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필독서 15 - 프리드먼부터 버냉키까지 노벨경제학상 명저를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34
홍기훈.김동호 지음 / 센시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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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경제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경제 뉴스에 나오는 금리, 통화정책, 세금, 시장 같은 단어도 제 삶과는 조금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돈과 사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직접 돈을 벌고, 무언가를 만들고, 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면 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노벨경제학상 필독서 15>입니다.




처음에는 제목부터 살짝 무서웠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이라니, 첫 장부터 그래프와 수식이 달려들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그런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직접 설명하는 전공서가 아니라, 그들이 일반 독자를 위해 쓴 책 15권을 중심으로 경제학의 중요한 질문들을 풀어냅니다. 경제학 초보자인 저에게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잘 맞았습니다. 경제용어를 외우기 전에 “경제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고민해왔는가”부터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경제학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저는 경제학을 돈, 주식, 물가처럼 숫자를 다루는 학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경제학자들이 묻는 질문은 의외로 인간의 삶에 가까웠습니다. 왜 교육 수준이 높아졌는데도 여성의 임금 격차는 사라지지 않는지, 왜 어떤 사람은 가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교육은 개인의 삶을 얼마나 바꾸는지, 시장은 언제 자유를 주고 언제 사람을 속이는지 같은 문제입니다.





특히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다룬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 진출이 크게 높아졌는데도 임금 격차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단순한 개인 능력의 차이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장시간 근무에 높은 보상을 주는 직업 구조, 육아와 돌봄으로 인한 경력의 차이처럼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를 살펴봅니다. 약사 사례처럼 업무를 표준화하고 노동자 간 대체 가능성을 높이면 근무시간과 소득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는 현상 뒤에 제도와 구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보는 경험이 재미있었습니다.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오래 남았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학력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생산성과 선택지를 늘리는 투자라는 관점입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나 아이들의 건강, 다음 세대의 소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교육의 효과를 개인의 취업 문제보다 훨씬 넓은 관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이 결국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투입하면 사회 전체의 삶이 더 나아질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라는 사실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생각하기 시작한 지금의 저에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시장’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도, 나쁜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은 자유로운 시장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애컬로프와 실러는 기업이 소비자의 약점을 이용하는 방향으로도 시장의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세일러는 애초에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는 꽤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시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엇이 잘 팔리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선택하고, 어떤 구조에서 그 선택이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자유’라는 주제도 좋았습니다. 경제적 자유란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제로 선택할 능력과 조건을 가지는 일이라는 관점입니다. 소득, 교육, 건강, 제도는 결국 인간의 선택 가능성을 넓히거나 좁히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이 숫자를 계산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설명에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경제학 전공자보다 저처럼 “경제학은 잘 모르지만 이제 돈과 사업,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좀 알고 싶다”는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경제 뉴스를 볼 때 숫자만 흘려보내지 않고 ‘왜 이런 정책을 만들었을까,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할까’라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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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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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장난스럽습니다.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이라니, 고전을 정면 돌파하기보다 요령껏 핵심만 챙기자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훨씬 성실한 책입니다. 오히려 <종의 기원>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저 제목의 농담이 더 잘 이해됩니다. 저도 <종의 기원>을 읽은 경험이 있어서 이 책이 유난히 재미있었습니다. 원전에서 흐릿하게 기억나던 부분들이 정리되고, “아, 그 대목이 이런 구조였구나” 하고 다시 맞춰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의 기원>은 분명 위대한 책이지만, 현대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 논리가 한곳에 가지런히 모여 있지 않다는 점이 더 큰 장벽입니다. 같은 주제가 여러 장에 흩어져 있고, 비슷한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저는 원전을 읽으면서도 자연선택이라는 핵심 개념은 분명히 잡히는데, 세부 논증이 계속 옆길로 뻗어 나가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읽는 동안에는 이해한 것 같다가 책을 덮으면 구조가 희미해지는 종류의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배열에 있습니다. 원전의 차례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다윈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다시 세워줍니다. 특히 품종 개량과 자연선택을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형질을 선택하는 인위선택과 달리, 자연선택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남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깔끔합니다. 원전을 읽을 때에는 수많은 비둘기와 가축 사례가 이어져 “다윈 선생님, 이제 본론 좀…”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사례들이 왜 필요한지 맥락을 정리해줍니다.





저는 무엇보다 다윈의 오류를 숨기지 않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고전이라고 해서 저자의 모든 설명을 신성시하지 않습니다. 당시 다윈은 멘델 유전학을 알지 못했고, 오늘날의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이 밝혀낸 사실도 당연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 안에는 지금 기준으로 틀린 설명도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도 다윈이 품종 개량을 통해 유전적 부동과 자연선택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했던 점을 짚고, 현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보완합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고전을 대하는 가장 건강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책은 틀리지 않는 책이 아니라, 틀린 부분까지 포함해서 이후의 지식을 움직인 책입니다.


