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영어 필사 - 세네카,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노윤기 옮김 / 베이직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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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들어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철학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어려운 철학 이론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와 타인의 기준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닐까요.





특히 요즘은 무언가를 천천히 생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잠깐 스마트폰을 열어도 숏폼, 틱톡, 릴스처럼 몇 초 단위로 새로운 영상이 이어집니다. 하나를 충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것이 나타나고, 재미없으면 곧바로 넘겨버립니다. 그렇게 수십 개의 영상을 보고 나면 분명 많은 것을 본 것 같은데 정작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외모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특정 연예인의 얼굴이나 몸매, 옷차림이 유행하면 어느 순간 그것이 하나의 정답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모두가 비슷한 아름다움을 좇고, 그 기준에 가까울수록 더 좋은 사람처럼 평가받는 분위기도 생깁니다. 타인의 시선을 계속 의식하다 보면 정작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철학하는 영어 필사>를 처음 펼쳤을 때 묘하게 반가웠습니다. 이렇게 빠른 시대에 오히려 2천 년 전 사람의 문장을 영어로 읽고, 그것을 손으로 천천히 옮겨 쓰라고 권하는 책이라니.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는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글에서 가려 뽑은 내용을 영어 문장으로 담았습니다. 하루 분량이 길지 않고 영어 원문 아래에는 우리말 번역과 주요 어휘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QR코드를 이용해 원어민 음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옆 페이지에 직접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영어 공부라는 측면에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단어를 몇 개 외웠는지, 문제를 몇 개 맞혔는지처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필사는 조금 다릅니다. 문장을 직접 쓰려면 눈으로 읽을 때는 지나쳤던 표현과 어순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영어 문장의 호흡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의미까지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빨리 많이’와는 정반대의 공부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문장 중 하나는 삶을 지나치게 비탄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조금 가볍게 바라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겉모습보다 그 안에 있는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선을 찾으라는 대목도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너무 잘 맞는 이야기라 놀라웠습니다. 2천 년 전에 쓰인 생각인데도 SNS 속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는 현대인에게 하는 말처럼 읽혔습니다.


세네카의 문장들이 모든 고민에 정답을 내려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100일을 반드시 완주해야 하는 영어 공부책’으로만 접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복잡한 날 아무 페이지나 펼쳐 한 문장을 읽고, 영어로 천천히 옮겨 쓰고, 그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방식이 오히려 잘 어울립니다.


저에게 <철학하는 영어 필사>는 영어와 철학이 절묘하게 만난 책이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펼쳤다가 삶에 관한 문장을 만나고, 철학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을 익히게 됩니다.   


하루에 단 한 문장이라도 좋습니다. 2천 년 전 누군가가 고민했던 삶의 문제를 천천히 손으로 써보면서,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 저에게 <철학하는 영어 필사>는 영어 교재 한 권이 생긴 것이라기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한가운데 오랜만에 만난 진정성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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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 - 읽다 보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일상 밀착 물리학 이야기
다나카 미유키.유키 치요코 지음, 오쓰카 아야카 그림, 이효진 옮김 / 오아시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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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형적인 인문계열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취향이 하나 있습니다. 어릴 때는 과학, 그중에서도 물리를 꽤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알아가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이후 공부의 방향이 인문학으로 굳어지면서 물리는 자연스럽게 제 관심사에서 멀어졌습니다. 싫어졌다기보다 그냥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를 읽으면서 그때의 감각이 뜻밖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책에는 거창한 실험실도, 처음부터 독자를 기죽이는 복잡한 수식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울과 안경, 냉장고, 프라이팬, 전자레인지, 이어폰, 스마트폰, 저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해 보이는 물건 안에 어떤 물리 법칙이 숨어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방식이 저에게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냉장고는 너무 익숙해서 작동 원리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내부의 열을 어떻게 밖으로 이동시키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냉장고 뒷부분이 뜨거운 이유까지 하나의 원리로 연결됩니다. 전자레인지와 와이파이, 안경과 빛의 굴절, 호신용 경보기와 압전 효과처럼 평소에는 전혀 연결하지 않았던 것들도 물리라는 언어를 통과하면 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이 책이 과학 지식을 ‘외워야 할 정보’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과학에서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이 대개 공식과 문제 풀이가 전면에 등장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좋아했던 것은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숟가락에 얼굴을 비추면 왜 거꾸로 보이는지, 악어가 헬륨 가스를 마시면 목소리가 달라질지, 3D 안경을 두 개 겹쳐 쓰면 어떻게 보일지 같은 질문은 조금 엉뚱합니다. 그런데 그 엉뚱함 때문에 오히려 다음 설명을 읽고 싶어집니다.





