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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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마주할 때면 마치 의례를 치르듯이 작가와 작품을 향한 높아진 기대치를 낮추려고 한다. 그건 나를 위한 행동이다. 마냥 높아진 기대치를 방치해둔 채 신작을 읽고 그 진가를 나만 못 알아본다면 결국 그 손해는 온전히 나의 몫인 것이다. 그리하여 황경신 작가의 신작 『국경의 도서관』을 마주하면서 나는 당연하게 내가 좋아하는 황경신 작가를 향해 가지고 있는 기대치를 낮추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최근작인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가 발표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기분 좋은 신간 소식이 들려와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두 글자의 한자 단어를 풀어내는 방식의 글쓰기가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탓에 이후 출간될 작품은 어떤 구성으로 황경신 작가 특유의 감성을 녹여 넣을지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당연히 그 궁금증은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당연히 기대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무척이나 궁금했던 황경신 작가의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이후 행보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국경의 도서관』이란 제목으로 신간 소식을 알렸다. 『초콜릿 우체국』 두 번째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으며 2000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솜이의 종이 피아노』의 글들이 함께 실려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국경의 도서관』에서 황경신 작가가 가진 방대한 문화적 소양을 황경신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어떻게 녹여냈을지 궁금했고 기대가 됐고 괜한 노파심에 연말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읽게 된 이 책이 나를 너무 깊은 감성에 빠뜨려 곤혹스럽게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38개의 이야기가 현실 속의 이 세계와 환상 속의 저 세계 사이 어딘가에 얹혀서 떠돈다. 누군가를 대신해 여행을 떠나는 여자 이야기 「바나나 리브즈」부터 일 년에 한 번 매일 같은 날에 낭독회가 열리는 「국경의 도서관」까지 황경신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근근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세계'와 '이 세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저 세계'의 사이에서 잘 녹아있다. 낯선 장소에서 마주한 낯선 이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슈베르트, 셰익스피어 등 위대한 예술가를 이 세계에서 다시 만나고 유명한 원작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책갈피, 우체통을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즐겁다. 어떤 이야기는 지구 저편 어딘가 생소한 나라에서 실제 전해져 오는 설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호흡이 긴 글, 장편소설을 쓸 엄두가 안 난다는 황경신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전작들에 비해 길어진 작가의 글과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와 오래도록 남는 여운에 서려있으면 언젠가 이 38개의 이야기들을 장편소설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황경신 작가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수성은, 황경신 작가의 내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 사로잡혀서 좀처럼 행간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문학, 음악 등의 문화, 예술에 관한 남달리 높은 조예에 감탄하는 일은 황경신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의식하지 않아도 의례를 치르듯이 진행되는 일들이다. 『국경의 도서관』을 읽으면서 역시 여기저기 밑줄을 그으면서 오래도록 그 문장을 곱씹었고 이미 알고 있던 작품들도 다시 생각하게 했고 몰랐던 작품들을 찾아보게 했다. 낯선 길을 헤매다가 마침 황경신 작가의 낭독회가 열리는 국경의 도서관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질문을 건낼까 생각해본다.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의 비밀 레시피를 손에 쥐게 되더라도 주인의 손맛을 흉내낼 수는 없듯이 황경신 작가만의 글쓰기 비법을 물어보고 답을 듣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 황경신 작가처럼 특유의 감성을 녹여내는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느냐의 문제」에서 황경신 작가는 '믿음이란 혼자 지켜낸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 믿어주지 않으면 빛을 잃은 다이아몬드처럼 초라해지는 게 믿음이니까.'라고 썼다. 「마음을 사다」에서는 부드러운 마음을 사면 특별히 소정의 따뜻한 시간을 함께 준다고 한다. 황경신이란 이름을 마주하면 그 이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충만해진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책장 속 황경신 작가의 책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부드러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이라 그런가 특별히 소정의 따뜻한 시간을 선사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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