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의 <한글논어역주>를 구입해 읽고 있다. 오마이뉴스 스크랩 기사를 옮겨 놓는다. 

 

<오마이뉴스, 2009.7.2> 역시 도올, <논어> 해석도 다르구나 

도올 김용옥은 한국 사회의 금기 영역에 도전해 온 학자다. 2007년 그는 기독교 보수 교리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표현한 바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그는 < 요한복음 > 강해를 통해 율법지상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현세기복적인 한국 기독교의 일그러진 모습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당연히 이런 행동은 한국 사회에 날카롭고 광범위한 파장을 일으켰다.혹자는 김용옥이 기독교를 비판하자 '자기 전공을 벗어나 타인의 영역에 개입하는 만용'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김용옥의 첫 저서를 보면 그가 일찍부터 기독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사람이라면 남녀 불문 누구나 여자의 보지 구멍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부정하는 창세기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 주어야 하나?" ( < 여자란 무엇인가 > 에서)이를 통해 볼 때, 그가 주도하여 유발한 기독교리 논쟁에는 의외로 오랜 시간의 사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김용옥의 현 위치는 어디쯤이고 그의 학문적 의의는 어떤 것일는지?단아하고 박식한 원로학자 박이문은 그의 역저 < 노장사상 > (문학과 지성사) 서문에서 유학생 시절의 김용옥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 노자 > 나 < 장자 > 의 텍스트에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그 의미가 선명치 않은 몇 군데 구절이 있었다. 이러던 차에 타이베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하고 현재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김용옥씨를 만난 것은 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원문을 통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자세하고도 정확한 설명을 듣고 많은 것을 비로소 깨쳤다. 나는 젊은 그의 학력에 큰 인상을 받았다."이로부터 얼마 후 김용옥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다.
"20세기 인류 문명의 쓰레기장 같은 한반도에 나는 제4의 유학을 떠나는 결심으로 돌아왔다."최악의 군부독재가 행해지던 전두환 시절, 김용옥이 조국에 돌아오면서 뱉은 말이다. 그의 발언은 범상한 해외 유학파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모두(冒頭) 발언에서 매우 강렬하고도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그는 첫 저서 < 여자란 무엇인가 > 에서 우리에게 생소한 '기철학'을 소개했다. 그는 자기 전공에 놀라울 만큼의 치기와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치기건 자부심이건 무엇을 말하든지 논리를 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왜 삭발했는가'에 대해 600장 분량의 논거를 대기도 했다.조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부덕한 선배나 스승 연배의 학자들부터 잡도리하기 시작했다."한국의 철학자들은 서양 것 가져다 우려먹는 짓부터 삼가라."
"한국의 사학자들은 < 삼국사기 > 나 < 삼국유사 > 부터 제대로 번역해 놓고 다른 일을 하라."그의 질타는 지당한 것이었다. 그는 고려대학에서 퇴출(?)되었다. 나는 김용옥이 제도권으로 다시 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대학으로 갔다면 그토록 자유분방하고 생산적인 담론들을 주저 없이 펼치지는 못했을 터이기 때문이다.그는 한국의 역사와 민족주의와 한의학, 그리고 노자와 석가와 공자를 섭렵하더니 이제는 기독교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는 올 3월까지 < 중앙 선데이 > 에 이른바 '경외성서'라고 할 수 있는 < 도마복음서 > 의 주석을 2년에 걸쳐 연재했다.나는 그가 만약 서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미 세계적인 석학으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만약 영·정조 시대에 났더라면 실학자 누구보다도 더 예리하고 통섭적인(consilience) 논저를 남겼을 터이다.하지만 그는 60에 이른 나이로 볼 때 여전히 순박하고 정열적이다. 그는 자칭 국보였던 양주동보다 단연 '국보적'이다. 그는 미국의 인문학자 촘스키보다 단연 인문적이다. 그는 연암 박지원에 비해 현저히 국제적이고 다산 정약용에 비해 월등히 창조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석가나 예수를 자기와 대등한 한 인간으로서 대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한국의 학자인 것으로 보인다.이런 김용옥이 최고로 여기는 역사상 인물은 누구일까? 그의 저작물을 통해 볼 때 아마도 공자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가 공자를 좋아하는 것은 < 논어 > 때문이다."나는 최근 원고지 1만 장에 이르는 3권짜리 집대성의 < 논어한글역주 > 를 출간하였다. 왜 하필 < 논어 > 인가? 21세기 벽두 오바마가 미 대통령으로서 희망의 사륜(史輪)을 굴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과연 < 논어 > 라는 책이 인류문명의 패러다임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나는 그(인류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 논어 > 일서에서 발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의 사상적 핵은 퓨리터니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 성서 > 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21세기적 대결은 결국 < 성서 > 와 < 논어 > 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21세기는 과연 < 성서 >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아니면 < 논어 > 중심 세계를 펼칠 것인가?" - < 중앙일보 > 2009.1.21 '도올고함'에서공자에 관한 가장 생동감 있는 기록 < 논어 > 
 
