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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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는 게 무서워요."

고전문학은 어렵다는 선입견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러시아 고전문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경험도 해보지 않고 어려움에 동의하며 막연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워낙 유명한 작가와 작품들이 많지만 외우기는커녕 제대로 읽기조차 힘든 인물들의 이름과 압박감을 주는 책의 두께에 도서관에서도 러시아문학 코너는 그냥 지나가는 곳으로 넘어가곤 했기에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를 손에 쥐고 읽기까지 많은 걱정들을 안고 있었다. 다행히 적당한 두께에 3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파우스트』는 두께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고 그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와 동일 제목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름다운 여인과 이탈리아 소렌토, 러시아 시골마을, 페테르부르크에서 세 번이나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세 번의 만남」 

자신이 몇 년 전 구혼했었던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 「파우스트」 

자신의 신념을 위해 희생을 마다않는 지인의 딸 소피 이야기 「이상한 이야기」


누구든 그녀를 보면 좋아하지 않고는 못 견딜 거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꼽히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를 읽으며 수록된 세 작품의 화자들의 치밀한 감정묘사와 필체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왜 작가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듣게 된 것인지, 왜 우리는 괴테의 『파우스트』만 알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인간 내면이 지닌 사랑과 욕망, 절망과 희생 등의 감정들을 예리하게 꿰뚫어보고 흡인력 있는 전개와 놀랄만한 반전으로 기대도 안 했던 읽는 재미를 전해준다. 「세 번의 만남」에서 두 주인공이 경험하는 세 번의 만남과 화자의 간절한 마음을 보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는 피천득 작가와 아사코가 떠오르기도 했고 「파우스트」를 읽으며 문학적 각성을 경계하며 소설의 재미를 모르고 자라온 사람에게 한 권의 소설을 소개한다면 나라면 과연 어떤 소설을 소개할까 고민해보기도 했고(답은 아직 안 나옴) 「이상한 이야기」의 소피를 보며 1870년에 남성 작가가 발표한 여성 캐릭터라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마무리해야겠네……하고 싶은 말은 백 분의 일도 못했지만 나로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마음속에 떠올랐던 모든 상념도 다시금 바닥 깊숙이 가라앉을 거야……펜을 놓으며 한마디만 하겠네. 최근 몇 년 간의 경험에서 난 확신 하나를 얻었어. 인생은 농담이나 오락이 아니라는 것, 인생은 유희조차 아니라는 것……인생은 힘겨운 노동이라는 것. 금욕, 끊임없는 금욕, 이것이 바로 인생의 숨겨진 의미요, 인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네. 좋아하는 사상이나 욕망이 제아무리 숭고하다 해도 그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바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이것만이 인간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어야 해. 자기 몸에 의무의 사슬을, 의무는 쇠사슬을 묶지 않고는 인생행로의 종착역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 누구든지 젊은 때는 자유로울수록 더 좋은 것이며, 자유로울수록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젊을 때엔 그런 생각도 허용된다네. 하지만 진리의 준엄한 얼굴이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응시하며 섰을 때 거짓 감성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짓은 부끄러운 일이야. p.153-154


 "내가 가진 재능은 하나뿐이에요."

 그녀는 말하더군.

 "그건 마지막 순간까지 침묵하는 거예요."

수록된 세 작품을 통해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가 색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시, 희곡, 산문 등 모든 장르에 걸쳐 광범위한 창작 활동을 했다는 그의 이력을 보며 다른 장르의 그의 글은 어떤지, 장편 소설은 어떤 호흡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더불어 아직 읽지 못했지만 그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친 괴테의 『파우스트』도 궁금하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 잘 알고 작가에 대한 정보가 많았더라면 서평이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를 시작으로 이제 러시아 문학과의 막연한 거리감도 조금씩 좁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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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리부트 -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김미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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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시작됐을 때만 하더라도 코로나로 상반기를 꼼짝도 못하며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인터넷에서는 코로나가 끝나면 2020년을 다시 시작하자, 2020년 상반기의 가장 큰 성과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닐 정도로 코로나는 강력한 전염성, 고통만큼이나 우리의 일상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직장과 학교에서는 발 빠르게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이 시행되었고 코로나 이후 산업 변화에 따른 대응 또한 빠르게 논의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좀처럼 진정이 안되고 질병관리본부의 경고처럼 코로나 이전의 일상 복귀가 어려워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못 한다'를 '안 한다'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다. 피해를 입은 대상에서 피해를 해결하는 주체로 생각만 바꿔도 우리는 스스로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인생의 주도권을 뺏겨서는 안 된다. 코로나 따위에 지지 말자. 그리고 자존감 있게 선언하자.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그리고 이 위기는 반드시 내 힘으로 해결한다!' p.59


