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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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을 읽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이다.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나온지 170년이 되었다고 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성립은 1841년 에드거 알란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내외 평론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에드거 알란 포의 <검은 고양이>를 처음 접한 것이 고등학교 때. 유명작가들의 단편집이었는데, <검은 고양이>를 읽고 너무 무서워서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그 내용이 있는 부분만 접어서 구겨 놓았던 기억이 난다. 추리소설의 시초라 하는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에서는 '추리소설'이라 하면 등장하는 살인사건, 살인의 잔인함,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동기,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할 뛰어난 감각과 분석능력을 가진 듀팡(혹은 뒤팽)이라는 탐정 캐릭터가 나온다. 뒤이어 나올 추리소설들의 기본적 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작품의 해결사 듀팡은 소설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중 한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도 인기가 있는 포맷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듯이 소설들도 인기있는 스타일이 지속적으로 나오곤 한다. 그러나 비슷한 스타일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가적 역량이 없을 경우에는 간이 되지 않은 곰국을 먹는 것 같은 싱거운 느낌만을 남기고 만다. 듀팡 이후 가장 걸출한 탐정인 셜록 홈즈의 성공이 있었으니 그 비슷한 탐정소설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생각하고도 남음이 있었는데 이렇게나 라이벌들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비슷한 포맷의 탐정소설이라 탐정의 이름을 셜록으로 바꾼다 해도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셜록홈스의 책에도 흑백삽화가 있다. 그 간단한 그림에서 셜록과 왓슨의 느낌, 그들이 입었던 옷과 들었던 지팡이, 시대상까지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도 수많은 셜록의 라이벌들과 함께 클래식한 느낌의 이야기들, 사건전개들, 그리고 삽화가 있다. 1890년대 단편추리소설 황금기의 작품 30편이 담겨져 있는 이 책은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맛있는 책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추리 문학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하신 '추리 문학 전문 번역가' 정태원님의 번역 작품이라는 것 또한 이 책의 의미를 더한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역자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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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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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나라 소설 중에 <잘자요, 엄마>라는 책이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인데다가 내용이 워낙 섬뜩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달리 내용 자체는 차가운 겨울날 밖에서 꽁꽁 언 스테인레스에 손을 데인 것처럼 깜짝 놀랄만큼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우리나라 소설계에는 흔치 않은 추리물이었고, 여성작가의 책이었기에 더욱 눈여겨 보았던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었던 <배드시드>의 기억과 맞물리면서 가장 어린 소녀 악당(악당이라는 표현은 차마 귀엽기까지하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소녀들이 나이가 들면 이 <아임 소리 마마>의 주인공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른 채, 기억하는 한 그녀는 사창가에서 쓰레기처럼 자랐다.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고 따뜻하게 감싸주지도 않았다. 사창가를 관리하는 왕엄마의 다락에서 몸을 웅크리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딘 채 자라났으며 사창가의 다른 예쁜 여자들의 발에 채이면서 기어다녔다. 그런 그녀는 엄마의 유품이라는 낡고 흰 구두를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분에 내키지 않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아무 죄의식없이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코이다.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게 아니다. 그녀를 기분나쁘게 했으니까, 그녀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정말 살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이름을 바꿔가며 이곳 저곳 그녀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가며 이 사회의 어두운 밑바닥을 헤치며 살아온 아이코는 이 소설 속에서 철저하게 피의자 신분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녀가 피의자이기에 앞서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땅히 사랑받고 태어나 키워져야 했을 그녀의 어린 시절은 사회로부터, 가정의 보살핌이나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버려져 있었다. 그런 사실만으로 그녀가 잔학한 각종 범죄의 피의자가 되었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애초에 가졌어야 할 모든 것들 중에 어느 것 한가지도 가질 수 없는 약자 신분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그녀가 사회 안에서 정당한 게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너무나 큰 핸디캡을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아이코는 뺏는 입장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뺏겨 왔으며, 타인을 차별하는 입장이면서도 차별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세상과 투쟁해야 하며, 그 투쟁은 살인과 방화, 절도로 표현된다."

 