이 점에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은 단순한 입문서보다 한 단계 더 재미있습니다. 다윈이 무엇을 맞혔고 무엇을 놓쳤는지, 그리고 이후 생물학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오언, 월리스처럼 다윈 주변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과학사는 천재 한 명이 혼자 진리를 발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가설과 반박, 경쟁과 우연이 얽혀 움직이는 과정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종의 기원>을 읽은 뒤 제가 가장 오래 남겨둔 생각은 ‘자연선택에는 목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자꾸 진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처럼 이해하려 하지만, 진화는 진보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형질이 남을 뿐이고, 환경이 달라지면 어제의 장점이 오늘의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진 속 비둘기 사례도 바로 그 점을 보여줍니다. 생물은 어떤 완성형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우연 속에서 계속 변합니다. 저는 이 생각이 생물학을 넘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꽤 큰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종의 기원>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과 이미 읽은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원전을 만나기 전 지도를 그려주는 책이고, 저처럼 이미 읽은 사람에게는 흐릿해진 구조를 다시 세우고 현대 생물학의 지식으로 보정해주는 복습서입니다. 생물학에 관심은 있지만 19세기 문장의 밀도 앞에서 주춤했던 사람에게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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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의 함정 - 자극적일수록 더 공허해진다
따웨이 지음, 이지연 옮김 / 지니의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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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만히 있어도 자극이 밀려옵니다. 스마트폰을 켜면 쇼트 폼이 이어지고, SNS에는 타인의 일상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쇼핑앱은 제가 무엇을 사고 싶어 할지 저보다 먼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보다 즐길 것은 훨씬 많아졌는데 이상하게 집중하기는 더 어려워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해졌습니다. <도파민의 함정>을 읽으며 저는 이 익숙한 피로가 단순히 의지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에서는 도파민을 흔히 알려진 ‘행복 물질’이라기보다 다음 보상을 기대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신호로 설명합니다. 사진 속 본문에서도 도파민 디톡스를 단순히 자극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끌려다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을 잠깐 내려놓았는데도 손이 허전하고, 특별히 볼 것도 없으면서 SNS를 다시 열게 되는 행동을 떠올리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기에는 휴대폰을 훨씬 자주 봤습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화면을 켰는데, 정작 쉬지는 못하고 이것저것 보다 시간이 흘러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조직에서 사람 때문에 진이 빠진 날에는 생각을 멈추고 싶은 마음 때문에 즉각적인 자극을 찾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보다 오히려 더 공허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갈 젖꼭지 효과’가 바로 이런 경험을 설명해주는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잠깐 달래주기는 하지만 진짜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도파민 이야기를 스마트폰 중독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관계, 사랑, 소비와 투자까지 범위를 넓혀 우리가 왜 비슷한 선택을 반복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중에서도 ‘간헐적 강화’와 ‘미완성 과제 심리’는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상대가 늘 잘해주는 것보다 잘해줬다 차가워졌다를 반복할 때 오히려 관계에 더 매달릴 수 있다는 설명은 현실에서 생각보다 자주 보이는 패턴입니다. 끝난 관계인데도 계속 의미를 찾거나, 마지막 연락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해석을 붙이는 것도 결국 해결되지 않은 보상을 기다리는 심리와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사성의 마법’도 재미있었습니다. MBTI가 같거나 취향 하나가 겹치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금세 친밀감을 느끼는 현상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보면 출신 학교, 좋아하는 책, 비슷한 직업 경험처럼 작은 공통점 하나만 발견해도 대화의 거리가 빠르게 좁아집니다. 다만 유사성은 관계의 문을 쉽게 열어줄 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증서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나와 비슷한 사람’보다 나의 경계를 존중하고 행동이 일관된 사람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도파민의 함정>을 읽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욕망을 없애는 것’과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타인의 반응, 조회 수, 소비, 관계의 불확실성 같은 즉각적인 보상에 계속 빼앗긴다면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 힘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한 ‘스마트폰 끊기 책’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시간과 감정의 운전대를 다시 잡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 읽었습니다. SNS에 내가 점점 중독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도파민의함정 #따웨이 #지니의서재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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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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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공부하면서 사서삼경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서경>은 제게 묘하게 ‘알지만 멀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논어>나 <맹자>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문장이 많지도 않고, 고대 군주들의 정치와 제도를 다룬다는 인상 때문에 지금의 삶과 바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찬근의 <서경>은 이 오래된 경전을 ‘옛 왕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에서 끝내지 않고, 결국 한 사람이 권한을 가졌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끌어옵니다.





