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읽는 관전의 기술
김양희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야구를 읽는 관전의 기술>은 야구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규칙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이미 야구를 즐기는 사람이 경기 속 장면을 한 단계 더 깊게 읽도록 만드는 책이기 때문에 야구를 어느 정도 즐기는 분들이 읽어야 좋은 책입니다. 저 역시 야구를 좋아해서 중계와 해설을 자주 보고 실제 경기장도 찾아갑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규칙보다는 ‘왜 지금 투수를 바꾸지?’, ‘왜 여기서 번트를 대지?’, ‘왜 수비수가 저 위치에 있지?’처럼 경기를 보며 품었던 질문의 답을 찾는 재미가 컸습니다.





야구를 오래 보다 보면 의외로 결과에 익숙해집니다. 안타면 환호하고 삼진이면 아쉬워하며, 이기면 잘했고 지면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경기장에서는 전략이고 뭐고 우리 팀 선수가 안타를 치면 일단 좋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결과에서 한 발 물러나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를 보게 합니다.





특히 야구를 ‘공간 싸움’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장에서 관중의 시선은 대부분 투수와 타자에게 집중되지만, 투구 직전 야수들의 위치에도 이미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공이 날아오기 전에 수비수들은 타자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투수의 손끝만이 아니라 야수들의 발끝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발 투수의 첫 15구와 4회가 중요한 이유도 흥미로웠습니다. 타순이 한 바퀴 돌면 타자들이 투수의 구속과 공의 궤적에 익숙해지고 투수 역시 같은 타자를 다시 상대하게 됩니다. 초구 공략에 관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가면 ‘조금만 더 보고 치지’ 싶을 때가 있었는데, 공격적인 타자는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오는 심리를 역이용하기도 합니다. 공 하나를 던지고 치는 짧은 순간에도 서로의 생각을 읽는 심리전이 숨어 있었던 셈입니다.


기록을 다룬 부분도 유익했습니다. 요즘 중계 화면에는 타율과 평균자책점뿐 아니라 OPS, WHIP, ERA+ 등 다양한 지표가 등장합니다. 저도 익숙하게 보던 숫자들이지만, 책을 읽으며 기록 역시 맥락과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야구는 숫자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지만 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 틈에 감독의 선택과 선수의 심리, 경기의 흐름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팬 입장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왜 지금 바꿔!” 혹은 “여기서 번트를 왜 대!”라고 외치기 쉽습니다. 저도 경기장에서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당시의 투구 수와 상대 타순, 좌우 상성, 불펜 상태, 이후 경기 운영까지 고려해 선택합니다. 물론 모든 선택이 정답인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알고 난 뒤의 평가와 결정 당시의 조건은 다릅니다. 결과 나온 뒤 감독 까기는 쉽습니다. 팬에게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음’이라는 사기 스킬이 있으니까요.


ABS와 피치 클록처럼 최근 야구의 변화까지 다룬 것도 좋았습니다. 야구는 전통적인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규칙과 데이터를 받아들이며 변하고 있습니다. 오래 야구를 본 사람도 계속 새로운 관전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야구를 읽는 관전의 기술>을 읽고 나니 다음 경기에서는 조금 다른 곳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투수가 던지기 전 야수의 위치를 보고, 선발이 4회를 넘길 무렵의 변화를 살피고, 타자가 초구를 쳤다고 무조건 성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응원팀이 9회말 만루에서 삼진을 당한다면 이런 교양은 잠시 증발하겠지만요. 결국 야구의 재미는 같은 한 구를 보더라도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야구장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나 더 갖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야구 초보에게도 유용하지만, 저처럼 이미 야구를 좋아하고 중계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관전의 재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야구를읽는관전의기술 #김양희 #메이트북스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나 사랑을 노래할게요
우타고코로 리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제나 사랑을 노래할게요>는 서른 해 동안 무명 가수로 살아온 우타고코로 리에 작가님이 오십 살에 다시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시기에 이 책을 읽어서인지, 단순한 연예인 에세이보다 한 사람의 긴 직업 인생을 기록한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뒤늦은 성공일지 모르지만, 작가님에게 노래는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해온 생활이자 정체성이었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30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전체가 오십 살의 목소리를 만든 재료가 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 역시 안정된 직장을 떠나 개인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면서 ‘지금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런 제게 이 책은 늦은 출발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먼저 끝내버리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작가님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한국인의 뜨거운 표현과 적극적인 응원을 다소 부담스러워했지만, 작가님은 오히려 그 환대 속에서 자신이 인정받고 다시 배우는 기분을 느꼈다고 합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우리, 그냥 즐기자”라는 짧은 대화가 겨우 몇 분 동안 이어졌지만, 그 시간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는 고백이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능력만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경험을 통해서도 회복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딘 사람에게 한국 팬들의 응원은 단순한 인기 이상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외부의 확인이자, 다시 무대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마음의 허가였다고 느꼈습니다.





