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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한 편의 대하 드라마. 한 100부쯤 되는 대장정을 해야만 끝날 것 같은 이야기. 대지의 기둥은 암흑의 중세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위대한 건축물을 신께 바치기 위한 여정을 담은 웅대한 드라마이다. 12세기 초, 왕위 계승자는 사망하고 잉글랜드는 왕위 찬탈의 전쟁에 휘말린다. 킹스브리지 수도원의 수도원장 필립, 대성당 건축을 꿈으로 가진 건축장이 톰을 중심으로 사랑과 증오, 충성과 배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서사 드라마 속에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굳건히 하고 있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3권의 책이 길지 않아 보인다. 작가 자신조차도 같은 인물들에 관해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수십년 동안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관된 자세로 신을 섬기고 그 섬김의 마음이 하늘에 가 닿기를 원했던 수도원장 필립.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했지만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방랑을 멈추지 않았던 톰. 톰에게는 그를 돕는 듬직한 아들 앨프래드와 귀여운 딸 마사, 셋째를 임신 중인 아내 애그니스가 있다. 톰의 곁에서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들어 주던 애그니스는 방랑을 하던 중 셋째를 낳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숲 속에 셋째를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숲에서 톰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신비로운 금빛 눈의 여인 엘렌. 그녀에게는 빨강머리 아들 책이 있다. 왕위 찬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모죄로 목숨을 잃게 되는 바살러뮤 백작과 그의 아름답고 총명한 딸 앨리에너. 앨리에너와 약혼한 사이였지만 그녀에게 파혼을 당하고 비뚤어진 사랑으로 앨리에너를 괴롭히는 햄리경의 아들 윌리엄 햄리.
이렇듯 서로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주인공들이 대성당 건축과 왕위찬탈 소용돌이라는 사건 아래 서로 얽히고 설키게 된다. 누군가를 밟고 권좌의 꼭대기를 차지하려는 욕망은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전개시킨다. 음모와 폭력, 열정, 탐욕, 복수, 사랑이라는 소재들을 넘나들며 대성당 건축이라는 하나의 종결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동안 젊은 수도가 필립은 나이가 들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또 누군가는 어린 아이가 성인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나면 자라고 어른이 될 것 같지만 이 무법의 시대에는 멀쩡히 살아 어른이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 권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스케일이 크고 압도적이었는지 드라마를 보는 것이 지루할 정도였다면 믿어지는가? 길고 긴 이야기동안 이 사람이 처음 그 사람이 맞는가 싶게 캐릭터가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들도 있고, 처음에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영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대지의 기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자세로 이야기와 인물들의 성격을 잡고 있으면서도 그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도 놓치지 않는다. 멋진 드라마. 요 근래 가장 멋진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