공자의 삶을 전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저작물로는 사마천의 < 사기 > 가 꼽힌다. 공자에 관한 엄청난 양의 저작물들이 모두 < 사기 > 속에 있는 '공자세가'를 원형으로 출발한다. 여기에서 세가란 제후를 의미한다.유방은 한나라 고조이다. 초나라 패왕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시켜 해하성에서 격파한 유방은 기원전 2세기경의 인물이다. 그는 제왕으로서 파격적으로 공자의 묘에 참배를 했다. 그로부터 1세기 후의 사람인 사마천이 공자를 제후 편에 넣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보통 '픽션'이라고 하면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대소설을 픽션이라 하는 것이다. 픽션과 대조되는 말로 논픽션이 있다. 논픽션이라고 하면 수기나 전기 또는 역사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논픽션이라고 하면 당연히 실화인 줄 안다. 그러나 논픽션이야말로 픽션보다도 어느 면에서 허구성이 클 수도 있다. 사람들은 픽션을 읽을 때 애초부터 픽션인 줄 알고 대한다. 홍길동이나 히스클립을 실제 인물이라고 여기고 < 홍길동전 > 이나 < 폭풍의 언덕 > 을 읽는 사람은 없다.그러나 공자나 예수는 실존 인물로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록해 놓은 < 사기 > 나 < 복음서 > 의 내용은 사실인 줄 알고 읽는다. 그런데 만약 사실인 줄 알고 읽는 책에 허구가 끼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조작물이 된다.< 사기 > 를 저술한 사마천은 공자보다 무려 400년 뒤의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치밀하고 정직하다고 한들 어찌 공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기술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마천은 해석되었던 사료를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김용옥은 < 사기 > 나 < 복음서 > 같은 위대한 역사서들의 후대 조작설을 맹신하는데 당연히 필자는 그의 맹신에 공감한다.공자는 예수처럼 처녀 잉태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한 번 죽은 후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다. < 공자세가 > 에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옛날이야기에서 흔히 있을 법한 괴력난신(怪力亂神)도 전혀 없다. 쉽게 말해 사마천이 말하는 공자의 삶은 예수에 비해 현저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마천의 < 공자세가 > 가 공자에 관한 진실만을 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위대한 사람에 관한 기술에는 어김없이 신화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공자는 세속적 관점에서 매우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노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10대 소녀였다. 공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얻기 위하여 여자를 구해 '야합'한 결과의 소생이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 우리말로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의 부모가 이구산에서 빌어 그를 낳았다고 해서 이름을 구라 했다는 의견도 있고 그의 이마가 돌산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공자와 그의 아들, 손자 3대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이를 통해 우리는 세칭 위대하다고 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사마천의 '공자세가'를 비롯한 공자 저작물들에는 실감나는 인간 공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저작물의 필자들은 현실 감각보다는 공자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우선시했기 때문일 터이다.그런데 < 논어 > 는 다르다. 논어에는 공자의 삶이 생동감 있게 나타난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논어에는 과장은 물론 윤색도 거의 없다. 요컨대 논어는 공자의 삶을 전달하는 가장 정직한 텍스트인 것이다. 여기에 논어의 또 다르고 유별난 의의가 있다.< 논어 > 속의 공자는 다분히 인간적이다. 논어에 담겨 있는 공자의 어록들에는 인간 공자의 희로애락이 생동한다. 이런 점에서 논어야말로 공자를 전달하는 가장 생동감 있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김용옥은 선언하다시피 말하고 있다. "논어는 인류문명사의 축복"이라고.< 논어한글역주 > 의 가치와 의의"조선사회가 유교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 논어 >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왕국일 수도 있다. 조선왕조에는 < 논어 > 가 읽힌 적이 없다. 오직 주자집주본(朱子集註本) < 논어 > 만 읽혔다.(...)다시 말해서 주자가 해석해 놓은 < 논어 > 만이 읽힌 것이다.따라서 조선왕조에는 놀랍게도 < 논어 > 주석이 없다. 퇴계도 율곡도 주석을 내지 않았다. 1813년에 완성된 다산의 < 논어고금주 > 가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 논어 > 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이 부재했던 것이다. 오직 주자의 < 논어 > 해석이라는 도그마만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계가 자유로운 신학논쟁을 거부하고 도그마적 성격을 노출시키는 것도 이러한 주자학 전통의 승계선상에 있다." - < 중앙일보 > 2009.2.4 '도올고함'중에서김용옥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왕왕 듣는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오류나 무리수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 오류나 무리수는 천재들이 곧잘 범하는 공통적 속성이다. 부처나 예수라 한들 실수나 무리수가 왜 없었겠는가?한국 사회는 김용옥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그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이 꽃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김용옥에게 과분할 정도의 은의를 입었다.다만 앞으로의 김용옥은 '사람은 누구나 보지 구멍에서 태어난다'는 진리를 부정하는 < 창세기 > 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왜 사람들은 그런 < 창세기 > 를 줄기차게 신봉하는지를 밝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의 정열과 순박성이 끝까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한국 사회에 무거운 에너지를 더 공급해 주기를 감히 요망한다. 