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 - 동학초기비사 소설 최시형
조중의 지음 / 영림카디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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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결말에 가서야 이전까지의 내용이 짧은 춘몽 같은 과거의 회상이라는 느낌을 주는, 구성이 참 독특한 소설이다.

결국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나라의 운명 앞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결단을 내리는 최시형의 모습이 이전과 사뭇 다르게 비장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유부단하고 나약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가 그토록 강한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 힘은 어디서 연원하는 것일까? 관군에게 쫓겨 산간오지를 헤매며 단련된 의지력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곧 하늘이니 모두가 공경하며 존경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던 그의 염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대원군이 동학 내부에 잠입시킨 밀사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설정되어 있어 읽는 내내 긴장감이 늦추어지지 않는다. 언제 신분이 들통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밀사로서의 임무와 동학의 가르침에 조금씩 기울어져 가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 했다. 현실의 곤고함을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시대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인간 최시형을 재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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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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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편지를 써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편지를 그리 많이 쓴 것 같지도 않다. 처음 썼던 편지와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첫 편지는 위문편지였고, 마지막 편지는 마나님과 사귈 때 썼던 연애편지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가 생각났다. <시라노>라는 영화와 부모님과 형제였다. 영화 <시라노>가 생각난 것은 극중에 시라노가 대필한 크리스티앙의 사랑의 편지를 읽으며 여주인공인 록산느가 감동에 겨워 기절하는 장면 때문이다.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것을 읽다가 기절까지 할까? 이 책을 읽으며 기절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지는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받는 이에게 온전히 전해지도록 정성을 다하는 행위가 편지쓰기이니 글에 그 마음이 온전히 녹아있을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가 생각난 것은 이 책을 보면 주인공에게 대필을 의뢰하는 내용의 큰 축이 사랑하는 이나 가족이었다. 누구나 연애편지를 써봤겠지만 가족에게 편지를 써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남자들이야 훈련소에서 부모님께 편지 한 통씩은 써봤겠지만 애인에게 편지를 쓰듯 평소에 그렇게 열심으로 쓰진 않았을테니.... 물론 부모님께 자주 편지를 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일은 편지지와 우표를 사서 부모님과 형제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랜만에 연애편지 쓰듯 마나님에게도 한 통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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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1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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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지금 시각 새벽 5시 7분 24초. 밤을 꼬박 새워 소설을 다 읽었다.”로 시작하는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다른 곳에 올렸던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정신없이 빨려 들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아사다 지로의 책을 네 권 읽었다. 《철도원》《파리로 가다》《칼에 지다》그리고 이 책 《오 마이 갓!》. 읽은 책 중에서 《파리로 가다》《오 마이 갓!》이 내게 더 끌리는 이유는 단 하나 가볍고 경쾌한 터치로(그렇다고 경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삶에 대해 깊이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쟈게 재밌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주연은 물론 조연, 심지어는 엑스트라까지도….
이 책 《오 마이 갓》에 나오는 인물들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실패한 인생을 살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우연히 만난 세 주인공. 대부의 말론 브랜도와 알 파치노를 연상시키는 마피아 보스와 그 아들. 지구상 최고의 부자이자 자린고비인 페라 전하, 로버트 드 니로를 닮은 호텔 지배인 등등….
책을 읽는 동안 독자가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는 수많은 장치를 부비트랩처럼 촘촘히 매설해 놓은 이 책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
하지만 유쾌한 웃음과 재미로 끝난다면 아사다 지로가 아니다. 책을 덮고 책장 깊숙한 곳에 던져 놓으려는 우리에게 던지는 작가의 말.

"인간은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다. 무언가를 얻으면 반드시 같은 양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똑같은 양이지만 결코 똑같은 질이 아니다. 더 나은 행복을 찾아 헤매다 자신의 인생은 점점 더 희석되기만 한다."

"인간은 누구든 5.26퍼센트 정도의 핸디캡을 안고 태어나.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멀거니 서있다가는 확실히 패배하게 돼. 그것을 실력을 버텨가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그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면 그게 바로 성공인이야." 

또 다른 유쾌한 소설. 그리고 유쾌한 아사다 지로의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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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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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사고 나서 한참 후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이 내 책장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사이에 표지도 바뀌고, 신문에 광고도 나왔다. 북한 핵실험을 인용한 외국의 어떤 서평과 함께...

