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가까운 사이 -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댄싱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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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믿되 사람은 믿지 말라.' 

인간관계에서 꼭 기억하고자 하는 나만의 철칙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인간은 약하고 믿을 만하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언제든 신념과 입장을 바꿀 수 있고,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아닌 '관계'를 더 믿는다. 현재 관계 내에 실재하는 상대의 행동과 말은 온 마음을 다해 신뢰하려고 노력하되, 사람 자체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려 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의 태도 변화와 배신, 이 둘의 차이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덕분에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며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오류의 덫에 빠지지 않게 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마음은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한가. 그러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귀한 사람인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p.130

 

우리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와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  

댄싱스네일 작가는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녀의 작품이 화제를 모았던 베스트셀러 표지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유도 있지만 미적감각이라곤 1도 없는 미술 문외한인 내가 그녀의 캐릭터들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따뜻함과 편안함에 반해서는 댄싱스네일이라는 이름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도 특유의 따뜻함과 편안함으로 넘치는 공감과 위로를 전해줬다. 작년 초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을 작정하고 달래주었던 그녀가 『적당히 가까운 사이』로 신간 소식을 알려왔다. 작가님 제목 학원 다니시나요? 제 마음속에 다녀오셨나요? 제목만 봤을 뿐인데 이번 작품 역시 내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오랜 인연을 소중히 하는 일을 미덕이라 하던데, 그런면에서 인생을 헛살았나 싶은 의구심을 거두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이를 먹고, 저마다 사는 모습이 달라지면서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가끔 이유 모를 의무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만나려고는 한다. 하지만 만나고 돌아서면 전과 같지 않은 허전함,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서 고개를 내민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많은데,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다. p.210  

 

어쩌면 우리는 '혼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가까운 사이, 이 당연하지만 어려운 관계에 대한 댄싱스네일 작가의 진중한 고민과 철학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적당히 가까운 사이』 모든 부분에 공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가 말하는 '관계 디톡스', '관계 미니멀리즘', '관계 유목민', '관태기'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제발 이 책을 좀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다가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무심결에 무례했거나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가족, 친구, 동료, 사랑하는 사람과는 물론이고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데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데 나는 모두와 적당한 거리두기에 실패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수한 공감을 하며 즐겁게 읽어나갔는데 나 자신도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문제와 마주했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댄싱스네일 작가의 글과 그림이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고 느꼈는데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당장은 허전할지라도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은 떠나보내는 게 낫다. 허기가 무섭다고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를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그와의 관계에서 익숙해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거름망으로 걸러 내야 한다. 내가 희생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평등한 관계도, 의미 있는 관계도 아니다. p.196

 

이 오지랖 넓은 세상 속에서 적어도 자기 감정에게만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자유를 줄 수 있기를.

『적당히 가까운 사이』는 제목 그대로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를 이야기하며 관계를 되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여러 가지 상황들과 취향에서 작가와 공통점을 찾으며 쉼 없이 공감을 이어가는 동안 책 제목과는 반대로 댄싱스네일 작가와 내적 친밀감을 쌓으며 관계를 좁혀갔다. 이토록 다정하고 근사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에 온기가 전해지며 특별함을 더해주는데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감이 높아진다.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전하는 강한 여운을 오래 품으며 작가를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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