우리가 흔히 '사이코'라고 부르는 범죄자들의 경우, 굉장히 많은 부분 어린 시절의 정서장애나 애정 결핍, 가족의 학대등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다거나, 알콜이나 약물 중독으로 집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는다거나, 혹은 상태가 좋지 않은 보육시설에서 자라나면서 또래집단으로부터 지속적인 상실감을 느끼고 집단 따돌림 같은 것을 경험했을 경우 정서상태의 문제점은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장애라는 것은 단순히 사고를 당해서 겪게 되는 신체적인 장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폭행이나 폭언, 감정적 폭행으로 인하여 마음이, 정신이 다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 망가지게 할지 모르는 정말 위험한 사고이다. 그런 이해가 범죄의 용인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짊어지고 나아갈 한 사람의 건강한 정신을 가진 아이를 키워 나가기 위해서 가정에서도 혹은 사회전체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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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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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실제 유괴사건을 당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실종된 지 4주 만에 온통 얻어 맞은 멍과 부실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소녀 베티 케인.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버스를 타려던 중 버스시간을 놓쳤고 곧 어두워질 시간이어서 난감해하던 차에 어떤 모녀의친절을 받아들여 그녀들의 차를 탔고, 그녀들의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들은 케인양에게 그 집의 하녀가 되기를 청했고 그녀가 거부하자 그녀를 다락방에 감금하고 구타하고 이런저런 집안 일을 강제로 시켜가며 그에 응하지 않으면 굶겼다고 했다. 잠시 그녀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그녀는 탈출했고 그녀는 프렌차이즈 저택의 샤프모녀가 자신을 감금하고 구타한 범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러나 샤프모녀는 케인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영국의 크지 않은 마을. 다들 적당히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켜가며 조용히 살고 있다. 하루하루의 평온함이 지루함으로 느껴진다고 생각되던 어느 날, 그 마을의 변호사인 로버트 블레어는 조금 이른 퇴근 직전에 매리언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형사전문 변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다급한 청에 다른 변호사를 소개시키려 했지만, 매리언의 통사정에 한 번 들러보자는 심정으로 프랜차이즈 저택을 방문한다. 같은 마을 사람들과 별달리 왕래없이 살아가던 샤프모녀 중 어머니는 그런 와중에도 당당했고 거침없었다. 매리언은 한 눈에 로버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샤프모녀는 범인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히고 그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그 시절에 왕래가 드물었다는 것은 요즘 말로 하자면 마을의 왕따같은 분위기였을 것이고, 그녀들이 교복을 단정히 입고 착실한 가정에서 착실하게 살아가던 17살 어린 소녀들을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증언을 하자마자 그녀들은 단순히 범인이 아니라 마녀가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조용한 마을의 조용한 사건들을 맡아가며 조용하게 살아가던 한 변호사는 정확치도 않은 사실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옐로우 저널리즘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고 애쓴다.

 

예나 지금이나 '선정적 보도'는 같았던 모양이다. 피해자라고 말하는 착실하고 어리고 예쁘기까지한 소녀. 가해자인 것처럼 보이는 마을 사람들과 별 왕래가 없는 모녀. 사건은 진상을 밝히기도 전에 신문에 보도되고 어두운 밤을 틈타 모녀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누군가는 차를 대고 웅성웅성 모여 집안을 들여다 보고, 누군가는 담벼락에 지워지지 않는 낙서를 하며, 누군가는 매주 있어야 할 식료품 배달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늘 누군가를 비난할 채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당연히 누군가가 범인일 것이라는 혹은 누군가는 당연히 피해자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인도 없고, 피도 폭력도 없다. 그러면서도 궁금해서 맨 뒷장을 넘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은근한 맛이 있는 상당히 품위있는 미스터리물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고 마치 영화 <엠마>나 <센스 앤 센서빌러티>같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국 사람들의 약간 젠체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밀고 당기기까지 등장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영국의 고전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여류 작가라는 말이 헛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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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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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이 쓴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유명세를 등에 업고 대충 끄적인 말조차도 '책'이 되는 현실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복싱을 열심히 해서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며 해맑게 웃고 있는 여자 연예인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조차도 정말 대단하다, 정말 열심히 했구나 했는데 덧글 중에는 그런 글이 있었다. 복싱만 해서 그걸로 먹고 살겠다고 열심히 하는 어린 애들 이겨서 좋겠다고. 비슷한 비유는 아니지만 책 같은 거 쓰지 않아도, 복싱 같은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벌며 잘 사는 연예인들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영역을 다른 범위로까지 넓혀가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일까. 예쁜 얼굴로 드라마에 CF에 영화까지 찍으면서 뷰티에 관한 책을 내는 여자 연예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워낙에 입소문도 좋았고, 김제동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괜찮았던지 혹은 책 안에 나오는 어떤 사람 말처럼 김제동의 얼굴이 얼굴로 돈 벌어 먹고 살만한 얼굴이 아니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아서였는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같은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소설가, 지식인, 스포츠인, 교수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고 나눈 이야기들이 짤막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는 술 한잔씩 기울여가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속에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포인트만을 짚어주고 있다. 제법 많은 인터뷰이들과의 딱딱하지 않은 대화체의 인터뷰라 술술 쉽게 읽힌다. 짧은 대화만으로 그들의 본심을 다 짚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그 대화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누군가는 우리나라가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거 아니냐고, 우리나라 사람인데 당연히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거 아니냐고. 김제동이 만난 사람들은 그저 시골 아낙이거나 도시의 중산층, 아이들의 학원비를 위해 밤이고 낮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는 평범한 아버지이거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대학등록금을 위해 낮은 시급도 마다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리네 청춘들이 아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는 한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그저 사전에나 나오는 말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 상류층의 행태를 보면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그저 된거라고, 내가 배부르니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배고픈 줄 모르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병역문제만 나오면 꼬리를 내리고, 우리나라 몇 대 기업이라고 손꼽히는 대기업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나라'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증거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어쩌면 낯설기까지 했다면 오버일까.

