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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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해서 온갖 로망이 있던 시절이 있었었다. 이 고백이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이 돼버린 점만 해도 충분히 슬픈데 이렇게 고백을 하고 보니 술에 대한 온갖 로망이 있었던 시절이 까마득한 전생처럼 느껴져서 나를 두 번 슬프게 한다.
20살만 되면 책에서, TV에서, 영화에서 보았던 온갖 종류의 술을 다 먹어봐야겠다는 로망과 목표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온갖 종류의 마셔야 할 술들과 안주들이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갔지만 현실은 언제나 소주, 맥주 어쩌다 와인, 막걸리였다.

은모든 작가의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애주가의 결심』을 손에 쥐었을 때만 해도 십여 년 전 아직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과 관심이 충만했을 그 시절로 소환시켜줄 책이라는 믿음이 컸었다. 망원동 일대에서 펼쳐지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큰 틀은 크게 신선하지는 않지만 술이 곁들여진다면 관심도는 커진다. 망원동은 나에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장소이지만 여러 차례 TV 등을 통해 봐왔고 워낙 떠오르는 지역이라 쉽게 상상이 가능한 곳이다. 은모든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세계 역시 비슷했다. 이름부터 특이한 은모든 작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순전히 책의 제목과 몇몇 키워드들에 이끌려 관심을 가지며 읽기 시작했던 『애주가의 결심』은 낯설지만 어느 정도 상상 가능한 그런 작품이었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술들은 물론이고 각각의 술과 어울리는 안주들의 조합과 음식에 대한 표현들을 읽고 있다면 도대체 이러한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작가에겐 어떤 술과 안주와 술자리에 대한 경험치들이 쌓여있는 건지 의문이 생긴다. 주인공들이 짊어진 청춘의 무게들이 너무 무겁지도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도 지금 시대에 대한 세세한 표현은 마치 청량감을 주는 맥주처럼 읽어가는 내내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술술 재밌게 읽히다가 주인공 주희의 사촌 언니이자 동거녀인 신우경의 금주 사연의 비밀이 밝혀지고 새로운 인물 예정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솔직히 밝히면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후반부에 펼쳐진 반전 덕에 훨씬 더 좋아졌다. 푸드트럭이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힘도 없는 술주희에게 생활고를 덜어줄 동거인 사촌 언니가 등장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동네 술친구 베짱이 등장하며 내내 낙천적으로 비교적 가볍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던 은모든 작가의 다음 작품들은 술주희가 아닌 예정 같은 인물과 상황들을 앞세워 더 많이 어두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작품을 접한 작가지만 은모든 작가라면 어떠한 상황이라도 등장인물들을 마냥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해서 보듬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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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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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장시간을 앞둔 동물원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 살 아들 링컨과 출구로 향하던 중 총격 소리와 대여섯 개의 허수아비(?)를 목격한 조앤의 귀갓길은 긴장감 넘치는 생존기로 변한다. 
 
​평소 즐겨읽는 장르의 소설도 아니고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작가에 대한 신뢰도 전혀 없었지만 2017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최고의 범죄소설이자 2016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화제작이라는 타이틀로 기대감을 높였던 작품은 단숨에 읽히며 책을 읽어가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강렬한 서사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 안에서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켜갔다. 
 
대부분의 스릴러는 대부분 남성 중심적이고 영웅담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진 필립스가 구축한 밤의 동물원의 스릴러는 아들 링컨과 함께 동물원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조앤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지만 이외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심리 묘사 대부분 또한 여자 캐릭터들로 이끌어나가는 점이 흥미롭다. 토르를 좋아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좋아하는 링컨에게 진정한 영웅은 엄마 조앤이지만 그렇다고 이 엄청난 소설을 '모성애'라는 단어만으로 이야기한다면 섭섭한 점이 많다.
 
소제목의 시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3시간 10분여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서사의 힘도 엄청나지만 주인공 조앤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세심하다. 이런 이야기와 이런 심리묘사를 어느 스릴러 소설에서 혹은 어느 스릴러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듯도 하지만 진 필립스의 『밤의 동물원』만의 강렬하면서도 독자적인 색채가 분명히 있다.
도대체 왜, 어쩌다 왜, 그러니까 왜, 왜왜왜,,, 책을 읽는 동안 무수히 밀려드는 질문들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들은 책을 읽어가는 내내 흥분상태로 만들었다. 가끔씩 바뀌는 등장인물들의 시점과 총격전이라는 소재에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진 필립스는 구스 반 산트 감독만큼 친절하지 않아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며 많은 여지를 남겨두었다. 독서가 끝나고 책이 끝났다는 게 너무나 아쉽지만 흥분상태는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누군가 이 책을 읽어보려고 집어 드는 광경을 보게 된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다.
 
