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애는 부처님 - 오타쿠의 방구석 불교 탐구 생활
비구니연습생(계소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7월
평점 :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애는 부처님>은 제목부터 제 취향을 정확히 건드렸습니다. 저는 원래 무협, 애니메이션, 판타지같은 서브컬처를 좋아하고, 동시에 한문을 공부하면서 불교 관련 원문도 접해왔습니다. 심지어 <원각경>을 원문으로 읽어본 적도 있어서, 불교가 완전히 낯선 독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불교의 오래된 세계관을 오늘날의 서브컬처와 어떻게 연결할까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보다 꽤 영리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비구니연습생’이라고 부릅니다. 불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아이돌과 스포츠 스타를 덕질하다가 결국 부처님까지 최애가 된 사람입니다. 이 설정만 보면 약간 장난스러운 불교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불교미술과 경전,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꽤 탄탄하게 깔려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포스터를 불화의 화면 구성과 연결하고, <귀멸의 칼날>의 아카자를 생로병사의 고통과 엮으며, <나루토>의 반복되는 증오를 윤회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특히 저는 아카자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싯다르타 역시 늙음과 병, 죽음이라는 고통을 목격하면서 출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아카자는 같은 고통 앞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자체는 비슷하지만, 한쪽은 욕망을 관찰하고 놓아가는 길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은 더욱 강한 존재가 됨으로써 고통을 제거하려 합니다. 이렇게 보니 익숙한 캐릭터도 갑자기 불교적인 인간형으로 읽힙니다. 애니메이션 과몰입이 이렇게 교양으로 세탁됩니다. 덕후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면죄부가 또 있을까요.

저 역시 불교를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불교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이 왜 괴로운지를 집요하게 분석하는 사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원각경> 같은 텍스트를 원문으로 읽으면 그 언어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무명, 집착, 분별 같은 개념들이 계속 겹쳐 나오기 때문에 정신을 놓으면 문장 하나 읽고 제 정신도 함께 공(空)이 됩니다. 그런데 <최애는 부처님>은 이런 개념을 애니메이션, 음악, 생활 속 질문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래서 불교를 이미 조금 아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개념이 새로운 각도로 보이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입문 장벽이 상당히 낮습니다.

책에서 “불교를 믿는다고 더 아름답고 나은 인생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감당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상당히 정통적인 불교의 태도와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불교는 세계를 원하는 모양으로 바꿔주는 마법이라기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을 훈련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또 좋았던 것은 저자가 불교를 지나치게 경건하게 박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08배를 하다가 의지가 먼저 열반하고, 절을 팬미팅장처럼 바라보고, 부처님을 ‘최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장난스러운 접근이 불교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덕후의 태도가 수행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니까요.
<최애는 부처님>은 정통 불교 입문서도, 경전 해설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불교를 문화와 서브컬처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책입니다. 저처럼 불교 원문도 읽고 애니메이션도 보는 약간 괴상한 독자에게는 특히 재미있습니다. <원각경> 읽다가 머리에 연기 나던 사람이 <귀멸의 칼날>에서 생로병사를 다시 만나다니, 이것도 나름 윤회인가 싶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이 반드시 경전 앞에 단정히 앉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애니 한 편, 노래 한 곡, 불상 하나를 오래 바라보면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