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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
앤드루 리 지음, 김광수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를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천재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뉴턴의 사과나 아르키메데스의 욕조처럼 역사에는 발견의 순간을 극적으로 압축한 장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시제품, 먼저 나온 아이디어, 다른 분야에서 빌려온 지식, 여러 사람의 수정이 뒤엉킨 뒤에야 하나의 혁신이 완성됩니다. 이 책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발명의 목록보다 이 복잡한 과정을 다시 역사 안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혁신의 역사를 읽고 있는데 오히려 ‘개인의 천재성’을 조금 덜 믿게 된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을 쓴 앤드루 리 작가님은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행정학과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호주 국립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호주 연방 하원의원과 재무부 차관보 등을 지낸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입니다. 그래서인지 혁신을 발명품 자체보다 그것이 탄생하고 확산될 수 있었던 경제·사회적 조건과 함께 바라봅니다. 김광수 번역가님은 1999년부터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겨온 전문 번역가님입니다. 번역이 꽤 좋아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혁신을 ‘시행착오와 개선, 팀, 교류’라는 세 가지 힘으로 설명합니니다. 특히 눈에 들어온 사례는 중국의 화약입니다. 화약 기술을 가진 중국은 오랫동안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지만 이후 유럽이 이를 받아들여 발전시키면서 힘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발명했다는 사실과 그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는 능력이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온도계가 등장하면서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던 추위와 더위를 공통된 수치로 비교할 수 있게 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저는 이것도 중요한 혁신이라고 느꼈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거나 비교할 수 없었던 세계를 측정하고 공유할 방법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혁신을 무조건 진보와 같은 말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책 역시 산업혁명의 그늘과 전쟁, 생명공학과 AI의 문제까지 함께 다룹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하나의 기술이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이나 위험을 만들어낸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책에서 전쟁과 전후 재건 과정에서 정부가 기술 발전의 중요한 주체였다는 점을 다루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시장의 경쟁만으로 혁신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무엇을 발명할 수 있는가와 그것을 사회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며, 혁신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역시 경제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역사뿐 아니라 경제사와 문명사에 관심 있는 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별로 생각하고 살아왔던 문명사를 이 책 한 권으로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채우지 못했던 교양을 얻은 기분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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