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무척 좋아한다. 만화부터 철학서까지 두루두루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그리고 안타깝고..조금은 부끄럽게도 고전에 있어서는 별로 읽은게 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고전 정도? 왜냐면 한참 고전에 빠질 중요한 시기..그러니까 중학교 초. 세계명작동화에서 고전으로 갈 그 중요한 길목..나는 그 유명한 HR에 빠져버리게 되어버렸던 것이었던 것이다. 우연히..절대 의도치 않았지만..흐흐흑..ㅠ 설탕,합성감미료,과자등에 입맛이 맞춰진 아이가 오래된 장맛을 알 수 있으랴... 결국 30대 중반이 되어 이책저책..유명한 책들은 다 보는 나름 독서가가 되었지만 고전..그 장맛은 느끼기 어색하고 힘드니..어느덧 은밀한 컴플렉스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고전을 알아야 제대로 된 글을 읽을수도 쓸수도 있다는 지인의 권유에 시도는 조금씩 해봤다.하지만 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왜 고전일까..하고 힘들어할때 이 책을 접했다. 황홀한 고전읽기?....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책 많이 읽고 잘 읽고 독특하게 읽기로 소문난 그녀가 고전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본 얘기라니..어려울듯 하면서도 나같은 고전 컴플렉스 소유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작가 정혜윤..말 그대로 내공이 대단한 작가이다. 그녀의 독서인생을 읽어보니 나같은 사람은 책 좋아한다고 함부로 말할 일도 아니구나..싶어질 만큼 ...범인보다는 천재의 감각과 열정으로 책을 보아온 그녀가 고전을 읽고서 또 그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같이 통독.. 깊은 사색끝에 낸 고전탐구서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책은. 수준이 절대 무난하지 않다. ..그러니초등학교 수준의 나같은 독자에겐 수학 정석을 읽게 되었다는 어려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책이 너무 어려울때 책을 보기보다 문제지를 먼저 풀고 책을 볼때 오히려 그 맥락과 관점이 파보여 내용이 잘 이해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고전 초보자인 내게 그런 문제지 역할을 해준다. 어렵지만 여운있게.. 여기 소개되어있는 고전들에 하나하나 도전해봐야겠다. 뚝심을 가지고..그러나 이전보다는 밝은 눈으로. 내 안에 그 고전들을 잘 삭이게 되었을때 다시금 보고 싶어질 책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흥미롭고 더 진지하게 읽을수 있을거란 기대를 해본다.
명불허전이란 말이 있다.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퍼진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있지만 음...이 책을 발견한 순간 내 머릿속에 이 네글자가 탁 떠오른 이유는 뭘까. 시간이 돌고 돌아도 결국 다시 만날수밖에 없는 명작이구나.라는 의미와 통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대학교 초반이었을 것이다. 시내 큰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던 때가. 90년대 중반? 건축물과 교통기관의 내부를 샅샅이 펼쳐 보여주는 그림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화려했던지 책장을 펼치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정교함과 세세함의 충격이라니... 카드도 없고 주머니도 얇았기에 아쉬움을 참고 돌아서야 했지만 이런 책이 있구나 라는 감탄은 꽤 오래동안 남았다. 그런데 명불허전...이 책이 돌아와 15여년만에 다시금 내 눈앞에 펼쳐졌으니.. 명작은 결국 유행과 상관없이 다시 나타나는구나..라는 반가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든다. 영국출신의 작가는 역사적이고 건축학적인 단면그림을 전공한 화가답게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물들을 신의 눈으로 투시한것처럼 신기하고 정확하게 묘사했다. 요즘의 CG랑 다르게 하나하나 손으로 계산하며 정성껏 그린 그림이라 정교하면서도 사람의 향기가 난다고 할까. 작가가 자와 캠퍼스를 가지고 집중하며 그렸을 노고와 더불어 익살과 정겨움이 느껴진다는게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다. 특히 성을 묘사한 그림이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든다. 중세의 사는 모습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개미굴같이 복잡한 구조. 그 속에 이쁜 공주와 기사는 어디있는지 찾아보며 또 저런 공간도 있었구나..이런 기능을 하는구나..하고 새로이 알게 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오페라 하우스도 즐겁다. 독창자의 분장실이 따로 어디에 있는지 악보실과 의상 보관실의 위치와 모습, 리허설 실등의 모습과 위치를 보니 새롭다. 다음에 오페라 하우스에 가게 되면..(우리 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 쯤 되겠지만 ) 그 구조가 느껴져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겠다. 아직 아기인 아들녀석이 자라면 이 책을 보여줘야겠다. 너무 재미있어 할것 같다. 이정도 크기에 내용하며 인쇄 및 종이의 질까지 ..가격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드는 멋진 책이다.
