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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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능청맞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100%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얼굴을 보면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구분이 간다. 서양사람들 보기에는 다 똑같이 생긴 아시아인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소설 속의 삶은 비슷한 문화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또 많이 다르다. 일본소설의 색과 중국소설의 색, 그리고 한국소설의 색은 확연히 구분된다. 공산주의를 거쳐 온 중국의 삶도 어느 정도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비슷한 색깔을 많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중국의 이야기. 중국을 대표하는 신사실주의 작가라는 말은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아하, 하고 알게 될 정도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일상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시시콜콜히 풀어내면서 그 안에 담긴 인간관계, 사회적 분위기, 역사적 사실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세 편의 이야기가 묶여 있다. 베이징에 사는 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 <닭털 같은 나날>, 중국 내 특수한 직장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기관>, 르포형식으로 1942년 허난성의 가뭄으로 3백만명이 죽은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있는 <1942년을 돌아보다>가 그 세 작품이다.

 

<닭털 같은 나날> 속의 남자는 조금이라도 더 싸고, 양이 많은 두부를 사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선다. 줄을 섰다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그냥 발길을 돌려야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출근 시간 때문에 바로 자기 차례 앞에서 또 발길을 돌려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사다 놓은 두부를 가정부가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아 쉬어 버려야 했을 때, 부부싸움은 시작되고 두부에서 시작한 싸움이 화병으로 옮아가기도 하는 보통 가정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한 남자로써,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의 스스로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여늬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다. 팍팍하고 고단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이 세밀하고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기관>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은 특별한 직장 생활. 단순히 직장 내의 라인이 승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직장 생활 속에 또다른 단체, '당'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사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승진을 위해서, 당에 입당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상사의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 한 사람의 능력이나 됨됨이보다 그를 평가하는 사람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무력한 상황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르포 형식의 <1942년을 돌아보다>는 어쩌면 <칼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왜구들의 끊임없는 침탈 속에 먹을 것이 없어 누군가 먹다 토해 놓은 것까지 먹어야 했던 당시의 실정을 아마도 임금은 알았을까? 알았으면서도 믿지 못했을까? 혹은 정말 몰랐을까? 1942년, 허난성의 기근과 메뚜기떼의 등장으로 3백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것을 장제스는 믿지 못하였다고 한다. 미국 신문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허난성의 어려움에 대해 당시를 살아갔던 여러사람들을 취재하는 방식으로 그린 이 단편은 어쩌면 한 편의 논평을 보는 것 같다.

 

송메이링(장제스의 부인)이 미국을 방문했고, 인도의 간디가 단식을 했으며,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대혈전이 벌어졌고, 영국의 수상 처칠이 감기에 걸렸다. 1942년에 일어난 이 사건들 중 어느 하나 내 고향에서 3백만 명이 죽어나간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처칠, 간디, 아름답던 송메이링, 스탈린그라드 대혈전은 알아도, 내 고향에서 가뭄으로 3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 -p.189

 

다른 어느 나라의 통치자가 감기에 걸린 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일반 백성들의 굶주림에 대해서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이보다 더 중요하고 중대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허난성 3천만명 중 겨우 3백만명 굶어 죽은 것이 무슨 큰 일이겠느냐고 묻는 작가의 말은 오히려 따갑다. 비틈과 꼬집음. 그것이 이 작가의 힘이다.

 

통치자는 언제나 통치자다. 통치자가 되기만 하면, 피부색과 민족에 관계없이, 설령 통치하는 민중과 전혀 동떨어져 있더라도 세계 일류의 의식주와 교통수단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각국의 통치자들이 악수하고 환담하는 것을 찬성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동일한 계급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민중들은 서로 연합할 필요도, 할 말도 없다. 통치자들은 전쟁이 발발해도 겁낼 필요가 없다. 오직 최후의 폭탄만이 통치자의 머리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계에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바로 각국의 통치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핵 단추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 단추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다칠 리가 없다. -p.204

 

