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예찬 -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
안 뒤푸르망텔 지음, 이세진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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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예찬 #인문학 #철학 #추천도서 #미자모





<위험 예찬>을 쓴 안 뒤푸르망텔 작가님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로, 철학적 사유와 실제 상담 사례, 문학 작품을 함께 엮어 인간이 두려움과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지 탐구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제목을 보고 오해를 하면 안됩니다. 위험을 무턱대고 감수하라고 부추기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안전만을 좇느라 삶의 감각까지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한 삶이 과연 살아 있는 삶인지 묻는 책입니다. 





저는 원래 위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고, 사람에게 상처받을 가능성도 미리 줄여두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먼저 손익을 따지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한 뒤에야 움직이는 편입니다. 이런 태도는 분명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오래 계산하다가 기회를 놓치거나, 마음이 끌리는 일을 애써 현실적이지 않다고 밀어낸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의 순간은 다른 시간을 연다”는 관점이 오래 남았습니다. 위험은 사고나 파국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과거의 반복에서 벗어나 이전에는 없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한 내담자는 깊은 물과 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공간에 끌립니다. 작가님은 두려움을 사랑한다는 것이 공포를 즐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 감정이 삶을 완전히 막아버리지 않도록 곁에 두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두려움이 늘 퇴각 신호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때로는 정말 피해야 할 위험을 알려주지만, 때로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곳의 입구에서 발생하는 긴장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겁이 나느냐가 아니라, 그 두려움이 나를 보호하는지 아니면 삶을 지나치게 축소하는지를 구분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과 관계를 위험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룬 부분도 공감되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오해와 실망, 거절과 상실의 가능성까지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깊이 관계 맺지 않는 편이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는 안전은 연결되지 않는 삶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과거에 관계에서 실망한 뒤 마음을 덜 주면 덜 아플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상처는 줄었지만 기쁨도 함께 줄었습니다. 이 책은 의존을 무조건 나약함으로 보지 않고,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인간적인 조건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무분별한 희생이나 해로운 관계까지 견디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끝난 관계를 놓아주는 결별 역시 하나의 위험한 결단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위험 예찬>은 빠르게 답을 얻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철학과 정신분석, 신화와 문학, 내담자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오가므로 모든 문장을 완벽히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독서가 막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지나치게 안전하게 관리하느라 무기력해진 사람, 새로운 선택 앞에서 계속 계산만 하고 있는 사람, 사랑과 이별, 고독과 불안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책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 이 책은 무모해지라는 권유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질문으로 읽혔습니다. 삶에는 피해야 할 위험도 분명 있지만, 끝내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겁이 없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겁이 나는데도 삶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 아마 작가님이 말하는 위험은 그런 용기에 가까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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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 시대철학 1
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 비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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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사노바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바람둥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수많은 여성을 유혹하고, 관계를 즐기며,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남자.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도 연애 기술이나 밀고 당기기를 다루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는 카사노바의 연애 편력만을 흥미롭게 소비하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는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은 어디에서 생기는지, 그리고 타인의 관심을 얻는 능력과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어떻게 다른지를 함께 묻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의 핵심을 헌신이나 진심이 아니라 ‘호기심’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는 점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 상대보다 아직 다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할 때 관계에는 긴장감과 생명력이 생깁니다.





카사노바는 바로 그 호기심의 작동 방식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설명하거나 상대에게 끊임없이 확신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침묵을 만들었습니다. 책 속 표현처럼 그는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의 여백’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과거의 제 관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한때 저는 사랑한다는 것은 솔직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상대에게 제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했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으며,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제가 더 많이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태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제 기준을 낮추고, 관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무례한 말까지 이해하려 들다 보면 어느새 관계의 중심에서 제가 사라집니다.  


이 책이 말하는 ‘고프레임’은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라는 뜻이라기보다, 자신의 가치와 자유를 타인의 반응에 맡기지 않는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내 가치가 달라지지 않고,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으며, 사랑 속에서도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가는 사람. 저는 그것이야말로 제가 지난 관계를 통과하며 뒤늦게 배운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언제나 타인보다 내 자유를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오래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하는 일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제멋대로 행동할 자유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자유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관계가 끝난 원인을 제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내가 조금 더 예뻤다면, 조금 더 재미있었다면, 조금 더 맞춰주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더 해줬어야 했을까?”가 아니라 “왜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 앞에서 오래 머물렀을까?”였습니다.


카사노바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줄이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과 지키고 싶은 기준이 있으며, 언제든 관계 밖으로도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상대에게 모든 시간을 바치고 모든 관심을 쏟는 사람보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카사노바의 기술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습니다. 작가님은 환상의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침묵도 상대에게 감정을 정리할 여백을 주는 배려가 될 수 있고,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 집착하게 하는 조종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카사노바는 상대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언어로 말하며, 자신을 흥미로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탁월한 사회적 감각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결핍과 허영을 이용해 지배하려는 순간 매력은 곧 기만이 됩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과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이 책은 놓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책의 후반부가 특히 좋았습니다. 카사노바의 화려한 성공담만 보여주었다면 자극적인 연애 전략서에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범했던 순간과, 여성을 자기 인생의 배경으로 소비했던 한계까지 함께 짚습니다.  


