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 뜨겁고 깊은 스페인 예술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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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은 곳 중에서 손에 꼽히는 곳이 유럽, 그 중에서도 스페인이 아닐까 싶다. '스페인'하면 '열정'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처럼 뜨겁고 깊은 매혹이 살아있는 스페인으로의 여행을 다들 동경하고 있다. 사실 난 여행서적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저자가 어디어디를 다녀왔고, 어디를 갔더니 무엇이 맛이 있었고, 어디가 보기 좋더라 하는 식의 여행기는 읽지 않는다. 눈요기로 찍힌 사진들도 그야말로 그저 눈요기일 뿐 마음을 두드리는 그 무엇이 없다. 그건 그저 내가 가 보고 싶었던 곳에 대한 대리 만족이거나, 배아픔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최도성님의 책은 그런 식상한 여행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스페인에는 어떤 음식과 어떤 풍경이 있다는 나열이 아니라 스페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담겨 있다.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 스페인 사람들의 삶과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저 화보를 위해 두 세번쯤 스페인을 다녀오고 그 방문속에서 찍은 수 많은 사진들 중에서 좋은 사진을 선별하여 올린 블로그의 여행기같은 서적들과는 격이 다르다. 스페인이 가진 독특한 문화유산을 역사와 함께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의 패션이나 문화, 투우와 미술, 맛과 볼거리들이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어떻게 서로 다른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는지 스페인 문화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제공하고 있다.

 

365일 축제가 있는 열정과 자유의 나라. 유럽과 이슬람, 동서양 문명의 독특한 문화교차로.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시에스타가 있는 여유와 낭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서 그저 피카소가 그렸구나, 하고 지나친다면 그 그림에 대한 어떠한 것도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일터이다. 모두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늘 밤 맘에 드는 음악을 한 곡 틀어 놓고 [일생에 한 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기내식은 없지만 스페인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Nalaree Think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어니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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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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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닿지 못하고 떠돌다 간 두 조선인 음악가 이야기. 민족과 국경을 허무는 '코리안 디아스포라'광시곡

18세기 말 독일 바이마르와 평양, 그리고 21세기 베를린, 일본, 한국을 잇는 두 천재 음악가의 불꽃 같은 삶!

자유로운 예술혼과 시공을 초월한 인간애, 먹먹한 반전이 심장을 울린다.

 

출판사 서평의 일부이다. 또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일단 디아스포라를 검색해봤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어짐, 즉 이산을 뜻하는 말.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70년에 제1차 유대전쟁을 일으켰으나 로마에 패하여 예루살렘이 정복당했으며 신전도 소실되었다. 135년 제2차 유대전쟁에서도 패하여 유대지역은 황폐해졌고 유대인은 세계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것을 디아스포라(이산)라고 한다.
-네이버 용어사전

 

위아 같은 뜻이라 하니 코리안 디아스포라란, 고구려 유민이나 망국의 유민들. 일본이나 중국, 기타 외국에 의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국을 떠돌게 된 우리나라 유민들을 가리켜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것 같다. 써놓고 보니 그 말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울컥한다. 유하게 표현하여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으로 갔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억지로, 노예로, 몸종으로 팔려간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작고 왜소한 사람들. 여자라면 머리가 길었을 것이고, 남자였다고 해도 어렸으면 머리를 땋았거나 혹은 상투를 틀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는 거라곤 조선말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노예처럼 팔려간 머나먼 외국땅. 그나마 일본이나 중국은 가깝고 가족들에게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처럼 독일까지 간 고리안 디아스포라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다. 하얀 얼굴, 높은 코, 푹 꺼진 눈, 파란 눈동자, 큰 키에 뜻도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 더 작게 움츠러들고 그래서 더 구박받는 천덕꾸러기 같았을 우리의 조상들...갑자기 눈물까지 나려고 한다.

