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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중국의 전국시대를 종식시킨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그가 갱유, 즉 역사상 유례없는 대학살을 자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서에 대해서만큼은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분서로 인하여 진시황 이전의 수많은 위대한 문명들이 잿더미 속에 사라졌다. 

인류 문명을 향한 치명적 테러는 진시황만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세계에서도 이런 분서가 예외 없이 저질러진 시대가 있었다. 기원 2~4세기 초기 기독교는 신성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치열한 시기였다. 그노시스파로 불리는 영지주의는 당대 세계의 중심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톨릭을 위협했다.

책을 불태우려는 사람들, 책이 가진 나비효과를 잘 알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은 가톨릭이 승리했고, 그노시스파의 모든 종교적 저작물들은 이단이란 이름 아래 망각의 불길 속에 내던져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동굴에서 2천 년 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그노시스의 파피루스가 발견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 신국론과 고백록으로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를 닦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엔 그노시스파(마니교)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에도 분서는 예외 없이 행해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책을 소지하고 있다가 불심검문, 압수수색 등에 의해 교도소로 간 사람들이 많았다. 교도소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이란 뜻이다. 최근엔 국방부에서 금서목록을 만들어 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었다.

18세기 조선에서도 예의 이 분서는 어김없이 행해졌는데, 당시 조선에는 정치에서 소외된 남인들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이에 체제적 위협을 느낀 조정은 천주학 관련 서적에 대한 대대적인 분서를 단행했다.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는 날엔 책과 함께 목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역시 가장 악명 높은 분서는 근세기 중국에서 벌어졌다. 문화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홍위병들의 이 잔혹한 테러가 처음 시작한 곳이 유서 깊은 소림사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오쩌둥이 공산당원들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홍위병을 처음 조직한 곳이 바로 소림사였던 것이다.

495년경에 세워진 소림사는 중국 선불교의 발상지다. 소림사를 창건한 달마는 특정한 자세로 벽만 바라보면서 수행에 정진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다. 후에 이러한 선법은 《벽암록》이란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동양세계에 선불교가 꽃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누구도 금지할 수 없는 자유가 존재하는 곳, 깊숙한 정신세계

《벽암록》이 추구하는 선이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유한 힘과 그 힘의 원천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혁명의 광풍은 《벽암록》을 추종하는 선승들을 무력으로 제압했지만, 승려들은 '그들의 정신세계 속으로 깊이 침잠해서 홍위병은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 그리고 마오쩌둥조차 절대 금지할 수 없는 자유에 도달했다.'    

볼프강 헤를레스는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1950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그는 빌 게이츠를 비롯한 유명한 경영자들을 불러 자기 프로그램에 담는 등 매우 정력적인 활동을 벌였을 뿐 아니라 다수의 정치서적, 실용서, 소설을 집필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로도 유명한 저널리스트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책 vs 역사 》에서 '책이 만든 역사' 혹은 '역사가 만든 책'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역사는 책을 만들었지만, 책은 다시 역사를 만들었다. 모든 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헤를레스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수백만 독자가 읽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러나 이 소설은 역사까지 만들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은 책의 가공할 힘에 대해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는 역사를 만든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판매량을 잣대로 책의 영향력을 가늠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엄청난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코란》은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세계를 바꾼 책 중에는 인류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작품도 적잖이 있다." 

책과 역사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헤를레스는 어떤 책은 금서가 되고, 또 어떤 책은 불태워지는데,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책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은 그저 잉크와 종이일 뿐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생각은 자유로우며, 생각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활자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이 선정한 역사를 만든 책 50권의 구성에 불만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또는 이 책의 저자가 활자 틈새 곳곳에 숨겨놓은 가치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도 어쩌면 헤를레스는 유럽 중심주의나 루터교에 경도된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헤를레스는 지나치게 마르크스나 마오쩌둥을 비난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은 얼마든지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자유가 있으며 그럴 권리도 있다. 만약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경향성에 대해 불평하면서 책을 고른다고 한다면 우리가 읽을 책은 세상에 한 권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은 독자가 읽으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다시 쓰는 것이다.

그 점만 잘 유의해서 본다면 이 책은 실로 유용한 책이다. 책을 대하는 독자들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은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탄생한 공자의 《논어》를 설명하면서 1899년 중국에서 발생한 비밀결사 대원들의 철도 습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헤를레스의 화술은 역시 그가 유능한 저널리스트임을 실감하게 한다. 

