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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 - 읽다 보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일상 밀착 물리학 이야기
다나카 미유키.유키 치요코 지음, 오쓰카 아야카 그림, 이효진 옮김 / 오아시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전형적인 인문계열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취향이 하나 있습니다. 어릴 때는 과학, 그중에서도 물리를 꽤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알아가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이후 공부의 방향이 인문학으로 굳어지면서 물리는 자연스럽게 제 관심사에서 멀어졌습니다. 싫어졌다기보다 그냥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를 읽으면서 그때의 감각이 뜻밖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책에는 거창한 실험실도, 처음부터 독자를 기죽이는 복잡한 수식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울과 안경, 냉장고, 프라이팬, 전자레인지, 이어폰, 스마트폰, 저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해 보이는 물건 안에 어떤 물리 법칙이 숨어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방식이 저에게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냉장고는 너무 익숙해서 작동 원리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내부의 열을 어떻게 밖으로 이동시키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냉장고 뒷부분이 뜨거운 이유까지 하나의 원리로 연결됩니다. 전자레인지와 와이파이, 안경과 빛의 굴절, 호신용 경보기와 압전 효과처럼 평소에는 전혀 연결하지 않았던 것들도 물리라는 언어를 통과하면 서로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이 책이 과학 지식을 ‘외워야 할 정보’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과학에서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이 대개 공식과 문제 풀이가 전면에 등장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좋아했던 것은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숟가락에 얼굴을 비추면 왜 거꾸로 보이는지, 악어가 헬륨 가스를 마시면 목소리가 달라질지, 3D 안경을 두 개 겹쳐 쓰면 어떻게 보일지 같은 질문은 조금 엉뚱합니다. 그런데 그 엉뚱함 때문에 오히려 다음 설명을 읽고 싶어집니다.

물론 깊이 있는 물리학 책을 기대한다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특정 물리 개념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데 있기보다, 과학과 멀어진 독자가 일상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도록 만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과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오히려 잘 맞습니다. 일러스트가 많고 설명도 어렵지 않아 한 장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과학 지식보다 오랜만에 느껴본 ‘원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독서가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왜 거울에는 모습이 비치는지, 전기는 어떻게 흐르는지, 냉장고는 어떻게 차가워지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물건들을 너무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나머지 오히려 질문하지 않게 된 셈입니다.
<냉장고 속 과학, 저울 위 물리>는냉장고 문을 열고,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 평범한 순간에도 물리학은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동안 물리를 좋아했던 제가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꽤 오래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아이가 슬쩍 다시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이건 왜 이렇게 되는 건데?” 하고요. 과학책이 제게 다시 질문하는 재미를 돌려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