결국 건강한 매력에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상대에게 호기심을 일으키되 일부러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것, 자신의 가치를 지키되 상대를 낮추지 않는 것, 자유를 사랑하되 그 자유로 타인의 존엄을 침범하지 않는 것. 이것이 단순한 연애 기술과 성숙한 관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가까워지는 일은 아름답지만, 그 사람의 관심을 얻기 위해 내 삶 전체를 내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각자의 세계를 버리고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호기심을 품고 가까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는 카사노바처럼 사람을 유혹하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의 매력과 기만, 자유와 착취, 자기 연출과 자기기만을 함께 바라보며 결국 독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의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 그리고 당신은 자기 삶을 어떤 이야기로 남기고 싶은가.


이제 저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제 가치를 증명하는 사랑보다, 서로의 세계를 궁금해하면서도 각자의 자유를 지켜주는 관계를 원합니다. 마음을 다 보여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진심을 주더라도 나까지 통째로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의4분의3은호기심이다 #모티브 #리뷰의숲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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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
사랑좋아해적단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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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랑이 끝난 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상대보다 자기 자신일 때가 있습니다. 분명 상처를 받았고,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한동안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계속 되짚게 됩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조금만 달랐다면 결과가 바뀌었을까?”, “정말 나를 사랑하기는 했을까?” 같은 질문은 이미 끝난 관계를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상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는 그런 관계의 잔해를 예쁘게 정리해 주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집착, 환상, 가스라이팅, 희망 고문과 비참함을 꽤 노골적인 언어로 들춰냅니다. 제목부터 다정한 위로보다는 너도 대충 알고 있었잖아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웃기기도 했고, 뜨끔하기도 했으며, 어떤 대목에서는 과거의 제 모습을 들킨 것처럼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사랑의 실패가 단순히 나쁜 사람을 만난 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상대가 분명 무책임하고 잔인했더라도, 관계가 오래 지속되려면 그 사람을 믿고 싶어 했던 나의 환상도 함께 작동합니다. 책 속 문장처럼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자기최면이 끝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이 꽤 아프면서도 정확하다고 느꼈습니다.

 

저 역시 오랜 관계의 마지막에 상대에게서 사람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습니다. 오래 만나 질렸다는 말은 관계를 끝내는 설명이라기보다 상대의 미성숙함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떠넘긴 폭력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직후에는 분노보다도 현실감이 사라지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것 같았고, 내가 알던 사람이 정말 이 사람이 맞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은 제 가치에 대한 판정문이 아니었습니다. 관계를 품위 있게 끝낼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려고 내뱉은 조악한 변명에 가까웠습니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태도를 선택했는가였습니다. 관계가 끝날 수는 있습니다. 마음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존엄까지 짓밟아야만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깝지 않습니다.

 

이 책은 리머런스라는 개념을 통해 상대를 실제 인물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로 만들어 숭배하는 심리도 이야기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상대를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이야기 속 인물로 편집해 바라보곤 합니다. 그 사람이 보내온 다정한 메시지 하나는 과대평가하고, 반복되는 무례함과 회피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축소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미 답이 나온 관계인데도, 머릿속에서는 아직 서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지에 관한 부분은 현실적인 관계의 잔인함을 잘 보여줍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책임 있는 관계를 선택하지도 않는 태도는 상대를 가장 오래 묶어둡니다.

 

이 책의 장점은 사랑을 무조건 아름답고 성장적인 감정으로 포장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불안과 소유욕을 확대하기도 합니다. 상대가 떠날까 두려워 감시하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기 기준을 낮추며, 사랑받기 위해 계속 증명하려 들기도 합니다. 그런 감정도 사랑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는 우리가 부끄러워서 숨겼던 감정을 대놓고 말해 줍니다. 쓰레기인 줄 알면서도 다시 연락하고 싶은 마음, 나를 버린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상대가 망하기를 바라면서도 행복했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숨기지 않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늘 논리적이지 않으며, 사랑이 끝났다고 애착까지 동시에 종료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모순을 인정해야 비로소 자기혐오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사랑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을 이유로 자신까지 버리지는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망한 사랑을 골랐던 과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에는 무엇을 고르느냐입니다. 이제 저는 더 현명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는망한사랑만골라서하지 #에세이 #모티브 #리뷰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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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미술관 - 그림과 연애하듯 살아가다, 감상X데이트코스X아트테크
김용임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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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관에 가면 괜히 자세부터 어색해질 때가 있습니다.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무언가 깊이 이해한 척해야 할 것 같고, 빨리 지나가면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작품 설명을 읽어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그냥 색이 예쁘다라고 말하기에는 감상이 너무 가벼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썸타는 미술관>은 바로 이 어색함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미술을 공부와 교양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고, 사람을 알아가듯 천천히 가까워지는 관계로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에 쓰인 이라는 말은 자칫 가볍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꽤 정확한 비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썸을 탈 때 우리는 상대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이해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에 끌리고, 다음에는 표정과 말투를 살피며, 조금씩 그 사람의 사연을 알아갑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첫눈에 색채와 구도에 끌릴 수도 있고, 작품 속 인물의 표정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작가의 삶과 시대적 배경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천천히 드러납니다.