 

저는 이 소설이 작중 화자, 하나코의 소설이 되길 바랐습니다.
국가 자본 민족 인종 종교 등으로 에둘러진, 추상의 공동체에 가두거나 갇혔던 근현대사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지점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코는 이 소설에서 종종 공간적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세계는 몇 개의 블록으로 재편되고 관세 장벽이 없어지며 통화(通貨)와 언어가 통일되어 갑니다. 세상은 좁아지고, 지구 반대편 이웃을 만나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졌습니다. 우리를 가로막던 과거의 경계들은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과연 가둠으로써 갇히는 시절이 끝났는지를, 돌이켜 묻고 싶었습니다. 피부로 느꼈던 물리적 장벽은 없어졌습니다만, 우리를 더 크게 가두려는 전지구적 화폐의 움직임은 마침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미래의 불행한 디아스포라로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 구효서([연재를 종료하며]에서)


일본 여인 하나코는 40여년 동안 소식이 없던 첫사랑 야마가와 겐타로(김상호)가 남긴 유서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이유로 그의 흔적을 찾아 독일로 향한다. 하나코의 통역을 맡은 이근호는 하나코와 함께 김상호의 흔적을 좇으며 그의 죽음 뒤에 얽힌 가슴 아픈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김상호는 재일교포 2세였고, 일본에선 겐타로였다. 그런 그가 독일로 떠나가 음악가로 활동하면서는 토마스로 지낸다. 그가 김상호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보았던 것은 남산타워도, 그 유명한 제주도도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에도, 한국에도, 독일에도 속하지 않았던 그는 '평생 가닿고자 했던 곳, 하나코'라는 메모를 남기고 죽음을 택한다.

 

이야기는 18세기 말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가 아이블링거와 요한 힌터마이어, 21세기의 겐타로의 이야기로 교차진행된다. 하나코의 기억과 독일에서 겐타로가 살았던 곳등을 더듬어가며 이어지는 겐타로의 이야기. 베를린 음대 도서관에서 복사해 온 "TOCCATA UND FUGA-토카나 운트 푸가" 속에서 알게 되는 요한 힌터마이어의 이야기. 겐타로가 요한 힌터마이어이며 힌터마이어가 요한인 것처럼, 마치 평행이론처럼. 타국땅에서 자신이 가 닿고자 하는 곳에 닿지 못했던 외롭고 쓸쓸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았던 천재 음악가들.

 

국적은 한국이지만, 토마스는 한국말 몰라요. 일본에서 살았고 독일에서 살았죠.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살고 싶은 곳에서 살지 못하는 거죠. 떠도는 것도 아니면서 떠돌지 않는 것도 아니죠. 영원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음울한 운명을 불치의 통증처럼 안고 사는 사람들. 물론 그들 잘못은 아니죠. -p.207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25년을 살았고, 평양에서 잠깐, 한국에서 17년을 갇혀 살았으며, 그 뒤 20년째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그는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다.  일본과 북한과 한국과 독일.  어디에도 속한 적 없었다.  그가 서 있던 곳은, 어디서나 게토였다.   게토 특유의 벽과 대문은 사라졌어도 그곳에 나뉘어 갇히는 자들은 언제나 있었다.  갇힌 자가 있다는 건 가두는 자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갇힌 자가 되었다.  너나없이, 가두면서 갇히는 거대한 궁지.  이것이 우리의 슬프고도 어리석은 근대이며, 작센하우젠은 그것의 축소판이었다. -p.383


한국, 일본, 독일, 평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아픔의 파편들이 작품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읽는 동안 잠깐 우리의 음악가 윤이상님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책을 다 덮은 후에도 가슴이 얼얼하고 먹먹하던 작품. 그리고 긴 여운이 남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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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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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작가