물론 깊이 있는 물리학 책을 기대한다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특정 물리 개념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데 있기보다, 과학과 멀어진 독자가 일상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도록 만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과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오히려 잘 맞습니다. 일러스트가 많고 설명도 어렵지 않아 한 장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과학 지식보다 오랜만에 느껴본 ‘원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독서가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왜 거울에는 모습이 비치는지, 전기는 어떻게 흐르는지, 냉장고는 어떻게 차가워지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물건들을 너무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나머지 오히려 질문하지 않게 된 셈입니다.


<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는냉장고 문을 열고,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 평범한 순간에도 물리학은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동안 물리를 좋아했던 제가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꽤 오래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아이가 슬쩍 다시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이건 왜 이렇게 되는 건데?” 하고요. 과학책이 제게 다시 질문하는 재미를 돌려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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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의 법칙
김주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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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준비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만드는 능력과 그것을 팔 수 있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상품의 완성도가 충분히 높다면 결국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봐 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사업을 구상하고 상품을 기획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고객이 왜 자신에게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매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판매의 법칙>은 제‘사업가는 고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18년간 부동산 중개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판매를 결국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선택에는 욕망과 두려움, 확증편향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며, 판매자는 상대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동기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거절 역시 단순한 ‘싫다’로 받아들이기보다 무엇이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지 살펴보고, 질문을 통해 조건과 관점을 다시 설정하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객에게 무조건 맞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듣되 판매자에게도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 역시 이 문제를 자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상품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운영 방식도 복잡해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필요를 읽고 그것을 상품에 적절한 방식으로 반영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매의 법칙>에서 제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특정한 화법이나 협상 공식보다 판매를 바라보는 태도였습니다. 사업가는 자신이 만든 것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와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끊임없이 오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좋은 상품을 만드는 능력과 그 상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기술이며, 사업을 하려면 결국 두 가지를 모두 배워야 합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지금의 제게 판매는 여전히 낯선 영역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것을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주겠지’라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상품을 만들었다면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하고, 가격을 제시해야 하며, 때로는 거절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거절 속에서 고객이 무엇을 원했는지 살펴보고 다시 상품을 수정할 단서를 찾아야 합니다.


<판매의 법칙>을 읽고 나니 판매란 결국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사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제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만들고 세상에 내놓으려는 시점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만큼이나 ‘왜 사람들이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판매의법칙 #모티브 #김주환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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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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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이상한 지점에 도달합니다.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해양오염, 산림 파괴 같은 문제를 각각 공부할수록 모든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지는데, 정작 ‘인간이 자연을 파괴했다’라는 문장 하나로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인간이 만든 환경 안에서도 생물은 살아남고 이동하고 번식하며, 때로는 인간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태계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패치 인류세>는 바로 그 복잡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을 비롯한 저자들이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제목 그대로 ‘패치 인류세’입니다. 인류세를 지구 전체에 동일하게 내려앉은 하나의 거대한 현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인간의 산업 활동이 만들어낸 변화가 각각의 장소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댐과 운하, 플랜테이션, 하수도, 공장과 선박 같은 인프라가 들어서면서 기존 생태계가 흔들리고, 그 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생물과 물질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이 책이 거대한 수치보다 ‘관찰’을 강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흔히 지구 평균기온이나 탄소배출량 같은 숫자부터 떠올립니다. 물론 이런 데이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전 지구적 데이터만으로는 각각의 장소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사를 인간과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체와 무생물의 시간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관찰의 기술’로 설명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제가 좋아하는 과학의 모습과도 잘 맞았습니다. 저는 과학에서 이미 정해진 답을 배우는 것보다 하나의 현상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과정에 더 흥미를 느끼는 편입니다. <패치 인류세> 역시 환경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답을 내놓기보다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를 바꿉니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류학, 역사학, 건축, 예술의 방법까지 동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생태계는 실험실처럼 변수를 하나씩 떼어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장소의 식물과 동물, 미생물, 토양뿐 아니라 그곳을 만든 산업시설과 노동, 식민주의의 역사까지 함께 보아야 현재의 생태적 풍경이 설명됩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이 관점을 상당히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프랑스 식민정부가 하노이에 만든 근대적 하수도는 인간에게는 위생을 위한 인프라였지만 쥐에게는 이동하고 번식하기 좋은 새로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식용 목적으로 여러 지역에 들여온 황소개구리는 인간이 설정한 용도를 벗어나 토착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고, 후쿠시마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국경은커녕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조차 개의치 않은 채 이동했습니다. 책이 말하는 ‘이탈성’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고 이동시키지만, 일단 세계에 풀려난 존재는 인간의 계획표를 읽어주지 않습니다. 자연 입장에서는 인간의 기획서 따위 알 바가 아닌 셈입니다.