 

나우콤 문용식 대표의 말이 와 닿았다.

"상식적으로 얘기하는 게 좌빨이라면, 좌빨하고 말죠."

 

우리나라 정치판은 좌파니 우파니하며 편가르기를 너무나 좋아한다. 예로부터 그넘의 남인이니 서인이니, 노론이니 소론이니 그렇게도 갈라대더니 아직까지도 그 버릇을 못 고쳤다. 물론 정치적 성향을 나눌 수는 있다. 누군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에도 공화당이 있고 민주당이 있고, 극우파도 있고 다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할 줄 아는 미덕,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상식, 나하고 같은 성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사람들이 하는 말을 적어도 경청하고 그것에서 내 잘못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의 반대이니 무조건 틀린 것이고, 좌빨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 버릇은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우스갯소리로 길거리의 우체통이 왜 빨간색이냐고, 치워버리라고 했다고 하는 것처럼 좌파+빨갱이 해서 '좌빨'이라고 편협하게 몰아붙이는 유치한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말하고 더 나은 생각을 생산해내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부터 하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도 우리나라가 정치 후진국을 못 면하는 이유이다. 여백이 많은 책이다. 인터뷰가 길지 않아 오히려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아~ 난 참 애국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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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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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슬픈 이야기이다. 슬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가슴을 저미는 이야기이다. 난 슬픈 이야기가 싫다. 슬프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슬픈 영화도 좋아하고, 슬픈 이야기도 좋아했다. 다큐멘터리 같은데서 아픈 사람들이 나오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보면서 울어제끼는 일도 많이 했다. 그것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도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해맑게 웃는 내 아이를 보면서부터는 그런 이야기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볼 수가 없었다. 아픈 사람들은 늘 그랬다. 아픈 사람들의 부모는 늘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얼마나 건강했는지 몰라요." "야구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렇게 건강하고 밝고 명랑하던 우리 아이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코피가 나고, 그렇게 병원에 들어 앉아버리는 것이 순서였다. 내 예쁜, 건강한 아이를 앞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는, 볼 수는 없었다.

 

아름이는 17살이다. 17살에 사고를 쳐서 아름이를 낳았던 아름이의 부모, 딱 그 나이다. 이제 겨우 서른 넷이 된 아름이의 부모는 아직 너무 젊다. 하지만 아름이는 너무나 늙었다. 빨리 늙는 병에 걸렸고, 이제 아름이의 몸과 얼굴은 온통 할아버지의 그것 이상이다. 4살부터 이상증상을 겪기 시작해서 열일곱 나이에 노인이 되어버린 아름이는 젊다는 것, 청춘이라는 것을 건너뛰어 버렸다. 어린아이에서 갑작스럽게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17살이 된 것도 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가만히 병원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내는 환자들은 제 나이 또래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자기 눈 앞의 어머니와 아버지, 외삼촌과 외숙모, 한여름과 한겨울이 기적이라 믿어온 아름이가 잘 하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물어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아름이. 병원비에 지쳐버린 부모님을 위해 아름이는 아름이를 위해 성금을 모을 수 있는 TV에 출연을 결심한다. 인터뷰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늙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에요?" 열 일곱 청춘,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만큼 왕성한 식욕에, 하루를 꼬박 달리도고 다음 날이면 벌떡 일어나 또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건강한 신체, 지나가는 이웃집 소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색으로 치자면 너무도 파란, 샛파란 청춘의 마음을 가진 하지만 이미 몸은 8~90 먹은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한 번도 청춘을 가지지 못했던 소년에게 하는 질문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싶다.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어 가는 사람도 늙는다는 것에 면역을 가지지 못한다. 조금씩 거울을 덜 보게 되고, 조금씩 사진찍기를 거부하게 되고, 내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아 속상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라니... TV출연 후 아름이는 서하라는 동갑내기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는다. 아름이처럼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는 서하와의 소통을 통해 난생 처음 아름이는 '청춘'이라는 것이, 가슴 두근거림이라는 것이 단순히 계단을 많이 올라서 생기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열 일곱. 나에게 있어 열 일곱이라는 시간도 그리 기억에 남는 시간은 아니다. 고등학생이었고, 그저 학교 다니느라 바빴고, 같은 버스를 타는 남학생의 눈길에 신경이 쓰였고, 도시락에 집착했다. 그렇게 쉽게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나중이 되어서야 다른 열 일곱을 붙들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흘려버릴 시간이 아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라고... 아름이는 그런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렸기에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을 볼 때도, 어머니의 빗에 낀 머리카락을 볼 때도,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를 들을 때도 살고 싶어진다. 마음은 박남정인데 몸은 송대관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가 몽땅 빠져버린 할머니에게서도 소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라도 몸에 맞는 나이를 가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부터도 마음만은 십대니까. 철 들자 망령이라고 누구나 다 철 들기 전에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된다. 나이보다 마음이 더 나이든 것 같은 아름이가 서른 넷 젊은 엄마와 아빠를 철 들게 하고 읽는 사람들의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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