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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특별판 - 반지 원정대 + 두 개의 탑 + 왕의 귀환 톨킨 문학선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보원 외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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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가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 남김. 뜯어보딘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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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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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따옴표 안의 문장들은 모두 인용구입니다.



ⓘⓝⓣⓡⓞ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표준국어대사전)’이다. 더 쉽게 생각하면 흔히 ‘미술’로 환유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에게 ‘예술’이 꼭 필요한가?

이는 창작인, 관람자, 수집가 등의 입장을 편가르거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이 아니다. 자연에서 파생되지 않고 인간이 특별하게 마련해야 가치가 생기는 이 ‘예술’이 때론 너무 거대하거나 우습게 느껴지곤 한다는 게 문제다. 유행을 좇아 전시회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보이곤 한다. 해외 여행 계획을 짤 때 너나 할 것 없이 유명 미술관 방문 일정을 2시간 정도 넣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사전에 정의된 ‘아름다움’을 온전히 흡수하기에 충분치 않단 걸 공감할 것이다. 거대한 유화 작품 앞에, 혹은 의미 불명의 행위 예술가 앞에 서 있을 때마다 스스로의 지식 혼은 존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기존과 다른 영역에서 분석하며 새롭게 (비록 1972년에 소개 되었지만) 주장한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관점은 '미술의 영역과 그 여타의 다른 삶의 영역과의 복잡한 관계를 보다 자세하게 검토하려는 것'으로, 이것은 이른바 신미술사학이 일반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이다. 이에 따라 본 서적은 정체를 알 수 없고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예술’을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총 7 챕터에 걸쳐 설명한다.


1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을 ‘보는 행위’에 대해 역설하며 그 의미를 읽는 방식이 얼마나 주관적인가에 대해 ‘동시성’이란 키워드 아래에서 설명한다. 하나의 작품에, 혹은 여러가지 작품들의 배열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담겨 있는 동시성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살펴보며 기존에 미술을 간주하던 시각을 깨뜨린다.

예를 들어 어떤 미술관에 유화 작품 A가 걸려있다고 가정할 때, 인간 P와 Q는 객관적 사실보다는 본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 우선 초점을 맞춘다. P가 전체적인 색감에 감탄할 때, Q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구도를 생각하는 식이다. 즉, 감상 체계는 보는 이의 의식이 지대하게 포함된 채 이루어지며, 따라서 예술을 감상하는 관점은 여러가지로 분화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림의 모든 요소들은 동시에 보이도록 그려’져서 저마다 ‘결론을 다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유화 작품 B와 C가 A를 사이에 두고 걸려있다면 동시성은 다른 종류의 것이 된다. ‘한 이미지의 의미는 바로 그 옆에, 또는 바로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이는 내가 도서나 영화는 좋아하지만, 정적인 미술 작품이나 공연 혹은 연극 따위의 장르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를 대신 피력해준다. 잘 편집된 순서에 따라 특정 장면을 연속해서 따라가도록 설계된 작품보다 정보가 많음에도 한 눈에 이해해야 하는 작품들의 피로감이 더 큰 것이다.

존 버거는 또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변화가 미술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도 논한다.

‘과거의 미술은 특권을 지닌 소수가 지배계급의 역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역사를 새로 꾸며내려고 하기 때문에 신비화’되는 것이었다. 예술의 권위가 ‘역사 내내 그 보호영역이 가지는 특정한 권위와 분리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술’로 인식하는 작품들은 대게 아주 오래된 것인 까닭은 우리가 당시의 ‘사회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적인 교육도 대부분 검증되었다 할 수 있는 고전 작품들로 이루어지기 일쑤이다.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한다’. ‘작품이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 말 그대로 우리 눈앞에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어 우리는 시점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짝수번의 챕터에서는 오로지 이미지의 나열만으로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는다. 2장에서는 3장에서 소개될 벌거벗음(nakedness)과 누드(nudity)에 대한 예고로 가득한 이미지들이 산재해있다. 헐벗고 꾸며진 여자를 지켜보는 남자들과 관객의 시선. 정물과 여성을 대조 시키며 상품 혹은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식을 미리 본다.


3장을 읽는 순간 어찌 (G)I-DLE (이하 아이들)의 신곡 Nxd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존 버거는 ‘벌거벗은 몸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누드는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서 전시되는 것’이라며 둘 사이의 명백한 차이에 선을 긋는다.

한 K-POP 여자 아이돌 그룹의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자 쓰인 이 곡의 주요 가사도 다음과 같다.


♬ Why you think that 'bout nude? / 'Cause your view's so rude / Think outside the box / Then you'll like it (… ) 아리따운 나의 누드 / 아름다운 나의 누드 / I'm born nude / 변태는 너야

♬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 환불은 저쪽 / 대중은 흥미 없는 정보 (… ) 행복과 반비례 평점 but my 정점 / 멋대로 낸 편견은 토할 거 같지


왜 미술관에는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걸려 있을까? 그것도 발가벗겨진 채로? 남자 관객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감상하고 받아들이는 지 알 겨를이 없지만, 내가 각종 유럽 미술관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들었던 의구심이었다. 페미니즘이 2010년 초반에 한국 여성들을 말 그대로 강타했고, 여자라고 해서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필요가 없단 걸 자각했음에도 각종 누드화가 불편한 이유를 정확히는 몰랐다. 보다 깨어있을 서구권 공기관에 누드화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으니 잘못된 것들은 아닐텐데, 같은 생각만 했다.

이전의, 어쩌면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표현되는 누드화들은 ‘성적인 것을 감추지 않고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직접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어떻든 간에 여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지를 말해주는 일종의 표지(標識)로 읽을 수’ 있으며, ‘. 여자는 그림 바깥에 있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그 여자의 진짜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즉 관객(소유자)을 쳐다본다’. 특히 누드화 속 여자들은 유독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관객과 소유자를 위한 시선 처리 때문이었다.

