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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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방영했던 MBC 5부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관심이 갔던 것은 부끄럽지만 평소 동물 보호에 관심이 커서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의 화제에 이끌려서도 아닌 평소 접하기 힘든 소재의 희귀성의 이유가 컸다. 동물을 무서워해서 화면이나 멀리서 볼 때만 좋아하고 특별한 친밀감, 애정은 없는 편이지만 몰지각한 인간들이 동물에게 저지르는 만행에 분노하고 동물보호에 관한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하며 점점 관심을 키우는 와중에 '휴머니멀'이라는 생소하지만 뜻이 저절로 이해되는 제목과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는 공감을 강하게 이끌어내며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었다.


 쇼에 동원되는 코끼리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는다. 예전에는 약 8살부터 훈련을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생후 5개월만 되어도 어미로부터 분리시켜 길들이기 시작한다.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고문에 가깝다. 우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어린 코끼리를 트레이닝 클래스라고 부르는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둔 뒤 반항하지 못하도록 꼬리와 귀, 다리 등을 꽁꽁 묶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내내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는 끔찍한 고통을 가한다.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를 그렇게 가둬둔 채 학대를 이어간다.

 고통에 울부짖던 아기 코끼리들은 결국 멋대로 움직이기를 체념하고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우리(cage) 안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일부는 실신해서 죽기도 한다. 대부분은 살아남더라도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극한의 고통 앞에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에는 기억상실증이 오거나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코끼리를 사육하기 위해 자아와 야생성을 말살시키는 훈련 과정을 '파잔(Phajaan)'이라고 한다.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13개 국가가 파잔으로 코끼리를 조련한다. 이 과정을 거친 코끼리들은 순순히 쇠사슬에 다리가 묶인 채 안장을 얹고 사람들을 태우게 된다. p.26-27


1년이 넘는 기간동안 4대륙 10개국을 넘나들며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화제를 모았고 높은 관심은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김현기PD는 책을 통해서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방대한 사실들과 거기에 숨은 진실을 소상히 기록했다고 고백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직시하고 공존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길라잡이가 되길 소망한다는 작가의 고백은 첫 번째로 다루는 코끼리 학대에서부터 독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서커스, 체험 등을 위해 학대되는 사례와 상아를 뿌리째 뽑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로 밀렵이 행해지고 있는 사례가 이어지며 천박한 인간의 탐욕의 사례를 들춰보는 과정이 꽤나 곤혹스럽다. 박제를 위해 26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사냥을 하는 트로피 헌터가 스스로를 '야생 환경보호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선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하는가하면 돌고래 쇼를 위해 학대당하는 돌고래들의 이야기를 보며 문제의식 없이 돌고래쇼를 소비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반성이 밀려온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공존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됐다.


 트로피 헌터들은 야생동물의 가치를 죽음으로 드높인다고 여긴다. 또 트로피를 박제하는 것은 이 동물의 희생을 영원히 기념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물에대한윤리적처우를지지하는사람들(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PETA)의 부회장인 델시아나 윈더스는 '동물보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에 처한 동물 일부의 생명을 팔자는 논리는, 아동학대를 막가 위해 아이들을 암시장에 팔자는 논리와 같다.'고 일갈했다. 인간이 그러하듯 말 못하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결정권이 우리 인간에게 있을 리도 없다. 

 트로피 헌팅은 '휴머니멀'이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행위다. 자신의 손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며 쾌락을 느끼는 만물의 영장. 이를 코앞에서 확인하는 경험은 우리에게 강한 의구심과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대자연의 '수호천사'로 칭하는 이들의 손에는 자기 확신이라는 총 한 자루가 들려있다. 그 총은 정말 자연과 인간을 위해 불을 뿜는 것일까. 그들이 너무 멀리 가고 있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거리감이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는 건 더욱 두려운 일이다. p.145-146


코로나로 이동이 통제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야생동물들이 도심에 출몰했다는 뉴스가 세계 곳곳에서 들려왔고 현재 한국은 벨루가 등에 타며 서핑을 한다는 어느 시설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며칠째 동물학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휴머니멀』을 읽어가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됐던 데에는 인간의 교만으로 동물들이 비참하게 학대당하는 생생한 현장을 지켜보기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휴머니멀』은 현대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고 독자들은 분명한 목소리를 남겨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빚진 게 없는 어른이고 싶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환경도, 동물권도 빚을 지지 않도록 현실의 거울을 똑바로 보고 깨달음을 얻을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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