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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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슬픈 이야기이다. 슬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가슴을 저미는 이야기이다. 난 슬픈 이야기가 싫다. 슬프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슬픈 영화도 좋아하고, 슬픈 이야기도 좋아했다. 다큐멘터리 같은데서 아픈 사람들이 나오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보면서 울어제끼는 일도 많이 했다. 그것이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도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해맑게 웃는 내 아이를 보면서부터는 그런 이야기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볼 수가 없었다. 아픈 사람들은 늘 그랬다. 아픈 사람들의 부모는 늘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얼마나 건강했는지 몰라요." "야구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렇게 건강하고 밝고 명랑하던 우리 아이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코피가 나고, 그렇게 병원에 들어 앉아버리는 것이 순서였다. 내 예쁜, 건강한 아이를 앞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는, 볼 수는 없었다.

 

아름이는 17살이다. 17살에 사고를 쳐서 아름이를 낳았던 아름이의 부모, 딱 그 나이다. 이제 겨우 서른 넷이 된 아름이의 부모는 아직 너무 젊다. 하지만 아름이는 너무나 늙었다. 빨리 늙는 병에 걸렸고, 이제 아름이의 몸과 얼굴은 온통 할아버지의 그것 이상이다. 4살부터 이상증상을 겪기 시작해서 열일곱 나이에 노인이 되어버린 아름이는 젊다는 것, 청춘이라는 것을 건너뛰어 버렸다. 어린아이에서 갑작스럽게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17살이 된 것도 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가만히 병원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내는 환자들은 제 나이 또래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자기 눈 앞의 어머니와 아버지, 외삼촌과 외숙모, 한여름과 한겨울이 기적이라 믿어온 아름이가 잘 하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물어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아름이. 병원비에 지쳐버린 부모님을 위해 아름이는 아름이를 위해 성금을 모을 수 있는 TV에 출연을 결심한다. 인터뷰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늙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에요?" 열 일곱 청춘,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만큼 왕성한 식욕에, 하루를 꼬박 달리도고 다음 날이면 벌떡 일어나 또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건강한 신체, 지나가는 이웃집 소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색으로 치자면 너무도 파란, 샛파란 청춘의 마음을 가진 하지만 이미 몸은 8~90 먹은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한 번도 청춘을 가지지 못했던 소년에게 하는 질문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싶다.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어 가는 사람도 늙는다는 것에 면역을 가지지 못한다. 조금씩 거울을 덜 보게 되고, 조금씩 사진찍기를 거부하게 되고, 내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아 속상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라니... TV출연 후 아름이는 서하라는 동갑내기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는다. 아름이처럼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는 서하와의 소통을 통해 난생 처음 아름이는 '청춘'이라는 것이, 가슴 두근거림이라는 것이 단순히 계단을 많이 올라서 생기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열 일곱. 나에게 있어 열 일곱이라는 시간도 그리 기억에 남는 시간은 아니다. 고등학생이었고, 그저 학교 다니느라 바빴고, 같은 버스를 타는 남학생의 눈길에 신경이 쓰였고, 도시락에 집착했다. 그렇게 쉽게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나중이 되어서야 다른 열 일곱을 붙들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흘려버릴 시간이 아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라고... 아름이는 그런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렸기에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을 볼 때도, 어머니의 빗에 낀 머리카락을 볼 때도,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를 들을 때도 살고 싶어진다. 마음은 박남정인데 몸은 송대관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가 몽땅 빠져버린 할머니에게서도 소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라도 몸에 맞는 나이를 가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부터도 마음만은 십대니까. 철 들자 망령이라고 누구나 다 철 들기 전에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된다. 나이보다 마음이 더 나이든 것 같은 아름이가 서른 넷 젊은 엄마와 아빠를 철 들게 하고 읽는 사람들의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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