미래에 울지 않으려면 자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 

출판계에도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많은 출판사에서 코로나와 관련된 미래예측, 바이러스 등 다양한 소재로 신간 소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코로나 관련 서적들 중 김미경 강사의 『김미경의 리부트 :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이하 『김미경의 리부트)』가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데에는 김미경 스타강사의 네임밸류와 그에 대한 기대감도 당연히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코로나 사태와 자기개발, 성장을 접목시킨 소재가 너무나도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코로나 사태로 급작스러운 업무 환경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자기 개발로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상사를 보며 많은 자극을 받고 있던 와중에 『김미경의 리부트』는 자극에 기름을 부어줄 촉진제가 되어줄 거란 확신이 들었고 이 시기에 우선순위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변화들이 임시가 아니라 앞당겨진 미래이고, 코로나 이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리부트 공식으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 리부트 공식은 어떤 이들이게는 꿈을 펼칠 동력이자 성장의 추진체가 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세상이 내준 귀찮은 숙제이자 내 일을 방해하는 제약 조건이 될 것이다. 같은 환경에 처해 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토록 다르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꿈이 있는가 없는가에서 갈린다.

 변화가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면 변화를 자기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변화를 활용해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우리는 바쁜 일상에 치여 꿈을 잠시 잊어버렸을 수 있다. 그러나 혼돈 속의 거대한 질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 꿈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p.138


나도 사장이지만 사장을 믿어선 안 된다. 많은 사장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모든 강연이 중단되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며 그 과정들을 배움과 성장의 시기로 채워가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김미경 강사의 모습이 『김미경의 리부트』 속에 담겨 있다. IMF때 겪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김미경 강사는 광범위한 분야들에 대한 공부와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코로나 시대를 진단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 사회를 예측하며 숙제를 남겨준다. 김미경 강사는 코로나 이후 네 가지 리부트 공식인 온택트, 디지털, 인디펜던트 워커, 세이프티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위기를 기회로'가 단순한 다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 행동하는 김미경 강사의 열정을 엿보며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미래를 공부해가는 과정들이 흥미롭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강사이자 구독층이 탄탄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그녀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과학 관련 서적을 읽고 영어와 컴퓨터 언어 파이썬을 공부하며 미래를 대비하고 신문을 구독하며 자신만의 노트를 만들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코로나 사태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에 대한 대비는커녕 현재 상황에 대한 유난과 불만밖에 없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남들과 동시에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늦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시작도 하지 않고 미리 패배감을 갖는 걸까. 내가 무언가 결심하고 시작한 날을 첫날Day 1로 보면 안 될까? 남들의 첫날과 나의 첫날을 비교하는 건 출발에 지장만 줄 뿐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절대로 늦었다는 패배감 때문에 출발선에서 망설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내 앞에 이미 수백만 개의 점이 찍혀 있을 때 추격자로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다. 수백만 개의 점 중에서 첫 번째나 열 번째 안에 들 욕심은 아예 버려야 한다. 그런 일은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조차도 추격자가 아니었던가. 수세기에 걸쳐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보다 앞서 공부하고 시도했을 지 생각해보자. 어차피 우리 대다수는 추격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추격을 시작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그러나' 정신이다. '늦었다'는 추격 콤플렉스를 이겨내려면 '그러나' 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늦었지만 그러나 나는 출발한다.'

 '확신은 없지만 그러나 나는 발을 내딛는다.'

 '포화 상태지만 그러나 나는 진입한다.'

