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먹을수록 볼수 있는 만화가 점점 적어지더라. 마니아가 아니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결혼하고 아이낳고 점차 아줌마로 변해가는 나에 비해 만화들은 다소 비현실적..특히 순정만화는 아직도 신데렐라이야기 투성이니 재미로만 보기에도 감정이입이 힘들정도..점차 멀어지는 만화와의 사이가 아쉬웠다. 성인남성을 위한 만화도 제법 많은데 여성들을 위한 만화는 적은 현실. 왜 그럴까.주로 연애에 관심있는 여성들을 위한 만화는 기꺼이 지갑을 열만큼 현실을 환상적으로 그려줘야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이 환상과는 다르다는것을 깨달아서 그럴지도모르겠다. 아니면 대다수의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거쳐 주부가 되어가는데 그런 변화를 생생하게 그릴 여성작가가 부족해서일수도 .... 직장생활을 그린 만화들을 보면 직장생활은 다 비슷비슷하게 묘사되고 팀장이건 부장이곤 윗분들은 어찌 그리 멋있는지.. 직장생활 10여년을 했지만 멋진 상사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던데 만화에선 회장님의 아들들까지 여주인공 주위에 가득하다. 결국 현실을 실감나게 그리면서도 상상을 충족시켜줄 작가층의 부족과 그런 작가들을 키워줄 시스템이 부족해서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거의 부재한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속에 직수긋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가 채민씨의 단편집 그녀의 완벽한 하루가 나왔다. 72년생인 그녀의 나이만큼 경륜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림체도 생각의 깊이도 남다른 작가다. 지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낼수 있을만한 내공을 가졌다. 실제로 많은 고뇌를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것이 느껴지기에 그녀의 작품은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닌 ..낮지만 깊게 쉬는 숨소리가 난다고 할까. 시를 모티브로 여인들의 생활을 그려낸 것이 새로우면서 재미있다. 만화지만 소설보다 더 현실적이고 드라마보다 더 가슴으로 와닿는다.특히 " 나는 천국으로 간다." " 두번째 아이"," 삼십세"는 수작이다. 암울하고 답답한 삶들...그러나 너무나 일반적인 삶들...읽고나면 한숨이 나오고 기운이 빠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사실은 생생히 살아숨쉬는 많은 이들의 "현실"이다. 비루한 삶에 대한 이야기..하지만 그런 삶을 계속 얘기하는 것이 결국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 물고가 되리라 기대해보며 앞으로 작가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