한번들 읽어보시라. 그러면 어떤 분서나 금서로도 막을 수 없는 책의 위대한 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 첫 구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한 것처럼 인류 역사를 만들어온 수많은 말들이 있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서적들의 배후엔 어떤 본보기와 선구자, 갖가지 상상과 아이디어, 유례를 알 수 없는 신화와 전설'이 숨어 있을까?  

단, 헤를레스의 관점을 탓할 생각은 버리고, 독자 여러분이 가진 생각의 그물에 활자의 물고기를 걸러 가면서 차분하고 천천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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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터지는 사법 비리를 볼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슬픔에 빠진다. 신영철 대법관이 이메일을 일선 판사들에게 보내 판결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며 부패한 사법부에 질시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그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건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은 여전히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가 가진 저울이 권력에, 자본에, 구체적으로 삼성에 기울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아니, 그들만은 이 모든 사실들을 모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법조라 불리는 특수한 세계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 김두식도 바로 이 특별한 사람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지나친 예우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영감이 된 것이다. 그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맑스가 말한 것처럼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성가족의 실체를 자신이 속한 특수한 세계의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타락하고 부패한, 거부할 수 없는 관계망으부터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법복을 벗고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제 마음속에 숨겨진 양심에 따라 세상을 향해 신성가족을 고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날 주제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성가족의 일원으로 이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에 진실이란 옷을 입혀준다. 이 책은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편안하게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친구와 대화하듯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실의 구술자들은 모두 현직 판검사, 변호사들이다. 그들이 사법비리를 폭로하면서도 자기변명을 하는듯한 태도가 좀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그들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사실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들과 함께 대포집에 앉아 마음껏 신성가족의 실체를 까발겨보자. 그리고 마음껏 분노해보자. 세상은 우선 까발기고 분노하는 것으로부터 변화의 싹이 트는 것이니까. 이 책은 바로 그 분노의 밭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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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8/28일자(금) 경남도민일보 1면 <책이 희망이다> 코너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래 이렇게 써 보낸 글이 너무 길다고 뒷부분이 살짝 잘렸습니다. 이발을 잘 해주신 덕에 신문에 난 글이 더 훌륭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는 원래 제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원문을 여기 올려봅니다. 김훤주 기자의 전화 부탁으로 썼는데, 전날 심상정 초청 토론회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새벽까지 과음한 관계로 오전 내도록 해매는 중에 받은 전화였습니다. 저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무조건 '네' 또는 '응'이 먼저 나가는 편입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후회가 막급했지만, 오후 2시경 일어나서 부랴부랴 써서 넘겼습니다. 4시까지 마감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다른 저명한 분들에게 여기저기 부탁하다가 너무 시간이 급하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제가 대타로 찍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찍어준 김훤주 기자에게 고맙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자기가 고맙다고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신문에 이름 내기 어디 쉽습니까?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분도 계신 판에요. 그래도 한 잔 산다면 그것 역시 저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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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을 먹으면 왜안 되는가? 알라딘에서 받은 책 제목이다. 무슨 이런 섬뜩한 책 제목도 다 있단 말인가.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이건 나의 기우였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책은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33개의 퍼즐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퍼즐은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왕국이 있다. 이 왕국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왕과 왕비에겐 아리따운 공주가 있다. 그리고 똑똑이 왕자와 안똑똑이 왕자가 있다. 똑똑이 왕자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남자답지도 못하지만, 대단히 영리하다. 안똑똑이 왕자는 그 반대다. 문제가 있다. 문제는 왕이 아리따운 공주가 똑똑이 왕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그러나 왕비는 안똑똑이 왕자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공주의 마음은? 그녀는 현명하게도 그녀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속마음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왕비가 제안한다. "구혼자들에게 과제를 내야겠어요." 왕이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요. 수학 퍼즐로 합시다. 가령 직각삼각형의…." 왕비가 반대한다. "어림없어요." 수학 문제를 내면 안똑똑이 왕자가 불리할 게 자명하다. "두 사람은 용을 죽여야 해요. 용을 쓰러뜨리고 먼저 돌아오는 구혼자가 우리 딸과 결혼할 수 있어요."
물론 왕은 이 제안이 못마땅하다. 그가 좋아하는 후보가 십중팔구 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때 공주가 끼어들어 옵션을 제시한다. "둘 중 한 명은 단지 용을 죽이겠다는 마음만 가져도 되고, 다른 한 명은 실제로 용을 죽여야 한다면 어떨까요? 
똑똑이 왕자가 재빨리 '마음만' 옵션을 선택한다. 용을 죽이는 힘든 노동을 선택하는 것보다 '마음만'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영리한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자신의 더딘 이해력을 탓하며 용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왕비는 펄쩍 뛰었다.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짓이야!'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공주의 의도를 눈치 챘을 것이다. 공주는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잘 생기고 남자다운 안똑똑이 왕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별 고민 없이 칼을 차고 달려나가 용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저자는 이 왕국에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용들이 무수히 많다고 가정한다. 당연히 안똑똑이 왕자는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용을 선택했다. 그럼 우리의 똑똑이 왕자는?

