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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날 알라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였다. 나는 김대중 지지자도 아니며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며 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나는 과거에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이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두 분을 존경한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을 때, 정권 창출 과정에서 벌여졌던 모든 불미스럽고 마땅찮은 사정들에 불구하고 내심 박수를 쳤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그를 찍지 않았음에도 밤새 술을 마시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정치 9단이라는 김대중의 노련함과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뚝심으로 정면 돌파하기를 마다 않는 노무현에겐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일관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길을 걸었다. 비록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길과 많은 부분 다를지라도 그들은 굳건했다. 김대중은 납치와 사형선고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조중동과 시장권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그 두사람이 걸어왔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그들의 굳건함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늘 김대중을 공부하며 그의 흔적을 찾았다고 이 책에서 말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은 천재다. 노무현은 스스로 창조적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김대중이 이미 준비하고 예비한 길이었다고 했다. 오연호 기자가 노무현에게 질투심 같은 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노무현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노무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대로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질투심 같은 것은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는 김대중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이야말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출 줄을 모른다. 자신감으로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모른다. 노무현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그가 빛나는 것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뛰어난 정책능력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미 김대중이 1971년 대선에 뛰어들 때 내놓았던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을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당시 세계 정세를 꿰뚫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매우 천재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오연호 기자의 해석처럼 김대중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중동 등으로부터 김대중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수사에 비유해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그는 충분히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아니,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거기에 대한 노무현의 진술은 책 속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파격적이었다. 역시 노무현은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그러니까 이인제 씨 때문이에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말씀이. 무슨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말씀하셔야지 기껏 이인제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니…,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노무현은 앞서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된 것이 아니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보니까 그냥 어떻게 그리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을 것이다. YS가 변절해서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 국회의원 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가 볼 때 김영삼도 원칙 없는 변절자였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계속된 낙선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종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또 한번의 고배를 마셨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승부사에다 바보라는 이름을 얹어주었다. 그에겐 일관된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역구도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인제는 기회주의의 표징이었다. 그는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원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인제 같은 사람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인제는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한나라당 경선에서 지게 되자 무소속으로 나와 3등을 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2002년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로 노무현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리고 당시 그는 유력했다. 노무현은 이인제를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부에선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이도 대통령이 다 되고.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전여옥 같은 사람은 아예 노골적으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참기 힘들 만큼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김대중-노무현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공간에서 그들은 상고 출신 운운하며 대통령을 모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민을 가까이 하고 벗이 되고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은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인제나 전여옥 같은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경지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서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다. 이 추도사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려의 영결식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은 이런 이명박 정부를 어이없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그는 이 추천사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깨어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에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한미FTA 재협상을 해야한다고 올린 글에 심사정이 시비를 건 것이다. 심상정이 노무현에게 한미FTA의 당사자로서 결자해지를 촉구하며 고해성사를 요구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틀에 걸쳐 심상정의 공격에 반론의 편지를 썼다. 이때 노무현은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에 오래지 않아 검찰의 수사로 표적이 된 노무현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식물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심상정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토론을 종결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좀 더 유능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나름의 고해성사에 대신한 솔직한 노무현을 이제 우리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노무현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와 호흡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그가 말한 것처럼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시민권력의 전형에 다가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그가 아쉬워했던 '인식의 차이'를 뛰어넘는 어떤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무현 같은' 걸출한 인물이라면 가져봄직한 기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정체하지 않고 진화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으니까.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가?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도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이렇게 시작하는 거였다고 들었다. 그 노래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노무현은 우리 마을 파업현장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는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연설하고 곧 바로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뒷풀이에 남아 난장에서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싱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다. 올 한해에만 세 분의 뛰어난 지도자가 세상을 등졌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노무현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란 그저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심사가 그리 편하지 않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숭례문 화재였다. 그때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더욱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엉터리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 한심하고 슬프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연호 기자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제 1장의 제목을 <바보를 보내다>라고 썼지만, 그러나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원칙에 투철했을 뿐아니라 예지력도 갖춘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김대중을 천재라고 했지만 그도 역시 천재였다. 그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수를 다 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존경했다는 링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