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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오늘 대국민 사과했다.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그러나 그의 사과는 진짜 자연산일까 하는 비아냥거림만 들릴 뿐 아무도 그 진정성을 믿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안상수. 그래도 한나라당 내에선 나름대로 괜찮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한나라당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가 오늘날의 안상수를 만들게 된 것일까. 사람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분위기다. 하긴 그렇다.  

김문수도 그렇고 이재오도 그렇고 한나라당에 들어가 이상해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이 과거에 내세웠던 가치는 쓰레기통에 내던져졌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안상수 대표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불과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마사지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못생긴 여자가 서비스는 더 좋은 법이야!” 다년간의 경험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이 희한한 논리는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여기서 못생긴 여자가 왜 더 서비스가 좋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발언 의도를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이해하니 말이다. BBK 의혹, 성 비하 발언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를 두고 우리 국민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도덕적 기준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조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였던지 이후에도 이런 류의 성희롱, 성폭력 사건은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일어났다. 

불과 얼마 전엔 한나라당의 강모 의원은 대통령이 예쁜 여대생을 밝힌다는 투의 실언을 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선 그의 실언은 실언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고 수준의 표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보기에 실상 그런 정도의 발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모님만 안 계셨으면 바로 너 전번 땄을 거야.” 어쩌면 그건 강모 의원의 진심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실일 수도 있다. 그는 이 대통령이 불과 2년 전에 한 발언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사지 업소에선) 못생긴 여자가 더 서비스가 좋은 법이야!” 

그는 대통령이나 여당인사들, 기업가들과 같은 계급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대통령을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모 의원이나 안상수 대표나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 다들 나만 갖고 그러는 거야!” 

실로 도덕 타락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이클 샌델의 책 제목처럼 <왜 도덕인가?>라고 물어본다는 자체가 실은 난센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덕이란 낱말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도덕? 그런 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어느 기업체 사장은 상습적으로 직원을 폭행하고 심지어 소위 기합이라 불리는 체벌까지 자행했다고 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라는 그는 이른바 ‘맷값폭행’이라 불리는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가 결국 구속됐다. 

그 이전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아들의 폭행사건에 개입해 조폭들을 동원해 야구방망이로 직접 폭력을 행사하다가 구속되기도 했었다. 얼마 전에 그의 나머지 아들도 폭행을 행사하므로써 부자들이 모두 폭행사건에 연루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의 송영선 의원과 공성진 의원이 해병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 카메라가 들이닥치자 남자화장실에 두 남녀가 함께 들어가 2시간 넘게 버티는 웃지 못 할 사건을 연출하기도 했다. 

송영선 의원은 지금도 버젓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전쟁불사를 외친다. 그런 그녀를 보면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체중 미달로 군대에 가지 않은 건강한 두 아들을 가진 어느 정당의 대표님도 여전히 강경대응, 전쟁불사를 외치긴 마찬가지다. 

나라 전체가 코미디다. 이런 나라에 살면서 도덕을 말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한 것일까. 21세기 미국의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이 도덕적 가치였다는 마이클 샌델의 말은 그래서 너무나 부럽다. 

이런 마당에 경제적 도덕이니 사회적 도덕이니 하는 말들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공공서비스니 온실가스배출이니 공정한 법 집행이니 시장논리가 공교육을 후퇴시킨다느니 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논의들이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진다. 

온갖 복지 예산들을 다 삭감시켜놓고 우리나라 복지가 유럽 선진국보다 낫다고 버젓이 언론에 나와 말하는 대통령의 거짓말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도덕이란 가치가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일국의 대통령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버젓이 할 수 있는 나라에서 공정한 분배를 논하고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을 논하고 진정으로 도덕적 가치가 관통하는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그래서 <왜 도덕인가?>에 등장하는 풍부한 주제들에 대한 논의를 보는 것만으로 부럽다. 아직도 우리는 “의무교육을 하면서 왜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급식까지 해야 하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도덕인가?’ 하고 말하는 것은 마치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를 던져주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밀려든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 대통령도 마이크 샌델이 이 책 전에 쓴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역시 ‘왜 도덕인가?’가 우리 사회에서도 화두가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래도 우리는 함께 살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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