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무늬 모자
안 세르 지음, 송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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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내면의균열 #사랑의기록 #호피무늬모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우리는 흔히 사랑과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내면에 가닿았다고 믿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담한 목소리로 평가받는 안 세르 작가의 장편소설 <호피무늬 모자>는 정신질환을 앓다 마흔세 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쓰인 작품입니다. 작가는 세심한 연출가처럼 인간 내면의 은밀하고도 기묘한 모습을 보면서, 이젠 세상에 없는 친구 '파니'를 기억하는 '화자'의 끈질긴 애도의 시선을 통해 존재와 존재 사이의 거리가 무엇인지를 소설에서 보여줍니다. 이 소설의 번역을 맡은 송원경 번역가님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원작이 가진 모호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말의 흐름을 우리 고유의 섬세한 어조로 유려하게 옮겨내어 이 소설의 문학적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소설은 파니라는 한 인간이 가진 위태로움과 그를 지키려 애쓰는 화자의 헌신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점차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화자가 파니의 억양이나 표정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녀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모습을 남몰래 훔쳐보는 대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영혼의 저울 위에서 반짝이는 구리 접시 한쪽에는 삶을, 다른 한쪽에는 죽음을 올려놓고 남몰래 둘을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다면"이라는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작가는 인물의 대화나 역동적인 사건보다도 내면에 집중하면서 슬픔을 진지하게 보여줍니다.

 

저 역시 청소년 시절 마음의 병을 깊게 앓던 친구의 곁을 지키며, 그가 스스로 만든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고 제 개인적인 기억과 겹쳐지며 결국 저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소설 속 파니는 "내 내면의 그 괴물이 두려워"라고 말하며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고백합니다. 가장 뜻밖의 순간에 '호피무늬 모자'를 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생기와 활력을 뿜어내지만, 그 변화마저도 어딘가 위태롭고 슬프게 느껴집니다. 마치 삶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과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상실 이후의 지독한 애도와 그리움을 견뎌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심사위원단의 평처럼 "삶과 죽음의 연약함을 양손으로 소중히 받들고 있는 소설"이기에, 인간의 심리적 심연을 알아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특히 추천합니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명작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안 세르 작가의 작품들을 오랫동안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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