이런 작업을 김용옥만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2009.7.2 ㅣ 김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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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다. 한겨레 고전 다시 읽기에 소개된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 2006.12.7 /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경제학 용어 중에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이라는 말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면 이들의 투자와 소비가 촉진되어 결국 저소득층에게도 경제적 이득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땅바닥을 적시듯 먼저 부자들의 파이가 커지면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떡고물도 커진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한 측면을 요약한 이 용어에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이 빠져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그것이다. 자본주의경제학이 흔히 그렇듯이 뼈와 살이 붙어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웃고 울며 삶을 꾸려가는 그런 살아있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빠져있다. 보통 평등한 사회라고 하면 경제적 평등만 떠올리고 ‘좌파’니 ‘반(反)시장주의자’니 하고 몰아세우지만 실은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란 경제적 배분에 앞서 사람이 사람에 대한 경의와 예의를 지키는 사회를 말할 것이다. 모든 차이에 관계없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몰락에 관한 한 인터뷰에서 인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지 못했다는 촘스키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평등보다 ‘사람’차별 없어야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는 그런 사회를 꿈꾸다 자신의 소중한 목숨마저 바쳤던 수많은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들의 희생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는 기계적인 관료체제와 수치화된 경제도표, 관념적인 이념논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자발적인 우정과 헌신에 기초한 평등한 공동체의 경험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더구나 놀랍게도 자율과 자치에 토대를 둔 가난한 민중들의 이 아름다운 공동체는 오히려 사람들이 가장 물자에 쪼들리고, 적자생존으로 가장 살기 힘들었던 전시(戰時)에 꽃을 피웠다. 비록 짧았지만 스페인 내전의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참전경험은 오웰의 사상과 저작에 평생 큰 영향을 끼쳤고, 그 후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를 발표하며 영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작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현실의 핵심적인 모순을 비판하고 더 나은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오웰은 1936년 12월 카탈로니아의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POUM) 민병대에 자원함으로써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은 겉으로는 프랑코를 위시한 파시스트들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던 공화주의자들 간의 전쟁이었지만 오웰이 민병대에 자원한 것은 그런 관념적인 이념투쟁 때문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전쟁에 관한 신문기사를 쓸 생각으로 무정부주의자들이 통치하고 있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오웰은 그러나 곧 생전 처음 본 놀라운 모습에 감동을 받아 군에 자원하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이란 바로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는 모습이었다. 거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박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었고, 어디에나 부를 과시하는 사람도, 거지도 없었다. 손님들에게 굽신거리는 웨이터도, 팁 때문에 눈치를 보는 엘리베이터 보이도 없었다. 굴종적이거나 격식을 차리는 말투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마치 친구인양 평등한 호칭으로 불렀다. 비록 전쟁으로 인해 빵은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지만 사람들은 수 백 야드까지 뻗은 배급 줄에 서서도 만족스럽고 희망에 차 보였다. 왜냐하면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기계의 톱니바퀴가 아닌 인간으로서 행동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웰은 바르셀로나를 떠나 곧 아라곤 전선에 배치되었다.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의 민병대는 무기도 거의 없었고, 전투훈련도 받지 못한 청소년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분위기는 바르셀로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교에서 사병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같은 동무였고, 같은 월급을 받았고, 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계급으로 차별받지 않았다. 아라곤 전선에서 경험한 이 ‘이상한’ 사회주의 공동체에 대해 오웰은 나중에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정치의식과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좀 더 정상적이었던, 서유럽에서 유일한, 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 아라곤에서는 비록 다 노동자 출신은 아니었지만 수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수준으로 살면서 평등이라는 말 속에 함께 어울렸다. 이론적으로도 완전히 평등했지만 실천적인 면에서도 그랬다. ... 속물근성이나 돈에 대한 악착, 상사에 대한 두려움 등 문명사회에서라면 정상인 많은 동기들이 이곳에서는 간단히 멈춰버렸다. 돈에 오염된 영국 분위기에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을 수준으로까지 사회의 일상적인 계급구분도 사라졌다. 농부와 우리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구도 마치 주인인양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못했다.”