Nxde를 작사·작곡한 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이 이 책을 읽었는 지는 미지수지만(오히려 마릴린 먼로의 일화에서 따온 게 명백한 오마주들이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점칠되어 있으나), ‘누드가 언제나 관습에 의해 정해지며, 이러한 관습의 권위는 특정한 미술전통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K-POP의 현주소에서 깨부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크게 칭찬할 일이다.


4장에는 유사한 구도와 주제로 표현된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성녀, 죽음, 정물, 누드, 큐피드와 사랑, 초상화. 그것들이 이제껏 어떻게 그려져 왔는지,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는지, 각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는 뭐가 있을지 짚어보았다.


5장에서는 유화의 기본적인 상식들을 언급하며 부와 미술의 유착 관계에 대해서 파헤친다.

전통적으로 ‘그림은 금전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탐나는 물건인가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 그림은 ‘소유자의 재력과 일상의 생활방식이 실제로 어떠한지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풍경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연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해도 ‘유화와 소유 재산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유지된다. 한 예로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앤드루스 부부>는 ‘자신들의 땅을 실제처럼 보이게 했던 유화의 능력‘ 덕분에 ‘지주로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액자 안에 든 유화’는 ‘세상을 향한 상상의 창’이라기 보다는 ‘벽 안에 소중하게 박아 놓은 금고에 더 가깝다’.

이와 반대로 때론 서민의 삶을 그린 민화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그림 속에서 떠들고 웃고 즐기는 ‘가난뱅이들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잘살 수 있다는 기대가 희망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규범을 타파하기 위해서 몇몇 예외적인 예술가들은 기존의 것과 ‘정반대되는 작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가가 장인으로서 그가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 온 전통적 회화기법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갈등하고 싸움에 나서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예술가들이 오히려 이 전통을 가장 잘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가로 칭송’된 이유는 ‘문제의 예술가들이 죽고 나면 전통은 그의 작품에서 몇몇 기술적인 요소들만 받아들인 후, 마치 원칙 자체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처럼 계속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흥미롭고도 슬픈 이 비화는 ‘위대한 예술가’를 ‘평생 투쟁을 해 온 사람’으로 정의내린다.

일전에 정세랑 작가의 신작과 관련한 낭독회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작품에 뚜렷하고 또 빠듯하게 차고 있다. 이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고 있으신지.”

이에 대한 작가의 답변으로 이 챕터를 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전으로 칭송받는 작품들을 보면 항상 작가의 주장이 강한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럼에 나는 굽히지 않고 계속할 것이다.”


부와 가난을 비교하는 작품들. 생활 양식, 옷, 생활 방식, 인종, 동물, 배경이 되는 자연.


마지막 장에서는 근·현세대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예술 양상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지침을 제시한다. 가장 크게 비트는 부분은 바로 ‘우리는 정적(靜的)이고 광고는 동적(動的)’이란 것이다. 우리가 광고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는 것. ‘광고는 현재 상태가 아닌, 그보다 더 나은 다른 상태를 제시’하며 ‘우리가 비록 돈을 써 버려서 전보다 가난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조금 더 사들인 바로 그것들이 다른 면에서 우리를 부유하게 해 줄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쩌면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에서도 밝혔듯 ‘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이러한 관념은 주로 마케팅에 이용하는 작품들과 기법들에서 발견해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권장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진, 화보잡지를 들추어 보거나, 거리로 나가 상가의 진영창들을 구경한 다음 도판이 실린 미술관의 전시 카탈로그를 들추어 보고 이같은 두 종류의 매체를 통해 얼마나 비슷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지 주목’해보는 것. 작가는 '충격적일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 것이라 자신하며, '이같은 상호 연관성’은 ‘사용된 기호체계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로 하여금 ‘진짜 물건을 소유하거나 소유한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느낌은 5장에 걸쳐 얘기한 유화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아래 문장을 살펴보자.

‘유화는 자연히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 화가는 실제에서건 혹은 상상에서건 그가 현재 눈으로 보는 것을 그렸다. 반면에 순간적인 쓰임새 때문에 만들어진 광고의 이미지는 미래 시제만을 사용할 뿐이다.’

이 부분은 캐널라인 냅의 <욕구들>에서도 읽을 수 있다. '만약에 내가 ~했다면'이란 생각으로 거식증을 앓거나, 더 많은 화장품을 사거나 하는 등 동경하는 모델을 따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인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1장에서 논의한 한 공간에 있는 여러 작품의 ‘동시성’에 대한 인식도 광고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콘트라스트’라는 말로 ‘광고의 본질에 대해’ 드러내보인다.

‘광고에서는 본질적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광고는 그것 이외에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을 때만 효력이 있다. 광고에서 모든 진짜 사건들은 예외적인 일이고 남들에게나 생기는 일이다. 방글라데시의 사진을 볼 때 그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 사건들이 데리(Derry)나 버밍엄(Birmingham)과 같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면, 그 콘트라스트는 그에 못지않게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콘트라스트는 반드시 그 사건이 비극적이라는 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건이 비극적이라면, 그 비극은 그러한 콘트라스트에 대해 우리의 도덕적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만일 그 사건이 기쁜 일이었고, 직접적이고 상투적이 아닌 방식으로 찍혔다면 그 콘트라스트 역시 상당한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내 나이의 학생들에게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며 충격을 받았고, 얼마전의 열차 탈선 사고가 당장 친한 친구에게 일어난 사고라 해도, 이태원에서 직접 겪었던 참사는 큰 트라우마가 되어 나에게 덮쳤던 걸 생각하면 집단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 콘트라스트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

이상 짧은 개인사 공유를 끝으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 대한 독후감을 마무리할까 한다.

