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인공지능이 결코 계산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이영환 지음 / 앵글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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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하는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며 저는 이 질문을 계속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지능과 정보 처리 능력을 인간다움의 핵심으로 여긴다면 AI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자리를 좁힙니다. 그러나 삶에는 계산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할지, 어떤 관계를 지킬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엇을 옳다고 여기며 살 것인지는 결국 한 사람이 살아내며 선택해야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AI 시대의 인간을 바라봅니다. 





이영환 작가님은 동국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오랫동안 미시경제학과 정보경제학을 가르친 경제학자입니다.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인간의 선택을 연구해 온 학자가 은퇴 후 AI와 대화하며 인간 자체를 다시 탐구한다는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작가님은 AI에 ‘스피리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타인·세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경제학에서 출발했지만 책의 중심에는 의식, 공감, 죽음, 자유의지, 세계관처럼 오래된 철학적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AI를 설명하는 기술 교양서라기보다 AI라는 새로운 대화 상대를 통해 인간의 조건을 생각해보는 철학적 대담이라고 읽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과 AI의 차이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표면적인 의식으로 언어와 논리,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AI에는 자아나 의식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사진에서는 AI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의식의 확장이 결여된 채 계산 능력만 무한히 강해지는 상황 역시 경계합니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지능 경쟁에서 인간이 AI를 이겨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능의 우위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자기 삶을 성찰하는 ‘의식’의 문제를 꺼냅니다. 작가님이 “지능은 공유 가능하지만, 의식은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AI는 답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생산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끝내 하나의 정답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런 문제를 성급히 해결하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동원해 계속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지적 활동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AI 활용법이나 미래 기술 전망을 찾는 독자보다는 AI 시대에 인간다움, 자유의지, 관계와 죽음 같은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더 잘 맞겠습니다. 특히 AI를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이 편리한 도구와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책의 대화 방식 자체에서도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제게 남은 것은 AI에게 얼마나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가보다, 그 답 앞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답을 대신 받아도 자기 삶의 판단까지 통째로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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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심리 - 타인을 읽는 시간 ㅣ 김성규의 문화심리학 읽기 1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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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으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성격이 좋다거나 예민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식으로 꽤 빠르게 판단합니다. 심리학 용어를 조금 알게 되면 이런 판단에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심리 문해력’도 저는 그런 태도와 연결해서 읽었습니다.





김성규 작가님은 영어문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죽음심리학과 영화 비평을 세부 전공으로 연구해왔습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심리> 역시 대학에서 진행한 교양 심리학 강의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책은 성격과 자존감에서 시작해 콤플렉스, 공황장애, 트라우마, 사랑, 외로움과 죽음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특히 심리 개념을 영화와 연결하는 방식이 눈에 띕니다.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과하면서 추상적인 심리 개념을 이해하도록 구성되어 있어 교양서로서 접근하기 편했습니다.





본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자존감을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작가님은 20세기 중반 심리학에서 논의된 ‘인생 4분의 1 위기’를 소개하면서 청년기에 자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를 이야기합니다. 이어 자존감을 처음 구체화한 학자 모리스 로젠버그의 논의를 소개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존재인 동시에 그 평가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나를 사랑하라’는 익숙한 조언보다 훨씬 까다로운 문제가 여기에서 생깁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사회적 경험과 타인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높일 수 있는 수치처럼 다루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도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성격을 설명하는 몇 가지 단어에 기대곤 합니다. 실제로 책에는 작가님 자신의 성격검사 결과와 생성형 AI를 활용한 성격 분석도 등장합니다. 개방성·성실성·외향성·우호성·신경성이라는 ‘빅 파이브’처럼 성격을 일정한 기준으로 살펴보는 틀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 유용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사람을 다 알아낸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검사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확정하는 답안지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런 점은 이상심리를 다룰 때 더욱 중요해 보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수동적인 공격성’이라는 개념이 소개됩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 어려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은밀하게 보복하는 행동을 설명합니다. 일상에서도 이런 심리학 용어는 타인의 행동을 손쉽게 규정하는 꼬리표가 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공황장애, 트라우마, 자기애성 성격장애, 색정망상처럼 실제 정신건강과 연결되는 주제까지 다룹니다. 교양 심리학의 유용함과 위험성이 만나는 지점도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을 알면 이해의 범위가 넓어지지만, 몇 가지 행동만 보고 타인을 진단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 지식이 판단을 빠르게 만드는 도구보다 판단을 조금 늦추는 도구가 될 때 더 의미가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심리>은 심리학을 처음 접하면서도 성격 유형이나 자기계발식 조언보다 인간의 마음을 폭넓게 살펴보고 싶은 독자에게 잘 맞겠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굿 윌 헌팅>, <블랙 스완>, <김씨 표류기> 등 익숙한 작품을 심리학으로 다시 보는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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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클래식 배틀
이채훈 지음 / 혜지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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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클래식 배틀>을 읽으며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비교’가 음악을 이해하는 꽤 좋은 방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클래식을 처음 접하면 작곡가와 작품명이 끝없이 등장해 자칫 음악사 연표를 외우는 공부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 놓으면 갑자기 이야기가 생깁니다.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같은 시대를 살면서 무엇이 달랐는지, 한 작곡가가 다른 작곡가를 어떻게 바라봤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목에는 ‘배틀’이라는 꽤 요란한 단어가 붙어 있지만, 읽으면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승패보다 음악가들 사이의 관계였습니다.