패자부활전 무대에 관한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님은 본선 1차전에서 탈락한 뒤에도 끝이라고 여기지 않고, 다시 주어진 무대에서 오다 데쓰로의 노래를 선택합니다. 화려한 승부곡보다 사람을 웃게 하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곡이었다는 대목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요구하는 정답보다 자신이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를 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소절을 부를 때 목소리가 떨리고, 객석의 스타들이 끝까지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했다는 부분도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실패하거나 예상보다 작은 반응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필요한 것도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우선 제가 가진 것을 사람들 앞에 내놓아보는 태도일 것입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준우승이라는 결과보다 가족들의 품에 안긴 순간이 더 중요하게 묘사됩니다. 작가님은 최종 우승을 놓쳤지만, 오히려 그날 자신이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따라갈 수 있었던 사람이며 가족과 동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성공을 오직 순위와 수치로만 해석했다면 준우승은 아쉬움으로 남았겠지만, 작가님은 그 경험을 자신이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된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도 퇴직 이후의 성공을 너무 단순하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의 매출도 중요하지만, 제가 오래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제 이름으로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이전과 다른 삶일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보다 더 높은 음을 낼 수 없어도 지금의 목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작가님의 태도처럼, 저 역시 남보다 빠른 성취보다 지금의 경험과 능력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바라보고 싶어졌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노래할게요>는 꿈을 이루면 반드시 유명해진다는 식의 가벼운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래 노력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수 있고,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완전히 놓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의 어느 시점에 다시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나이를 의식하는 분,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노력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한 분, 퇴직이나 경력 전환을 앞두고 자신의 두 번째 무대를 고민하는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고 귀여운 미니 일러스트 쉽게 그리는 방법
요모리 나리 지음, 콘텐츠 연구소 옮김 / 정보문화사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고 귀여운 미니 일러스트 쉽게 그리는 방법>은 일단 부담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 책입니다. 저 역시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취미로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었고 앞으로 제가 만드는 책에 들어갈 간단한 삽화 정도는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이 책을 골랐습니다. 막상 펼쳐보니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그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복잡해 보이는 대상을 아주 단순한 형태로 쪼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얼굴은 원, 몸은 타원, 귀는 삼각형처럼 기본 도형부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도 타원 두 개를 겹친 뒤 귀와 꼬리, 표정을 붙이는 식으로 완성되고, 토끼 역시 둥근 얼굴과 긴 귀 몇 개만 더해 금방 형태가 살아납니다. 그림을 볼 때는 ‘이걸 내가 어떻게 그리지?’ 싶지만 과정을 나누어 보면 의외로 별것 아닙니다.  