 '그러나'라는 자신만의 주문을 만들어 두려움과 단절해야 한다. 리부트하려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추격자가 되어야 한다. p.182-183


코로나 사태를 다룬 책이라 책의 수명도 코로나 사태 기간 정도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작가로 만나는 김미경 강사는 낯설어 괜한 걱정을 했다. 현재의 상황을 잘 묘사해서 '코로나 사태'가 크게 읽히지만 『김미경의 리부트』의 '리부트'는 영원히 남아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개발서로 오래 읽힐 것이라는 확신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들었다. 김미경 강사가 코로나 시대에 미래를 대비하며 제시하는 리부트도 좋았지만 책 속에 묻어 나오는 '인간 김미경'도 무척이나 좋았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어른으로서 가르치려는 것이 아닌 책임을 지는 자세와 태도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정은 씨는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리지만 내가 가고 싶은 10년 후의 미래를 벌써 서너 번 살아본 사람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디지털 기술을 숨 쉬듯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며 산다. 정은 씨 덕분에 나 역시 그녀의 현재 모습에 많아 가까워질 것 같다. 사람에게 배우는 것만큼 소중한 게 없다. 내가 살고 싶은 미래가 일상이 된 사람, 그 사람을 찾아 만나라. 그 사람이 당신을 당신의 꿈과 미래에 더 가까이 데려다줄 것이다. p.216


가제본 서평단으로 먼저 만나본 『김미경의 리부트』를 통해 김미경 강사는 강연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최고의 배움을 전해주고 성장 동력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출판사는 서평단용으로 가제본을 제작했다가 원고 변경으로 급하게 다시 가제본을 제작하여 스프링 제본으로 보내줬다고 했는데 스프링 제본으로 읽어보는 책은 처음이라 엄청난 종이 날림이 있어도 마냥 흥미로웠다.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완성 상태인 다음 호 <런웨이> 가제본을 미란다 프리슬리가 읽고 체크를 해주는 것처럼 책을 읽으며 나의 미래 준비를 체크 받는 것 같았다. 세이프티 마케팅을 위해, 인디펜던트 워커가 되기 위해 나의 준비와 행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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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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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방영했던 MBC 5부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관심이 갔던 것은 부끄럽지만 평소 동물 보호에 관심이 커서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의 화제에 이끌려서도 아닌 평소 접하기 힘든 소재의 희귀성의 이유가 컸다. 동물을 무서워해서 화면이나 멀리서 볼 때만 좋아하고 특별한 친밀감, 애정은 없는 편이지만 몰지각한 인간들이 동물에게 저지르는 만행에 분노하고 동물보호에 관한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하며 점점 관심을 키우는 와중에 '휴머니멀'이라는 생소하지만 뜻이 저절로 이해되는 제목과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는 공감을 강하게 이끌어내며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었다.


 쇼에 동원되는 코끼리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는다. 예전에는 약 8살부터 훈련을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생후 5개월만 되어도 어미로부터 분리시켜 길들이기 시작한다.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고문에 가깝다. 우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어린 코끼리를 트레이닝 클래스라고 부르는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둔 뒤 반항하지 못하도록 꼬리와 귀, 다리 등을 꽁꽁 묶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내내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는 끔찍한 고통을 가한다.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를 그렇게 가둬둔 채 학대를 이어간다.

 고통에 울부짖던 아기 코끼리들은 결국 멋대로 움직이기를 체념하고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우리(cage) 안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일부는 실신해서 죽기도 한다. 대부분은 살아남더라도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극한의 고통 앞에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에는 기억상실증이 오거나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코끼리를 사육하기 위해 자아와 야생성을 말살시키는 훈련 과정을 '파잔(Phajaan)'이라고 한다.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13개 국가가 파잔으로 코끼리를 조련한다. 이 과정을 거친 코끼리들은 순순히 쇠사슬에 다리가 묶인 채 안장을 얹고 사람들을 태우게 된다. p.26-27


1년이 넘는 기간동안 4대륙 10개국을 넘나들며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화제를 모았고 높은 관심은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김현기PD는 책을 통해서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방대한 사실들과 거기에 숨은 진실을 소상히 기록했다고 고백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직시하고 공존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길라잡이가 되길 소망한다는 작가의 고백은 첫 번째로 다루는 코끼리 학대에서부터 독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서커스, 체험 등을 위해 학대되는 사례와 상아를 뿌리째 뽑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로 밀렵이 행해지고 있는 사례가 이어지며 천박한 인간의 탐욕의 사례를 들춰보는 과정이 꽤나 곤혹스럽다. 박제를 위해 26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사냥을 하는 트로피 헌터가 스스로를 '야생 환경보호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선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는가하면 돌고래 쇼를 위해 학대당하는 돌고래들의 이야기를 보며 문제의식 없이 돌고래쇼를 소비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반성이 밀려온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공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됐다.


