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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심리 - 타인을 읽는 시간 ㅣ 김성규의 문화심리학 읽기 1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으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성격이 좋다거나 예민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식으로 꽤 빠르게 판단합니다. 심리학 용어를 조금 알게 되면 이런 판단에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심리 문해력’도 저는 그런 태도와 연결해서 읽었습니다.

김성규 작가님은 영어문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죽음심리학과 영화 비평을 세부 전공으로 연구해왔습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심리> 역시 대학에서 진행한 교양 심리학 강의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책은 성격과 자존감에서 시작해 콤플렉스, 공황장애, 트라우마, 사랑, 외로움과 죽음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특히 심리 개념을 영화와 연결하는 방식이 눈에 띕니다.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과하면서 추상적인 심리 개념을 이해하도록 구성되어 있어 교양서로서 접근하기 편했습니다.

본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자존감을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작가님은 20세기 중반 심리학에서 논의된 ‘인생 4분의 1 위기’를 소개하면서 청년기에 자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를 이야기합니다. 이어 자존감을 처음 구체화한 학자 모리스 로젠버그의 논의를 소개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존재인 동시에 그 평가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나를 사랑하라’는 익숙한 조언보다 훨씬 까다로운 문제가 여기에서 생깁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사회적 경험과 타인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높일 수 있는 수치처럼 다루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도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성격을 설명하는 몇 가지 단어에 기대곤 합니다. 실제로 책에는 작가님 자신의 성격검사 결과와 생성형 AI를 활용한 성격 분석도 등장합니다. 개방성·성실성·외향성·우호성·신경성이라는 ‘빅 파이브’처럼 성격을 일정한 기준으로 살펴보는 틀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 유용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사람을 다 알아낸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검사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확정하는 답안지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런 점은 이상심리를 다룰 때 더욱 중요해 보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수동적인 공격성’이라는 개념이 소개됩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 어려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은밀하게 보복하는 행동을 설명합니다. 일상에서도 이런 심리학 용어는 타인의 행동을 손쉽게 규정하는 꼬리표가 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공황장애, 트라우마, 자기애성 성격장애, 색정망상처럼 실제 정신건강과 연결되는 주제까지 다룹니다. 교양 심리학의 유용함과 위험성이 만나는 지점도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을 알면 이해의 범위가 넓어지지만, 몇 가지 행동만 보고 타인을 진단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 지식이 판단을 빠르게 만드는 도구보다 판단을 조금 늦추는 도구가 될 때 더 의미가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심리>은 심리학을 처음 접하면서도 성격 유형이나 자기계발식 조언보다 인간의 마음을 폭넓게 살펴보고 싶은 독자에게 잘 맞겠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굿 윌 헌팅>, <블랙 스완>, <김씨 표류기> 등 익숙한 작품을 심리학으로 다시 보는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