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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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두고 떠나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어요. 계속 있겠어요. 끝까지."

요즘 극장가는 씨네필들의 <스파이더맨>시리즈 스포를 피하기 위한 이슈로 들썩하다. 가능한 한 빨리 보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포를 당하지 않고 영화를 보기 위한 각자의 노력들이 눈물겨운 지경인데 마침 문학덕후인 나에겐 로버트 두고니의 소설 『내 동생의 무덤』이 그러했다. 너무나 무거운 제목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보다 흡인력 있고 상상 이상의 반전을 안겨준다는 입소문에 먼저 읽은 독자들의 스포를 피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아무리 급해도 표지부터 띠지, 작가 소개를 꼼꼼히 살핀 후 본격적인 독서를 하는 나인데 이례적으로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본격적으로 본문부터 읽어 나갔다. 평소 아무리 기다려왔던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더라도 이런 경우는 드물었기에 나로서도 무척이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도 진심으로 안타까워. 그날 우리 모두 세라를 잃었어. 그 후 이곳은 완전히 달라졌지. 세라는 마을 전체의 아이 같은 존재였어. 당시에는 우리 모두 그랬을 거야." 

화목한 가정의 두 딸이자 남다른 우애를 자랑하는 자매인 트레이시와 세라는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사격 라이벌이기도 하다. 1993년 올림피아에서 열린 사격대회에서 세라가 트레이시를 봐주면서 두 자매는 나란히 1, 2등을 거머쥐게 되고 트레이시는 세라가 져줬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남자친구 벤과의 약속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날 세라는 실종된다. 세라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성범죄 전과로 6년간 복역한 이력이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되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인 에드먼드 하우스, 조작된 재판과 의심스러운 캘러웨이 보안관, 그리고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아버지. 얼마 후 아버지는 엽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하고 화학교사였던 트레이시는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형사가 된다. 세라가 실종된 지 20년 만에 고향 시더 그로브의 숲속에서 백골의 시신이 발견되고 세라임이 밝혀진다. 조작된 증거를 바로잡고 다시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변호사 댄과 트레이시는 에드먼드의 감형 신청을 진행하게 된다.

 

 "난 평생 남자한테 키스하지 않을 거야."

 "남자랑 키스하지 않으면 어떻게 결혼할 건데?"

 "결혼도 안 해. 언니랑 같이 살 거야."

 "내가 결혼하면?"

 세라는 얼굴을 찡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같이 살면 안 돼?"

 "언니는 남편이랑 살아야지."

 세라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래도 매일 만날 수는 있는 거지?"

 트레이시가 한 팔을 들자 세라가 바짝 다가들었다.

 "물론이지. 넌 내가 제일 아끼는 동생이니까. 지독한 개구쟁이이긴 하지만."

 "언니 동생은 나뿐이잖아."

 "이제 자."

 "잠이 안 와."

 트레이시는 소설책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전등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좋아, 눈을 감아."

 세라는 시킨 대로 했다.

 "이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어."

 세라가 숨을 내쉬자 트레이시가 말했다. "준비됐어?"

 "응."

 "나는……."

세라가 언니의 말을 따라했다.

 "나는……."

 "나는 어둠이……."

 "나는 어둠이……."

 "나는 어둠이 두렵지 않아."

 둘이 동시에 말하자, 트레이시가 불을 껐다. p.62-63

 

 "나랑 당신이 또 엮이려나 보군, 트레이시 형사."

미제 실종 사건이 세라의 시신 발견으로 조작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되면서 조작된 증거를 바로잡고 에드먼드에 씌인 누명을 벗어가는 과정이 입소문 그대로 흡인력 있게 빠른 속도감으로 진행되어 남다른 몰입을 선사한다. 세라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기 위해 잘못된 증거들을 바로 잡아가지만 그렇다면 에드먼드가 아닌 진짜 범인이 누구이며 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문은 짐작조차 쉽지가 않은데 상상이상의 반전으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정교하고 탄탄한 빈틈없는 줄거리와 강렬한 존재감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끝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로버트 두고니 작가는 독자들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댄의 두 반려견 셜록과 렉스에게까지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가 하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에드먼드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오히려 에드먼드가 저지른 예전 범죄의 피해자 아버지인 조지 보빈을 통해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네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사에 대해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 거야."

개인적으로 제목 빼고 다 괜찮았던 『내 동생의 무덤』은 압도적인 흡인력으로 빠르게 읽히지만 20년 만에 드러난 진실과 반전의 여운이 묵직한 소설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변호사 출신 작가의 흥미로운 이력과 '존 그리샴의 성취를 이을 후계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눈에 들어온다. 8권까지 출간된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는 사실도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내 동생의 무덤』을 읽고 나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당연하게 커진다. 남다른 흡인력의 작품을 집필하는 작가답게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를 매년 발표하는 놀라운 집필 속도를 선보인다고 하는데 다음 작품들도 빠르게 출간되었으면 하는 조급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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