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이버릿 앨리스 - 전 세계 61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을 찾아서
앨리스설탕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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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첫 출간 이후 지금까지 150여 년간 전 세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느 나라 서점에 가서도 만날 수 있는 유명한 작품임은 물론이고 원작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영화화, 팀 버튼 감독의 영화화를 통해서도 친숙한 이야기다. 배용태 시인과 성미정 시인이 앨리스설탕이라는 공동 필명으로 작업한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는 지금까지 다양한 언어는 물론이고 다양한 작가들의 일러스트로 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61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본을 아카이브 한 책이다. 1865년부터 2018년까지, 61명 작가의 앨리스를 만나는 재미가 그야말로 쏠쏠한 작품집이다.



 

토베 얀손, 살바도르 달리, 앤서니 브라운, 쿠사마 야요이 등 아는 이름을 만날 때마다 반가움이 밀려오지만 나머지는 모르는 작가들이라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61가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나는 일은 마치 토끼굴에 61번이나 빠지며 다음은 어떤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을지 상상하고 기대하는 여정 같았다. 자신의 딸을 모델로 한 검은 머리카락의 앨리스를 만나는가 하면(피터 뉴웰), 단발머리의 앨리스도 만났고(찰스 로빈슨, 존 닐), 스페인 전통 의상을 입은 앨리스도 만났고(호아킨 산타나 보니아), 양 갈래 땋은 머리의 앨리스도 만났다(앤서니 라도). 로코코풍 드레스를 입은 앨리스들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필립 고프, 페테르 추클레프), 극단 배우들의 연기를 포착한 사진집(리처드 애버던), 흑인 모델들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캐릭터들을 재해석하여 제작한 달력(팀 워커)까지, 15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61명의 작가가 탄생시킨 앨리스를 만나는 과정은 엄청났고 굉장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버리지 않고 앨리스를 탄생시킨 결과물들이 흥미로웠는데 토베 얀손의 앨리스 일러스트들은 무민 시리즈에 섞여 있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천경자 작가님께 작업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천경자 작가님은 어떤 앨리스를 탄생시켰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를 읽고서야 내 책장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없다는 사실을 크게 의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구매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웠는데 절대 서두르지는 않을 계획이다.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에서 소개된 작품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작품은 보이테흐 쿠바슈타의 대형 팝업북이었다. 개인적인 관심사와 직업 특성상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서점, 도서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병(?)이 있는데 앞으로 외국의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르면 일을 삼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찾아 볼 계획도 가져본다. 뒤늦게 2019년 롯데갤러리에서 열렸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전시회 후기를 찾아보고 앨리스설탕 SNS를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의 여운을 진하게 음미하고 있다. 모쪼록 『마이 페이버릿 앨리스』가 잘 돼서 다양한 형태와 주제들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폭발적으로 출간되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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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장석주 지음 / 난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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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장석주 시인의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의 첫 인덱스는 본문 시작도 전, 시인의 말 말미의 '시집을 엮는 수고는 전적으로 김민정 시인의 몫이었다. 평생 갚아야 할 큰 빚을 졌다.'라는 구절에 붙여졌다. 어디 장석주 시인뿐이랴, 이 시대의 문학 독자들은 물론이고 미래의 독자들까지 우리 모두는 김민정 시인에게 빚진 게 많다. 난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김민정 대표의 말'도 함께 수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그건 너무 내 욕심이다.

 

어제는 몹시 외로웠다고,

오늘은 못 견디게 그리웠다고,

너를 사랑한 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엽서를 쓰자. p.36 「내 마음속 용 - 이중섭을 위하여」 중

 

2

그 유명한 「대추 한 일」 속 한 구절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로 알고 있는 장석주 시인의 작품 세계를 조금 더 자세히 엿본다. 과거에 대한 향수,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시, 시를 향한 시인의 고민과 태도를 골똘히 바라보며 나의 독서 여정은 자주 길을 잃는다. 1979년부터 2019년까지 펴낸 시집 가운데 절판된 아홉 권의 책에서 가려 뽑은 시로 엮은 작품들이 저절로 써지고 엮어질 리는 없듯이 저절로 쉽게 읽혀질 리 또한 없다. 시인의 몫을, 편집자의 몫을, 독자의 몫을 저마다 안고 있음을 의식하며 읽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미친 피의 놀음이 되어야 한다. p.74 「고인」 중

 



3

붉은 샐비어꽃이 지면 헤어져야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사월의 밤 고속도로보다 차갑고 무뚝뚝하다 (「사목해수욕장 민박집에서의 일박」 중)

 

-

 

금치산자 같은 사월이 왔다 간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시시하지?