그는 밤새도록 고민했다. '내가 용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용을 안 죽여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용을 죽이기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용을 안 죽이겠다는 것과 같다. …… 좋아, 어쨌든 용을 죽이는 게 낫겠어. …… 아, 아니야.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런 중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 내일 동이 트면 용을 죽이겠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는 거야. 하지만 잠깐….'

저자는 '만약 '마음먹기'만의 조건이 안똑똑이 왕자에게도 주어졌다면?' 하고 자문한다. 그의 답은 그래도 안똑똑이 왕자가 이겼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별로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한 추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놓고,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남았다. 

똑독이 왕자도 오디세우스처럼 '만일 죽일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죽일 필요가 없을 거라고 일러주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의 의도를 실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퍼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는 늘 역설의 역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 첫 번째 퍼즐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그럼 다음 두 번째 퍼즐을 들어보라. 


두 명의 탐험가가 있다. 한 명은 비관주의자 페넬로페이고 다른 한 명은 낙관주의자 오필리아이다. 산악지대를 탐험하고 있던 두 사람은 크고 굶주린 곰을 만났다. 곰은 맛있는 아침식사를 상상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달아나는 게 좋겠어."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재촉한다.
"아무 소용없어." 비관주의자 페넬로페가 곰을 보면서 절망스럽게 내뱉는다. "곰보다 빨리 뛸 순 없잖아." 
그러자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능글맞게 웃는다. "안 그래도 돼. 우린 곰보다 빨리 뛸 필요 없어. '내'가 '너'보다 빨리 뛰면 되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냅다 뛰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한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 곰의 아침식사 거리로 한 명만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둘 중 한 명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성은 그런 자기 희생을 요구할까?"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그 결과로 무고한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안개 속을 헤맬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건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안개 속을 직접 걸어보지도 않고 '오리무중'을 이야기하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왠지 허전하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의할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퍼즐을 더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가 있다. 이 엽기적인 제목의 퍼즐은 이 책의 열아홉 번째 퍼즐이다. 물론 이 퍼즐도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엽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 산다는 것이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 아니겠는가?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입 거리다.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번득이는 휜 이를 드러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금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클럽에서 그렇게 따뜻한 환영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저녁거리지?" 몇몇 사람이 물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게다가 너그럽게 회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명예회원이라고 그들이 말했다. 순진하고 한심한 나.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나 요리사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먹을' 한입 거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단히 관대했지만, 나는 곧 그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읽어보신 현명한 독자라면 틀림없이 눈치 챘을 테지만,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안도하는 대로 그다지 어려운 책은 아니다. 거기다 재미도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없다. 사실 이 말은 과장이지만 그리 큰 과자은 아니다. 당신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가? 어쨌든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만 그 대답이 '예스'라는 걸 서로 안다.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장애물을 넘은 셈이다."

'철학은 눈을 열고, 고로 '나'를 연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서 멀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훌륭한 철학 트레이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기발한 재치들이 퍼즐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여러분은 상식과 지혜를 얻은 기쁨에 가슴이 불꽃처럼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금언을 빌어 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급하게 가지 말고 퍼즐 하나씩 천천히 읽고 천천히 생각하기 바란다는 뜻에서.