 

저는 이 책에서 작품을 감정의 언어로 풀어내는 점이 좋았습니다. 설렘에는 샤갈의 산책, 환희에는 르누아르의 보트파티에서의 오찬, 불안에는 뭉크의 불안, 슬픔에는 고흐의 우는 남자, 영원의 문을 연결합니다. 미술사조와 제작 기법부터 설명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에서 그림으로 다가가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뭉크의 그림은 흔히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 작품으로 설명되지만, 이 책은 그 불안을 단순히 감상해야 할 정서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뭉크가 불안을 숨기거나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고 예술로 바꾸어 냈다는 점을 짚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지 않았다. 예술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았다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불안은 대개 제거해야 할 감정처럼 취급됩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불안을 없애는 대신 바라보고, 형태와 색을 부여하며, 다른 사람도 알아볼 수 있는 감정으로 번역합니다. 개인의 고통이 작품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한 사람만의 고립된 감정이 아닙니다. 예술이 사람을 위로하는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내 안에서 설명되지 않던 감정을 누군가 이미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안도감을 줍니다.

 

고흐의 우는 남자, 영원의 문을 다룬 부분도 좋았습니다. 그림 속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감싸 쥔 채 앉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색채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인간이 감당하는 슬픔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고흐의 삶을 생각하면 이 그림을 단순히 타인의 슬픔을 묘사한 작품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가난과 고독, 인정받지 못한 삶을 견뎌야 했던 화가 자신의 내면도 겹쳐 보입니다.

 

저는 예술 작품을 볼 때 작가의 전기적 사실만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에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작가의 일기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살아온 삶을 완전히 떼어 내고 작품만 보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작품은 개인의 경험과 시대의 공기, 미학적 선택이 함께 쌓인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전문적인 이론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작품과 예술가의 삶을 적절히 연결해, 독자가 그림에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미술관에서도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유명 작품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작품 설명을 이해해야 하며,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무엇인가 배웠다는 느낌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감상은 시험이 아닙니다. 어떤 그림 앞에서 이유 없이 발걸음이 멈추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생기거나, 특정 색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감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작품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라고 권합니다.

 

또한 미술관을 작품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좋았습니다. 건축과 조명, 전시실의 넓이, 창밖 풍경, 미술관 주변의 산책길과 카페까지 모두 감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의 미술관을 추천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빗소리와 흐린 빛 속에서는 일상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그림 앞에서도 조금 오래 머물게 됩니다. 미술관은 작품을 보관하는 건물인 동시에 시간의 속도를 바꾸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예술가의 사랑과 뮤즈, 작품 속에 나타난 여러 형태의 사랑을 다룹니다.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포장하지 않고 숭배, 약속, 금지, 외로움, 침묵, 관계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누어 살핀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에곤 실레와 피카소,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예술가의 강렬한 창작이 언제나 아름다운 인간관계와 함께한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는 이유로 개인의 폭력성과 이기심까지 낭만화해서는 안 됩니다.

 

