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터 부인의 정원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74
N. M. 보데커 지음, 이혜원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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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오래 읽어 온 독자의 입장에서, 저는 종종 그림책을 압축된 서사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분량 안에 이미지와 문장이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재스터 부인의 정원>은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감각과 해석이 계속 갱신되는 예술적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고전 그림책이 지닌 절제된 유머와 서정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느리게 읽는 경험을 다시 상기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은 N. M. 보데커 작가님이 글과 그림을 함께 맡은 작품으로, 전후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머와 상상력을 결합한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번역은 이혜원 작가님이 맡아 원문의 절제된 문장과 정서를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옮겼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재스터 부인의 정원 한구석에서 살아가던 고슴도치가 우연한 사고로 등에 꽃을 피우게 되고, 그 모습을 본 재스터 부인이 이를 꽃 도둑으로 오해하면서 추격극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 소동은 긴박감 대신 유머와 리듬으로 채워지며, 결국 두 존재가 다시 정원으로 돌아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잔잔히 수렴됩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오해라는 장치를 통해 긴장을 만들면서도 그것을 전혀 위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호러 만화의 서사 구조특히 시각적 오인과 공포의 생성에 관심이 많은데, 이 책은 그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보통 호러에서는 보이는 것과 실제의 괴리가 공포를 낳지만, 여기서는 같은 괴리가 웃음과 따뜻함으로 전환됩니다. 꽃이 달린 고슴도치는 충분히 기이한 이미지이지만, 작가는 이를 불안이 아니라 생동감으로 밀어붙입니다. 이 점에서 <재스터 부인의 정원>은 시각적 낯섦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한때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고 과도하게 해석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오해가 마치 명백한 사실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상상에 가까운 해석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속 재스터 부인의 추격 또한 결국 그런 인간적 착각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오해 이후에 이어지는 태도입니다. 고슴도치가 여전히 그 정원에 머물고, 재스터 부인이 여전히 우유를 내어놓는 장면은 관계란 설명이 아니라 반복되는 배려로 유지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윤리적 감각을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이 책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조용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큰 사건이나 극적인 화해 없이도, 서로를 향한 작은 행위들이 관계를 지속시킨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 작품은 아이보다는 오히려, 인간관계의 피로를 한 번쯤 겪어 본 어른에게 더 깊이 닿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의 과잉 소비에 지친 독자, 혹은 빠른 서사에 익숙해진 독자에게 <재스터 부인의 정원>은 속도를 늦추고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책입니다.




 

#재스터부인의정원 #N.M.보데커 #그림책 #문학 #추천도서 #신간도서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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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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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인간의태도 #쌤앤파커스 #카를로로베리 #과학 #추천도서 #신간도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현대 과학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의 한 사상가에게서 다시 묻는 책입니다.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과학을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유의 태도로 규정하시며, 아낙시만드로스를 인류 최초의 과학자로 재조명합니다. 이 책은 과학의 출발점을 뉴턴이나 다윈이 아니라, 신화를 의심하기 시작한 한 인간의 질문으로 돌려놓습니다. 그 질문은 단순합니다. “자연은 자연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단순한 질문이야말로 인류의 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과학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한 단계 더 깊은 층위로 이끕니다.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 양자 중력연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에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등에서 과학을 철학적 사유의 영역까지 확장해온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옮긴이 김동규 작가님은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및 대학원 출신으로, 과학·경제 분야 번역을 꾸준히 수행해 온 전문 번역가입니다. 이 책 역시 개념의 정확성과 문장의 균형이 잘 유지되어 있어, 과학사적 논의를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전공한 배경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사유에서는 세계를 도덕적 질서나 천명(天命)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공자나 맹자의 사유에서도 자연은 윤리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아낙시만드로스가 신적 설명을 배제하고 자연 자체의 원리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점은 매우 급진적인 전환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의 시작이라기보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한 사건으로 읽힙니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비판과 배반의 윤리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 탈레스의 이론을 존중하면서도 과감히 수정하고 반박합니다. 이는 과학이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정과 갱신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이 점은 과학철학에서 논의되는 반증주의나 패러다임 전환 이론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또한 과학과 민주주의가 동일한 비판적 대화 구조위에 놓여 있다는 설명은, 지식 생산이 사회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냅니다.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라기보다, 사고 방식 자체를 점검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문학적 배경을 가진 독자, 혹은 지식의 방법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확실한 답을 찾기보다,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싶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 책은 과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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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놀라운 우주라니! - 망원경으로 본 별밤 기행 탐 그래픽노블 13