하는 얼굴을 하고 (「사월」 중)

 

장석주 시인에게 사월은 어떤 의미일까? 지방인이라서, 코로나 시국이라서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인 나는 요즘 문학 행사가 몹시도 고픈 상황이다. 특히 이번 독서처럼 몰랐던 작가의 작품을 만족스럽게 읽고 난 후 그런 바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데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내가 골라 갈 수 있는 상황도 절대 아니지만 장석주 시인을 사월에 만나 그의 이야기를 실컷 들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매년 사월이 되면 장석주 시인의 시집 한 권 챙겨 읽는 의식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연민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만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을 순례하지 말 것. 서양 모자를 쓰지 말 것. 콧수염을 기르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른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 p.98 「명자나무」 중

 

4

1~3부를 통해 엄선된 장석주 시인의 시들을 살펴보고 4부 '사자 새끼가 사자 소리를 내는 것'을 통해 시인의 산문과 시론을 살펴보게 된다. 언어를 딛고 언어를 넘어가는 시, 언어와 언어 사이 그 여백에서 태어난 발효하는 언어의 시는 나에게 있어서 여전히 멀고 어려운 것이지만 장석주 시인에 대한 선망과 존경에 대한 마음은 더없이 커졌다. 아직 써야 할 시가 남아 있다는 장석주 시인의 언어와 우주를 더 알아가고 싶다.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기존의 작품들, 중국인이나 그리스인에 대한 앞으로 발표될 시에 대한 기대는 물론이고 올해 초 복간 예정이라는 『햇빛사냥』과 『완전주의자의 꿈』에 대한 기대가 더불어 커진다. 

 

 시는 언어가 아니다. 시는 언어와 언어 사이 그 여백에서 태어난다. 시는 아직 형태소를 얻지 못한 생성하는 언어, 발효하는 언어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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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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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 책을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로 정하고 나니 새삼스레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과 기대도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1989년 첫 출간된 책에 1995년부터 2013년의 기록이 추가되어 32년 만에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됐다는 소식은 2021년 한국 문학계의 최고의 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설렘과 기대를 아끼고 아끼다가 2022년이 오자마자 첫 독서로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이.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 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환들인가, 벌써 앞 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 결국,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발음해야만 한다.' p.59-60



 

일부러 아껴서 펼쳐든 만큼 아껴가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귀하고 귀한 글들이 선명하고 단단하게 마음을 울린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시인의 시집 속 시구와 산문 속 문장들은 많이 닮아 있다. 특유의 냉소와 어둠이 분위기는 산문 속 문장들 속에서도 간결한 매력을 내뿜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은 산문 속에서도 유려하게 독자들을 잠식시킨다. 유년시절, 대학시절을 되돌아보고 편집자의 질문에 답을 찾아 보며 문학에 대한, 시에 관한 시인의 진심을 엿보게 되기도 한다. 개정판에 추가된 4부에서는 신비주의 공부에 빠졌다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주 죽음으로 귀결되고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잊어버리기에 지쳐, 마침내 몸과 마음이 쓰러져 누울 때, 그때 고요히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나의 삶이 이래도 될까?' 하는 질문들이. 그때야말로 그 한 해의 삶의 의미를, 삶의 결실을 거둘 때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그야말로 뿌린 대로 거둘 때이다.

 한 해의 끝에서 녹초가 된 몸, 녹초가 된 정신과 더불어 고요히 떠오를 그러한 질문에 합당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 또 한 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99


나의 경우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새해 첫 책으로 펼쳐들었지만 오은 시인은 팟캐스트에서 작년 연말에 가장 많이 나누게 될 책으로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소개해줬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한 해의 마무리로 더 어울린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졌다. 의식적으로 2022년의 시작과 함께 최승자 시인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펼쳐들었듯 언젠가 의식적으로 한 해의 마지막을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의 독서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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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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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두고 떠나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어요. 계속 있겠어요. 끝까지."