이 책은 유쾌한 정치풍자 소설이다. 냉전시대의 어디쯤인가를 시대배경으로 그랜드펜윅이라는 가상의 약소국을 등장시켜 국제 정치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묘사했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의 정치지도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명랑하고 건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그랜드펜윅은 아주 이상적인 나라다. 비록 왕정이기는 하지만 계급 사이의 대립이나 갈등도 없이, 서로가 조화롭게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나라다. 비옥한 토지라는 하늘의 선물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이 없고, 거의 500년 동안 역사의 부침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지정학적 축복도 받았다. 아~~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멜서스의 망령 때문인지, 역시 이곳에서도 인구 증가로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패전을 전제로 한 미국과의 무모한 전쟁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은 말 그대로 황당하다. 결국 쿼디움 폭탄이라는 핵무기를 능가하는 가공할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빼앗아 이것으로 강대국들을 협박(아주 순수한 의도에서)하여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더 나아가 평화로운 세계 체제를 구축한다. 

약소국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통쾌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언제나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가 서글퍼 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서글픔을 떨쳐버리기 위해 핵무기 보유하려는 나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무한정 군사력을 높여야 할까? 그건 정답이 아닐 것이다. 경쟁적인 군비증강이 우리에게 되돌려 준 것은 전세계적 규모의 전쟁 뿐이었다.

물리력의 사용없이 평화를 유지하는 현명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힌트가 이 책 속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모두모두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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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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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현실로 느껴진 책!

오랜만에 소설을 집어 들었다. 학생 때는 주로 역사소설이나 추리소설만 읽는 독서편식증 환자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의반타이반으로 읽던 자기계발서에 질려가고 있을 때 선택한 책이 <다 빈치 코드>였고, 그 다음 선택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장미의 이름>, <다 빈치 코드> 등의 역사추리소설과 종종 비교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미의 이름>과 비교하지 마라. 역사적 배경과 사실에 대한 묘사, 지적 만족도가 떨어진다. <다 빈치 코드>와 비교하지 마라. 이야기의 긴장감과 흡인력이 약하다. 많은 구설에도 불구하고 <다 빈치 코드>는 단숨에 읽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가 있고, 솔직히 말해 재미있다. 하지만 이 책 1권은 지루하고 2권은 맥이 빠진다.
추리소설이라면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데, 1권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과 범행 동기에 대한 3인칭 시점의 설명은 맥이 빠진다. 범인이 직접 고백하는 형식이었으면 어땠을까... 특히 그 시대의 보스턴과 하버드 대학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 전체적인 시대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번역소설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대표작이다. 주로 오탈자에 대한 지적하는 독자들이 많은데 솔직히 편집자도 사람이니 700여 쪽에 달하는 책에서 오탈자 있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산 책은 판권에 전면개정판 7쇄로 되어 있다. 초판 1, 2쇄나 개정판 1, 2쇄에 오탈자가 있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지만 초판과 개정판을 합해 12쇄나 찍은 책에 이 정도양의 오탈자라면 직무유기다. 
그 다음은 번역의 문제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했던가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원문에서 벗어나더라도 자연스러운 번역을 할 것인가. 이것은 번역자들이 부딪히는 근본적인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번역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단테클럽>의 번역자는 후자를 택했어야 한다. 원작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식 문체를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을 한글로 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기에 후자를 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의 문제다. 특정 출판사를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추리소설로 분류되는 책들 중에서 구설수에 휘말리는 책을 펴낸 출판사들을 보면 상업성이 짙은 출판사들이다. G, S, R 등등. 그에 비해 O, H, M 등에서 나온 역사추리소설들이 판매량은 적지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역이나 불성실 번역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는 이유는 왜일까?
하지만 이 책도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것이 있다. 바로 책의 외형이다. 먼저 표지가 고급스럽다. 뽐나게 들고 다닐 맛이 난다.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을 만큼 책의 크기도 적당하고 350쪽짜리 양장본임에도 가볍다. 실용적인 면에서 이 책에 최고 평점을 주고 싶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을 읽고 싶다.
이제 또다른 역사추리소설을 찾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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