조앤은 링컨이 태어난 뒤 아기계의 조지 클루니라고 했다. 머들스는 닥스훈트계의 조지 클루니, 폴은 남편계의 조지 클루니, 조앤 주변엔 온통 조지 클루니뿐이라고 했다. 그 구절을 읽어나갈 땐 이 책을 1/4밖에 안 넘긴 시점이었지만 ​『밤의 동물원』을, 진 필립스를 스릴러계의 조지 클루니라 부르는데 이미 동의가 되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그래도 여성명사로 불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어떤 인물로 불러야 좋을까 고민이 된다. 이 고민의 여지 또한 진 필립스가 남겨둔 게 아닌가 하는 기분 좋은 의심이 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 기분 좋은 흥분을 다시 체험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어쩌면 그때는 진 필립스가 스릴러계의 어떤 여성명사로 부를지 쉽게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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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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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장편 출간 소식이 들려왔다. 무수한 행사들이 즐비한 5월이지만 나를 위한 날은 단 하루도 없는 이 봄날 마치 나를 위해 선물 상자가 도착한 것 같아 넘치게 기뻤다. 무슨 선물이 들어있을까 기대하며 선물 상자를 뜯는 아이처럼 기대감이 컸다. 나를 기쁘게 할 요소들이 조금도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건 김금희 작가라면 아직 김금희라는 장르에 보여줄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이 시대를 말도 안 되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청춘들을 증명하는 작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신작 소식을 더 반갑게 기다리게 되는 작가들이 몇 있다면 김금희 작가는 당연  선순위에 든다.

경애는 스스로의 삶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발끝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경애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위태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도 산주를 생각하면 어떤 간절함이 들면서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경애를 붙들었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경애는 예감하고 있었다. p.132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끝없이 불운이 이어지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의 당연한 냉담이 참 슬프다. 상수와 경애, 조선생을 막다른 불운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이 거대한 조직이나 악한 존재들이 아닌 그들보다 조금 덜 불운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상심 감이 더 크게 몰려온다. 이런 감정을 내내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김금희 작가의 감성의 내공이 놀랍다. 아직 작가의 많은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지만 소설가라면 몇 편의 작품들로 이 작가는 단편이 더 좋다거나 반대로 장편이 더 빛을 보는 것 같다는 평이 쉽게 나오기 마련인데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이지만 이전의 단편들도 이번 장편도 모두 좋았다.

"괜찮겠어요?"
​"뭐가 괜찮아요?"
​"아니에요."
​"그러는 경애씨는 괜찮습니까?"
​"뭐가요?"
​"뭐든 말이에요." p.169

E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오는 시간을 E가 어딘가 혼자 다녀오는 것 같은 느낌에 질투심을 느꼈던 경애처럼 책을 읽는 내내 나 혼자 어떤 공간에 다녀온 것 같았다. 작가가 그려낸 인천의 어느 공간들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고 베트남의 공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경애와 E가, 상수와 은총이, 경애와 상수를 가까이서 바라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곳은 그들의 세계가 아닌 김금희 작가의 세계라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아직 다 만나보지 못한 김금희라는 장르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대목이다.

경애의 마음을 한번 더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금희 작가의 다음 작품들도 무조건 챙겨 읽을 예정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읽혔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말도 안 되는 이 시대를 말도 안 되게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가 충분히 공허해지고 실컷 아팠으면 좋겠다. 이 봄날 김금희 작가가 전해주는 청춘의 열병을 앓으며 모두가 안녕했으면 좋겠다. 부디. 

 

-
2018년 10월 26일에 덧붙입니다.

(…)
이동진 : 그래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제가 굉장히 감동받은 게 아까 경애라는 이름도 그런 얘길 드렸는데 사랑에는 이제 수많은 어떤 스펙트럼이 있을 텐데 이 사랑의 핵심은 동지애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팀이었구나. 그리고 팀이라는 게 사랑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그런 진행이라서 사실은 그런 이야기를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김금희 : 네 감사합니다. 그게 아마...
근데 읽으신 독자분들 가운데서는 경애가 되게 아까우신가 봐요. 저한테 항의하시듯 "작가님이라면 상수랑 사귀겠냐"고 저한테... 그러셔가지고... 아... 소설이 그렇게 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동진 : 네 그러면 "사귄 건 아니구요." 이렇게 또 얘기하시는 건가요?
 
김금희 :
그렇게 저는 질문을 받아서 "되게 잘생겼거든요"라고 바로 변명을 했어요.
 
이동진 : 강동원 얘기하시면 되는데.
 
김금희 : 네 "상수가 엄청 잘생겼거든요. 그래서 저라면 사귈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는데 별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어요.
-<이동진의 빨간책방 291회 경애의 마음 with 김금희 작가>