물론 현실적인 고통은 많았다. 굶주림과 추위, 더러움과 오물냄새, 그리고 온 몸에 득실대는 이까지 아라곤 전선은 모든 민병대원들에게 극심한 고통의 현장이었지만 마치 하나의 마법처럼 오웰의 마음속에 놀랍도록 아름답게 간직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 상황이 사람들의 반(反)자본주의적 ‘천성’에 가장 잘 맞는, 역설적이게도 평화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더러운 마당 가운데서 느긋하게 스튜를 젓고, 젊은 병사는 냄새나는 머리를 동지의 어깨에 푹 파묻고 잠자는, 그런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천성이 가장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어도 허위와 권위가 없는 자발적인 우정으로 따뜻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권력자가 두려워하는 건 민중 자치


그러나 불행하게도 파시스트에 대한 항쟁의 주도권이 스탈린의 지시를 받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가면서, 자발적인 민병대들의 활동이 억압당하는 시기가 다가오고야 만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스페인 내전 초기 오웰이 맛보았던 민중적 자치, 자율의 공간은 크게 위축되고, 결국은 소멸되는 운명을 맞는다. 오웰은 그런 변모의 과정을 전선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다시 돌아와서 본 바르셀로나의 변화된 모습에서 확인하게 된다. 웨이터들은 다시 존칭어를 쓰기 시작했고, 거지가 넘치는 거리엔 부자들을 위한 비싼 물건들이 전시되고, 계급차별은 다시 부활했다. 한때 같이 파시즘에 맞섰던 공산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배신했고, 민병대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이번엔 파시스트의 앞잡이로 몰려 체포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지도자들도 파시스트들이나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진심으로는 노동자, 농민의 자치와 자주성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사람들의 희생은 이렇게 해서 개죽음이 되었다. 결국 사회주의 코뮨은 실패했고, 그 결과 내전에서 승리한 파시스트 프랑코의 독재 하에서 스페인 민중은 억압과 차별 속에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찍이 조지 오웰이 일시적이나마 경험했던 사람들 간의 자발적 우정은 다시 무차별적인 경쟁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바탕으로 <땅과 자유>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적 문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우리가 잠시 작은 고립된 ‘해방구’를 만든다고 해도 마치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그것은 곧 파도에 휩쓸려갈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자본주의라는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논리는 너무나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오웰이 경험한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이건 공산주의건 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민중들의 자율과 자치라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람들 간의 우정과 환대를 회복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상품이나 기계부품처럼 대하지 않고, 서로서로 돕고 의지하며 삶을 꾸려나가려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적이었던 것이다.《카탈로니아 찬가》는 인간다운 예의와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 ‘권력’의 논리로 좌절하고 마는 20세기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몸소 경험했던 한 작가의 뛰어난 문학적 증언이다.

