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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유명 연예인이 쓴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유명세를 등에 업고 대충 끄적인 말조차도 '책'이 되는 현실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복싱을 열심히 해서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며 해맑게 웃고 있는 여자 연예인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조차도 정말 대단하다, 정말 열심히 했구나 했는데 덧글 중에는 그런 글이 있었다. 복싱만 해서 그걸로 먹고 살겠다고 열심히 하는 어린 애들 이겨서 좋겠다고. 비슷한 비유는 아니지만 책 같은 거 쓰지 않아도, 복싱 같은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벌며 잘 사는 연예인들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영역을 다른 범위로까지 넓혀가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일까. 예쁜 얼굴로 드라마에 CF에 영화까지 찍으면서 뷰티에 관한 책을 내는 여자 연예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워낙에 입소문도 좋았고, 김제동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괜찮았던지 혹은 책 안에 나오는 어떤 사람 말처럼 김제동의 얼굴이 얼굴로 돈 벌어 먹고 살만한 얼굴이 아니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아서였는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같은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소설가, 지식인, 스포츠인, 교수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고 나눈 이야기들이 짤막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는 술 한잔씩 기울여가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속에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포인트만을 짚어주고 있다. 제법 많은 인터뷰이들과의 딱딱하지 않은 대화체의 인터뷰라 술술 쉽게 읽힌다. 짧은 대화만으로 그들의 본심을 다 짚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그 대화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누군가는 우리나라가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거 아니냐고, 우리나라 사람인데 당연히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거 아니냐고. 김제동이 만난 사람들은 그저 시골 아낙이거나 도시의 중산층, 아이들의 학원비를 위해 밤이고 낮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는 평범한 아버지이거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대학등록금을 위해 낮은 시급도 마다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리네 청춘들이 아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는 한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그저 사전에나 나오는 말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 상류층의 행태를 보면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그저 된거라고, 내가 배부르니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배고픈 줄 모르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들의 대부분은 병역문제만 나오면 꼬리를 내리고, 우리나라 몇 대 기업이라고 손꼽히는 대기업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나라'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증거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어쩌면 낯설기까지 했다면 오버일까.
나우콤 문용식 대표의 말이 와 닿았다.
"상식적으로 얘기하는 게 좌빨이라면, 좌빨하고 말죠."
우리나라 정치판은 좌파니 우파니하며 편가르기를 너무나 좋아한다. 예로부터 그넘의 남인이니 서인이니, 노론이니 소론이니 그렇게도 갈라대더니 아직까지도 그 버릇을 못 고쳤다. 물론 정치적 성향을 나눌 수는 있다. 누군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에도 공화당이 있고 민주당이 있고, 극우파도 있고 다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할 줄 아는 미덕,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상식, 나하고 같은 성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사람들이 하는 말을 적어도 경청하고 그것에서 내 잘못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의 반대이니 무조건 틀린 것이고, 좌빨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 버릇은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우스갯소리로 길거리의 우체통이 왜 빨간색이냐고, 치워버리라고 했다고 하는 것처럼 좌파+빨갱이 해서 '좌빨'이라고 편협하게 몰아붙이는 유치한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말하고 더 나은 생각을 생산해내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부터 하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도 우리나라가 정치 후진국을 못 면하는 이유이다. 여백이 많은 책이다. 인터뷰가 길지 않아 오히려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아~ 난 참 애국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