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영어 필사 - 세네카,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노윤기 옮김 / 베이직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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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들어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철학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어려운 철학 이론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와 타인의 기준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닐까요.





특히 요즘은 무언가를 천천히 생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잠깐 스마트폰을 열어도 숏폼, 틱톡, 릴스처럼 몇 초 단위로 새로운 영상이 이어집니다. 하나를 충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것이 나타나고, 재미없으면 곧바로 넘겨버립니다. 그렇게 수십 개의 영상을 보고 나면 분명 많은 것을 본 것 같은데 정작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외모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특정 연예인의 얼굴이나 몸매, 옷차림이 유행하면 어느 순간 그것이 하나의 정답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모두가 비슷한 아름다움을 좇고, 그 기준에 가까울수록 더 좋은 사람처럼 평가받는 분위기도 생깁니다. 타인의 시선을 계속 의식하다 보면 정작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철학하는 영어 필사>를 처음 펼쳤을 때 묘하게 반가웠습니다. 이렇게 빠른 시대에 오히려 2천 년 전 사람의 문장을 영어로 읽고, 그것을 손으로 천천히 옮겨 쓰라고 권하는 책이라니.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는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글에서 가려 뽑은 내용을 영어 문장으로 담았습니다. 하루 분량이 길지 않고 영어 원문 아래에는 우리말 번역과 주요 어휘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QR코드를 이용해 원어민 음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옆 페이지에 직접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영어 공부라는 측면에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단어를 몇 개 외웠는지, 문제를 몇 개 맞혔는지처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필사는 조금 다릅니다. 문장을 직접 쓰려면 눈으로 읽을 때는 지나쳤던 표현과 어순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영어 문장의 호흡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의미까지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빨리 많이’와는 정반대의 공부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문장 중 하나는 삶을 지나치게 비탄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조금 가볍게 바라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겉모습보다 그 안에 있는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선을 찾으라는 대목도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너무 잘 맞는 이야기라 놀라웠습니다. 2천 년 전에 쓰인 생각인데도 SNS 속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는 현대인에게 하는 말처럼 읽혔습니다.


세네카의 문장들이 모든 고민에 정답을 내려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100일을 반드시 완주해야 하는 영어 공부책’으로만 접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복잡한 날 아무 페이지나 펼쳐 한 문장을 읽고, 영어로 천천히 옮겨 쓰고, 그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방식이 오히려 잘 어울립니다.


저에게 <철학하는 영어 필사>는 영어와 철학이 절묘하게 만난 책이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펼쳤다가 삶에 관한 문장을 만나고, 철학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을 익히게 됩니다.   


하루에 단 한 문장이라도 좋습니다. 2천 년 전 누군가가 고민했던 삶의 문제를 천천히 손으로 써보면서,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 저에게 <철학하는 영어 필사>는 영어 교재 한 권이 생긴 것이라기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한가운데 오랜만에 만난 진정성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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