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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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유지니아』가 전면개정판으로 새 옷을 입었다. 기존의 뭔가 비밀스러운 여자아이와 흰 백일홍 꽃의 일러스트 표지에서 붉은 백일홍들 속 뭔가 섬뜩해 보이는 손들의 일러스트로 바뀌면서 작품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을 일으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20대 때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따뜻한 시선으로 읽고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집어 든 다음 책이 『유지니아』였다가 너무나 다른 장르와 분위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30대에 새로운 표지의 『유지니아』를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겨 뭔가 기념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침 몇 달 전 온다 리쿠의 신간 『에피타프 도쿄』를 읽고 소설 속 문장을 빌려 '나에게 온다 리쿠는 과자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라고 했었는데 나에게 『유지니아』의 두 번째 독서는 알아서 더 무서운 맛의 과자와도 같다.

 

호쿠리쿠 지방의 K시에서 3대가 의사로 지내고 있는 유서 깊은 집안인 아오사와 가에서 3대의 생일이 겹친 잔칫날 독극물을 탄 음료수로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 남은 건 앞을 못 보는 소녀와 '유지니아'라고 적힌 의문의 시.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후 한 남자가 자신이 그 사건을 벌였다는 유서와 함께 자살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고 그로부터 10년 후 이웃에 살던 소녀가 사건을 취재해 소설을 발표하고 또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나 누군가가 당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죄인가.

 부모든, 자식이든, 형제든,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게 나쁜 일인가? 이해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체념하는 것도 일종의 이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용서하지 않거든요. 모르겠다고 괴롭히고, 정체를 알 수 없다, 설득이 안 먹힌다고 공격합니다. 뭐든지 간략화, 메뉴얼화됩니다. 화를 내는 이유가 '이해할 수 없다'일 때가 많아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는 쪽이 훨씬 적지 않나요? 이해했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보는데, 잘못된 생각일까요.

 가끔씩 생각해보곤 합니다.

 동생은 뭘 그렇게까지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

 어째서 그렇게까지 타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p.200

 

촘촘한 이야기 구조와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가 다중적으로 펼쳐지고 거기에 '미스터리'. '추리'의 장르적 장치가 더해져 남다른 흡인력을 선사한다. 결말을 알고 읽는 두 번째 독서임에도 흥미진진함은 여전하다. 첫 번째 독서에서 복잡해 보였던 장치들이 쉽게 넘어가는가 하면 오히려 그냥 읽어갔던 부분들이 두 번째 독서에선 예사로 보이지 않게 되고 기존 표지와 달라진 표지에 대한 부분들에 대하여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면서 색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현재의 날씨와 대비되는 한여름의 뜨겁고 무거운 공기가 생생히 전달되어 계절 감각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데 어느새 나에게 『유지니아』는 새하얀 백일홍처럼 아주 예쁘고 아주 무서운 소설이 되어있다.

 

온다 리쿠는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세계 덕분에 읽으면 읽을수록 안다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작가가 되었다. 워낙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특히 올해는 한국에서 출간 소식이 전투적(?)으로 들려온 것 같다. 덕분에 올해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작가가 되었고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읽어야 할 온다 리쿠의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즐겁다. 10여 년 후 40대에 『유지니아』를 다시 읽어볼 계획을 세워본다. 그땐 계절에 맞게 한 여름에 챙겨 읽을 것이다. 『유지니아』에 관한 나의 엇갈리는 기억도 조금식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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