어린아이는 국가와 정부의 바로미터다. 어린아이의 책가방이 너무 무겁고, 집에서도 다 하지 못할 정도로 숙제가 많아 아이들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면, 그 나라는 비틀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252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고, 중국만의 일도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점점 더 부의 분배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건  윗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장 아랫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나몰라라 한다면 제대로 된 발전은 없을 것이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문화의 중국, 그 과거와 현재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세상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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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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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내가 가만히 미소짓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용조용 가슴 속에 스며드는 잔잔하면서도 달콤한 이야기. 그렇게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예쁜 이야기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읽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처럼 주인공 제르맹은 바보 아저씨이다. 마흔 다섯살이나 되었지만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다만 먹고 살기 위해 일용직을 전전할 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잡역부가 바로 제르맹이다. 친구들이 있는 선술집과 여자친구네집, 공원과 마당에 세워놓은 카라반에서 지내는게 일상의 전부인 제르맹은 가끔 공원 벤치에 앉아 공원으로 날아드는 비둘기의 숫자를 세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아주 작고 나이 든 할머니 마르게리트를 만나게 된다. 친구들도 엄마까지도 바보로 취급하는 제르맹에게 조근조근 친절하고도 교양있는 대화를 시도하는 마르게리트와 제르맹은 친구가 되고, 드디어 세번째 만남에서 마르게리트는 제르맹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제르맹, 기분 좋은 건 바로 저랍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책을 이기적으로만 좋아해서는 안 되지요. 다른 어떤 것보다 책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스쳐 지나 가기 위해 존재할 뿐이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자기 장난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배우는 것, 어쩌면 이게 바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일 거예요. 그건 그렇고 기회가 있으면 제르맹 씨와 다른 책들도 함께 나누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는데요. 물론 제 목소리를 듣는 게 지루하지 않으시다면요. 그렇게 하시겠어요?" -p.112

 

원치 않는 임신으로 제르맹을 낳은 제르맹의 엄마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제르맹에게 준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바보로 살아 온 제르맹은 학교에서도 친구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끔찍한 모욕을 받으며 자라왔다. 내가 생각할 때, 완전한 '바보'는 사실 모욕이라는 느낌을 모르는게 '바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제르맹은 알았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섭다, 그래서 죽고 싶다고 느끼는 제르맹은 바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제르맹은 두 번 생각하고 참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을 미치광이에서 나쁜 인간으로 바꾸는 건 누군가 자행한 한순간의 고약한 짓이라고. 개 한마리를 바보 멍청이로 만들려면 이유 없이 두들겨패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것만 빼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ㄷ은 심지어 들입다 두들겨팰 필요도 없다. 그냥 주먹 한 방으로 충분하다. 초등학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구구단과 동사변화를 배운다. 나는 그보다 좀더 유용한 것들을 배웠다.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면상을 짓밟고, 현관 앞 깔개에다 하듯 문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학창 시절 내가 후천적으로 배운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그 늙은 선생은 특유의 사악함과 야비함으로 몇몇 아이들을 망가뜨렸다. 그는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 자신만만했다. 우리는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이런 우리를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가르치고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신 약한 아이, 짖궂은 아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애들만 기가 막히게 골라서 모욕을 주었다. 이렇게 본다는 바보가 되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p.65~67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음담패설이나 늘어놓고 쓸데없는 말들만 늘어놓고, 위령탑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려고 애쓰고, 공원에 날아오는 모든 비둘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숫자를 세면서 일용직을 전전하는 문맹의 40대 남자 제르맹! 그에 대해서 바보 아저씨가 아니라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편견도 없이 그를 바라볼 수 있을까? 어쩌면 어렵게 느껴지는 일을 마르게리트는 아주 쉽게 해내었다. 그리고 그에게 책을 읽어주며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갔다.