"천천히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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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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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날 알라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였다. 나는 김대중 지지자도 아니며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며 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나는 과거에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이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두 분을 존경한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을 때, 정권 창출 과정에서 벌여졌던 모든 불미스럽고 마땅찮은 사정들에 불구하고 내심 박수를 쳤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그를 찍지 않았음에도 밤새 술을 마시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정치 9단이라는 김대중의 노련함과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뚝심으로 정면 돌파하기를 마다 않는 노무현에겐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일관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길을 걸었다. 비록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길과 많은 부분 다를지라도 그들은 굳건했다. 김대중은 납치와 사형선고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조중동과 시장권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그 두사람이 걸어왔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그들의 굳건함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늘 김대중을 공부하며 그의 흔적을 찾았다고 이 책에서 말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은 천재다. 노무현은 스스로 창조적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김대중이 이미 준비하고 예비한 길이었다고 했다. 오연호 기자가 노무현에게 질투심 같은 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노무현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노무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대로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질투심 같은 것은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는 김대중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이야말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출 줄을 모른다. 자신감으로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모른다. 노무현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그가 빛나는 것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뛰어난 정책능력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미 김대중이 1971년 대선에 뛰어들 때 내놓았던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을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당시 세계 정세를 꿰뚫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매우 천재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오연호 기자의 해석처럼 김대중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중동 등으로부터 김대중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수사에 비유해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그는 충분히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아니,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거기에 대한 노무현의 진술은 책 속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파격적이었다. 역시 노무현은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그러니까 이인제 씨 때문이에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말씀이. 무슨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말씀하셔야지 기껏 이인제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니…,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노무현은 앞서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된 것이 아니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보니까 그냥 어떻게 그리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을 것이다. YS가 변절해서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 국회의원 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가 볼 때 김영삼도 원칙 없는 변절자였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계속된 낙선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종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또 한번의 고배를 마셨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승부사에다 바보라는 이름을 얹어주었다. 그에겐 일관된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역구도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인제는 기회주의의 표징이었다. 그는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원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인제 같은 사람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인제는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한나라당 경선에서 지게 되자 무소속으로 나와 3등을 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2002년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로 노무현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리고 당시 그는 유력했다. 노무현은 이인제를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부에선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이도 대통령이 다 되고.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전여옥 같은 사람은 아예 노골적으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참기 힘들 만큼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김대중-노무현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공간에서 그들은 상고 출신 운운하며 대통령을 모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민을 가까이 하고 벗이 되고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은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인제나 전여옥 같은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경지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서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다. 이 추도사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려의 영결식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은 이런 이명박 정부를 어이없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그는 이 추천사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깨어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에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한미FTA 재협상을 해야한다고 올린 글에 심사정이 시비를 건 것이다. 심상정이 노무현에게 한미FTA의 당사자로서 결자해지를 촉구하며 고해성사를 요구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틀에 걸쳐 심상정의 공격에 반론의 편지를 썼다. 이때 노무현은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에 오래지 않아 검찰의 수사로 표적이 된 노무현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식물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심상정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토론을 종결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좀 더 유능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나름의 고해성사에 대신한 솔직한 노무현을 이제 우리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노무현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와 호흡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그가 말한 것처럼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시민권력의 전형에 다가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그가 아쉬워했던 '인식의 차이'를 뛰어넘는 어떤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무현 같은' 걸출한 인물이라면 가져봄직한 기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정체하지 않고 진화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으니까.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가?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도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이렇게 시작하는 거였다고 들었다. 그 노래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노무현은 우리 마을 파업현장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는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연설하고 곧 바로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뒷풀이에 남아 난장에서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싱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다. 올 한해에만 세 분의 뛰어난 지도자가 세상을 등졌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노무현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란 그저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심사가 그리 편하지 않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숭례문 화재였다. 그때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더욱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엉터리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 한심하고 슬프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연호 기자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제 1장의 제목을 <바보를 보내다>라고 썼지만, 그러나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원칙에 투철했을 뿐아니라 예지력도 갖춘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김대중을 천재라고 했지만 그도 역시 천재였다. 그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수를 다 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존경했다는 링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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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2009-08-2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저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던 찰나에 이런 귀중한 글을 보게 되었네요. 글 솜씨가 부족해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를 못했는데 님의 글을 보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네요 다시 한번 귀중한 글 잘 보고 갑니다.