요즘 극장가는 씨네필들의 <스파이더맨>시리즈 스포를 피하기 위한 이슈로 들썩하다. 가능한 한 빨리 보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포를 당하지 않고 영화를 보기 위한 각자의 노력들이 눈물겨운 지경인데 마침 문학덕후인 나에겐 로버트 두고니의 소설 『내 동생의 무덤』이 그러했다. 너무나 무거운 제목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보다 흡인력 있고 상상 이상의 반전을 안겨준다는 입소문에 먼저 읽은 독자들의 스포를 피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아무리 급해도 표지부터 띠지, 작가 소개를 꼼꼼히 살핀 후 본격적인 독서를 하는 나인데 이례적으로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본격적으로 본문부터 읽어 나갔다. 평소 아무리 기다려왔던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더라도 이런 경우는 드물었기에 나로서도 무척이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도 진심으로 안타까워. 그날 우리 모두 세라를 잃었어. 그 후 이곳은 완전히 달라졌지. 세라는 마을 전체의 아이 같은 존재였어. 당시에는 우리 모두 그랬을 거야." 

화목한 가정의 두 딸이자 남다른 우애를 자랑하는 자매인 트레이시와 세라는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사격 라이벌이기도 하다. 1993년 올림피아에서 열린 사격대회에서 세라가 트레이시를 봐주면서 두 자매는 나란히 1, 2등을 거머쥐게 되고 트레이시는 세라가 져줬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남자친구 벤과의 약속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날 세라는 실종된다. 세라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성범죄 전과로 6년간 복역한 이력이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되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인 에드먼드 하우스, 조작된 재판과 의심스러운 캘러웨이 보안관, 그리고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아버지. 얼마 후 아버지는 엽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고 화학교사였던 트레이시는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형사가 된다. 세라가 실종된 지 20년 만에 고향 시더 그로브의 숲속에서 백골의 시신이 발견되고 세라임이 밝혀진다. 조작된 증거를 바로잡고 다시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변호사 댄과 트레이시는 에드먼드의 감형 신청을 진행하게 된다.

 

 "난 평생 남자한테 키스하지 않을 거야."

 "남자랑 키스하지 않으면 어떻게 결혼할 건데?"

 "결혼도 안 해. 언니랑 같이 살 거야."

 "내가 결혼하면?"

 세라는 얼굴을 찡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같이 살면 안 돼?"

 "언니는 남편이랑 살아야지."

 세라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래도 매일 만날 수는 있는 거지?"

 트레이시가 한 팔을 들자 세라가 바짝 다가들었다.

 "물론이지. 넌 내가 제일 아끼는 동생이니까. 지독한 개구쟁이이긴 하지만."

 "언니 동생은 나뿐이잖아."

 "이제 자."

 "잠이 안 와."

 트레이시는 소설책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전등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좋아, 눈을 감아."

 세라는 시킨 대로 했다.

 "이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어."

 세라가 숨을 내쉬자 트레이시가 말했다. "준비됐어?"

 "응."

 "나는……."

세라가 언니의 말을 따라했다.

 "나는……."

 "나는 어둠이……."

 "나는 어둠이……."

 "나는 어둠이 두렵지 않아."

 둘이 동시에 말하자, 트레이시가 불을 껐다. p.62-63

 

 "나랑 당신이 또 엮이려나 보군, 트레이시 형사."

미제 실종 사건이 세라의 시신 발견으로 조작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되면서 조작된 증거를 바로잡고 에드먼드에 씌인 누명을 벗어가는 과정이 입소문 그대로 흡인력 있게 빠른 속도감으로 진행되어 남다른 몰입을 선사한다. 세라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기 위해 잘못된 증거들을 바로 잡아가지만 그렇다면 에드먼드가 아닌 진짜 범인이 누구이며 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문은 짐작조차 쉽지가 않은데 상상이상의 반전으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정교하고 탄탄한 빈틈없는 줄거리와 강렬한 존재감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끝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로버트 두고니 작가는 독자들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댄의 두 반려견 셜록과 렉스에게까지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가 하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에드먼드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오히려 에드먼드가 저지른 예전 범죄의 피해자 아버지인 조지 보빈을 통해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네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사에 대해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 거야."