성인이 되고 서울에 살게 되면서부터는 곧잘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는 편이었다.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꼬드겨셔였을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모름지기 상경한 자의 특권은 문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는지, 그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해외 여행을 가면 인근 유명 미술관엔 꼭 방문했기에 아마 후자가 그 목적에 더 가까운 이유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술을 잘 모른다. 작품을 어떻게 보면 되는지 ,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게 회화 작품이 됐건, 설치 작품이 됐건, 영상물이 됐건 잘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고집은 세서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는 거르기 일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정한 예술이란 내 방식대로, 내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알게된 건 개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는 정확하다. 과거의 내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단 것. 예술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 P9

우리는 단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만 본다.
- P11

있는 그대로의 실제 세계란 단순히 객관적 사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 P14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한다.
- P14

결국 과거의 미술은, 특권을 지닌 소수가 지배계급의 역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역사를 새로 꾸며내려고 하기 때문에 신비화하는 것이다.
- P15

아직은 할스가 살았던 사회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19

조금만 달리 보면 너무나 명백한 것을 쓸데없는 엉뚱한 설명으로 핵심을 흐려 놓는 데서 신비화는 비롯한다. - P20

인상파 화가들에게 가시적인 것은 (...) 끊임없는 유동 속에서 도망쳐 사라지는 것 (...) 입체파 화가들에게 (...) 그들이 묘사하는 (...) 주위의 여러 다른 각도에서 본 광경들을 한데 모은 전체를 가리켰다. - P2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예술은 상업보다는 더 위대한 것으로 생각되기 떄문에― 시장 가격은 정신적인 가치의 반영으로 간주된다.
- P27

그림의 모든 요소들은 동시에 보이도록 그려졌다. (p.33)

그림 전체의 동시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뒤바꾸거나 결론을 다시 내릴 수 있다.
- P33

한 이미지의 의미는 바로 그 옆에, 또는 바로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 P35

작품이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 말 그대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다. - P38

이런 역사 내내 예술의 권위는 그 보호영역이 가지는 특정한 권위와 분리되지 못했다. - P39

즉 여자는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 P54

직접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어떻든 간에 그 여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지를 말해주는 일종의 표지(標識)로 읽을 수 있다. - P55

왕은 이를 여인의 복종의 증거로서 자랑하고, 그 그림을 보는 손님들은 왕을 부러워하게 된다. - P62

누드가 언제나 관슴에 의해 정해지며, 이러한 관습의 권위는 특정한 미술전통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 P63

벌거벗은 몸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누드는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서 전시되는 것이다.
- P64

하지만 여자의 관심은 좀처럼 상대 남자를 향하지 않는다. 여자는 그림 바깥에 있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그 여자의 진짜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즉 관객(소유자)을 쳐다본다.
- P66

성적 행위의 주인공이 바로 그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자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 P67

성적인 것을 감추지 않고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 P74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P76

흔히 수많은 삼류 작품들이 탁월한 작품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명은 고사하고― 무엇이 그 둘을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 P103

그림은 금전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탐나는 물건인가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만 했다.
- P106

그림 소유자의 재력과 일상의 생활방식이 실제로 어떠한지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 P116

먼저 가난뱅이들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잘살 수 있다는 기대가 희망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 P122

자연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 그럼에도 유화와 소유 재산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 - P123

앤드루스 부부가 자신들의 땅을 보며 느꼈던 즐거움 중에, 지주로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그 즐거움은 자신들의 땅을 실제처럼 보이게 했던 유화의 능력 때문에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 P127

우리는 액자 안에 든 유화가 세상을 향한 상상의 창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 다시 생각해 보면, (...) 세상을 향해 난 창이라기보다는 벽 안에 소중하게 박아 놓은 금고에 더 가깝다.
- P128

몇몇 예외적인 예술가들은 전통의 규범을 깨고 전통적 가치와는 정반대되는 작품들을 생산해냈는데, 그러한 예술가들이 오히려 이 전통을 가장 잘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가로 칭송되었다. 그러한 주장이 가능했던 것은, 문제의 예술가들이 죽고 나면 전통은 그의 작품에서 몇몇 기술적인 요소들만 받아들인 후, 마치 원칙 자체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처럼 계속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 P129

위대한 예술가란 평생 투쟁을 해 온 사람이다.
- P129

화가는 장인으로서 그가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 온 전통적 회화기법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갈등하고 싸움에 나서게 마련이다. - P129

우리는 정적(靜的)이고 광고는 동적(動的)이다.
- P151

우리가 비록 돈을 써 버려서 전보다 가난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조금 더 사들인 바로 그것들이 다른 면에서 우리를 부유하게 해 줄 것이라고 얘기한다. - P152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P154

광고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 자신에 대한 애정을 슬쩍 훔쳐내어선 광고 상품의 구입 대가로 그 애정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 P155

사진, 화보잡지를 들추어 보거나, 거리로 나가 상가의 진영창들을 구경한 다음 도판이 실린 미술관의 전시 카탈로그를 들추어 보고 이같은 두 종류의 매체를 통해 얼마나 비슷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지 주목해보라. - P160

이 느낌이 그로 하여금 진짜 물건을 소유하거나 소유한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 P163

광고는 그의 현재 상태가 아닌, 그보다 더 나은 다른 상태를 제시한다.
- P165

유화는 자연히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 화가는 실제에서건 혹은 상상에서건 그가 현재 눈으로 보는 것을 그렸다. 반면에 순간적인 쓰임새 때문에 만들어진 광고의 이미지는 미래 시제만을 사용할 뿐이다.
- P168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 P172

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 P173

콘트라스트가 광고의 본질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 보여 주는가 (...) 광고에서는 본질적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광고는 그것 이외에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을 때만 효력이 있다. 광고에서 모든 진짜 사건들은 예외적인 일이고 남들에게나 생기는 일이다. 방글라데시의 사진을 볼 때 그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 사건들이 데리(Derry)나 버밍엄(Birmingham)과 같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면, 그 콘트라스트는 그에 못지않게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콘트라스트는 반드시 그 사건이 비극적이라는 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건이 비극적이라면, 그 비극은 그러한 콘트라스트에 대해 우리의 도덕적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만일 그 사건이 기쁜 일이었고, 직접적이고 상투적이 아닌 방식으로 찍혔다면 그 콘트라스트 역시 상당한 것이 될 것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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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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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 스포일러 주의!