(2006.12.7 ㅣ 박혜영<인하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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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1>를 읽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국민일보, 2006.12.22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0세기 전체주의에 관한 매우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 책은 미국의 권위 있는 주간 서평지인 타임즈 리터러리 서플리먼트(the TLS)가 '고전'으로 분류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51년도 저작이다. 미국 망명 10년이 되던 해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미국과 유럽에서 정치학자로서 아렌트의 높아진 명성에 편승하여 7년 뒤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선보였다.

1부 반유대주의,2부 제국주의,3부 전체주의로 구성되어 있는 520쪽(한역본 1·2권 880쪽) 분량의 이 방대한 책은 "(단순히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닌) 반유대주의,(단순히 정복이 아닌) 제국주의,(단순히 독재가 아닌) 전체주의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점점 더 야만적이 되어가는" 유럽의 근대적 정치현실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기술이 아닌 정치학적 분석서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과성의 원칙에 기초한 과학적 접근보다는 전체주의라는 특수한 현상에 대한 아렌트 특유의 해석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아렌트가 보기에 전체주의는 기성의 정치체제 유형,예컨대 전제정,독재,귀족정,과두정,민주정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정치체제이다. 전체주의 체제는 사회 내 '남아도는(superfluous)' 대중들의 지지를 업은 하나의 '운동' 체제이며,그것의 내재적 법칙,즉 국가사회주의의 경우 자연의 법칙과 스탈린주의의 경우 역사의 법칙에 따라 개별 운동원들이 움직이도록 몰아붙이는 지배체제이다. 따라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자유는 철저히 말살되며,인간은 단지 운동과정의 부속물화하게 된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인간'의 군상은 유럽의 반유대주의라는 인종차별운동,제국주의라는 민족주의운동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배층에 의해 이용된 '폭도'의 형태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고,또 현대 소비사회의 고독한 군중에게서도 발견된다. 아렌트의 입장에서 유대인,폭도,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중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정치의 장에서 소외된 자들인 것이다.

아렌트는 정치의 존재 이유가 자유라고 주장한다. 또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자신이 지닌 행위능력으로 자유를 구현함으로써 확보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잇따르게 될 '인간의 조건'에서 이러한 자신의 전체주의 분석의 통찰을 통해 얻은 정치와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아렌트가 책을 헌정한 하인리히 블뢰허는 1940년 파리 망명시절에 만나 30년 세월을 함께 지낸 남편이자 지적 반려자였다. 독일인이었으나 아렌트처럼 무국적자였던 블뢰허는 아렌트에게 유태인뿐 아니라,국적을 잃은 독일인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 점은 아렌트가 자신의 논의에서 유태인적 정체성을 초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특히 이 책에 관한 한 블뢰허와 아렌트의 관계는 '여성의 예속'의 집필과 관련하여 헤리엣 테일러와 존 스튜어트 밀이 형성한 동업자 관계에 비견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아렌트 자신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저작은 10년에 걸쳐 수집한 방대한 자료의 분석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이는 역자들이 책의 번역에 10년 가까이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고충을 잘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이 한국어판의 '옥에 티'는 아렌트가 1958년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제14장으로 새로 편입시킨 '후기:헝가리 혁명에 관한 성찰' 부분이 누락된 점이다. 이 부분은 추후 개정의 기회에 삽입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끝으로 필자는 그 길고 어려운 번역작업을 잘 마친 역자들께 따뜻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2006.12.22 ㅣ 서유경(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더 읽을거리 :  

1. 아렌트 입문서 성격의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   

2.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자음과모음, 2006)  

3. <정치와 진리>(책세상, 2001) 

4. <대중독재>(책세상, 2005) : 절판  

5. <파시즘>(책세상,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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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틀린 한국, 무시당한 자들의 분노로 교정한다!  

