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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능청맞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100%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얼굴을 보면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구분이 간다. 서양사람들 보기에는 다 똑같이 생긴 아시아인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소설 속의 삶은 비슷한 문화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또 많이 다르다. 일본소설의 색과 중국소설의 색, 그리고 한국소설의 색은 확연히 구분된다. 공산주의를 거쳐 온 중국의 삶도 어느 정도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비슷한 색깔을 많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중국의 이야기. 중국을 대표하는 신사실주의 작가라는 말은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아하, 하고 알게 될 정도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일상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시시콜콜히 풀어내면서 그 안에 담긴 인간관계, 사회적 분위기, 역사적 사실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세 편의 이야기가 묶여 있다. 베이징에 사는 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 <닭털 같은 나날>, 중국 내 특수한 직장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기관>, 르포형식으로 1942년 허난성의 가뭄으로 3백만명이 죽은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있는 <1942년을 돌아보다>가 그 세 작품이다.
<닭털 같은 나날> 속의 남자는 조금이라도 더 싸고, 양이 많은 두부를 사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선다. 줄을 섰다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그냥 발길을 돌려야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출근 시간 때문에 바로 자기 차례 앞에서 또 발길을 돌려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사다 놓은 두부를 가정부가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아 쉬어 버려야 했을 때, 부부싸움은 시작되고 두부에서 시작한 싸움이 화병으로 옮아가기도 하는 보통 가정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한 남자로써,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의 스스로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여늬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다. 팍팍하고 고단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이 세밀하고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기관>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은 특별한 직장 생활. 단순히 직장 내의 라인이 승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직장 생활 속에 또다른 단체, '당'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사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승진을 위해서, 당에 입당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상사의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 한 사람의 능력이나 됨됨이보다 그를 평가하는 사람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무력한 상황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르포 형식의 <1942년을 돌아보다>는 어쩌면 <칼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왜구들의 끊임없는 침탈 속에 먹을 것이 없어 누군가 먹다 토해 놓은 것까지 먹어야 했던 당시의 실정을 아마도 임금은 알았을까? 알았으면서도 믿지 못했을까? 혹은 정말 몰랐을까? 1942년, 허난성의 기근과 메뚜기떼의 등장으로 3백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것을 장제스는 믿지 못하였다고 한다. 미국 신문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허난성의 어려움에 대해 당시를 살아갔던 여러사람들을 취재하는 방식으로 그린 이 단편은 어쩌면 한 편의 논평을 보는 것 같다.
송메이링(장제스의 부인)이 미국을 방문했고, 인도의 간디가 단식을 했으며,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대혈전이 벌어졌고, 영국의 수상 처칠이 감기에 걸렸다. 1942년에 일어난 이 사건들 중 어느 하나 내 고향에서 3백만 명이 죽어나간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처칠, 간디, 아름답던 송메이링, 스탈린그라드 대혈전은 알아도, 내 고향에서 가뭄으로 3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 -p.189
다른 어느 나라의 통치자가 감기에 걸린 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일반 백성들의 굶주림에 대해서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이보다 더 중요하고 중대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허난성 3천만명 중 겨우 3백만명 굶어 죽은 것이 무슨 큰 일이겠느냐고 묻는 작가의 말은 오히려 따갑다. 비틈과 꼬집음. 그것이 이 작가의 힘이다.
통치자는 언제나 통치자다. 통치자가 되기만 하면, 피부색과 민족에 관계없이, 설령 통치하는 민중과 전혀 동떨어져 있더라도 세계 일류의 의식주와 교통수단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각국의 통치자들이 악수하고 환담하는 것을 찬성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동일한 계급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민중들은 서로 연합할 필요도, 할 말도 없다. 통치자들은 전쟁이 발발해도 겁낼 필요가 없다. 오직 최후의 폭탄만이 통치자의 머리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계에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바로 각국의 통치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핵 단추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 단추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다칠 리가 없다. -p.204
어린아이는 국가와 정부의 바로미터다. 어린아이의 책가방이 너무 무겁고, 집에서도 다 하지 못할 정도로 숙제가 많아 아이들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면, 그 나라는 비틀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252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고, 중국만의 일도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점점 더 부의 분배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건 윗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장 아랫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나몰라라 한다면 제대로 된 발전은 없을 것이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문화의 중국, 그 과거와 현재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세상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