정확한 대사가 다분히 인용되었으며, 장면에 대한 설명과 감상이 적나라하게 이어집니다.



극장에서 영화의 완성본을 보는 관람객은 영화를 ‘영상’으로 인식한다. 움직이는 인물들, 지나가는 풍경, 흐르고 머무르는 말소리,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음악.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엮여 창조되고 편집된 영상 한 편을 온전하게 구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어떤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쏘는 이 ‘영화’란 기록물은 촬영물이기 전에 글의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주로 관람하는 영화들은 각본, 콘티, 스토리보드 등을 반드시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인지 그걸 처음 안 사람처럼 <헤어질 결심 각본>을 읽었다. 영화를 좋아하긴 해도 전공자도 아니고, 나름의 평론을 쓸 만큼 전문성도 있는 게 아니어서 차려본 예의라고는 재관람밖에 없어서 그랬나. 예전부터 시중에 출판되고 판매되어 온 각본이 많단 걸 분명히 알고는 있었는데, 왜인지 그걸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숨겨진 감정선들, 미묘하고 사소한 묘사와 표현들. 배우의 연기만으로는, 감독의 연출만으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비하인드 인터뷰나 코멘터리 같은 동종의 매체가 아닌 수단을 통해 극장에 다시 찾는 것보다 더 많이 느껴지고 되짚게 되었다. 예를 들면 화가 나고, 심장이 찌르르하고, 끔찍한 동시에 사랑스러움을 나타내는 문장들.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부분들을 마음대로 몇 가지로 분류해보았다.




  • 각본에는 이유가 적혀있다.

    • 바람에 머리칼이 엉망. 말소리도 자꾸 흩어지니 크게 외치는 수밖에. / p.8
      • 세찬 바람에 등장인물의 머리칼이 헤쳐지고, 목청을 돋운다면 관객은 별다른 생각 없이 ‘아, 바람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리는구나’라고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각본에는 이유가 설명으로 적혀있다.
    • 사진을 이어서 보다가 어느 순간 못 참겠다는 듯 태블릿 PC를 돌려놓는 서래. / p.19
    • 벌떡 일어서 의자와 테이블을 거칠게 차 버리는 수완. 서류들이 바닥에 흩어진다. 테이블이 없어지자 벌겨벗겨진 기분이 드는 지구. 가랑이를 오므린다. / p.49

  •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이 기인한 까닭을 별달리 설명하지 못하니까.

    가벼이 지나가거나 캐릭터의 성격이나 특성에 따라 자연스레 나온 것만 같은 장면들도 사실은 의미가 있다. 의문스러웠던 태도나 동작을 마침내 제대로 바라보고 속사정을 파헤쳐보게 된 기회.

    • 미세하게 끄덕. 그 단호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해준 / p.18
      • 단호함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단 걸 알아챌 수 있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 노동으로 너덜너덜해진 반창고를 보란 듯이 휙 떼어내는 서래. / p.35
    • 거울 앞에서, 저 예의 바른 형사는 뭘까. 저 맛있는 초밥은 뭘까. 의문을 지워 버리려는 듯 열심히 이를 닦고 헹구는 서래. 방수 밴드 꺼내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붙인다. 갸웃하더니 향수를 꺼내 귀 뒤에 뿌리고는 밴드 위에도 살짝 뿌리고 가만 들여다본다. 정말 방수가 되나 시험해 보듯. / p.42~43
    •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 해준. 심장이 찌르르. / p.57
    • 운전하는 해준. 화가 났다. 아내한테 거짓말을 해서. 안개 때문에 더 빨리 갈 수 없어서. / p.62
    • 오른 층계 ― 138층.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 p.105
    • 당연히 해준 옆자리로 가 앉는 서래. / p.107
      • 당연한가? 서래의 치기처럼 보일 수 있었던 행위가 사실은 당연했다.
    •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 (’행복’을 언급해 놓고는 더 화가 나) 내가 품위 있댔죠? / p.109
    • 해준 엄마한테 전화 좀 해, 말 안 해도 기다리셔. 하주 (그 거짓말에 웃다가 엄마 핑계 대는 아빠 맘 알아채고) 아빤 별일 없으세요? / p.110
    • 고급 옷에 보석을 착용하고 화장한 서래, 해준을 보고 당황하지만 그 부부가 다정한 것을 보고 재빨리 호신의 손 찾아 잡는다. / p.124
    • 해준이 무안해하거나 말거나 무표정으로 천천히 팔을 들어 옷장을 가리키는 서래. / p.135
    • 서래 (사태의 심각성을 잘 파악 못한 듯) 삼 일 있다 관광 가이드 일이 있는데 그때까진 풀려날까요? 어이없어 하는 해준. 체포 처음 해 보는 형사처럼 ‘다음 절차는 뭐더라……?’ 생각하다 수갑을 꺼내면서 한 발짝 다가간다. / p.143
    • 해맑은 서래 표정에 당황하는 해준, 굳었던 결심이 도로 무너지려 한다. / p.166

  • 사랑에 빠지고 파괴되는 과정의 서술

    영화를 볼 적에는 해준과 서래가 갑작스레 사랑에 빠지고, 돌연 밀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각본을 짚다보니 꽤나 초반부터 적나라하게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이 더러 있다. 뺨을 붉히거나, 눈이 부신다던가 하는 표현들은 글 속에만 존재할 수 있고 영화 속에서 티나게 드러난다면 자칫 촌스러울 수 있어 잘 알아채지 못 했던 것 같다.