플랜테이션에 관한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단일 작물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업 시스템은 경제적으로는 생산시설이지만 생태적으로 보면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환경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특정 생물은 쇠퇴하는 반면 다른 생물은 오히려 번성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환경파괴를 단순히 ‘자연이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파괴된 뒤 텅 빈 공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조건 속에서 다시 움직입니다. 문제는 그 새로운 생태적 관계가 인간에게 편리하거나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형성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도 조금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기후위기나 생태계 파괴를 주로 ‘인간이 자연에 가한 피해’라는 두 항의 관계로 생각했다면, <패치 인류세>는 그 사이에 수많은 행위자를 집어넣습니다. 식물과 동물, 균류와 미생물, 방사성 물질과 이산화탄소, 산업시설과 운송망, 그리고 그 장소를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까지 들어옵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패치 인류세>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설득하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환경’이라고 부르고 있었는지부터 다시 묻게 합니다. 처음에는 꽤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황소개구리, 플랜테이션, 하수도, 방사능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그 개념이 실제 세계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책을 덮고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지구를 엄청나게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가 되었지만, 자신이 바꿔놓은 지구에서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모두 결정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인류세의 가장 큰 역설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문제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거대한 지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꾸어놓은 각각의 장소에서 지금 무엇이 살아가고, 이동하고, 사라지고, 새롭게 번성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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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갤브레이스 돈을 말하다 - 화폐의 탄생부터 금융 위기까지 돈에 관한 모든 역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강국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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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사업을 준비하면서 돈을 예전보다 훨씬 현실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돈을 주로 ‘얼마를 벌 것인가’의 문제로 봤다면, 지금은 비용을 어떻게 배분할지, 현금흐름을 어떻게 유지할지, 가격을 어떻게 정할지, 무엇에 투자하고 무엇을 보류할지처럼 훨씬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시기에 읽은 <존 갤브레이스 돈을 말하다>는 돈을 단순한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제도와 신뢰, 권력의 문제로 보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작가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경제 현상을 전문 용어 뒤에 숨기지 않고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낸 인물입니다. 이강국 번역가님 역시 경제학을 전공한 연구자로서 책의 역사적·경제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화폐가 언제나 단단한 실체였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금속 주화에서 지폐, 은행 신용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결국 ‘이것을 돈으로 인정하자’는 사회적 합의의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이 책에서 로마 시대 주화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여러 지역에서 금과 은이 부족해 대체 화폐가 등장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돈의 가치는 물질 자체보다 신뢰에 더 크게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숫자로만 존재하는 예금이나 모바일 결제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제도가 그것을 보증하며, 사람들이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돈이 됩니다. 사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 대목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사업에서도 고객이 지불하는 돈은 상품 자체만이 아니라 브랜드와 약속,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갤브레이스 작가님은 또한 금융의 역사가 새로운 해결책과 새로운 문제를 반복해서 만들어온 과정이라고 봅니다. 주화의 품질을 통제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고, 금융을 안정시키기 위해 은행을 만들고, 다시 은행을 관리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만들었지만 매번 새로운 부작용이 생깁니다. 이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제도를 만들면 문제가 끝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 경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특히 돈과 금융은 인간의 욕망, 두려움, 낙관, 권력과 얽혀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해법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사업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매출을 늘리는 방법 하나를 찾았다고 사업이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출이 늘면 비용과 세금, 운영 복잡성, 재고와 고객 대응 같은 새로운 문제가 따라옵니다. 돈의 문제는 늘 구조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것은 인플레이션과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를 인간의 망각과 연결하는 시선입니다. 한동안 물가가 안정되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잊고, 호황이 오래 지속되면 위험을 과소평가합니다. 반대로 위기를 겪은 직후에는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결국 경제는 숫자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기억과 감정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저 역시 사업을 준비하면서 ‘잘되면 더 투자해야지’라는 생각과 ‘혹시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사이를 오갑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겁먹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세워 돈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돈을 좋아하거나 두려워하는 감정과 별개로, 현금흐름과 비용 구조를 계속 확인하는 습관이 사업에서는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존 갤브레이스 돈을 말하다>는 투자 비법이나 부자가 되는 공식을 알려주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공식이 반복해서 실패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업을 시작하거나 투자와 경제에 관심이 생긴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돈을 단순히 많이 가지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왜 돈이 움직이고 사람들은 왜 금융 앞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를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도 앞으로 사업을 키우면서 수익 자체만 보지 않고,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구조와 그 구조를 떠받치는 신뢰를 더 오래 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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