예전부터 많이 들어온 이야기.."한국인은 한이 많다. 한의 민족, 아리랑에 스며있는 한의 정서.." 정말 그런줄 알았다. 한국인은 뭔가 태생적으로 슬프고 힘든 한의 민족이라는게 문화전밪적으로 깔려있었다. 그런데 요새 알았다. 한의 정서, 한의 민족이란 개념은 일본이 심어놓은거라고! 우리민족에게 패배주의, 그리고 절망적 순응적 정서가 일반화되게끔 교묘히 만들어놓은 장치라는것이다. 흥이 넘치는 순하면서도 재기있는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 아닐런지...그걸 깨달았을때 이책을 읽게 됐다. 물론 불교와 미술에 관심있어 읽게 된 책이지만 그 깨달음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준다고 할까. 장중하고 엄격해야할 절 곳곳에 숨겨져 있는 해학적 장치들... 다른 종교에서는 선하나도 흔들림없어야 할 존엄한 신들의 그림과 조각이 때로는 전면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재미있고 친근한 모습들로 그려진다. 불교니까 가능하고 우리 조상들이니 이렇게 할수있었겠구나...우리 민족은 한의 민족이 아닌 흥의 민족, 해학의 민족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기분좋게 밀려온다. 책은 평균보다 조금 센 가격인데 전혀 아깝지 않을만큼 내용이 실하고 칼라사진 또한 풍부하다. 작가가 불교신문에 한해동안 연재한 기사들을 엮은거라 그만큼 어느 한 토막 부실함없이 배부르다. 그림에 나타나있는 소도구들과 행위, 인물들이 상징하는 것을 상세하게 잘 설명해놔서 이책을 읽고나서 다시금 그림을 보게되면 느끼는 바가 다르겠다. 한국불교에만 자리잡고 있는 나반존자도 새롭고 재미있다. 부처님의 가피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달음에 이른 나반존자를 닮기위해 공부잘하고 시험잘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나한전 전각이라니..우리나라 사람들의 학구열을 그대로 담은 신이 아닐런지 . 또한 이 책은 불교미술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불교의 좋은 가르침도 편안하게 연결,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거려질때도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 수하항마상 부분의 파순의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마왕 파순의 딸들을 못생긴 중년으로 묘사해놓은것과 거울을 들고 있는 이유를 작가가 조금 잘못 알고 있는건 아닐런지...그에 반해 강화 전등사 대웅전 귀공포의 원숭이는 많이 잘못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바로 알려줘 새로왔다. 사찰별로 목차를 만들어놨으면 어느 사찰을 갈때 참고로 읽기에 좀더 편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 이책을 통해 알게 된 양산 통도사의 관음전 관음도가 너무나 이뻐 꼭 가봐야겠다. 다소 불교신자로서 감상이 살짝 넘칠때도 있지만 불교 미술에 대해 세세하니 내용 꽉찬 좋은 책이다.