    • 크게 숨을 들이쉬어 체취를 맡으며 뺨을 붉힌다. / p.32
    • 서래, 처음으로 해준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해준. 잠시 눈이 부시다. / p.39
    • 수사기록철로 얼굴을 가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향수 냄새 맡는 해준, 돌아온 결혼반지를 본다. / p.43
    • (싱긋 웃는 서래를 보면서 심장이 또 찌르르 하지만) 어디 뒀어요, 펜타닐? / p.66
    • 서래에게 문자한다. ‘자요?’ 답 기다리는 해준 뒤로 이층에 불이 켜진다. 마당의 해준을 내려다보는 정안의 실루엣, 해준은 못 본다. 알림음이 들리자 재빨리 확인하는 해준. ‘어이, 불면증. 내 차도 부탁(부탁하는 이모티콘)’ 정안에게서 온 문자다. 놀라는 해준, 돌아본다. 창가에 선 정안을 향해 엄지척 해 준다. 손 흔들고 사라지는 정안, 이층 불 꺼진다. 큼직하고 더러운 정안의 차를 돌아보는 해준. 쩝. 문자 도착 알림음에 또 놀란다. 이번엔 서래. ‘병원. 화요일 할머니가 위독하세요ㅠㅠ’ (…) ‘그럼 월요일 할머니는요?’ ‘아, 걱정이에요.’ ‘내가 가 볼까요?’ ‘정말요?’ ‘잠 못 자 죽어가는 형사보다 산 노인이 중하지 않겠습니까.’ (…) 한숨 쉬는 해준, 양동이의 물을 정안의 차에 확 끼얹는다. / p.95
      • 아내 정안의 부탁엔 ‘쩝’ 하고 못 내켜하곤 대충 물을 확 끼얹더니 서래의 문자엔 되려 나서다.
    • 서래 여보, 그 형사님이셔, 나 의심했던. ‘여보’에 마음 무너지는 해준. / p.125
    • 눈에는 눈물 가득. 해준은 그녀가 끔찍하다. 무시무시한 살인범임을 확신하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감정을 꾹꾹 누르며 ― / p.133




이 밖에도 영화에 나온 몇몇 장면에 대해 풀이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었다.



당신이 먹으려고 살상하는 건 내가 뭐라고 못하죠. 근데 말이야, 내가 밥 주니까 고맙다고 선물을 하는 거라면 그럼 됐어. 진짜로. 나에게 선물이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 p.57

  • 서래는 매일 아침 먹이를 주던 고양이가 고마움의 표시로 까마귀를 물어오자, 중국어로 고백한다. 그러면서 땅에다 그 사체를 묻는데, 결국 나중에는 자신도 모래사장에 묻힌다. 해준에게 주는 선물일까. 선물을 묻어버리니까.


우리 팀장님이요, 이렇게 호구 같아 보여도 사실은 무서운 분이에요. 다음에는 서래님 꼭 잡으실 거예요. 다음 남편 죽일 땐 조심하세요. / p.78

  • 다음에는 꼭 잡을거란 수완의 지나가는듯한 말을 기억하고 다음 남편을 죽인걸까. 그렇게라도 해준을 보기 위해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내려가요. 점점 내려가요. 당신은 해파리에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중국어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 내가 다 가지고 갈게요. 당신한텐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 p.87~88

  • 영화는 산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끝이 난다. 아마 기폭제가 된 건 서래의 자장가. 증거는 녹색으로 보였다 파랑으로 보였다 하는 서래의 드레스. 결국에는 해준의 죄책감이나 불명증 같은 모든 것을 서래가 가져갔구나. 저 깊은 바다로.


테라스 / 서재 ― 정안 집 (밤) 파도 소리 들리지만 안개 탓에 바다는 안 보인다. 그래도 바다를 향해 난간에 기대선 해준. / p.60

호미산 앞 주차장 (밤) 바람에 실리지 않고 천천히 떨어지는 눈, 이포와는 달리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공기. / p.163

  • 처음에 해준이 기도수를 발견한 비금봉에서는 해가 떴다가 안개로 사라졌고, 이포에서는 자욱한 안개가 걷힐 줄 모르고, 호미산은 눈이 와도 공기가 맑다. 그러다 ‘서래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해준 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바람직한’ 대목에서 어처구니없어 픽 웃을 수밖에 없는 해준)’이란 대목이 나온다. 서래에게 ‘바람’직한 남자가 안 와서 이곳 호미산에는 바람이 안 부나. 모든 게 말장난이다.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각본까지 찾아 읽는다면, 그 사람은 장시간의 고민과 무수한 인력의 협업과 노력끝에 만들어진 작품의 토대를 (아마 감독이나 각본가의 사소한 생각까지) 한층 한층 살펴보고싶단 의미라는 걸.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읽어야했단 사실이 참 묘하다. 아마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단 점이 공통점이 있어 그럴까.

