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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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놈이 재력과 집요함을 가지면 일생동안 얼마나 미친 짓을 하고 살 수 있는지, 그 미친 짓을 다 받아내고도 희망을 놓지 않고 결국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이다.

스릴러물은 좋아하지 않는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끔찍한 현실,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읽으니 그 잔혹함과 아픔이 배가 되어 나도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다.

빨리 그 곳에서 도망치기를, 차라리 구제불능이라고 버려지기라도 하기를, 잠시 담 밖에 나갔을 때 제발 다시 들어가지 않기를, 몇 번의 외출 장면마다 어디로든 무조건 달려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읽었다.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말도 안되는 일들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살아 남아 타인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삶. 끝까지 다 읽은 후에도 그녀의 삶에 대해 충격과 양가적인 감정에 휘싸여 복잡하고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아무튼 존버는 위대하다. 존버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존버 그 자체가 숭고하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순간 ‘무엇을 위한 존버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또 나는 ‘무의미’로 돌아가는구나. 나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무의미’에 걸려 있다. ‘무의미’는 ‘무가치’인가. ‘무의미’해도 ‘가치로운가’. 주인공 모드의 존버가 ‘무의미’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여기에서 이런 의문에 빠지는가.

책의 결말, 드디어 악몽같은 시간은 다 끝났다. 하지만 그녀의 악몽에서, 내면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다.

p.307. 다른 학생들은 자식의 이마에, 심지어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격려해주는 부모님과 함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좋을까! 고아인 나는, 사랑해 줄 어머니를 갖기에는 너무 ‘별종’인 나는 활을 쥔 손에 힘을 꽉 준다.

ㅡ 콩세르바투아르의 기말 평가인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긴장속에서, ‘아버지가 시키는 술 훈련을 버틸 때처럼 악착같이’ 해치운 뒤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둘러보던 마음이다. 부모가 있으나 고아인 마음, 사랑해줄 부모가 없는 이유가 자신이 된 모드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으므로 자신의 손에 힘을 꽉 줄 뿐이다. 세상에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이므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가 두려운 상황에서 손에 땀이 나도록 주먹을 꽉 쥐고, 그러고도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을 때 용식이가 와서 주먹에 힘 빼라고 하며 함께 가 주는 장면에서 눈물이 많이 나왔다. 나도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고 사는 사람이다. 이겨내기 어려운 두려움을 나눠주는, 도와주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주먹을 꽉 쥐지 않을 수 있을까.

p.310. 아버지는 나한테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다. 숨어서 내가 떠나는 걸 지켜볼 뿐이다. 가슴이 죄어온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서 도망치고 싶다. 철책이 다시 닫히는 순간 내가 한 가짜 맹세의 기억이 가슴을 찌른다. 어머니 말이 맞는다. 나한테 기대해봐야 헛일이다. 나는 도둑처럼, 배신자처럼 이 집을 떠난다. 좌초하는 배를 두고 떠나는 쥐떼다. 수치스럽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리샤르의 차에 오르고, 십오 년 전 처음 집 안에 들어서던 날 내 머리 위로 철책 문이 닫히던 그 소리를 지워버리려는 듯, 힘차게 차의 문을 닫는다.

ㅡ최고의 장면이다. 15년동안 수모를 참아내며 기다린 최고의 환희의 순간이다. 그 순간 수치심이 고개를 들지만, 모드는 힘차게 차의 문을 닫는다. 브라보!

p.323. 나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상상의 대화 상대를 만들었고, 비밀 창고를 팠고, 금지된 이야기들을 글로 썼고, 나 스스로의 생각을 지닐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운명이 나에게 구세주를 보냈을 때,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몰랭 선생님은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찾고 삶 앞에서 늘 경의를 느끼는, 무한한 선의를 지닌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 아버지와 정반대편에 선, 아버지가 틀렸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ㅡ자유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모드, 그리고 지혜로 모드를 밖으로 꺼내준 몰랭 선생을 보며 인간들은 훌륭하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상담공부하며 충동적 돌봄을 경계하기로 하였는데, 본인이 괜찮으면 충동적 돌봄일지라도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 몰랭 선생님이 충동적 돌봄이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관심 주제여서 그런 쪽으로까지 생각이 미친 것 같다. 만일 충동적 돌봄이었어도, 몰랭에게는 구원의 동아줄이었을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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