[왜 '인정 투쟁'인가] 악셀 호네트의 <인정 투쟁> 프레시안 books 제57호

너무나 분명한, 사람에 관한 두 가지 사실에서 출발하자.

로빈슨 크루소는 예외적 존재이다. 모든 개인은 사회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관념 속에서 개인은 단독자일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 모든 개인은 사회적 존재이다. 두 번째 사실. 인간은 먹고살아야 하지만 물질적 궁핍 해결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생존 그 이상을 원한다. 배부른 돼지가 되었을 때 맛보는 동물적 만족감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사람은 돼지가 아니라 자기 존엄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사람에 관한 명백한 변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교차하는 지점에 '인정'이란 단어가 있다. 인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악셀 호네트는 인간을 규정하는 부정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빚어내는 풍경을 탐색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얻고 그를 통해 자긍심을 획득하지만, 무시에 의해 자긍심이 훼손되었을 때 투쟁하는 끊임없는 인정 투쟁의 과정이다.

인정 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독창적이지는 않다. 호네트는 통속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인정이라는 개념을 예나 시기(1801~1807년) 헤겔로부터 빌려왔다. 하지만 인정 투쟁 개념을 되살리고 발전시키는 호네트의 솜씨는 능숙하며 충분히 독창적이다. 호네트는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인정 투쟁 모델을 조지 허버트 미드의 사회심리학과 결합시켜 헤겔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한다.

초기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이 후기의 노동 모델에 의해 대체되었음을 비판하는 호네트의 모습에서 우리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3세대라는 호네트의 별칭을 떠올리게 된다. 호네트의 스승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주의 모델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미드를 비롯한 사회학 이론과 결합시킴으로써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발전시켰던 것과 유사한 궤적을 호네트 역시 밟는다. 스승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길을 찾는 호네트는 잊혔던 헤겔의 인정 모델에 주목한다.
 
<인정 투쟁>(문성훈·이현재 옮김, 사월의책 펴냄)의 1부는 헤겔의 인정 모델을 발굴하는 호네트의 시도가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1부는 헤겔에 관심이 없거나, 헤겔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독해하기에 지루할 수도 있다. 1부의 지루함은 교수 자격 청구 논문으로 쓰인 이 책의 배경과 크게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부를 넘기고 나면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이 미드와 결합되어 현대화되는 매우 흥미로운 2부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인정 투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상호주관적 인정의 유형들을 다루는 2부의 5장과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무시를 다루고 있는 6장이다.

인정은 전문적 학술 용어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한 맥락에서 다채롭게 사용되는 일상 특유의 현장감이 넘치는 단어이다. 일상의 가장 현장감 있는 개념인 인정을 사상사적 맥락과 결합시킴으로써, 인정은 통속적인 뉘앙스를 벗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설명하는 핵심어로 부상하는 마법을 부린다.

이 마법은 전적으로 이 책 속에서 일상-사상사-현실이 황금의 삼각형 관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황금의 삼각형 속에서 사상사와 일상이 결합하기에 헤겔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지만 호네트의 책은 사변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한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되 일상적 용어가 갖고 있는 통속적 혼돈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학문적 체계성을 부여함으로써 일상의 삶에 대한 성찰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이 모든 관련이 현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로 작용하기에, 아카데미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행위는 항상 타인을 전제로 한다. 타인을 전제로 하지 않은 행위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타인은 항상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타자를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드는 '일반화된 타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호네트는 미드로부터 '일반화된 타자'의 개념을 빌려오되, 헤겔의 인정 투쟁 모델과 결합시켰다. 철학과 사회학은 이렇게 호네트를 통해 결합했다.