처음 영화를 보고 나올 적에는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평균 별점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최고점은 못 주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각본을 읽고 나서는 이 영화가 좋아 죽을 것 같았다. 한동안 얼핏 읽고 넘어간 대사가 머릿속에 한참을 맴돌아서 몇 번을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종지에는 다시 한 번 극장을 찾았지만 (그것도 영자막을 함께 상영해주는 곳으로) 각본을 읽을때만큼의 감동을 받진 못했다. 찾아보니 표현의 유연성이 없고 고정적인 문자언어와 감각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해독 가능한 영상 언어의 차이라는데, 결국 이 두 가지가 모두 섞여 호감도를 급격히 올렸단 사실이 색달랐다. 똑같은 시각자료더라도 정보 처리 속도가 감상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한가보다. 또 기회가 된다면, 좋아하는 영화의 각본을 찾아 더 다채롭게 사랑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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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프널 SFnal 2022 세트 - 전2권 에스에프널 SFnal
켄 리우 외 지음, 조너선 스트라한 엮음, 장성주 외 옮김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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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프널(이하 SFnal)은 편집자 조너선 스트라한이 한 해 동안 출판된 SF 단편 소설 가운데 몇 개의 수작들을 한 권에 모은 결과물이다. 작년, 그러니까 2021년에 시리즈의 첫 번째 판이 나왔으니 이 거창한 결과물은 일종의 따끈따끈한 신간 잡지라고 볼 수 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이 전집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건 올해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하 SIBF)에서였다. 어마무시한 인파를 자랑하며 성공리에 마무리된 박람회는 사실 공간의 구성과 크기 외에는 작년과 별반 다를 게 없었으나, 그곳에서 흥미로웠던 곳을 꼽자면 독립출판사 협동 부스를 제외하곤 SF 출판사들이 거의 유일했었노라 결론지을 수 있겠다.
그도 그럴게 어렸을 적부터 <스타워즈>, <스타트렉>, <백 투 더 퓨처>, <쥬라기공원>, <매트릭스> 등과 같은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SF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밝히자면 아무래도 나의 특성, 그러니까 공학도란 특성에 꽤나 긍지가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주제가 튀어나와도 나름의 세월간 학습된 이해도와 분석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남들에 비한다면 장르 소설에 거리낌 없는 편이 아닌가 항상 넘겨짚어왔다.
그래서 SIBF에 어김없이 참여한 출판사 ‘허블’ 부스에 우연히 들렀다가 낮과 밤의 아름답고 현대적인 도시를 표현한 표지에 넋이 나간 건 어쩌면 이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뒤이어 사로잡힌 건 당연하게도 크게 인쇄된 소개글.

“SF 팬을 위한 가장 환상적이고 눈부신 수작!” 
“SF 마니아를 위한 가장 도전적이고 강력한 문제작!”

유혹적인 문구와 함께 끝없이 펼쳐져있는 두 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자 상주하던 직원은 이때다 싶어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고, 평소 같으면 흔한 홍보로 치부했을 그 감언이설은 어쩐지 더 마음속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곧바로 6월과 7월의 독서모임 대상 도서로 선정하게 됐으니까.
반기의 전환점이자 (언제나 갱신되는 듯한) 예년보다 무더워진 더위는 많은 사건들을 만들었고, 이런 시기에 SFnal을 읽는동안 어쩌면 SF 소설을 이렇게나 각 잡고 읽은 건 거의 처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물론 어디서 주워 듣고 흘겨본 것들이 많아 한 번쯤 봤을만한 인상이 드는 단편도 있었고, 지니고 있던 자부심이 누추할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도 분명 존재했으나, SF 소설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나 한 해의 추이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훌륭하게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이란 총평을 시작으로 우선 첫 번째 판에 수록된 작품들에 대해 짧은 감상문을 써볼까 한다.


1. 인간과 협업하는 모든 AI가 명심해야 할 50가지 사항, 켄 리우 (★★★★)
‘머신 러닝 모델’이란 새로운 데이터를 분류하거나 특정 패턴을 찾기 위한 일종의 함수 혹은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SVM, kNN, 랜덤 포레스트와 같은 기법들을 하나하나 읊지는 않을테지만 중요한 건 이 ‘머신 러닝 모델’이란 것은 최적의 의사 결정과 예측을 수행하도록 훈련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그렇다.
그런데 “인간과 협업하는 모든 AI가 명심해야 할 50가지 사항”에 등장하는 WHEEP3은 분류, 인식, 변환과 같은 기능 외에 새로운 관념들을 생성해내는 데에 능력을 발휘하고, 심지어 (진위 여부에 상관 없이) 책까지 출판한다. 이런 창조에 가까운 행위는 우리가 이제껏 정의한 머신 러닝 모델이란 개념의 또다른 업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인가?
작품에서 그려지는 WHEEP3의 파장은 최근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는 DALL-E(영어로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이미지를 삽입하면 알아서 그림을 생성해주는 AI)의 기능과 거의 유사해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기계 혹은 프로그램이 인간이 고유하게 창작한 작품들을 본 떠 무언가 새로운 형태로 결과물을 창출해낸다면 이는 인간의 것, 혹은 인간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나?
이런 불안감과 공존하는 경외감은 한계를 뛰어넘는 세상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하지만, 변화와 그 정체성의 지속에 대해 다루는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리게 한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낡은 판자를 하나씩 갈아끼우다 원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은 배1을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 낡은 판자들로 테세우스의 배와 똑같이 만든 배2가 있다면 이 둘 중 무엇이 테세우스의 배인가?’
비록 아주 짧고 대부분 어떤 정보의 나열뿐이지만, 수많은 철학적 고민을 던지기에 한참을 머리에 수놓으며 읽었다.

2. 우주로 간 인어, 이윤하 (★★) 
 떠나간 자가 돌아오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는 듯 하다. 함께하기 위해, 공유하기 위해. 동화가 바탕이 되는 SF에 다양성과 기술이 존재함에도 이 근본은 변하지 않아 다행이다.