켄 폴릿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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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대하 드라마. 한 100부쯤 되는 대장정을 해야만 끝날 것 같은 이야기. 대지의 기둥은 암흑의 중세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위대한 건축물을 신께 바치기 위한 여정을 담은 웅대한 드라마이다. 12세기 초, 왕위 계승자는 사망하고 잉글랜드는 왕위 찬탈의 전쟁에 휘말린다. 킹스브리지 수도원의 수도원장 필립, 대성당 건축을 꿈으로 가진 건축장이 톰을 중심으로 사랑과 증오, 충성과 배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서사 드라마 속에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굳건히 하고 있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3권의 책이 길지 않아 보인다.  작가 자신조차도 같은 인물들에 관해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수십년 동안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관된 자세로 신을 섬기고 그 섬김의 마음이 하늘에 가 닿기를 원했던 수도원장 필립.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했지만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방랑을 멈추지 않았던 톰. 톰에게는 그를 돕는 듬직한 아들 앨프래드와 귀여운 딸 마사, 셋째를 임신 중인 아내 애그니스가 있다. 톰의 곁에서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들어 주던 애그니스는 방랑을 하던 중 셋째를 낳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숲 속에 셋째를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숲에서 톰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신비로운 금빛 눈의 여인 엘렌. 그녀에게는 빨강머리 아들 책이 있다.  왕위 찬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모죄로 목숨을 잃게 되는 바살러뮤 백작과 그의 아름답고 총명한 딸 앨리에너. 앨리에너와 약혼한 사이였지만 그녀에게 파혼을 당하고 비뚤어진 사랑으로 앨리에너를 괴롭히는 햄리경의 아들 윌리엄 햄리.

 

이렇듯 서로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주인공들이 대성당 건축과 왕위찬탈 소용돌이라는 사건 아래 서로 얽히고 설키게 된다.  누군가를 밟고 권좌의 꼭대기를 차지하려는 욕망은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전개시킨다. 음모와 폭력, 열정, 탐욕, 복수, 사랑이라는 소재들을 넘나들며 대성당 건축이라는 하나의 종결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동안 젊은 수도가 필립은 나이가 들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또 누군가는 어린 아이가 성인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나면 자라고 어른이 될 것 같지만 이 무법의 시대에는 멀쩡히 살아 어른이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 권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스케일이 크고 압도적이었는지 드라마를 보는 것이 지루할 정도였다면 믿어지는가? 길고 긴 이야기동안 이 사람이 처음 그 사람이 맞는가 싶게 캐릭터가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들도 있고, 처음에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영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대지의 기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자세로 이야기와 인물들의 성격을 잡고 있으면서도 그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도 놓치지 않는다. 멋진 드라마. 요 근래 가장 멋진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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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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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작가

고은규

출판


발매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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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

슬트모 : 슬리핑 트렁커의 모임. 기존 회원의 추천으로만 가입승인이 나는 폐쇄적인 모임.

 

호모사피엔스 이후 가장 기이하고 엉뚱한 종족이라는 트렁커. 이름이 '이름'인 빌딩 밸런시스트 남자와 이름이 따뜻한 콩, 온두인 유모차 판매원 여자가 같은 공터에서 차를 주차시키고 트렁크에서 잠을 자며 남자가 만든 게임 '치킨차차차'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그들은 멀쩡한 집도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트렁크에서 잠을 잘까?

 

밤에 옆자리에 아들을 재워놓고 읽기 시작했다. 256페이지 정도니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다. 처음 읽기 시작하고 37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마구 웃어댔다. 뭐 이런 웃긴 소설이 다 있지?? 유머 소설인가봐, 하고 읽었다.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되고 진실되지 못한 병에 걸렸다는 평을 듣는 온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아가씨는 뭐가 두려워서 이렇게 자신을 꽁꽁 싸매는거지 싶었다. 그에 반해 름은 치킨차차차 게임에서 질 때마다 한 편씩 미니시리즈쯤 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미니시리즈는 막장이다.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이다. 거짓없이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는 름을 보며 온두의 마음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온두는 마음의 껍질을 온전히 깨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남에게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너무 아픈 진실이라서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게 마주할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감추면 감출수록 거짓의 껍데기는 더 두꺼워져만 가고 거짓을 늘어놓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되는 날이 있다. 습관적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 거짓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친구도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의 과거를 덮는 여자, 그녀가 바로 온두다.