 

단순히 바보가 책 읽어주는 할머니를 만나 책을 알게 되고, 글을 배워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 받았던 정신적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것이 결국은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이 세상의 모든 파렴치한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대놓고 교훈을 주려는 여타 이야기들과는 달리 약간 어눌한 제르맹의 입으로 들려주는 조금 엉성하고 치밀하지 못한 이야기 속에서 새록새록 따뜻함이 묻어나는 기분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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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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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복소함수론에 관한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코시-리만 방정식을 얘기한다. 이 방정식 없이 리만의 복소함수론을 파고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함수가 무엇인기 먼저 얘기해야 하나? 학교 시절의 수학을 떠올릴 만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되려나? 일반인에게 수학은 상식이 아니다. 입센을 연구하는 저명한 문예학자이자 교수도 수학 상식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며 전문 분야만 아는 바보로 낙인 찍힌 적이 있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조차도 기초 함수의 개념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입학시험을 보려면 이런 기본적인 수학 공부가 필수인데, 당시 그런 시험을 통화했으니 인문학자나 교수들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상식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인지, 한두 명도 아니고 대다수의 사람이 그러하니 정말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136

 

수학자들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상도 타지 못한 채 나이 40이 넘어버린 수학교수가 있다. 그는 실종상태이다. 그의 실종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그의 딸은 아버지의 컴퓨터를 뒤져서 아버지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파일들을 가져온다. 평생 수학 공식과 씨름하며 소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현대에 난제를 남기고 떠난 19세기 천재 수학자 리만의 평전을 쓰기로 마음먹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좀 더 멋진 글쓰기를 위해 강좌에 등록한 그는 같은 강좌에 다니며 그가 쓰는 리만의 평전과 수학에 관심을 보이는 독일어 강사 잉빌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가 가족간의 평화에 금이 간다는 것을 느끼며 한편으론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이 타인들이 생각하는 '수학'이라는 것처럼 혹은 자신이 그토록 관심을 갖는 '소수'라는 것처럼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진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던 자신에게 찾아온 열정이라는 것에 기뻐하며 리만의 평전을 쓰는데도 힘을 내게 된다.

 

작품 속의 수학교수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공교육이라는 것을 받으면서 공부했던 수학이라는 것이 교육의 세상에서 발을 꺼냄과 동시에 어쩜 그렇게 쉽고 빠르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지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고까지 느꼈던 것은 바로 작품 안에서 나오는 수학에 대한 이야기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띄엄띄엄 읽어가며 역시 수학은 어려워, 라고 느꼈는데 그렇게 어렵게 끝을 내고 나니 느껴지는 것은 수학에 대한 주인공의 애정이나, 그의 외도 혹은 그의 실종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40이 넘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 수학으로 교수라는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그 어떤 것도 이루어 내지 못한 그야말로 평범한 삶. 집 안에서도 학교에서도 그가 사랑해마지 않는 소수처럼 미미한 존재. 그리하여 세상에 난제를 남긴 리만의 삶에 기대어 보려했던 중년의 삶. 다시는 불타오를 것 같지 않던 그 삶에 나타난 열정적인 사랑을 드러낼 수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삶에 지친 그가 선택한 것은 그저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이 다였던 것이다. 존재감 미미한 소수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한 남자의 삶이 오히려 수학공식보다도 마음에 남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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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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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용기를 잃지 마, 너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어딘가 틀림없이 있어."

일상화되는 폭력에 시달리는 이 아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헤븐>은 싱어송라이터로 영화배우로도 극장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담당하는 음악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고 있는 젊은 여류작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작품이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고, 처음 쓴 중편소설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고, 2007년에는 드디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2010년 최고의 책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당대 최고의 여성작가에게 수여하는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는 것이 책날개의 설명이다. 참으로 다양한 재능을 가졌으며, 날개의 내용대로라면 내용 또한 기가막히게 멋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불편'했다.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했다고 하는게 어쩌면 내 진심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학내 왕따들의 이야기이다. 겨우 중학생인 주인공 남학생 '나'와 여학생 '고지마'는 각기 한 반에서 왕따로 불리며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온갖 폭력에는 육체적 폭력부터 언어적폭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만큼의 폭력이 들어 있다. 사팔뜨기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자신이 사팔뜨기이기 때문에 사팔뜨기가 아닌 이상 이 괴로움은 일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뒤집거나 대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무작정 당하고만 있다. 고지마는 더럽다. 잘 씻지도 않고 지저분한 옷을 입고 다니는 통에 왕따를 당하고 있다. 고지마에게는 자신을 더럽게 유지하는 것이 스스로 의도한 행위이고, 고지마 또한 이를 받아들인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고지마에게서 너와 나는 같은 편이라는 내용의 쪽지가 날아들고 둘은 서로에게서 위안을 받게 된다.