파비 2009-08-22 14:4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오연호 기자도 글 참 잘 쓰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식과 안목을 잘 볼 수 있는 책이랍니다.
 
선덕여왕
신진혜 지음 / 창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천명공주가 죽었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가 일찍 요절했다는 기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도 없다. 김춘추가 왕좌에 올랐을 때 그의 아비 용춘공을 갈문왕으로 예우해 올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천명공주가 덕만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까지 살아있었다고도 한다.



 

성골집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궁주와 덕만공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천명공주를 제물로 삼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것이다. 모두들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테지만,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가 일국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배후에는 미실이 있다. 만약 미실과 같은 걸출한 여걸이 없었다면(물론 악마지만, 드라마는 악마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천명도 없었으며 덕만도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드라마의 배경에 은밀히 깔려 있다.

원래 천명공주는 부군(태자의 존재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왕위계승권자)의 자리에 올라 진평왕의 후계를 잇기로 되어있었다. 용춘을 사모하던 천명이 모후인 마야부인에게 "용숙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용춘이 아닌 용수와 결혼하게 된다. 용숙이라 한 것은 숙부뻘(5촌 아저씨)인 용춘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빗대어 부른 것일 게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용숙을 용수로 착각하고 진평왕과 의논하여 두 사람의 혼사를 정해버린 것이다.   

마음이 유약해 왕실의 법도를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을 하게 된 천명부군은 월성에서 용수전군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용수전군은 본래 선제인 진지왕의 장남으로 태자였으나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전군으로 족강한 인물이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에 의하면 용수가 성골이 아니라 진골인 것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욱 교수는 성골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해석한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다.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으로 나뉘는데 두품은 다시 6두품으로 구분했다.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용수는 매우 용의주도하며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천명과 혼인하기 전에는 폐주의 자식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미실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미실은 천명의 배필로 용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폐위시킨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수의 맹세에 마음이 움직인 미실이 용수와 천명의 국혼을 허락한다.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고 덕만공주를 여왕의 재목으로 선택한 이유

천명과 혼인하여 부군의 남편 자리에 오른 용수는 이제껏 보여주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진평왕의 오른팔처럼 행동했다. 공공연히 미실궁주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천명이 왕위에 오르면 실제 왕은 자기라는 듯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에 미실은 생각을 바꾸어 마야부인을 황후에서 폐하고 새로운 황후를 들여 태자를 생산해야한다는 당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천명부군을 폐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덕만이 미실의 처소로 가 무릎을 꿇고 뜻을 거두어주길 간청한다. "미실궁주께서는 왕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궁주님으로 인해 여자도 부군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려 하십니까?" 그런 덕만공주에게 미실이 묻는다.

"공주, 그대의 말처럼 나는 미실이란 옥토를 통해 여왕이란 꽃이 필 수 있는 기반을 닦았소. 그대가 제왕으로서 이 땅에 선다면 무엇을 위한 기반을 닦고 싶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덕만이 말한다. "덕만은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히 이상적이구먼." 미실이 말하자 덕만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한의 통일… 제가 제왕이라면 그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영원토록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자 미실이 덕만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다시 말한다. "일전에 천명부군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소."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천명부군을 폐한 것은 덕만공주, 뒤늦게 그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오."

이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천명공주는 부군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월성에서 낳은 춘추를 데리고 용수와 함께 월성을 빠져나간다. 월성은 왕과 왕의 가족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가 성골이 아닌 진골과 성혼을 하게 되면 월성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부군의 자리에 있었기에 용수와 혼인하고서도 월성에서 계속 살면서 김춘추를 낳았다. 