3. 근로 종족을 위한 안내서, 비나 지에민 프라사드 (★★) 
혹시 로봇 혹은 어떤 기계 장치 같은 무생명 동체끼리도 연애가 가능한건가요? ‘멘토십’을 가장한 사랑을 하여라. 강아지 좋아하는 xx 중에 나쁜놈은 없으니! 

4. 나는 마인더가 싫어요, 수전 파머 (★★★★) 
제목이 제법 유치한 것 치고는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 현대적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쟁점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우리는 보아야하고, 들어야하고, 배워야하며, 이야기해야 한다. 그게 투쟁 끝에 얻어낼 수 있는 권리라 하더라도.
언젠가 누가 유명한 관용문인 ‘모르는 게 약인 행복한 바보’와 ‘아는게 힘인 불행한 천재’ 중 어떤 걸 선택하겠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나의 대답은 후자였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과 진짜 모르는 것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 세상의 더러움도, 사람의 추악한 이면도 분노하며 넘어가야 한다면 제법 억울하다. 보다 지혜로워지고픈 욕망이 우선시 되어야 한단 말이 아니다. 단지 속은 채로 지내지 않기 위해, 좀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사고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선 지식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

6. 우리의 문제들이 자살합니다, 칼 슈뢰더 (★★★)
그들이 알아서 자각하고 삭제되길 갈망한다니. 그만큼 똑똑해진 세상 속에서도 근원을 해결해낸 사람은 없고, (대부분 피해자인) 투쟁자들만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해피엔딩 속에서도 착잡하구나. 

7. 스파클리비츠, 닉 울븐 (★★) 
AI가 소꿉친구가 되는 미래 세대는 마치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라 부르던 옛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공동육아에 대한 개념은 전혀 새롭지 않으나, 그 책임 분배가 미묘한 감정으로 분산되어 있는 게 괜히 보는 사람도 찝찝하게 만든다.

8. 그것은 크루든 팜에서 왔다, 맥스 배리 (★★★★★) 
트럼프는 그 어느 장르에서건 우습게 비유되는 게 끔찍이도 웃기다. 그것이 우주적 다양성과 미디어매스의 편파적 세뇌에 관한 얘기임에 더 그렇다.

9. 에어바디, 사밈 시디퀴 (★) 
작가는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같은 기술이 아닌, ‘가상 슈트’라는 개념을 들먹이며 비록 전혀 다른 육체로 섹스를 해도 결국에는 사랑을 나눈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성별, 신체적 특징, 얼굴 등이 달라도 인간이 가진 정신이나 영혼이 어떤 특색과 개성을 분간해낼 수 있는 유일한 고유성이라는 뜻인데, 이에 비동의하는 행위가 어쩌면 정체화의 자유를 부정하는 일이라면 말을 더이상 아끼도록 하겠다.

10. 이 별들 너머에 다른 사랑의 시련이, 우스만 T. 말릭 (★★★) 
뒤죽박죽 어지럽고 불온한 마음들. 상대성 이론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최근 토이스토리에 기반을 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를 떠올리게 한다. 

11. [플라이트 X]를 찾아서, 니언 양 (★★) 
보물선을 찾는데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이야기는 이제와선 썩 진부한 것 주제인 것 같은데 최첨단 기술이 씌워지니 괜히 희망을 품게 된다. 

12. 아버지, 레이 네일러 (★★) 
인간과 기계의 유대 형성 가능 여부, 또 어떤 기계에 프로그래밍 된 내용은 어쩌면 완전삭제가 불가능하단 점을 들며 인간의 트라우마 및 기억 잔존과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자신의 전투기코를 쓰다듬던 장면과 영화 <애프터양>이 보여주고 싶어했던 부분들이 상통했다. 

13. 타오르라, 또는 에피소드로 살펴보는 샘 웰스의 생애, A.T 그린블랫 (★★) 
그래. SF는 기계나 최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태초부터 특이한 세계관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발현했단 점에서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유사해 보인다. 이런 작품들에서 우리가 가져가고 읽어야 할 건 다양성인가?

14. 소중한 실패, 리베카 캠벨 (★)
대체 뭔 얘기인지…. 수많은 사람, 장면, 나무, 시간대가 등장한다. 바이올린의 얘기인가. 추억과 깃든 정에 대한 세월인가. 







에스에프널(이하 SFnal) Vol.1이 보다 다채롭고 새로운 얘기의 묶음이었다면, Vol.2는 좀 더 지금의 우리와 맞닿아있는 글들로 엮여있다. 주제를 크게 보자면 문화, 인종주의, 다양성과 정체성, 자유와 권리 등으로 간추릴 수 있겠다. 이는 현시대에서도 충분히 복잡하고 걸핏하면 논의가 불거지는 사회 현상과 관념인데, 그것들을 미래주의적 관점으로 탐구했단 점에서 어쩌면 SF란 장르는 아예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장장 1천 페이지에 걸쳐 편찬된 28편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 어떤 굴레 속에서 돌고 있는 것만 같은 감상을 받았단 뜻이다.
무엇이든 많이, 또 오래 보면 그 패턴이 보이고 연출된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 책에 수록된 단 하나의 단편을 읽는 동안에도 여타 SF 소설, 드라마, 영화와 같은 작품들이 두세편, 많으면 5편 이상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러니 오늘날의 SF는 자꾸 무언가를 상기시키고 연결되어있다고 보면 되는 것일까?


1. 알약, 메그 엘리슨 (★★★) 
누가봐도 미국인이 쓴 글이지만 어쩐지 한국 SF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보일법한 주제이다. 그만큼 투명하게 읽힌다.
소재의 특성 때문인지 정세랑 작가의 단편 <리틀 베이비 블루 필>이 떠올랐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기억력 증진 약과, 임상 시험을 통해 검증된 비만 치료용 지방 세포 배출 약. 결국 후대 사회에서 변질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단 공통점에서 함께 읽어보면 좋음직할 글이다. 과연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들이 정말 그 목적을 달성한 게 맞는지, 그 본질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짚어보면서.

