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임 소리 마마 ㅣ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 나라 소설 중에 <잘자요, 엄마>라는 책이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인데다가 내용이 워낙 섬뜩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달리 내용 자체는 차가운 겨울날 밖에서 꽁꽁 언 스테인레스에 손을 데인 것처럼 깜짝 놀랄만큼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우리나라 소설계에는 흔치 않은 추리물이었고, 여성작가의 책이었기에 더욱 눈여겨 보았던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었던 <배드시드>의 기억과 맞물리면서 가장 어린 소녀 악당(악당이라는 표현은 차마 귀엽기까지하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소녀들이 나이가 들면 이 <아임 소리 마마>의 주인공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른 채, 기억하는 한 그녀는 사창가에서 쓰레기처럼 자랐다.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고 따뜻하게 감싸주지도 않았다. 사창가를 관리하는 왕엄마의 다락에서 몸을 웅크리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딘 채 자라났으며 사창가의 다른 예쁜 여자들의 발에 채이면서 기어다녔다. 그런 그녀는 엄마의 유품이라는 낡고 흰 구두를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분에 내키지 않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아무 죄의식없이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코이다.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게 아니다. 그녀를 기분나쁘게 했으니까, 그녀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정말 살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이름을 바꿔가며 이곳 저곳 그녀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가며 이 사회의 어두운 밑바닥을 헤치며 살아온 아이코는 이 소설 속에서 철저하게 피의자 신분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녀가 피의자이기에 앞서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땅히 사랑받고 태어나 키워져야 했을 그녀의 어린 시절은 사회로부터, 가정의 보살핌이나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버려져 있었다. 그런 사실만으로 그녀가 잔학한 각종 범죄의 피의자가 되었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애초에 가졌어야 할 모든 것들 중에 어느 것 한가지도 가질 수 없는 약자 신분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그녀가 사회 안에서 정당한 게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너무나 큰 핸디캡을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아이코는 뺏는 입장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뺏겨 왔으며, 타인을 차별하는 입장이면서도 차별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세상과 투쟁해야 하며, 그 투쟁은 살인과 방화, 절도로 표현된다."
우리가 흔히 '사이코'라고 부르는 범죄자들의 경우, 굉장히 많은 부분 어린 시절의 정서장애나 애정 결핍, 가족의 학대등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다거나, 알콜이나 약물 중독으로 집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는다거나, 혹은 상태가 좋지 않은 보육시설에서 자라나면서 또래집단으로부터 지속적인 상실감을 느끼고 집단 따돌림 같은 것을 경험했을 경우 정서상태의 문제점은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장애라는 것은 단순히 사고를 당해서 겪게 되는 신체적인 장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폭행이나 폭언, 감정적 폭행으로 인하여 마음이, 정신이 다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 망가지게 할지 모르는 정말 위험한 사고이다. 그런 이해가 범죄의 용인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짊어지고 나아갈 한 사람의 건강한 정신을 가진 아이를 키워 나가기 위해서 가정에서도 혹은 사회전체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