 트로피 헌터들은 야생동물의 가치를 죽음으로 드높인다고 여긴다. 또 트로피를 박제하는 것은 이 동물의 희생을 영원히 기념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물에대한윤리적처우를지지하는사람들(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PETA)의 부회장인 델시아나 윈더스는 '동물보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에 처한 동물 일부의 생명을 팔자는 논리는, 아동학대를 막가 위해 아이들을 암시장에 팔자는 논리와 같다.'고 일갈했다. 인간이 그러하듯 말 못하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결정권이 우리 인간에게 있을 리도 없다. 

 트로피 헌팅은 '휴머니멀'이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행위다. 자신의 손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며 쾌락을 느끼는 만물의 영장. 이를 코앞에서 확인하는 경험은 우리에게 강한 의구심과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대자연의 '수호천사'로 칭하는 이들의 손에는 자기 확신이라는 총 한 자루가 들려있다. 그 총은 정말 자연과 인간을 위해 불을 뿜는 것일까. 그들이 너무 멀리 가고 있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거리감이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는 건 더욱 두려운 일이다. p.145-146


코로나로 이동이 통제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야생동물들이 도심에 출몰했다는 뉴스가 세계 곳곳에서 들려왔고 현재 한국은 벨루가 등에 타며 서핑을 한다는 어느 시설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며칠째 동물학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휴머니멀』을 읽어가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됐던 데에는 인간의 교만으로 동물들이 비참하게 학대당하는 생생한 현장을 지켜보기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휴머니멀』은 현대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고 독자들은 분명한 목소리를 남겨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빚진 게 없는 어른이고 싶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환경도, 동물권도 빚을 지지 않도록 현실의 거울을 똑바로 보고 깨달음을 얻을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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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가까운 사이 -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댄싱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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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믿되 사람은 믿지 말라.' 

인간관계에서 꼭 기억하고자 하는 나만의 철칙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인간은 약하고 믿을 만하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언제든 신념과 입장을 바꿀 수 있고,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아닌 '관계'를 더 믿는다. 현재 관계 내에 실재하는 상대의 행동과 말은 온 마음을 다해 신뢰하려고 노력하되, 사람 자체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려 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의 태도 변화와 배신, 이 둘의 차이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덕분에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며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오류의 덫에 빠지지 않게 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마음은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한가. 그러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귀한 사람인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p.130

 

우리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와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  

댄싱스네일 작가는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녀의 작품이 화제를 모았던 베스트셀러 표지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유도 있지만 미적감각이라곤 1도 없는 미술 문외한인 내가 그녀의 캐릭터들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따뜻함과 편안함에 반해서는 댄싱스네일이라는 이름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도 특유의 따뜻함과 편안함으로 넘치는 공감과 위로를 전해줬다. 작년 초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을 작정하고 달래주었던 그녀가 『적당히 가까운 사이』로 신간 소식을 알려왔다. 작가님 제목 학원 다니시나요? 제 마음속에 다녀오셨나요? 제목만 봤을 뿐인데 이번 작품 역시 내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오랜 인연을 소중히 하는 일을 미덕이라 하던데, 그런면에서 인생을 헛살았나 싶은 의구심을 거두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이를 먹고, 저마다 사는 모습이 달라지면서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가끔 이유 모를 의무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만나려고는 한다. 하지만 만나고 돌아서면 전과 같지 않은 허전함,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서 고개를 내민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많은데,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다. p.210  

 

