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때때로 쇼코 앞에서 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내가 쇼코에게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쇼코는 할아버지가나와 관련된 웃긴 일화들을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령 내가가방을 까먹고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던 일이라든지 귀신 이야기를 듣다가 오줌을 쌌던 일 같은 바보 같은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런 실수를 할 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었기에 그런 일들을 재미있는 추억이랍시고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 P12

당시에는 쇼코의 모순된 말들에 혼란을 느꼈다. 할아버지에게 하는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내게 하는 말이 진짜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두 종류의 편지가 모두 진실이었으리라고 짐작했다. 모든 세부사항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모두 진실된 이야기였을 거라는 걸, 아니, 모든 이야기가 허구였더라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고, 내 편지에 썼듯이 자신을 포함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겠지. - P17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든가,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자주 보고 정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쇼코의 경우에는 달랐다.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 P18

그때 쇼코가 내 말에 화를 내거나 적어도 자기변호라도 했다면 나는 내가 했던 말들로 인해 이만큼이나 상처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쇼코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나는 겁쟁이야."
쇼코는 스케치북을 접어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그리고 내게 다시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쇼코는 방에서 나와 마루에 앉더니입을 열었다.
"하지만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돼." - P27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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