에마뉘엘 보두엥 지음, 실뱅 리보 그림, 장한라 옮김 / 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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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놀라운 우주라니!>는 천문학을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입문서이자 그래픽노블입니다. 에마뉘엘 보두엥 작가님은 오랜 관측 경험을 지닌 물리학자로서, 그리고 실뱅 리보 작가님은 아마추어 천문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각각의 전문성을 자연스럽게 결합합니다. 여기에 장한라 번역가님이 안정된 문장으로 독서 흐름을 정돈해,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친화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주는 구성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개론서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릅니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여행 서사라는 장치를 통해 천문학 개념을 단계적으로 체화하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달에서 출발해 행성, 은하, 우주의 미래로 확장되는 구조는 사실상 현대 우주론의 축소판입니다. 일반적인 천문학 입문서가 개념 중심의 단절된 설명을 택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관측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확장하게 만듭니다. 이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서사적 방식으로 우주를 설명했던 전통을, 보다 가볍고 시각적인 형태로 계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관측 이미지도 좋았습니다. 대중이 흔히 접하는 우주의 이미지는 대부분 장시간 노출과 후처리를 거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실제 망원경 관측에서는 흐릿하고 대비가 낮은 천체가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천문학을 직접 해볼 수 있는 활동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관측 천문학의 본질이 화려함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과 해석에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블랙홀, 은하, 우주의 미래와 같은 거시적 주제를 일상적 언어로 풀어낸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은하 중심부의 어둠을 단순히 블랙홀로 환원하지 않고, 별의 밀도와 가스 분포라는 맥락에서 설명하는 접근은 과학적 엄밀성을 유지하면서도 오해를 줄입니다. 이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처럼 이론 중심으로 접근하는 책들과 달리, 관측과 체험을 기반으로 우주를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우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나는 이 우주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태도로 이동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나 놀라운 우주라니!>는 천문학 입문자뿐 아니라, 이미 우주 관련 교양서를 접해본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재독의 가치를 제공합니다. 특히 직접 관측을 시도해보고 싶은 독자, 혹은 자녀와 함께 과학적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성인 독자에게 적합합니다. 지식을 쌓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밤하늘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에 가깝습니다.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별을 올려다볼 때마다 떠오르는 작은 기준점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나놀라운우주라니! #에마뉘엘보두엥 ##탐그래픽노블 #추천도서 #신간도서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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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독서에 대하여 - 독서를 이기는 것은 없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스즈키 요시코.황미숙 옮김 / 비타민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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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독서에대하여 #비타민북 #쇼펜하우어 #철학 #독서 #추천도서 #신간도서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쇼펜하우어 독서에 대하여><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잘 알려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보다 일상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린, 밀도 높은 철학적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그의 후기 저작인 <소품과 부록> 가운데 사유·글쓰기·독서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선집으로, 단순한 독서론을 넘어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번역을 맡은 스즈키 요시코 번역가와 황미숙 번역가 역시 독일문학과 일본어 번역 양쪽에 정통한 이력으로, 원문의 논리성과 간결함을 비교적 충실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쇼펜하우어가 독서를 거의 위험한 행위에 가깝게까지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독서를 타인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라 단언하며, 다독이 오히려 사유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단순한 독서 회의론이 아니라, 칸트 이후 독일 철학이 강조해온 자율적 이성의 계보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외부로부터 주어진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이 점에서 그의 주장은 니체의 자기 극복이나 몽테뉴의 자기 성찰적 글쓰기와도 은근히 맞닿아 있습니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지점은 문체와 사유의 일치에 대한 그의 엄격한 기준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좋은 글이란 결국 생각이 명료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보며, 기교나 수사보다 사유의 깊이를 우선합니다. 