<썸타는 미술관>은 미술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지만, 미술을 가볍게 소비하도록 만들지는 않습니다. 작품과 첫눈을 맞추는 단계에서 시작해 감정을 나누고, 작가의 삶을 이해하며, 미술관을 찾고, 마침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전문용어를 많이 아는 사람보다 한 작품 앞에서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솔직히 느끼는 사람이 오히려 그림과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책을 덮고 나니 미술관에서 꼭 똑똑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앞에서 떠오른 기억 하나, 색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 하나, 설명할 수 없지만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사랑도 상대를 완전히 이해한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듯, 그림도 다 알아야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과 썸을 타는 첫 단계는 거창한 미술사 지식이 아니라, 한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추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멈춤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미술관은 더 이상 어색한 교양의 공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발견하러 가는 익숙한 장소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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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기원 - 세계 질서와 부의 운명을 뒤바꾼 방향의 역사
제리 브로턴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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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도를 펼치면 자연스럽게 북쪽을 위로, 남쪽을 아래로 바라봅니다. 동쪽은 오른쪽에 있고 서쪽은 왼쪽에 있다는 사실도 거의 본능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지구는 둥글고 우주에는 절대적인 위와 아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동서남북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필요에서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요. 제리 브로턴의 <지리의 기원>은 바로 이러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던지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방위와 지도 제작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이 책은 단순한 지리 교양서라기보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분류하며 지배해 온 방식을 추적하는 지성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에는 처음부터 동양과 서양, 북반구와 남반구, 중심과 주변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해와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방향에 이름을 붙인 뒤, 그 이름에 종교적 의미와 정치적 위계, 문화적 편견을 덧씌우면서 지금의 세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동서남북은 진리가 아니라 지위였다”는 이 책의 관점입니다. 지도에서 위쪽에 놓이는 방향은 단순한 위치 이상의 권위를 얻습니다. 우리는 ‘상승’과 ‘하강’, ‘위’와 ‘아래’를 가치 판단의 언어로도 사용합니다. 높은 것은 우월하고 낮은 것은 열등하다는 감각이 지도 위에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북쪽이 위에 자리 잡은 현재의 지도는 과학적으로 유일하게 옳은 표현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항해 기술과 유럽 중심 세계관이 널리 확산되면서 표준이 된 결과입니다. 지도를 객관적인 현실의 축소판으로만 생각했던 제게는 꽤 강한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동쪽을 다룬 부분에서는 한자문화권에서 ‘東’이 해가 떠오르는 곳, 시작과 생명의 방향으로 인식되어 온 역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동쪽은 단순한 방위가 아니라 시간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었고, 여러 문명에서 종교적·도덕적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이 아시아를 ‘오리엔트’라고 명명하면서 동쪽은 신비롭고 이국적이지만 동시에 정체되고 비합리적인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도 중립적인 지리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구가 자신을 기준으로 세계를 나누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동양은 스스로를 동양이라고 부르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쪽의 시선 속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묶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도 떠올랐습니다. 합리적인 서양과 비합리적인 동양, 진보하는 서양과 정체된 동양이라는 구도는 지리적 거리보다 권력관계에서 탄생했습니다. <지리의 기원>은 이런 관념이 단순한 편견에 그치지 않고 지도와 학문, 식민 통치, 경제 질서 속에서 어떻게 현실적인 힘을 얻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남쪽과 북쪽의 대비도 흥미로웠습니다.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라는 말은 단순히 적도 아래 국가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경제적 주변부, 식민 지배의 경험, 정치적 종속 관계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반대로 ‘글로벌 노스’는 실제 위도보다 부와 권력, 산업화와 현대성의 위치를 뜻합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남반구에 있지만 정치·경제적으로는 글로벌 노스에 포함됩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남과 북이 이미 자연적 방위를 넘어 세계의 위계를 나타내는 정치적 언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 위에 그어진 단순한 선 하나가 자원의 흐름과 노동의 가치, 발전과 후진이라는 판단까지 품게 된 것입니다.





‘서쪽’ 역시 해가 지는 방향에서 시작했지만 근대 이후에는 ‘서구 문명’이라는 거대한 이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서구의 역사와 가치가 곧 보편적인 인류의 발전 과정처럼 설명되면서, 다른 문명은 서구가 이미 지나온 과거의 단계에 배치되곤 했습니다. 진보의 방향마저 서쪽에서 정한 시간표를 따라 움직인 셈입니다.  


저는 한문과 고전을 공부해오고 있어서 그런지 ‘중국(中國)’이라는 명칭도 새삼 다르게 보였습니다. 중국은 본래 단순한 현대 국가명이 아니라 ‘천하의 중심에 있는 나라’라는 공간 인식을 담은 말입니다. ‘중원’, ‘사방’, ‘동이·서융·남만·북적’ 같은 표현 역시 중심과 주변을 방위로 구분하고 문명적 위계를 부여한 언어였습니다. 서구만 지도를 통해 세계의 중심을 자처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문명이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삼고 낯선 타자를 변방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특정 문명만을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인간이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에 권력을 부여하는 보편적인 과정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의 ‘방향 상실의 시대’에 관한 논의도 오래 남았습니다. 스마트폰 지도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지만, 역설적으로 스스로 방향을 감각하는 능력은 약하게 만듭니다. 화면의 화살표만 따라 이동하다 보면 내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주변 공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지 못한 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길은 잃지 않지만 공간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과도 닮았습니다. 수많은 알고리즘과 지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만, 정작 왜 그 방향으로 가는지는 스스로 묻지 않게 됩니다.  


<지리의 기원>은 지명과 지도를 외우게 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좌표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북쪽이 위라는 사실, 서구가 세계사의 중심이라는 서술, 동양과 서양이 본래부터 분리된 문명권이라는 생각까지 모두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관념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관념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어느새 진리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세계사와 지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보물과도 같이 느껴질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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