 

름과 온두. 모두가 아픈 과거를 가졌다. 유아들이 잠 잘 때 배 위에 약간 무게감이 있는 베개를 얹어둔다. 아이들이 엄마손의 무게 정도로 알고 안정감을 느껴 자다가 깜짝깜짝 놀랄 때는 꼭 이 방법을 써야 한다. 어쩌면 름과 온두가 비좁고 어두운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게 된 건 엄마손처럼 따스한 무게감이 자신을 눌러주길 바란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느 땐가 그 어두운 과거와 직접 대면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 과거가 아무리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미 지난 '과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살아갈 마음을 얻게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트렁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워낙에 유명하고 좋은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외국소설들을 선호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중고등학교 때 팝송만 들었던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 가수들의 노래들이 내 카세트 테잎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처럼 요즘 조금씩 국내작가의 소설 비중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은근히 좋다. 아직도 장르의 한계랄까, 소재의 빈곤, 뭔가 크게 시작했지만 부족하게 마무리되던 스토리텔링의 문제등으로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렇게 좋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고래'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설계자들'... 생각할 수록 멋진 책들이었다. '완득이'와 이 작품, '트렁커'의 작가도 나에게 있어 이제 곧 더 좋은 글을 쓸 작가들로 기대될 것이다.

 

사족 : 참내, 난 이걸 착한 소설이라고 샀더랬다. 내가 말하는 착한 소설이란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살인자가 나오고, 칼과 무덤이 나오지 않는 그런 소설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도 가위도 나오고 피도 나오고, 약도 나오고, 시체도 나오고.. 나올 건 다 나온다. 뭐 그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그냥 누군가의 추천에 끌려 샀을 뿐, 기본 정보를 보지 않았으니까. 재미있었으면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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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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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것이 고전이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것이 고전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지만 완역본을 읽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될런지 궁금하다. 사실 동물농장을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읽은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교훈을 주는 동화같다는 느낌이었고, 대학교 때는 나름 사회와 연관시켜 생각해보려는 시도는 했었던 것도 같지만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제 와서 다시금 동물농장을 받아들고 보니 반갑다는 느낌도 든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워낙에 쉽게 쓰여져 있고, 그런 반면에 그 쉬운 글 안에 담긴 깊은 뜻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게 된 조지오웰의 배경을 한 번 보자면 다음과 같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점차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 활동에 참여했다. 이때를 토대로 한 소설이 1933년의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과 1935년『버마 시절』이다.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는데,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카탈로니아 찬가』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에 스탈린이니 트로츠키니 하는 인물을 대비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우화는 우화로써 충분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다. 열심히 일만하는 동물들을 착취하는 인간에게 반항하여 일으킨 혁명 앞에서 동물들은 모두 환호한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농장을 꾸며갈 생각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힘겹게 이뤄낸 혁명은 다른 독재에 의해 빛을 잃고, 또 다른 독재자에 의해 착취당하는 동물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착취당하는 동물들에게 독재자는 인간도 돼지도 아닌 그저 독재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지오웰의 배경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1980년대 말쯤 학생운동이 아주 한창이었던 때,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중 NL이니, PD니 하는 파로 나뉘어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런 학생운동의 지도부에 있었던 학생들 중에는 간혹 열렬한 학생운동 덕분에 감방 신세를 진 사람들도 있었고,  학교공부를 그만두고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하거나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세대들을 두고 386 세대라고 불렀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군사독재정권과 민주주의라는 갈림길에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하고자 했던 젊음을 두고 좌파니 빨갱이니 호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혹은 그 땐 그랬으면서 이제 세상과 야합했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세상은 그런 열렬한 사람들로 인해 머무렀던 곳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조지오웰이 살았던 시절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 이후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사상을 이상으로 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러시아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스탈린과 트로츠기, 서독과 동독,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등 공산주의라는 것이 허망하게 무너져 가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상도 같이 무너져 가던 시기였기에 이 동물농장이 가지는 의미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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