제목 참 기차다..바깥으로 나간게 아니라 들어갔다라. 내용을 제대로 함축해주는 제목이다. 변방,테두리,들러리로 표현되던 바깥사람들.. 중심에서 나가거나 쫒겨나야만 보이던 바깥모습을 작가 최윤필은 작심하고 들여다본다. 인터뷰라지만 발상이 또 기발하다. 말과 책, 막걸리,우표, 그리고 비무장 지대까지.. 메인에서 벗어나 사이드지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이들의 삶을 작가는 무덤덤하니 들여다본다. 동정, 또는 감상이 묻을까 중심을 잡기 위해 무심하려고 애쓰는 작가의 시점은 그러나 오히려 그런면에서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책에는 총 26명..아니 26가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중심에서 각광받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대개가 생소하다. 하지만 한가지..모두가 당당하다는것. 조금의 씁쓸함과 힘겨움은 있겠지만 시대의 가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주관에 따라 묵묵히 멈추지 않는 발걸음들이라 과연 그런 그들이 조명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깥으로 불려야하는가 그 의미를 다시금 되씹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택배기사 임학순 씨의 인터뷰가 맘에 많이 와닿는다. 힘들고 대가없는 연극배우의 생. 때로는 뒷통수마저 때리는 그 세계에 신물이 나기도 하지만 가족을 위해 택배생활을 하면서도 다시금 돌아가는 날을 꿈꾸는 그의 이말이 가슴에 무겁게 얹힌다. "무대에 있을때,관객을 마주하고 설때, 나라는 인간이 그나마 빛을 발한다는 걸 전 알거든요." 자신이 가장 빛나는 곳이 어디인지 안다는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저주일까. 그곳이 안이든 밖이든 묵묵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세상의 획에 따라 안으로 밖으로 나뉘어지는 그 모습들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그런면에서 막걸리에 대한 바깥이란 포커스 역시 옳다 싶다. 마음대로 달라지는 세상의 획에 따라 옛날에는 서민들이나 먹는 싸구려 술에서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라이스와인으로 대우가 확 달라졌지만 막걸리는 언제나 그저 막걸리였을 뿐... 여기 실린 이들의 삶은 주체성과 진정성에서 바깥이나 안이라는 구별을 의미없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이런 삶들이기에 과일의 껍질이 속보다 더 영양가있는 것처럼 안보다 단단할 수 있는것이라 믿는다.
만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먹을수록 볼수 있는 만화가 점점 적어지더라. 마니아가 아니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결혼하고 아이낳고 점차 아줌마로 변해가는 나에 비해 만화들은 다소 비현실적..특히 순정만화는 아직도 신데렐라이야기 투성이니 재미로만 보기에도 감정이입이 힘들정도..점차 멀어지는 만화와의 사이가 아쉬웠다. 성인남성을 위한 만화도 제법 많은데 여성들을 위한 만화는 적은 현실. 왜 그럴까.주로 연애에 관심있는 여성들을 위한 만화는 기꺼이 지갑을 열만큼 현실을 환상적으로 그려줘야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이 환상과는 다르다는것을 깨달아서 그럴지도모르겠다. 아니면 대다수의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거쳐 주부가 되어가는데 그런 변화를 생생하게 그릴 여성작가가 부족해서일수도 .... 직장생활을 그린 만화들을 보면 직장생활은 다 비슷비슷하게 묘사되고 팀장이건 부장이곤 윗분들은 어찌 그리 멋있는지.. 직장생활 10여년을 했지만 멋진 상사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던데 만화에선 회장님의 아들들까지 여주인공 주위에 가득하다. 결국 현실을 실감나게 그리면서도 상상을 충족시켜줄 작가층의 부족과 그런 작가들을 키워줄 시스템이 부족해서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거의 부재한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속에 직수긋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가 채민씨의 단편집 그녀의 완벽한 하루가 나왔다. 72년생인 그녀의 나이만큼 경륜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림체도 생각의 깊이도 남다른 작가다. 지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낼수 있을만한 내공을 가졌다. 실제로 많은 고뇌를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것이 느껴지기에 그녀의 작품은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닌 ..낮지만 깊게 쉬는 숨소리가 난다고 할까. 시를 모티브로 여인들의 생활을 그려낸 것이 새로우면서 재미있다. 만화지만 소설보다 더 현실적이고 드라마보다 더 가슴으로 와닿는다.특히 " 나는 천국으로 간다." " 두번째 아이"," 삼십세"는 수작이다. 암울하고 답답한 삶들...그러나 너무나 일반적인 삶들...읽고나면 한숨이 나오고 기운이 빠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사실은 생생히 살아숨쉬는 많은 이들의 "현실"이다. 비루한 삶에 대한 이야기..하지만 그런 삶을 계속 얘기하는 것이 결국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 물고가 되리라 기대해보며 앞으로 작가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