2.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찰리 제인 앤더스 (★★)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에서는 ‘겔렛’의 촉수를 이식받으며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감각과 기억을 공유받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쩐지 김초엽 작가의 단편 <숨그림자>와 닮아있다. <숨그림자>에서는 진화 인류의 원형 입자 언어, 즉 발성 없이 호흡으로 하는 대화란 장애물에 부딪히는 원형 인류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작품 모두 단절과 연결을 소통의 수단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3. 오징어 퀴니가 클로부차를 잃어버린 사연, 리치 라슨 (★★★) 
역시 내가 아는 SF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와 가깝기 때문에 새롭거나 놀라운 점은 없어도 읽는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실 이런 글은 SF라고 분류되기보다도 일반 케이퍼물로 분류돼도 무방할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엔딩은 어쩐지 넷플릭스 스페인 드라마의 대표격인 <종이의 집> 1부의 스토리와 비슷했다.

4. 드론을 두드려 보습을 만들지니, 세라 게일리 (★★) 
제목의 기발함과 다르게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드론에 대입되었을 뿐이다.

5. 경이로운 랄피의 마지막 공연, 팻 카디건 (★★) 
이것이야말로 영화 <프리가이>의 악몽편. 초고교급 절망. 

6. GO. NOW. FIX, 티몬스 이사이아스 (★★)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 귀여울 것 같다. <러브, 데스 + 로봇>의 다음 타자. 

7. 반짝반짝 빛나는…,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 
어쩌면 우리는 로봇 속의 뇌? 인간 속의 로봇? 고전이다.
다만 흥미로웠던 것은 그 뛰어난 인공지능체와 프로세서들의 집합인데도, 인간을 완벽히 속이거나 흉내내기 위해선 장장 반세기가 걸린다고 설정한 부분이었다. 종지에는 로봇들 자체의 고유성을 포기해야 했던 것도. 

8.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법: 다큐멘터리, 토치 오녜부치 (★★★☆)
기발하다! 정치와 인종주의와 알고리즘의 합작이라니. 당최 무슨 소린가 싶다가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비명질렀다.
“알고리즘에 해결책을 주문한다는 것은, 결국 인종주의가 논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과 관계에 따르는 조건문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요. 그래요, 물론 인종주의에도 그 나름의 내적 정합성은 존재하지만, 그건 악몽 속에서나 기능하는 논리입니다. 그 논증 과정은 자동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p.289)

9. 유창한 독일어, 매리언 데니즈 무어 (★★☆) 
인종의 얘기가 이어지는구나. 좀 더 기술의 활용성에 대해 서술하고 설득했으면 좋았을텐데. 이 작품에서 떠올랐던 서사와 캐릭터는 영화 <쥬라기월드>의 블루.

10. OSOOSI의 승천, 오지 M. 가트렐 (★★☆) 
신화와 고대신을 메타포로 이용하는 작품들은 그 설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대게 짜릿할 것이다. “내 생명을 바치는 일은 쉽다. 진짜 문제는 부수적 피해다.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는 무고한 자의 희생이다.”(p.359)라는 문장에서 잘 드러나있듯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단 결과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이 생각났다.

11. 노란색이 있는 현실, 모린 맥휴 (★★)
그래서... 뭐란 말인가? 인간의 제한된 인지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자? 동물학대를 금하자? 마치 ‘식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란 논쟁을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12. 슈뢰딩거의 이변, 진 두셋 (★★★★)
물리 법칙과 철학과 서술 방식이 한데 융합하여 폭발한다. 서사를 짚으며 개념을 따라가고 관념을 깨부수고 의심하고 뒤집히는 경험은 더없이 새롭고 익숙하다.

13. 폭발하는 미드스트라스, 앤디 듀닥 (★★★) 
시간이 멈췄단 점에서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기억나고, 그런 중 신도들이 존재한단 점에서 만화 <대다크>가 떠오르며, 계층에 따른 공간의 분리가 있단 점은 애니메이션 <아쿠다마 드라이브>를 상기시키고, 거대한 폭발과 시간의 뒤틀림이 동시에 발생하는 점은 영화 <매트릭스4>가 생각난다.
공통적인 점은, 너무나 많은 작품들과 모티프가 한데 뒤엉킨다는 것. 엮여있구나. 우리의 세계는.

14. 바레인 지하시장, 나디아 아피피 (★★★☆)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낙원은 멀리있지 않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손길은 결국 현대 혹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유대임을 여실히, 동시에 행복한 방향으로 보여준다.



언어에는 공감과 표현이 필요하다. 대화란 정보 이상의 것들을 나누는 행위다. - P185

사상의 자유 시장이 다 뭐야. - P232

바리는 마음이 불안해질수록 정신이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고, 그럴수록 머릿속은 더욱 뒤죽박죽이 돼갔다. - P263

뉴턴 역학의 반증 불가능성이야말로 그가 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였다. - P263

알고리즘에 해결책을 주문한다는 것은, 결국 인종주의가 논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과 관계에 따르는 조건문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요. 그래요, 물론 인종주의에도 그 나름의 내적 정합성은 존재하지만, 그건 악몽 속에서나 기능하는 논리입니다. 그 논증 과정은 자동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 P289

내 생명을 바치는 일은 쉽다. 진짜 문제는 부수적 피해다.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는 무고한 자의 희생이다. - P359

복잡한 사회 및 정치, 문화 관련 사안을 미래주의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열정을 품고 있다. -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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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30대 남성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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