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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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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작가
- 고은규
- 출판
- 뿔
- 발매
- 2010.12.01
-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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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
슬트모 : 슬리핑 트렁커의 모임. 기존 회원의 추천으로만 가입승인이 나는 폐쇄적인 모임.
호모사피엔스 이후 가장 기이하고 엉뚱한 종족이라는 트렁커. 이름이 '이름'인 빌딩 밸런시스트 남자와 이름이 따뜻한 콩, 온두인 유모차 판매원 여자가 같은 공터에서 차를 주차시키고 트렁크에서 잠을 자며 남자가 만든 게임 '치킨차차차'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그들은 멀쩡한 집도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트렁크에서 잠을 잘까?
밤에 옆자리에 아들을 재워놓고 읽기 시작했다. 256페이지 정도니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다. 처음 읽기 시작하고 37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마구 웃어댔다. 뭐 이런 웃긴 소설이 다 있지?? 유머 소설인가봐, 하고 읽었다.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되고 진실되지 못한 병에 걸렸다는 평을 듣는 온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아가씨는 뭐가 두려워서 이렇게 자신을 꽁꽁 싸매는거지 싶었다. 그에 반해 름은 치킨차차차 게임에서 질 때마다 한 편씩 미니시리즈쯤 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미니시리즈는 막장이다.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이다. 거짓없이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는 름을 보며 온두의 마음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온두는 마음의 껍질을 온전히 깨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남에게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너무 아픈 진실이라서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게 마주할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감추면 감출수록 거짓의 껍데기는 더 두꺼워져만 가고 거짓을 늘어놓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되는 날이 있다. 습관적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 거짓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친구도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의 과거를 덮는 여자, 그녀가 바로 온두다.
름과 온두. 모두가 아픈 과거를 가졌다. 유아들이 잠 잘 때 배 위에 약간 무게감이 있는 베개를 얹어둔다. 아이들이 엄마손의 무게 정도로 알고 안정감을 느껴 자다가 깜짝깜짝 놀랄 때는 꼭 이 방법을 써야 한다. 어쩌면 름과 온두가 비좁고 어두운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게 된 건 엄마손처럼 따스한 무게감이 자신을 눌러주길 바란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느 땐가 그 어두운 과거와 직접 대면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 과거가 아무리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미 지난 '과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살아갈 마음을 얻게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트렁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워낙에 유명하고 좋은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외국소설들을 선호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중고등학교 때 팝송만 들었던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 가수들의 노래들이 내 카세트 테잎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처럼 요즘 조금씩 국내작가의 소설 비중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은근히 좋다. 아직도 장르의 한계랄까, 소재의 빈곤, 뭔가 크게 시작했지만 부족하게 마무리되던 스토리텔링의 문제등으로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렇게 좋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고래'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설계자들'... 생각할 수록 멋진 책들이었다. '완득이'와 이 작품, '트렁커'의 작가도 나에게 있어 이제 곧 더 좋은 글을 쓸 작가들로 기대될 것이다.
사족 : 참내, 난 이걸 착한 소설이라고 샀더랬다. 내가 말하는 착한 소설이란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살인자가 나오고, 칼과 무덤이 나오지 않는 그런 소설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도 가위도 나오고 피도 나오고, 약도 나오고, 시체도 나오고.. 나올 건 다 나온다. 뭐 그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그냥 누군가의 추천에 끌려 샀을 뿐, 기본 정보를 보지 않았으니까. 재미있었으면 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