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내가 가만히 미소짓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용조용 가슴 속에 스며드는 잔잔하면서도 달콤한 이야기. 그렇게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예쁜 이야기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읽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처럼 주인공 제르맹은 바보 아저씨이다. 마흔 다섯살이나 되었지만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다만 먹고 살기 위해 일용직을 전전할 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잡역부가 바로 제르맹이다. 친구들이 있는 선술집과 여자친구네집, 공원과 마당에 세워놓은 카라반에서 지내는게 일상의 전부인 제르맹은 가끔 공원 벤치에 앉아 공원으로 날아드는 비둘기의 숫자를 세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 벤치에서 아주 작고 나이 든 할머니 마르게리트를 만나게 된다. 친구들도 엄마까지도 바보로 취급하는 제르맹에게 조근조근 친절하고도 교양있는 대화를 시도하는 마르게리트와 제르맹은 친구가 되고, 드디어 세번째 만남에서 마르게리트는 제르맹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제르맹, 기분 좋은 건 바로 저랍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책을 이기적으로만 좋아해서는 안 되지요. 다른 어떤 것보다 책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스쳐 지나 가기 위해 존재할 뿐이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자기 장난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배우는 것, 어쩌면 이게 바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일 거예요. 그건 그렇고 기회가 있으면 제르맹 씨와 다른 책들도 함께 나누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는데요. 물론 제 목소리를 듣는 게 지루하지 않으시다면요. 그렇게 하시겠어요?" -p.112

 

원치 않는 임신으로 제르맹을 낳은 제르맹의 엄마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제르맹에게 준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바보로 살아 온 제르맹은 학교에서도 친구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끔찍한 모욕을 받으며 자라왔다. 내가 생각할 때, 완전한 '바보'는 사실 모욕이라는 느낌을 모르는게 '바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제르맹은 알았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섭다, 그래서 죽고 싶다고 느끼는 제르맹은 바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제르맹은 두 번 생각하고 참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을 미치광이에서 나쁜 인간으로 바꾸는 건 누군가 자행한 한순간의 고약한 짓이라고. 개 한마리를 바보 멍청이로 만들려면 이유 없이 두들겨패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것만 빼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ㄷ은 심지어 들입다 두들겨팰 필요도 없다. 그냥 주먹 한 방으로 충분하다. 초등학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구구단과 동사변화를 배운다. 나는 그보다 좀더 유용한 것들을 배웠다.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면상을 짓밟고, 현관 앞 깔개에다 하듯 문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학창 시절 내가 후천적으로 배운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그 늙은 선생은 특유의 사악함과 야비함으로 몇몇 아이들을 망가뜨렸다. 그는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 자신만만했다. 우리는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이런 우리를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가르치고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신 약한 아이, 짖궂은 아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애들만 기가 막히게 골라서 모욕을 주었다. 이렇게 본다는 바보가 되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p.65~67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음담패설이나 늘어놓고 쓸데없는 말들만 늘어놓고, 위령탑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려고 애쓰고, 공원에 날아오는 모든 비둘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숫자를 세면서 일용직을 전전하는 문맹의 40대 남자 제르맹! 그에 대해서 바보 아저씨가 아니라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편견도 없이 그를 바라볼 수 있을까? 어쩌면 어렵게 느껴지는 일을 마르게리트는 아주 쉽게 해내었다. 그리고 그에게 책을 읽어주며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갔다.

 

단순히 바보가 책 읽어주는 할머니를 만나 책을 알게 되고, 글을 배워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 받았던 정신적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것이 결국은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이 세상의 모든 파렴치한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대놓고 교훈을 주려는 여타 이야기들과는 달리 약간 어눌한 제르맹의 입으로 들려주는 조금 엉성하고 치밀하지 못한 이야기 속에서 새록새록 따뜻함이 묻어나는 기분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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