이 책을 쓴 이채훈 작가님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30년 동안 MBC 교양 다큐멘터리 PD로 일했으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혜수의 W> 같은 프로그램뿐 아니라 모차르트와 정경화를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도 제작했습니다. 이런 이력은 책의 구성에서도 드러납니다. 음악 이론을 차례로 설명하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건을 배치하고,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부터 바흐와 헨델, 베토벤과 하이든, 쇼팽과 리스트를 거쳐 조성진과 임윤찬까지 이어지는 구성도 클래식 음악사를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훑어보게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였습니다. 두 사람이 빈의 음악계에서 경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책에 소개된 내용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숙명의 원수라는 그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황제 요제프 2세에게 코믹 오페라를 제안했을 때 살리에리가 먼저 기회를 얻었고, 모차르트가 자신의 작품을 살리에리가 좋아하지 않았다고 기록한 일도 있습니다. 경쟁심과 불편한 감정은 분명 존재했던 셈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품이 같은 시기에 계속 무대에 올랐고,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작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일화도 소개됩니다.  




저 역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익숙한 몇몇 곡은 알아도 작곡가들의 관계나 시대적 맥락까지 알고 듣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은 곡도 배경을 알고 들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궁금했습니다. 책에 실린 QR코드가 꽤 유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헨델의 오페라를 둘러싼 이야기를 읽은 뒤 바로 음악을 들어보는 식으로 읽기와 감상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글에서 설명한 차이를 실제 소리로 확인하다 보면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꽤 구체적인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클래식 배틀>은 클래식에 관심은 있지만 음악사를 처음부터 공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분이나, 유명한 곡 몇 개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분에게 잘 맞겠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클래식 입문용으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클래식을 ‘외워야 할 교양’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다시 들어보고 싶은 음악’으로 옮겨 놓았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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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
앤드루 리 지음, 김광수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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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를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천재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뉴턴의 사과나 아르키메데스의 욕조처럼 역사에는 발견의 순간을 극적으로 압축한 장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시제품, 먼저 나온 아이디어, 다른 분야에서 빌려온 지식, 여러 사람의 수정이 뒤엉킨 뒤에야 하나의 혁신이 완성됩니다. 이 책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발명의 목록보다 이 복잡한 과정을 다시 역사 안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혁신의 역사를 읽고 있는데 오히려 ‘개인의 천재성’을 조금 덜 믿게 된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을 쓴 앤드루 리 작가님은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행정학과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호주 국립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호주 연방 하원의원과 재무부 차관보 등을 지낸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입니다. 그래서인지 혁신을 발명품 자체보다 그것이 탄생하고 확산될 수 있었던 경제·사회적 조건과 함께 바라봅니다. 김광수 번역가님은 1999년부터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겨온 전문 번역가님입니다. 번역이 꽤 좋아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혁신을 ‘시행착오와 개선, 팀, 교류’라는 세 가지 힘으로 설명합니니다. 특히 눈에 들어온 사례는 중국의 화약입니다. 화약 기술을 가진 중국은 오랫동안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지만 이후 유럽이 이를 받아들여 발전시키면서 힘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발명했다는 사실과 그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는 능력이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온도계가 등장하면서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던 추위와 더위를 공통된 수치로 비교할 수 있게 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저는 이것도 중요한 혁신이라고 느꼈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거나 비교할 수 없었던 세계를 측정하고 공유할 방법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혁신을 무조건 진보와 같은 말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책 역시 산업혁명의 그늘과 전쟁, 생명공학과 AI의 문제까지 함께 다룹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하나의 기술이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이나 위험을 만들어낸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책에서 전쟁과 전후 재건 과정에서 정부가 기술 발전의 중요한 주체였다는 점을 다루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시장의 경쟁만으로 혁신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무엇을 발명할 수 있는가와 그것을 사회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며, 혁신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역시 경제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역사뿐 아니라 경제사와 문명사에 관심 있는 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별로 생각하고 살아왔던 문명사를 이 책 한 권으로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채우지 못했던 교양을 얻은 기분이랄까요. 


#세상에서가장짧은혁신의역사 #앤드루리 #김광수 #비전코리아 #혁신의역사 #경제이야기 #경제경영 #경제학 #과학기술사 #기술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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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으로 가는 길
정형남 지음 / 애플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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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형남 작가님의 <새벽으로 가는 길>은 읽는 동안 마음이 자주 조용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거나 자극적인 반전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인물들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세상에서 조금씩 물러나 있습니다. 사람에게 지쳤거나, 과거에 상처를 입었거나,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뒤 조용한 곳으로 숨어든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도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꼭 도망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지쳤을 때는 당장 다시 세상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잠시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누구의 기대에도 맞추지 않고, 그냥 하루를 보내보는 시간 말입니다. 저 역시 살면서 사람과 일에 지쳐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잠깐 숨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어서인지 이런 장면들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누군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대단한 말을 해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건네고 옷을 챙겨주고 차를 마시고, 말없이 같은 자리에 있어줍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살다 보면 정말 힘들 때는 “힘내”, “좋아질 거야” 같은 말조차 부담스럽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옆에서 같이 밥을 먹어주는 사람, 괜찮냐고 계속 캐묻지 않고 그냥 있어주는 사람이 더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그런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책 속에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큰 성공을 꿈꾸거나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요즘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너무 빠르게 성공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금 더 벌어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고,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살다 보면 그냥 내 몫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사실은 너무 쉽게 지나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이 사람의 상처를 단순히 자연 속에서 쉬면 모두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과거의 상처와 사회적인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리 떠난다고 해도 과거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살면서 생긴 상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완벽하게 괜찮아지는 일은 현실에서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남아 있고, 아픈 일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기억이 내 삶 전체를 결정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올 수 있습니다.


<새벽으로 가는 길>은 화려한 사건이나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마음이 조금 지쳐 있거나, 사람에게 상처받아 잠시 조용한 곳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속도가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정형남 작가님의 다른 소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순문학다운 순문학을 만난 것 같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무척이나 기분 좋은 독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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