5월 완연한 봄날 이 소설을 읽고 서평의 말미에 이 소설을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고 썼었는데 조만간 다시 읽을 예정입니다. 왜때문이냐면 여러분 김금희 작가님이 상수가 되게 잘생겼데요. 우린 지금까지 『경애의 마음』을 잘못 읽은 거예요.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경애의 마음』 안 읽은 사람 없었으면 좋겠어요. 김금희 작가님 출연하신 <이동진의 빨간책방> 안 들은 사람 없었으면 좋겠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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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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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신간 『그렇게 쓰여 있었다』는 곱씹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뿐만 아니라 구성 디자인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쓴 것이 보여 마음을 사로잡더니 어린 시절 이야기, 가족 이야기, 모임과 일상 이야기 등에서 서로 다른 듯 같은 마스다 미리를 만나게 되는데 공감의 아이콘답게 작은 책에서 엄청난 내공을 내뿜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사소하게 그냥 넘겨버리고 말 일들도 마스다 미리의 일상에선 사랑스러운 에세이가 되고 일러스트가 되는 마법을 그동안의 마스다 미리 작품들에서 수도 없이 봐왔는데 여전히 놀라워하고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을 것들이 많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마스다 미리는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의 매력을 어떻게 발산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 쉰을 코앞에 두고도 부모님 앞에서는 언제까지고 소녀이고, 본전을 뽑기 위해 홍차를 다섯 잔이니 리필을 하고 가루가 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마카롱을 손수건에 싸는 모습이 친근하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를 찾는 독자들이 원하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영리한 작가다. 그렇지 않고서야 발표한 에세이마다 매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서점에 가면 내년 다이어리와 달력들이 벌써 나와있다. 회사 분위기도 벌써 올해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안 좋은 일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힘들게 보냈다. 감정의 소모가 너무나 컸던 탓에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당연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보내고 있다. 인생을 백살쯤 산 노인처럼 살고 있다는 말도 들으며 이 좋은 나이에 정말 엉망으로 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몇 년간 다이어리 버킷리스트에 적혀 있던 일들 몇 가지를 해냈는데 안 좋은 일이 아닌 좋은 일 몇 가지로 올해를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일상이 지루하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로운 음식을 먹으러 가고 무언가를 배우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고 나도 모르게 영혼이 더 자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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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4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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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영화 <밀레니엄 : 영화를 증오한 남자들>의 개봉을 앞두고 밀레니엄 시리즈의 인기는 책, 영화할 것 없이 엄청났었다. 총 10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는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중단되었지만 작가가 완성하고 간 3부 시리즈는 전 세계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매니아층을 양성하기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이미 두 개의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부제목이 달랐던 책들과 스웨덴판 세 편의 영화, 그리고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영화, 소설과 영화보다 더 소설과 영화 같았던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의 죽음과 사후에 빛을 보게 된 소설의 후일담까지 밀레니엄 시리즈 팬들이라면 환호할 요소들이 많았다.

6년이 지나도록 영화의 속편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밀레니엄 신드롬은 그때 거기까지였구나 생각할 즈음 들려온 뉴스는 놀랍게도 영화 속편 소식이 아닌 소설 4부의 출간 소식이었다. 소설과 영화를 챙겨 읽고 보며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캐릭터에 대책 없이 빠져있었던 나로서는 솔직히 반가움보다는 노파심이 더 컸음을 고백한다.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리즈가 끝을 맺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기념비적인 일이었고 마치 작가가 소설의 운명을 미리 감지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3부의 마지막 장면은 더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스티그 라르손이 아닌 다른 작가가 스티그 라르손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던 미카엘을 써 내려가고 리스베트 살란데르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스티그 라르손이 아닌 감독들이 스크린에서 창조한 밀레니엄 시리즈들이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미카엘은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르는 멍청이로 만들고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고 행동이 큰 캐릭터로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범했던 탓에 바통을 이어받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6권까지 시리즈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우려는 6년 사이 독서의 편식이 더 심해지고 갈수록 재미없는 어른이 되고 있는 내가 이 시리즈를 그때의 그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빠질 수 있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다. 걱정과 노파심, 우려 모두가 밀레니엄 시리즈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탄생시킨 밀레니엄의 반쪽 이야기들도 궁금했고 어쩌다 소녀가 거미줄에 걸렸는지도 걱정도 됐고 새롭게 밀레니엄 시리즈를 출간시키는 출판사가 문학동네라 그 와중에 믿음감은 좀 커졌다.

 

새로운 캐릭터들과 호기심을 자아내며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빠져 책장을 넘기며 읽었던 밀러니엄에 대한 기억은 3권까지였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스티그 라르손이 건축한 밀레니엄과 다비드 라게르란츠가 바통을 이어받은 밀레니엄은 닮은 듯 분명 다른 세상이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로 구분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나며 내가 느낀 첫 감정은 혼란이었다. 촘촘하고 견고한 스토리 속에서 캐릭터들이 생명을 불어넣으며 밀레니엄만의 매력을 충분히, 그리고 여전히 발산시키지만 낯설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갔음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이 소설을 밀레니엄 4권이 아닌 전혀 새로운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스티그 라르손의 연장선상인 듯하지만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색을 확실히 구분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게 좋아진 건지 별로인 건지 구분이 힘들다.

 

​여러모로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남들보다 빨리 그 경험을 하고도 이 감정들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독서에 빠지지 못하고 겉돌았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놓지 못하고 이야기에 스며들었지만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만나기도 전에 내가 그만 거미줄에 걸린듯한 모습이다. 뭐라 설명하지 못하는 내 머릿속을 아우그스트가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확실한 건 앞으로 남은 두 권의 시리즈를 다 읽어봐야 밀레니엄에 대해 확실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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