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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에 내가 없다
권지연 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직장 일을 하고, 다시 저녁이면 학원과 숙제, 식사 준비를 챙깁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 가방에 내가 없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하는 책이었습니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단순히 엄마들의 에세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가방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여자의 삶처럼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가방 안은 가족을 위한 물건들로 가득 찼지만 정작 나를 위한 자리는 사라져 버린 여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명품 가방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렵게 돈을 모으고 비상금까지 털어 가방을 샀지만, 막상 손에 들어온 것은 기대했던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쇼핑백과 과한 포장을 받아 들고 느끼는 허탈함이 독자인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씁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저 역시 비슷한 경험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종종 물건 자체보다 그것이 가져다줄 만족감이나 인정, 행복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갖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막상 손에 넣고 나면 생각보다 허전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책은 그런 순간들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정말 가방 안에 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서재 방을 정리하다가 벽면 가득 꽂힌 책들을 발견하는 이야기도 저에게 깊게 남았습니다. "많이 알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좋아하던 취미도, 배우고 싶던 것들도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한때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공부하는 시간을 즐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의 일정이 먼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 속 인물들이 오래된 책장 앞에서 잊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어디엔가 여전히 예전의 꿈과 취향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덮여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 책이 누구에게도 정답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여덟 명의 여성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고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산부인과 의사도 울고, 공무원도 실수하고, 워킹맘도 지칩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눈물 닦을 휴지 한 장이 없었다"는 대목은 엄마라는 역할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자신의 감정은 챙기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족에게는 늘 필요한 것을 챙겨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가장 마지막 순서로 밀어두는 삶. 이 책은 그런 삶을 비난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가방 지퍼를 열어 보라고 말할 뿐입니다.
책을 덮고 나니 저도 제 가방을 한번 열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건보다 먼저 제 마음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하며 가장 행복한지 말입니다. <내 가방에 내가 없다>는 거창한 자기계발서도, 눈물을 강요하는 위로의 책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 주는 조용한 책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느라 늘 자신을 뒤로 미뤄 두었던 분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누구였지?"라는 생각을 해본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오래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