저는 대학에서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조직 안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유형의 리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문장들은 단순한 고전 해설보다 현실적인 조직론 같았습니다.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조직에서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말 한마디, 피드백 방식 하나가 구성원의 태도와 분위기를 크게 바꿉니다. 권력이 크든 작든 결국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호문즉유好問則裕’였습니다.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진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는 세종이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제도를 만들고, 기록을 통해 주변 관리들이 백성의 접근을 막으면 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이를 ‘뿌리의 소리를 듣는 제도’라고 풀어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윗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조직은 점점 한 사람의 시야만큼 작아집니다. 책에서 말하는 ‘자용自用’의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판단만 고집하는 리더는 결국 자기 한계 안에 조직 전체를 가두게 됩니다.





‘불긍세행不矜細行’도 오래 남았습니다. 작은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입니다. 이 책에서는 완성 직전에 작은 행실을 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성취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의 작은 잘못까지 면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리가 높아질수록 사소한 태도가 더 크게 보입니다. 큰 결정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사람을 대하는 말투, 잘못했을 때의 반응, 자신보다 권한이 적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리더십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제가 특히 좋아한 대목은 ‘개과불린改過不吝’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리더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면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가 생깁니다. 현실에서는 이상하게도 직급이 높아질수록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완벽해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칠 줄 알아서 좋은 리더가 된다는 이 책의 해석에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공자의 제자 양성 이야기를 ‘덕을 넘겨주는 스승’이라는 관점으로 읽은 부분입니다. 좋은 스승과 좋은 리더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사람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기뻐합니다. 지식과 권한을 독점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남습니다.


<서경>을 읽으며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크게 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지면 자만하기 쉽고, 자리에 익숙해지면 타인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3천 년 전 군주들이 경계했던 것이 지금 회사의 팀장과 대표, 정치 지도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한 리더십 책보다 ‘권한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법을 배우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동시에 아직 큰 조직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합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에서는 결정권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선택할지, 누구의 말을 들을지, 잘못했을 때 고칠지 버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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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인간
전광섭 지음, 김상균 그림 / 책고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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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조카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그림자 인간>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동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책가방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 인간’이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대신 혼내 준다니,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입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오히려 어른인 제 학창 시절을 자꾸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은 생각보다 작은 사회입니다.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반에서 누가 목소리가 큰지, 누가 만만하게 보이는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도 나름의 권력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말이나 장난처럼 보이는 일도 당시에는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별것 아니라고 넘길 일도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전부처럼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세호에게 그림자 인간이 나타났을 때의 안도감이 이해되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를 대신 혼내 주고,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까지 척척 해결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학창 시절의 저에게도 이런 존재가 나타났다면 솔깃했을 것 같습니다. ‘네가 직접 싸울 필요 없어. 내가 해결해 줄게.’라는 말은 힘없는 아이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림자 인간의 도움에는 수명이라는 무서운 대가가 따라옵니다. 이 설정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존한다고 해서 실제로 수명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대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경험과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자 인간이 가져가는 ‘수명’은 그런 의미에서 세호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아영이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자 인간은 세호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영이는 세호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대신 해결해 주는 사람’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좋은 관계란 어쩌면 후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본문에서 세호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들은 학창 시절 특유의 답답함을 꽤 현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물건을 빼앗고, 운동화를 건드리고,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행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특히 아이들 사이의 괴롭힘은 가해자에게는 금방 잊히는 장난일 수 있지만 당하는 아이에게는 학교라는 공간 전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교훈보다 세호가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세호가 마지막까지 그림자 인간에게 보호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세호는 다시 문제 앞에 서고 자신의 힘으로 대응합니다. 용기란 갑자기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섭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있는데도 예전과는 다른 행동을 한 번 선택해 보는 것, 어쩌면 그 정도가 우리가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용기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조카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친구한테 괴롭힘당하면 이렇게 해”라고 정답을 알려 주는 것보다 세호의 이야기를 읽고 “너라면 그림자 인간의 도움을 받을 것 같아?”, “아영이와 그림자 인간의 도움은 뭐가 다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본 답이 어른이 준비한 모범답안보다 오래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는 생각보다 작은 일에도 많이 흔들렸고, 또 그 작은 일들을 하나씩 지나오면서 지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림자 인간>은 그런 어린 마음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 동화였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갈 힘까지 대신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읽어 주면서 저 역시 어린 시절의 저를 한 번쯤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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