이는 오늘날 콘텐츠 과잉 시대에 더욱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요약본, 해설서, 2차 콘텐츠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그는 오히려 고전 원전을 직접 읽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권위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사유의 ‘1차 경험을 중시하는 철학적 입장으로 읽힙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서 행위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 데 있습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읽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읽는가’, 더 나아가 나는 생각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특히 읽은 내용을 곱씹고 자기화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학문 연구나 글쓰기를 병행하는 독자에게 실질적인 지침으로 기능합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을 내 사유의 일부로 변환하는 능력이야말로 지적 성장의 핵심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쇼펜하우어 독서에 대하여>를 읽은 이후 제 독서 태도에는 분명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일정한 분량을 채우는 데에 만족하며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를 은근한 성취 기준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한 문장을 읽더라도 멈추어 서서 그것이 제 사고 안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확장되는지를 확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책을 덮은 이후의 시간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읽은 직후 곧바로 다른 텍스트로 넘어가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독서량은 다소 줄었지만, 대신 한 권의 책이 남기는 잔향과 사유의 깊이는 훨씬 또렷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생각을 수집하는 데서 벗어나 제 생각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를 독서의 중심에 두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독서법의 변화가 아니라 사유 방식 전반을 재정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이 책은 다독에 익숙하지만 정작 깊이 있는 사유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 혹은 글쓰기와 연구를 병행하며 자신의 사유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분들께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지식이 아닌, 오래 남는 생각을 원하신다면 <쇼펜하우어 독서에 대하여>는 꽤 불편하지만 정직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은 읽는 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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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배신 - 은밀하고 정교하게 숨겨온 인간 본성의 비밀
조너선 R. 굿먼 지음, 박지혜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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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배신 #추천도서 #신간도서 #인문학 #철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정함의 배신>은 인간 본성을 둘러싼 오래된 낙관주의를 정면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조너선 R. 굿먼 작가님은 인간의 협력과 이타심을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재해석하며, 우리가 믿어온 다정함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에모리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인간 진화를 연구한 사회과학자라는 이력답게, 철학·생물학·사회과학을 넘나드는 분석이 매우 정교합니다. 번역을 맡은 박지혜 번역가님 역시 통번역 석사 출신으로, 개념적 난이도가 높은 내용을 안정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이 책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인간을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나누는 기존의 도식 자체를 해체한다는 점입니다. 작가님은 협력이라는 것이 결코 순수한 이타성의 발현이 아니라, 자원을 확보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교한 신호 체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홉스와 루소 사이에서 반복되던 인간 본성 논쟁을 한 단계 비틀어, 보다 현실적인 층위로 끌어내립니다. 개인적으로 윤리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은, 규범이 언제나 이상을 말하지만 실제 인간은 그 이상을 계산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학문적으로 설득력 있게 드러냅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겉으로는 협력과 학문적 연대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연구 성과와 저자 순서를 둘러싼 미묘한 경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이해하려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이 오히려 구조적이고 진화적인 패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협력하면서도 동시에 경쟁하는 존재라는 이중성이, 오히려 더 정직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님이 가짜 신호라는 개념을 통해 도덕과 언어의 기능을 재해석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선의를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고 믿지만, 그 언어 자체가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게임이론이나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신호 이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그러한 이론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더 설득력을 갖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은 분들보다는, 그 믿음이 왜 자주 배반당하는지 궁금한 분들께 특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조직 생활을 하거나,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불균형을 경험해 보신 분이라면 더욱 공감하실 것입니다. 동시에 냉소로 끝나지 않고, 현실적인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을 덜 믿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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