개인적으로 제목 빼고 다 괜찮았던 『내 동생의 무덤』은 압도적인 흡인력으로 빠르게 읽히지만 20년 만에 드러난 진실과 반전의 여운이 묵직한 소설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변호사 출신 작가의 흥미로운 이력과 '존 그리샴의 성취를 이을 후계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눈에 들어온다. 8권까지 출간된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는 사실도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내 동생의 무덤』을 읽고 나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당연하게 커진다. 남다른 흡인력의 작품을 집필하는 작가답게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를 매년 발표하는 놀라운 집필 속도를 선보인다고 하는데 다음 작품들도 빠르게 출간되었으면 하는 조급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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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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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유지니아』가 전면개정판으로 새 옷을 입었다. 기존의 뭔가 비밀스러운 여자아이와 흰 백일홍 꽃의 일러스트 표지에서 붉은 백일홍들 속 뭔가 섬뜩해 보이는 손들의 일러스트로 바뀌면서 작품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을 일으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20대 때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따뜻한 시선으로 읽고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집어 든 다음 책이 『유지니아』였다가 너무나 다른 장르와 분위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30대에 새로운 표지의 『유지니아』를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겨 뭔가 기념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침 몇 달 전 온다 리쿠의 신간 『에피타프 도쿄』를 읽고 소설 속 문장을 빌려 '나에게 온다 리쿠는 과자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라고 했었는데 나에게 『유지니아』의 두 번째 독서는 알아서 더 무서운 맛의 과자와도 같다.

 

호쿠리쿠 지방의 K시에서 3대가 의사로 지내고 있는 유서 깊은 집안인 아오사와 가에서 3대의 생일이 겹친 잔칫날 독극물을 탄 음료수로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 남은 건 앞을 못 보는 소녀와 '유지니아'라고 적힌 의문의 시.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후 한 남자가 자신이 그 사건을 벌였다는 유서와 함께 자살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고 그로부터 10년 후 이웃에 살던 소녀가 사건을 취재해 소설을 발표하고 또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나 누군가가 당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죄인가.

 부모든, 자식이든, 형제든,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게 나쁜 일인가? 이해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체념하는 것도 일종의 이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용서하지 않거든요. 모르겠다고 괴롭히고, 정체를 알 수 없다, 설득이 안 먹힌다고 공격합니다. 뭐든지 간략화, 메뉴얼화됩니다. 화를 내는 이유가 '이해할 수 없다'일 때가 많아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는 쪽이 훨씬 적지 않나요? 이해했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보는데, 잘못된 생각일까요.

 가끔씩 생각해보곤 합니다.

 동생은 뭘 그렇게까지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

 어째서 그렇게까지 타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p.200

 

촘촘한 이야기 구조와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가 다중적으로 펼쳐지고 거기에 '미스터리'. '추리'의 장르적 장치가 더해져 남다른 흡인력을 선사한다. 결말을 알고 읽는 두 번째 독서임에도 흥미진진함은 여전하다. 첫 번째 독서에서 복잡해 보였던 장치들이 쉽게 넘어가는가 하면 오히려 그냥 읽어갔던 부분들이 두 번째 독서에선 예사로 보이지 않게 되고 기존 표지와 달라진 표지에 대한 부분들에 대하여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면서 색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현재의 날씨와 대비되는 한여름의 뜨겁고 무거운 공기가 생생히 전달되어 계절 감각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데 어느새 나에게 『유지니아』는 새하얀 백일홍처럼 아주 예쁘고 아주 무서운 소설이 되어있다.

 

온다 리쿠는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세계 덕분에 읽으면 읽을수록 안다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작가가 되었다. 워낙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특히 올해는 한국에서 출간 소식이 전투적(?)으로 들려온 것 같다. 덕분에 올해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작가가 되었고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읽어야 할 온다 리쿠의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즐겁다. 10여 년 후 40대에 『유지니아』를 다시 읽어볼 계획을 세워본다. 그땐 계절에 맞게 한 여름에 챙겨 읽을 것이다. 『유지니아』에 관한 나의 엇갈리는 기억도 조금식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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