즉, 부군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반 법도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군의 지위를 잃었으니 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야심만만한 용수전군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용수전군이라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부군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 스스로 힘의 원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성골은 신라 왕궁 월성에 살아야 하며, 월성을 떠나면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

이상 미실이 신라의 여왕으로 덕만을 택하고 천명을 버린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선덕여왕》은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진혜라는 역사학도가 쓴 책이다. 그녀는 1985년 생으로 아직 4반세기도 살지 못한 어린 나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도 물론 화랑세기지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꾀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신진혜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덕만공주가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빠른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미실이 삼한의 통일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은 덕만을 선택했다고 하는 설정은 좀 억지가 있지만,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는 이유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천명공주와 그 가족들이 월성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명공주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서강대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월성은 성골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성골은 월성에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월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광법사의 어머니는 숙명부인이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딸 숙명공주로 진흥왕의 왕후였으나 이화랑을 사모해 출궁하여 이화랑과 혼인함으로써 성골의 지위를 버렸다. 물론 진흥왕의 포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이화랑의 자손들이 4대에 걸쳐 화랑의 풍월주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화랑세기의 기자 김대문은 그 5대손이란 사실은 이미 전회의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천명공주는 부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월성을 떠남으로써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춘추 역시 월성에서 살 때는 성골이었으나 진골로 족강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성골에 관한 개념이 하나의 원칙이나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법흥왕 때로 보인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율령반포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골품제도와 화백회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왕족들의 신분과 처우에 관한 법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늘 정국불안의 한 요인이었던 것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성골의 범위를 축소하여 왕과 왕의 형제와 그 가족들로 한정했다는 것은 중앙집권제가 시도되었음도 의미한다. 

성골은 왕위계승권을 확정해서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율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귀족회의인 화백회의 의장을 왕이 맡았으나 상대등을 따로 두어 화백회의 의장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대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제 회의를 하던 관행에서 왕은 빠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일파가 진평왕과 권력게임을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흥왕이 만들어 놓은 성골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귀족들의 불만,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거기다 아직 확고하게 완성되지 못한 중앙집권도 분란의 씨앗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진평왕을 대신해 태후와 미실궁주의 오랜 섭정도 왕권과 귀족간의 싸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물론 우리란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김춘추가 본래 성골이었으나 모후인 천명공주가 부군의 지위를 잃고 월성에서 쫓겨남으로써 함께 진골로 족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의 유일한 적통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패망하여 신라에 귀순한 가야계인 김유신이 김춘추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고 벌인 쇼를 오로지 김춘추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김춘추 또한 자신의 운명적 신분에 힘을 실어줄 김유신의 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이로써 우리는―역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인 우리다―성골이란 현재의 권력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골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며 성골이 진골로 족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진골이 성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됨으로써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었다. 

즉, 김춘추 이후로는 진골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역시 주관적인 우리는―오늘 이 말이 난센스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 신라 천 년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왕의 시대가 백년을 넘게 이어졌다. 형제계승을 기본으로 하던 왕위 세습은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어갔다. 

김춘추 이후에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

다시 말해서 성골의 범주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말이다. 성골이란 진골귀족들 중에서 왕위계승권자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러나 신라 하대로 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골품제도는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등 중에서 왕이 나온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무너진 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춘추는 성골로 태어났으나 진골로 족강되었다가 다시 왕이 되면서 성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김춘추의 후계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진 성골의 기준을 만들고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니 김춘추 이전에는 성골들이 신라의 왕 노릇을 하다가 김춘추가 정권을 잡으면서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런 결론도 뒤집어 말하자면, 성골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며, 존재조차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성골이란 단어가 그리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기사도 없다. 화랑세기에서는 아예 성골-진골 대신에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낸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허구로부터 만들어낸 허구 같은 게 되고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허구 중의 허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는 불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게 왜곡할 만큼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심을 얻는 자가 진정한 성골이 아니겠는가. 민심,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성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선덕여왕, "그 이상을 위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겠다!"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진정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골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이를 위해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영원히 추구한 정권이 있었을까? 물론 어떤 정권이든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성골은 없다 

위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선덕여왕의 저자인 신진혜 씨가 소설 속에서 암시해준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덕만공주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눈물 천지다. 용산에선 삼성의 개발이익에 밀린 철거민들의 눈물이 도시를 적시고, 평택에선 기업 살리기란 명분으로 살 길을 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이 공장을 적신다. 

세상에 사는 낙이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학도이며 선덕여왕(창해)의 작가 신진혜 씨의 글을 읽노라니 기특한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기쁜 미소를 지울 길이 없다. 내가 그녀를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제 갓 만 23세의 대학생이고 나와는 20년이나 차이나는 나이 때문이지만, 그녀가 특별히 욕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 선덕여왕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상, 그것이면 족하다. 책을 읽고 가지는 감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영역 아니겠는가.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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