행의 흐름을 타듯 출판계에서는 고단한 직장인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고 직장인들의 처지를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으며 미디어로도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지만 과도한 업무량, 불합리한 대우 등으로 회사생활을 지옥처럼 그려낼 수 있는 건 한국 사회만 가지고 있는 특권은 아닌가 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도 직장인들의 열광적 지지로 사랑받는 소설이 등장했다고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생각하면 일본인들의 직장생활을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제목만 봐도 그 느낌을 200% 알 것만 같다.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미디어웍스 문고상> 수상으로 데뷔한 카타가와 에미 작가의 데뷔작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입사 반년 차의 신입사원 아오야마. 그에게도 사자에 씨 증후군이 찾아와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위태로웠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초등학교 동창생 야마모토를 만나게 되고 그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연히 일어난 기적 같은 재회 이후 무료하고 위태로웠던 그의 일상과 회사생활은 생기가 돈다. 하지만 그가 구원받은 시간은 그리 길지 못 했다. 자신의 업무 실수로 거래처와의 관계가 깨질 뻔하고 동창이라 믿었던 야마모토는 사실 그의 동창이 아니라고 한다. 야마모토는 대체 누구이고 앞으로 그의 회사생활은 어떻게 될까?

 

이제 막 작가로서 출발 지점에 선 키와가와 에미 작가는 첫 책 『잠깐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작가의 말에서 '여러분은 인생에서 무언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건은 한 권의 소설이었다고 고백한다. 『잠깐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나자 이 소설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넨 그 질문으로 탄생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가는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자신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누군가가 인생에서 무언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이야기를 소설로 탄생시킨 것이다.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와의 만남 덕분에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기운은 업무에 좋은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심드렁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그럼 내일도 적당히 열심히 해."

 

미래를 생각하면 직장에 소속되어 직업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이직, 전직은 꿈도 못 꾼다는 아오야마와 그에게 꾸준히 이직 추천을 하는 니트족 야마모토의 입장 차이를 보다 보니 오래전 지금은 폐지된 어느 토크쇼에서 오랫동안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했었던 게스트가 라디오를 하차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주 청취자가 청소년이었던 프로그램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청소년들의 입장이 아닌 학부모의 마음으로 사연을 읽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정든 프로그램을 떠났었다고 게스트는 고백했었다. 나 역시 요즘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직장인들의 행동을 보는 입장이 예전과 다름을 느끼며 나이를 먹었음을 느끼게 된다. 영화 <싱글즈>에서 홧김에 직장을 그만둔 주인공을 두고 두 친구는 싸운다. 한 친구는 잘했다고 다독여줬고 한 친구는 홧김에 그런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아직 제대로 된 회사 생활 경험이 없었던 패기 넘치는 20대 초반이었던 당시의 나는 영화를 보며 직장을 그만둔 주인공과 주인공을 옹호해주는 친구 입장을 공감했었다. 아마 그 시절에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읽었더라면 나는 이직을 쉽게 권하는 야마모토에게 더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에 찌들다 보니 20대 초반이었다면 쭈글이로 취급했을 것이 분명한, 쓰레기일 뿐이라도 자신을 허락해주는 직장이 있다면 계속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아오야마의 처지를 어느새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고 다시 <싱글즈>를 보게 된다면 홧김에 회사를 그만둔 주인공을 나무라는 친구에게 더 공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쾌감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커져가는 것 같다. 나에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앞으로의 인생을 바꿔줄 동창도 나타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직장동료도 없다. 언제까지고 무료한 일상이 계속될 것이지만 퇴근 후 야마모토와 술 한 잔 하면서 그의 조언을 새겨듣고 조금씩 밝게 변해가는 아오야마처럼 이 책의 독서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처럼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 소개했던 야마모토의 진짜 정체를 추리해나가는 흥미진진함은 보너스다. 작가의 말은 '조금이라도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또 만날 날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는 인사말로 끝맺는다. 입사 반년 된 신입사원 아오야마 다카시의 일주일은 감정의 변화가 뚜렷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로서 나의 감정은 내내 너무나도 즐거웠다. 다작 작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일본 문학계에서 키타가와 에미의 등장이 또 다른 다작 작가의 탄생으로 이어져 자주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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