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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으로 가는 길
정형남 지음 / 애플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형남 작가님의 <새벽으로 가는 길>은 읽는 동안 마음이 자주 조용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거나 자극적인 반전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인물들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세상에서 조금씩 물러나 있습니다. 사람에게 지쳤거나, 과거에 상처를 입었거나,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뒤 조용한 곳으로 숨어든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도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꼭 도망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지쳤을 때는 당장 다시 세상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잠시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누구의 기대에도 맞추지 않고, 그냥 하루를 보내보는 시간 말입니다. 저 역시 살면서 사람과 일에 지쳐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잠깐 숨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어서인지 이런 장면들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누군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대단한 말을 해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건네고 옷을 챙겨주고 차를 마시고, 말없이 같은 자리에 있어줍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살다 보면 정말 힘들 때는 “힘내”, “좋아질 거야” 같은 말조차 부담스럽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옆에서 같이 밥을 먹어주는 사람, 괜찮냐고 계속 캐묻지 않고 그냥 있어주는 사람이 더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그런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책 속에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큰 성공을 꿈꾸거나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요즘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너무 빠르게 성공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금 더 벌어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고,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살다 보면 그냥 내 몫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사실은 너무 쉽게 지나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이 사람의 상처를 단순히 자연 속에서 쉬면 모두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과거의 상처와 사회적인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멀리 떠난다고 해도 과거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살면서 생긴 상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완벽하게 괜찮아지는 일은 현실에서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남아 있고, 아픈 일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기억이 내 삶 전체를 결정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올 수 있습니다.
<새벽으로 가는 길>은 화려한 사건이나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마음이 조금 지쳐 있거나, 사람에게 상처받아 잠시 조용한 곳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속도가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정형남 작가님의 다른 소설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순문학다운 순문학을 만난 것 같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무척이나 기분 좋은 독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