 

사실 왕따라는 문제는 성장소설이라면 아마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마 많은 수의 소설에서 다루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왕따를 어떤 방식으로 당하느냐,하는 문제는 사실 그닥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왕따문제를 다룸에 있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교훈을 강조한다든지, 극적인 화해를 시도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너무 극단적이고도 도를 넘는 왕따의 방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처음의 불쾌감은 차마 상상도 못할 정도의 폭력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모습에서 가슴이 다 두근거릴 정도의 크기로 다가왔다. 도대체 설마 이렇게까지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폭력 앞에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게 진실이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혹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이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뉴스보도나 인터넷기사 등을 통해 알려지는 우리나라의 실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는 건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정말 무섭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내 아이만 소중하다고 감싸안는 분위기 속에서 모른 척 덮어두거나 별 일 아닌 듯 무심히 지나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학교대로 쉬쉬하며 사건을 축소하려고 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무조건 자기 아이만 감싸려고 하는 풍토. 학교 내 폭력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법적 조치를 취할 국가적 대안도 없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실 속에서 왕따라는 문제는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저 1등만 강요하고, 돈이면 뭐든 된다는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무한경쟁이 아이들에게서 '마음'이라는 것을 모두 빼앗아 가버린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 되고 슬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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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상상에 빠지다 - 내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상상 교육 바이블
EBS 다큐프라임 <상상에 빠지다> 제작팀 엮음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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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곤 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와 부대끼는 현실을 마주하면, 평범한 잣대로 아이를 재고, 1등의 가치를 아이에게 심어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는 분명 남과 다른 아이가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서문

 

우리나라에서 학생을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또한 그렇다고 아직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나 자신이 부모라는 이름을 달고보니 학생으로 살아가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부모로 살아가는 일인 듯 하다. 그저 낳아놓고 먹이고 재우는 것으로 부모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무한 경쟁시대에서 자기몫을 하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까지를 부모의 역할로 본다고 한다면 이건 금전적 여유는 차치하고라도 부모된 자로써의 역할이라는 것이 도무지 너무나 어려워서 때려치우고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영악해지고, 세상은 점점 더 험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은 경쟁을 강요하고 경쟁에서 낙오된 자는 ’루저’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믿고 지원해주는 든든한 부모역할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그런 아이에게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며, 그런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는 단순히 국영수에서 100점을 맞는 아이가 아니라 남보다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상상을 하는 아이라고, 그러니 나는 너를 무조건 믿는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또 요즘의 부모이다. 내 아이를 긍정적인 상상의 세계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아이가 하는 상상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가 되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상상이라는 것이 단순한 공상, 망상 혹은 헛된 희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눈부신 ’미래’의 모습이 모두 누군가가 인간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상상한 노력의 댓가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1983년 우주과학박람회 주제가였다는 가수 민해경의 ’서기 2000년’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그 노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켓트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 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 날이 오면은 우리는 행복해요.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17년 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1999년에는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2000년이란 정말 꿈에나 생각하던 먼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덧 2011년이다. 그 때 생각하는 미래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전화를 할 수 있다, 우주 정거장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들을 하며 왠지 허황되다는 듯 크게 웃곤 했다. 하지만 화상전화는 지금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목욕하고 있거나 자다 일어나면 창피해서 어떻게 전화를 받겠느냐며 화상전화는 발명되어도 쓰기 싫다고 이야기 하던 일도 기억이 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실용적이지 못한 일들,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몰두의 대상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상상력으로 미래를 바꾸는 일은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생각을 하는 이의 몫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대기업일수록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하는 것이다.