선을 정확하게 그리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도 초보자 입장에서 좋았습니다. 귀여운 미니 일러스트의 핵심이 정교한 묘사보다 특징을 잡아 단순화하는 데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고슴도치는 둥근 몸과 삐죽한 가시, 비버는 통통한 몸과 앞니, 레서판다는 눈 주변 무늬와 풍성한 꼬리만 잘 잡아도 금세 정체성이 생깁니다. 바다동물 페이지에서도 우파루파, 바다민달팽이, 매너티, 문어, 고래상어처럼 형태가 제각각인 동물들을 몇 개의 선과 색으로 단순화해 놓아서 따라 그리기에 좋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앞으로 삽화를 직접 만들 때 특히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책에 들어가는 작은 삽화는 꼭 사실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 사이에 들어가는 작은 동물이나 음식, 책, 찻잔, 식물 같은 그림은 단순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편이 활용도가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단순한 취미 드로잉 책이 아니라 작은 아이콘이나 소품 그림의 아이디어 사전처럼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록된 소재가 700여 개나 된다는 것도 꽤 실용적입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기본 동물에서 시작해 사파리와 수족관 동물, 인물의 표정과 헤어스타일, 디저트와 과일, 꽃, 도시락, 취미, 날씨, 계절 행사, 별자리, 말풍선과 프레임까지 거의 생활 속에서 떠올릴 만한 소재가 한 권에 들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공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은 고양이가 그리고 싶으면 고양이 페이지를 펴고, 카드에 꽃을 넣고 싶으면 꽃 페이지를 참고하면 됩니다. 


저처럼 그림 초보에게 은근히 중요한 부분은 ‘실패해도 되는 연습장을 만들라’는 태도였습니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정말 못 그려서 못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펜을 못 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저도 예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선 하나 긋기도 조심스러운데, 이 책을 보다 보면 일단 동그라미 하나부터 그려보자는 마음이 듭니다. 미니 일러스트는 조금 삐뚤어져도 오히려 그 맛이 있습니다. 삐뚤빼뚤함까지 작풍으로 우기면 됩니다. 초보자의 최후의 필살기입니다.


또 마음에 든 것은 결과물의 활용 범위가 넓다는 점입니다. 다이어리 꾸미기나 메시지 카드뿐 아니라 블로그 이미지, SNS 콘텐츠, 책 속 작은 장식, 챕터 사이 아이콘 등으로도 응용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작고 귀여운 미니 일러스트 쉽게 그리는 방법>을 읽으며 느낀 것은 그림도 결국 많이 보고, 직접 손을 움직여보는 것이 제일 빠른 공부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장 이 책 한 권으로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림을 못 그려’에서 ‘이 정도는 한번 그려볼까?’로 넘어가게 해주는 힘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 조금씩 연습해서 제가 쓰는 책 한쪽에 작은 동물이나 책, 찻잔 같은 삽화를 직접 넣어보고 싶습니다. 누가 그렸냐고 물었을 때 “저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애는 부처님 - 오타쿠의 방구석 불교 탐구 생활
비구니연습생(계소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애는 부처님>은 제목부터 제 취향을 정확히 건드렸습니다. 저는 원래 무협, 애니메이션, 판타지같은 서브컬처를 좋아하고, 동시에 한문을 공부하면서 불교 관련 원문도 접해왔습니다. 심지어 <원각경>을 원문으로 읽어본 적도 있어서, 불교가 완전히 낯선 독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불교의 오래된 세계관을 오늘날의 서브컬처와 어떻게 연결할까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보다 꽤 영리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비구니연습생’이라고 부릅니다. 불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아이돌과 스포츠 스타를 덕질하다가 결국 부처님까지 최애가 된 사람입니다. 이 설정만 보면 약간 장난스러운 불교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불교미술과 경전,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꽤 탄탄하게 깔려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포스터를 불화의 화면 구성과 연결하고, <귀멸의 칼날>의 아카자를 생로병사의 고통과 엮으며, <나루토>의 반복되는 증오를 윤회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특히 저는 아카자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싯다르타 역시 늙음과 병, 죽음이라는 고통을 목격하면서 출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아카자는 같은 고통 앞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자체는 비슷하지만, 한쪽은 욕망을 관찰하고 놓아가는 길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은 더욱 강한 존재가 됨으로써 고통을 제거하려 합니다. 이렇게 보니 익숙한 캐릭터도 갑자기 불교적인 인간형으로 읽힙니다. 애니메이션 과몰입이 이렇게 교양으로 세탁됩니다. 덕후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면죄부가 또 있을까요.