개인이 일반화된 타자와 긍정적인 상호주관적 상호 관계를 맺으면 그게 인정이다. 개인 간의 상호 관계는 그래서 인정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의 재생산은 상호 인정이라는 지상 명령 아래서 수행"(184쪽)된다. 하지만 개인은 항상 타자로부터 긍정적인 상호주관적 관계를 맺지는 못한다. 인정의 대척점에 모욕이나 굴종과 같은 '무시'라는 무시무시한 범주가 도사리고 있다. 인정은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힘이지만, 반면 무시는 주체에 엄청난 심리적 훼손을 가한다. 인정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만, 무시는 개인을 사회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인정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과 같은 원초적인 인정 형식부터 각 주체의 권리를 인정하는 권리 관계 형태의 인정 형식 그리고 가치 공동체를 지향하는 연대 형식의 인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 가지 인정 형태를 거치면서 개인의 긍정적 자기 관계의 정도가 단계적으로 높아"(186쪽)지기에, 인정 형태가 고양될수록 인간은 단순한 자기 보호로부터 적극적인 자기 발현으로 고양될 수 있다.

인정 형태의 고양이 일어나지 않을 때 혹은 각각의 인정 형태들이 무시라는 인정에 대한 거부와 만날 때 사회 투쟁은 벌어진다. 무시의 형태는 다양하다. 폭력, 고문, 폭행 등 개인의 신체적 불가침성을 건드리는 무시가 있는가 하면, 굴욕의 경험을 안기며 개인의 자기 존중을 훼손하는 무시도 있고, 특정한 생활 방식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형태의 무시, 즉 인정에 대한 부정은 해당 당사자에게 무시나 모욕으로 이해되고, 이는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분노라는 심리적 반작용은 사회적 투쟁을 추진하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인정 투쟁 모델은 설명적이다. 인정 투쟁 모델은 정치적 권력 관계나 경제적 이득을 사회 갈등의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분과 학문적 설명에서 벗어나서,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사회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많은 투쟁이 먹고살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모든 투쟁이 먹고살기만을 위한 투쟁은 아니다. 인정 투쟁 모델은 그 빈틈에서 발생하는 투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단지 설명적이라면 인정 투쟁 모델은 사회 갈등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인정 투쟁 모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났던 투쟁을 설명하는 대목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에 도덕적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분노'는 투쟁을 촉발하는 원인이지, 투쟁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단지 투쟁이 분노의 표출에 불과하다면, 투쟁하는 사람은 투덜이 혹은 싸움꾼의 의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체적 훼손, 모욕과 무시, 권리 침해에는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 하물며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댄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신체적 위해가 가해졌을 때만 꿈틀대는 지렁이는 아니다. 인간은 꿈틀대는 단순 반작용 그 이상을 위해 투쟁을 한다. 인정 투쟁 이론은 여기서 가장 광채를 발휘한다. 인정 투쟁 모델은 단지 사회적 투쟁의 등장에 대한 설명 틀이 아니라 나아가 도덕적 자기 형성 과정에 대한 해석 틀이다.

인정 투쟁으로 전개되는 사회 투쟁은 단순히 자기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투쟁과는 다르다. 인정 투쟁의 촉발 요인이 자기 존엄에 대한 부정이기에, 인정 투쟁은 제로섬 게임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무시를 통해 부정당했던 자기 존중을 되찾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인정 투쟁은 단순히 심리학적 공격적 행동도,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 행동이 아닌 약화된 자기 존중에 반응하는 일종의 자기 치유적이며 동시에 무시라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를 치유하는 도덕적 행동이다. 이 치유의 과정이 인정 투쟁의 도덕적 역할이다.

인정 투쟁은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와도 같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정 투쟁이 폭력, 고문, 폭행 등 개인의 신체적 불가침성에 대한 반작용뿐인지, 아니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인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는 가늠될 수 있다. 생존권과 폭력에 대한 거부와 같은 원초적인 인정 투쟁만을 수용하는 사회는 도덕적 고양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무시를 통해 훼손된 자기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고양된 인정 투쟁을 승인하고 그 투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귀를 갖고 있는가?

혹 인정 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 과잉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전적으로 '지금 여기'의 한국이 부끄러운 성숙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숙하기에 품위 있는 사회를 향한 사회로 가는 투쟁의 길을 찾으려고 할 때, <인정 투쟁>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상의 안내서 중 하나이다. < 2011.9.16 ㅣ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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