 

’사이다 실험’은 이러한 ’뇌’의 착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천연 사이다에 보라색 색소를 탐 음료를 마신 사람들은 눈을 가렸을 때와 직접 보면서 마실 때, 각기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눈을 가린 채 음료를 마신 사람들은 모두 ’사이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데 반해, 보라색 음료를 보면서 마신 사람들은 모두 ’포도맛 탄산음료’라고 말한다. 실제로 사이다에 무향의 색소만 넣었을 뿐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도향이 난다.’ ’포도맛이 난다.’고 대답한다. 이처럼 ’상상’은 뇌를 변화시키고, 뇌는 몸을 변화시킨다. 나아가 ’암’을 치료하고, 인산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 - p.138

 

뇌의 착각에 대해서 우리는 흔한 예를 참 많이도 알고 있다.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 진통제라고 말하고 비타민을 주어도 고통이 진정되었다는 것. 혹은 병상에 누워서 나을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마인드 컨트롤를 하면 암세포도 줄어들고, 병도 낫는다는 이야기. 이런 현상들을 우리는 플라시보 효과라고 부른다. 플라시보라는 것은 ’만족시키는’ 또는 ’즐겁게 한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약효가 전혀 없는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해서 환자에게 복용시키면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과 같은 예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좋아질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우리 몸에서 천연 진통제인 엔돌핀이 분비되고,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적으로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가 상상력이 풍부하면, 아이의 인생이 즐겁고 행복해진다. 아이가 엄마나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말할 때, 흔쾌히 아이 손을 잡고 놀이를 시작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마지못해 건성으로 아이 장단에 맞춰주다가 뒤로 물러설 타이밍을 찾는 부모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부모는 아이와 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했던 딱지치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를 기억해서 가르쳐줄 수도 있고,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와 노는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가 애써 그려온 과학상상화를 들여다보고, "이게 무슨 우주선이야? 우주 색깔이 왜 이렇게 칙칙해?"라고 타박한다면, 아이는 두 번 다시 상상화를 그리려 들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른이라서 꿈 없어. 너는 커서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돼야 해. 알겠지?"라고 말한다면, 아이가 결코 자신의 꿈을 생생하게 간직하며 살아갈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생생하게 꿈꾸지 못하므로, 꿈을 이루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 p261~262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서 공부나 해!"라고 한다. 왠지 뜨끔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아이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놀아달라고 하면 또 건성으로 장단을 맞추다 살짝 발을 빼려고 타이밍을 찾는 부모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와 인형이나 장난감을 들고 이야기 만들어내기를 하면서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둥,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느냐는 둥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면 아이는 상상력의 날개를 꺾이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차피 1+1=2,라는 수학공식을 푸는게 아니라면 이야기 만들어내기는 논리나 세상 이치와는 동떨어져도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고정관념을 탈피해라, 왜 그렇게 상상력이 부족하냐고 타박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준 주범일 수도 있는데, 부모들을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다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아이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하지만 자라는 동안 실패와 어려움을 겪지 않은 아이는 결국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버리지 못한다. 아이가 창의적인 인재로 자라기 바란다면,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 계획표 세우기, 입을 곳 결정하기, 간식 고르기, 친구들과의 갈등 해결하기 등 아이가 생활에서 직면하는 각종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창의성의 열쇠이다. -p 273

 

딜레마다. 어디까지 손을 대어야 하고, 어디서 손을 떼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적당한 도움이고 어디부터가 쓸데없는 개입인지. 간혹 그 경계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를 때가 있다. 핵가족화 되어가면서 집안에 외동아이가 많아지면서 부모들의 극성도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안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인생이고, 결정의 열쇠를 본인에게 쥐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열쇠만 쥐어주고, 따주는 일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조언은 조언일 뿐, 결정은 아이에게 맡기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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