저 역시 불교를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불교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이 왜 괴로운지를 집요하게 분석하는 사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원각경> 같은 텍스트를 원문으로 읽으면 그 언어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무명, 집착, 분별 같은 개념들이 계속 겹쳐 나오기 때문에 정신을 놓으면 문장 하나 읽고 제 정신도 함께 공(空)이 됩니다. 그런데 <최애는 부처님>은 이런 개념을 애니메이션, 음악, 생활 속 질문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래서 불교를 이미 조금 아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개념이 새로운 각도로 보이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입문 장벽이 상당히 낮습니다.





책에서 “불교를 믿는다고 더 아름답고 나은 인생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감당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상당히 정통적인 불교의 태도와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불교는 세계를 원하는 모양으로 바꿔주는 마법이라기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을 훈련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또 좋았던 것은 저자가 불교를 지나치게 경건하게 박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08배를 하다가 의지가 먼저 열반하고, 절을 팬미팅장처럼 바라보고, 부처님을 ‘최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장난스러운 접근이 불교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덕후의 태도가 수행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니까요.


<최애는 부처님>은 정통 불교 입문서도, 경전 해설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불교를 문화와 서브컬처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책입니다. 저처럼 불교 원문도 읽고 애니메이션도 보는 약간 괴상한 독자에게는 특히 재미있습니다. <원각경> 읽다가 머리에 연기 나던 사람이 <귀멸의 칼날>에서 생로병사를 다시 만나다니, 이것도 나름 윤회인가 싶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이 반드시 경전 앞에 단정히 앉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애니 한 편, 노래 한 곡, 불상 하나를 오래 바라보면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 - 정보·선택·용기로 완성하는 마지막 삶의 설계
박동자 지음 / 예미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마음이 조금 멈칫했습니다. 저는 종종 아주 먼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들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자연스럽게  ‘나는 어디에서 죽게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익숙한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병원의 밝은 형광등 아래보다 제가 오래 사용한 물건과 책, 익숙한 냄새가 있는 공간에서 조용히 생을 정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를 읽으며 그 소망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 돌봄, 가족, 행정, 경제적 준비가 모두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이야기가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말기 환자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세 딸의 돌봄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지만, 자택 사망이라는 이유로 유족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는 대목입니다. 가족에게는 오래 준비한 마지막 작별이었는데, 제도가 그 죽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평온했던 순간이 혼란으로 바뀝니다. 죽음을 어디에서 맞을 것인가라는 개인의 선택도 결국 사회의 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 책을 누군가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읽었다기보다 제 죽음에 대해 한번 제대로 생각해보고 싶어서 읽었습니다. 막연히 ‘가능하면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떤 상태까지 치료를 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치료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의 좋은 점은 죽음을 감상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장기요양서비스, 치매 돌봄, 국민연금과 주택연금, 건강보험, 복지용구처럼 매우 현실적인 문제까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결국 좋은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는 순간만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이전의 긴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건강이 나빠졌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것인지, 경제적으로 얼마나 자립할 수 있을지, 가족에게 어디까지 부탁하고 싶은지까지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독일과 한국의 제도를 비교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어느 나라의 제도가 완벽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어디까지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 같지만 실제로는 사회복지와 의료, 행정 시스템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예전보다 죽음이 덜 추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아직 제가 어떤 노년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조용히 떠날 수도 있고, 오랜 돌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인생도 드문데 죽음이라고 얌전히 계획표를 따라줄 리는 없겠지요.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가능한 한 제 삶의 선택권을 가지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지낼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 누구와 함께 있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애써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조금씩 준비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나는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는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삶을 더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마지막은 거창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짐을 남기지 않고, 제 뜻을 가능한 한 지킨 채 조용히 떠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내집에서죽을수있을까 #박동자 #예미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