어쩌면 우리는 '혼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가까운 사이, 이 당연하지만 어려운 관계에 대한 댄싱스네일 작가의 진중한 고민과 철학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적당히 가까운 사이』 모든 부분에 공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가 말하는 '관계 디톡스', '관계 미니멀리즘', '관계 유목민', '관태기'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제발 이 책을 좀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다가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무심결에 무례했거나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가족, 친구, 동료, 사랑하는 사람과는 물론이고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데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데 나는 모두와 적당한 거리두기에 실패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수한 공감을 하며 즐겁게 읽어나갔는데 나 자신도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문제와 마주했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댄싱스네일 작가의 글과 그림이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고 느꼈는데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당장은 허전할지라도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은 떠나보내는 게 낫다. 허기가 무섭다고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를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그와의 관계에서 익숙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거름망으로 걸러 내야 한다. 내가 희생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평등한 관계도, 의미 있는 관계도 아니다. p.196

 

이 오지랖 넓은 세상 속에서 적어도 자기 감정에게만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자유를 줄 수 있기를.

『적당히 가까운 사이』는 제목 그대로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를 이야기하며 관계를 되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여러 가지 상황들과 취향에서 작가와 공통점을 찾으며 쉼 없이 공감을 이어가는 동안 책 제목과는 반대로 댄싱스네일 작가와 내적 친밀감을 쌓으며 관계를 좁혀갔다. 이토록 다정하고 근사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에 온기가 전해지며 특별함을 더해주는데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감이 높아진다.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전하는 강한 여운을 오래 품으며 작가를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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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심용환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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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의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는 한반도의 1만 년 역사를 365개의 장면으로 선정해 하루 1페이지로 담아낸 신선한 기획과 시도를 선보인다. 월요일은 한국사 기원부터 현대까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화요일은 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인상적인 인생을 살다간 인물, 수요일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 장소, 공간, 목요일은 선사시대부터 조상들이 남긴 문화적 유적, 유물, 금요일은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와 문화예술을, 토요일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 영향을 끼친 철학과 학문을, 일요일은 앞으로도 길이 남을 시대의 명문장을 다루며 일곱 분야 365가지의 역사 지식을 담아냈다. 단군 신화부터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2010년 창원, 마산, 진해 세 도시가 통합하여 만들어진 통합 창원시까지 그야말로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노비는 원칙적으로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으나 조선 전기 때 노비의 능력을 안타깝게 여겨 양자로 받아들여 과거에 합격한 사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반석평이었고 형조판서까지 올랐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행위를 '관광'이라고 불렀다. '영광을 보려고 간다'라는 의미였다. p.161 「과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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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에 따라 한옥은 변화한다. 신을 모시는 공간이었던 대청은 마루로 기능이 바뀌었다. 인사동이나 북촌에 있는 한옥마을은 일제 시대 때 만들어진 계량 한옥들이다. 조선 시대 한양의 전통 한옥을 구경하려면 운현궁이나 남산한옥마을에 가야 한다.

 한옥은 아름다운 기와지붕이 매력인데 팔작지붕이나 솟을대문같이 의도적으로 지붕의 모양을 화려하게 꾸며서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온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옥은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 건축물과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p.201 「한옥」


광범위한 주제를 한 페이지에 집약시켜 소개하기 때문에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를 한국사 버전 '얕고 넓은 지식' 정도로 생각하며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깊게 들어가면서 미처 몰랐던 것들을 자세하게 다루고 인혁당 사건 당시 남편을 잃은 아내의 수기 등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며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오직 시험 점수를 위해 무조건 달달 외워야 했던 역사를 쉽고 간결하지만 그럼에도 자세히 다루면서 유익함과 즐거움을 갖춘 역사에 관한 지식을 대방출한다. 다루는 주제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다. 그러니까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에는 365가지의 흥미로움이 있다. 두꺼운 두께임에도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 단숨에 읽었지만 365일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한가지 주제의 흥미를 매일 꼬박 365일 즐기는 것도 커다란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 같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는 비에이블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인문학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앞으로 미술, 철학, 세계사 등의 주제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더 깊이 파헤치면서 자세히 알려주고 미처 몰랐던 것들도 재미있게 알려주며 시야를 넓혀주고 사고의 확장을 키워줄 다른 주제의 책들도 기대된다. 한국사에 대한 작가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을 반복하며 책을 읽었었는데 다른 시리즈의 책들은 과연 어느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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